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1)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1화(11/241)
입술을 삐죽이던 데미안이 한참만에 웅얼거렸다.
“……난 엘리의 동생이 아닌데.”
“음, 하지만 데미안. 나 너보다 나이 많은데.”
“…….”
“너 열한 살이잖아. 난 열세 살이고.”
할 말이 없는지 데미안이 입을 꾹 다물었다.
데미안은 동생이라는 말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입술을 삐죽이는 모습이 ‘나 화났소’하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나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장난이야. 사실 다른 생각 했어.”
“……뭔데?”
“데미안이랑 이렇게 같이 자서 따뜻하다는 생각.”
“아…….”
능구렁이처럼 넘어가기 위해 둘러댄 말이었는데, 데미안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나, 나도…….”
그러더니 우물거리면서도 맞장구를 쳤다.
귀엽긴. 나는 픽 웃으며 이불을 여몄다. 언뜻 본 창밖은 아직도 눈이 휘날리고 있었다.
“우리도 어서 자자. 밤이 늦었어.”
“응.”
“좋은 꿈 꿔, 데미안.”
“……엘리도.”
데미안이 듣기 좋은 미성으로 속삭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따금 덜컹거리는 창문 소리와 아이들의 색색거리는 숨소리, 데미안의 체온.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기분 좋은 꿈을 꾸었다.
햇살이 가득한 푸른 초원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는 꿈이었다.
* * *
매캐한 약 냄새가 났다.
인위적으로 재배한 약초의 냄새였다.
“형편없군.”
그러나 눈앞의 남자에겐 통하지 않았다.
“이깟 향으로 나를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붉은 기가 도는 흑발이 램프 불빛으로 인해 핏빛처럼 보였다.
반쯤 머리가 벗어진 남자가 사내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덜덜 떨었다.
“죄, 죄송합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으니 죽음으로 갚으면 되겠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검을 쥔 손을 까딱였다.
이미 수차례 베어낸 검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거슬리는 이라면 누구도 가리지 않고 베어낸다는 전장귀, 에르하르트 슈에츠 공작이었다.
몸을 바들바들 떨던 사내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한 번만,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슈에츠 공작님이신 줄, 정말 몰라 뵈었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사내가 쿵, 소리가 나도록 땅에 이마를 대었다.
“공작님,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다 죽이러 오신 건 아니지 않습니까.”
공작의 뒤편에 서 있던 기사, 안테가 진정시키듯 말했다.
“죽여달라잖아.”
그러나 살벌한 말을 입에 담는 에르하르트의 얼굴엔 어떠한 자비도 보이지 않았다.
“내 성격상, 이런 부탁을 듣고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말이야.”
에르하르트가 엎드린 사내의 곁으로 다가갔다. 가까워질수록 짙은 피비린내가 났다.
“그전에 하나만 묻지.”
“무, 무엇입니까?”
“아이는 어디 있나.”
에르하르트의 물음에 사내는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올 게 왔구나.’
슈에츠 공작이 아이를 찾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흑발에 벽안을 가진 아이라면 가리지 않고 확인한다고 했었다.
그리고 아이를 찾기 위해 자신이 사는 영지까지 오고 있다는 말도.
때마침 사내의 노예도 흑발에 벽안이었다.
싼값에 팔겠다기에, 얼씨구나하고 샀는데…….
‘그 아이가 정말 클라이더 공작의 아들이었을 줄이야!’
혹시 몰라 다른 사람에게 맡긴 것이 다행이었다. 사내는 자신의 선택에 감사하며 입술을 떼었다.
“아, 아이는…… 고아원에 있습니다.”
“고아원?”
“예. 제, 제가 아는 사람이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더군요. 이런, 험한 곳에 있는 것보다 고아원에서 지내는 게 아이에게도 더 낫지 않을까 싶어 그리로 보냈습니다.”
그러자 에르하르트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죽여달라면야.”
그가 검을 높이 쳐들었다.
“정, 정말입니다! 정말 사실입니다!”
사내가 비명을 내지르다 종국엔 울음을 터뜨렸다. 에르하르트가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공작님.”
안테의 부름에 에르하르트가 짜증 가득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왜.”
“이 자의 말이 완전히 거짓 같지는 않습니다.”
그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게 무슨 말이지? 제국에 존재하는 고아원이란 고아원은 모두 뒤졌다. 아이가 있었다면 진작 발견했을 거야.”
“며칠 전에 전갈을 하나 받았습니다. 이 근방의 세인트 고아원에 흑발, 벽안을 가진 아이가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에르하르트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 이야기를 왜 지금 하지?”
“말만 고아원일 뿐, 고아인 아이들을 데려다 온갖 더러운 일을 일삼는 곳입니다. 워낙 팔려 가듯 입양가는 아이들이 많기도 하고요. 사실 여부를 확인한 후 말씀드리려고 했-”
안테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에르하르트의 검이 안테의 목전에 닿았다.
조금만 더 힘을 줬다면 그대로 목이 잘려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안테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에르하르트도 마찬가지였다.
“널 죽여버리고 싶군. 지금 이 자리에서.”
“……죄송합니다, 공작님.”
안테를 노려보던 에르하르트가 검을 내렸다. 이렇게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네가 아이를 보낸 고아원 이름도 세인트가 맞나?”
“네, 맞습니다. 세, 세인트 고아원입니다!”
엎드려 있던 사내가 동아줄이라도 잡은 사람처럼 외쳤다.
“전갈을 보내. 지금 바로 방문하겠다고.”
“예.”
안테가 에르하르트를 따라 움직였다.
사, 살았다. 사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아.”
문득 그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전에 일단 저 자식부터 처리해.”
“예, 예에?!”
“알겠습니다.”
“잠, 잠시만요, 공작님! 공작님! 끄아악!”
절박한 부름이 들렸으나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 * *
‘웬일로 좋은 꿈을 꿨나 했더니.’
나는 콜록거리는 데미안을 보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데미안, 많이 아파?”
“아니, 안 아파…….”
그러나 목소리는 볼품없이 쉬어있었다.
찬바람을 많이 맞은 데다가 엉엉 울기까지 해서 그런가. 데미안은 열병을 앓았다.
“안 아프긴. 목소리가 그 모양인데.”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솔직히 말해. 언제부터 아팠어?”
“……어젯밤부터.”
“뭐? 그런데 나한테 한마디 말도 안 한 거야?”
나의 핀잔에 데미안이 시무룩한 얼굴로 눈썹을 늘어뜨렸다.
‘그것도 모르고 따듯하다고 좋아했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체온계를 든 토미를 향해 물었다.
“열은 어때?”
“높은 편이야. 오늘은 꼼짝없이 누워만 있어야겠는데.”
토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렇게 열이 펄펄 끓는데 멀쩡한 걸 보면 건강한 것 같기도 한데……” 하고 중얼거렸다.
난 아무것도 못 들은 척 허리에 손을 올렸다.
“봐. 데미안. 들었지? 오늘은 보건실에서 얌전히 누워 있어야 해.”
“……그럼 엘리는?”
“나는 일해야지. 안 하면 원장님께 혼나.”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장난스럽게 말한 건데, 데미안은 제일처럼 울상을 지었다.
“데미안, 금방 올게. 나 일 잘하는 거 알지?”
“알지만…….”
“정말 금방 올게. 수프도 끓여서 올 테니까 눈 감고 백 번만 세는 거야.”
“응.”
데미안은 싫은 티를 내면서도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빨리 와야 해……?”
“당연하지.”
아이 착하다. 나는 데미안의 뜨거운 뺨을 살살 쓸어주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뒤편에 있던 토미가 질린다는 얼굴로 혀를 내두르며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완전…… 여우구만.”
“뭐? 무슨 소리야?”
“어? 그냥 혼잣말이야.”
토미가 어색하게 웃으며 재빨리 방을 빠져나갔다.
어디 아픈가. 나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토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뒤따라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