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10)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10화(110/241)
늘 그렇듯 식사 시간은 가벼운 분위기로 흘러갔다.
데미안과 엘리가 장난치며 열심히 식사를 했고, 에르하르트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잘 먹었습니다!”
엘리가 자리에서 폴짝 내려왔다.
“아직 디저트는 먹지 않았는데.”
에르하르트의 물음에 엘리가 고개를 저었다.
“아셀이랑 놀기로 약속해서, 얼른 가봐야 해요! 온실에 가기로 했거든요.”
“나, 나도 갈래.”
엘리의 말에 데미안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응. 안 돼.”
엘리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늘 데미안을 옆에 끼고 다니던 엘리였는데.
답지 않은 반응에 에르하르트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떠올랐다.
“우리 둘만 놀기로 했단 말이야.”
“하, 하지만…….”
데미안은 속상한 듯 울상을 지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가가 붉었다.
이럴 때마다 엘리는 데미안을 꼭 끌어안고 여린 소년을 달래주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어흑, 하고 가슴께를 붙잡던 엘리가 이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나중에 놀자.”
오늘의 엘리는 무척이나 단호했다. 데미안이 무어라 붙잡을 틈도 없이, 그러나 어른들에게 인사는 잊지 않은 엘리가 그대로 식당을 나섰다.
“……데미안.”
아니, 나서기 전이었다.
“나 계속 온실에 있을 거야. 아셀이랑 향수를 만들기로 했거든”
어쩐지 조심스러운 얼굴로 소녀가 말했다.
“냄새가 독해서 그래.”
“…….”
“……한 시간쯤 뒤라면 괜찮을 거야. 냄새 다 빠지면, 그땐 와도 돼.”
엘리는 그 말을 남기며 식당 밖으로 나갔다.
누가 보면 매정하다 말하겠지만, 에르하르트는 알았다.
엘리는 아셀과 놀기 위해 빠져나간 것이 아니었다.
‘자리를 비켜준 것이지.’
데미안이 포르겔의 이야기를 편히 들을 수 있도록.
엘리가 부인이라고 해도 데미안에겐 아픈 과거였다. 데미안의 입장에선 함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향수로 둘러댄 것일 테고.’
향이 다 빠지면 와도 된다는 말은, 이야기가 다 끝날 때까지 온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힘들면 찾아와도 된다는 뜻이었다.
늘 느끼는 것이었지만, 무척이나 속이 깊은 아이였다.
‘정작 본인도 어린아이면서.’
에르하르트가 미간을 좁히며 이마를 짚었다.
리칼 포르겔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겨우 과거를 잊고 나아가는 아이였다. 다시 그의 이야기를 꺼내, 어두운 악몽의 늪에 빠트리고 싶지는 않았다.
완전히 다 자라,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모르는 척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데미안에게 또 다른 기만일지도 몰랐다.
“……데미안.”
답지 않게 망설이던 에르하르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전에 했던 말, 기억하느냐?”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네가 살로메 남작의 머리에 찻물을 부었을 때.”
침묵하던 데미안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비난의 여론이 바뀌어 돌아올 수도 있으니, 함부로 싸우는 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그랬지.”
에르하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야기는 왜 꺼내는 것일까? 데미안은 조금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리칼 포르겔을 잡았다.”
“……!”
“현재는 지하 감옥에 가둬놓았고.”
데미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에르하르트는 소년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오래된 사연을 꺼냈다. 혹시라도 데미안이 거부 반응을 보인다면 즉시 이야기를 뒤로 미룰 생각이었다.
점차 빨라지는가 싶던 소년의 호흡이 다시 차분해졌다.
“지금 보러 가도 되나요?”
무감한 얼굴이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인형 같았다.
“사람 꼴로도 보이지 않을 텐데.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거다.”
“공작님.”
헤론이 조용히 그를 불렀다. 그 이상의 표현으로 데미안이 상처 받을까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헤론의 눈동자에도 오랫동안 억눌렀던 분노가 금방이라도 차오를 것처럼 넘실거리고 있었다.
“……보고 싶습니다.”
침묵 속에서, 소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습니다.”
“……그래.”
에르하르트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칼 포르겔은 지하 감옥에 가둬둔 상태였다.
감옥 앞으로 다가가자 입구를 막고 있던 검은 연기가 주인을 알아보기라도 한 것처럼 옅어졌다.
“끄으윽…….”
검은 형체가 감옥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흠칫 몸을 떨었다.
족쇄가 잘그락, 하고 그의 발버둥을 알렸다.
헐떡이던 리칼 포르겔이 데미안을 마주하곤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살아 있군요.”
“그래. 살아는 있지.”
데미안이 어두운 눈빛으로 리칼 포르겔을 내려다보았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노예로 팔리기 전, 리비아 포르겔과 함께 자주 가게를 방문하던 사람이었다.
제 삶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은 장본인. 그리고, 제 부모님을 죽인 사람.
‘그게 당신이었구나.’
“끄으…….”
그때 찰나의 자비를 바라듯, 리칼 포르겔이 데미안의 발치로 엉금엉금 기어 왔다.
여전히 소년의 얼굴엔 변화가 없었다.
분노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푸른빛 오러가 작은 소년의 몸을 휘감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엉금엉금 기어와 발밑에 이마를 몇 차례 박는 모습을 보니…….
이미 인간이길 포기했구나.
아니, 애초에 짐승보다도 못 한 인간이니 당연한 생각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살려두겠습니다.”
그에게 죽음은 안식이었다. 편히 도망치게 둘 수 없었다.
“그래. 그렇게 하마.”
에르하르트는 그저 가만히 수긍했다. 데미안이 다른 말을 내놔도 같은 반응을 보였으리라.
리칼 포르겔이 자비를 바라듯 소리쳤으나 누구 하나 뒤돌아보지 않았다.
“저…….”
감옥을 나오고, 그의 검은 오러가 문을 감쌀 때였다.
“……감사합니다.”
데미안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에르하르트는 그런 소년을 지그시 바라보다 물었다.
“무엇이.”
“전부…….”
“…….”
“그리고…… 죄송합니다.”
여린 미성이 힘없이 잘못을 고했다.
사랑하던 아내를 잃고, 성문을 닫았던 공작이다. 그랬던 그가, 황궁과 신전에 맞서고 있었다.
‘나 때문에.’
그런 줄도 모르고 공작을 따라가지 않겠다며 떼를 부렸던 자신이 너무나 어리석게 느껴졌다.
“죄송합니다, 공작님. 저는-”
그때였다.
크고 묵직한 것이 데미안의 머리를 꾸욱 눌렀다.
묵직함에 데미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르하르트의 큼지막한 손이 데미안의 머리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갑작스러운 공작의 행동에 놀랐는지, 데미안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우뚝 서 있었다.
“다른 건 다 닮았으면서, 성격만큼은 아비와 딴판이구나.”
“…….”
“그 뻔뻔한 성미를 조금이라도 닮았어도 좋으련만.”
인상을 찌푸린 그는 기분이 나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속상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뭘 멍하니 서 있어?”
“아…….”
에르하르트가 한숨을 내쉬며 데미안의 머리를 엉망으로 헝클었다. 깜짝 놀란 데미안이 몸을 움츠렸다.
쯧, 에르하르트가 혀를 차며 손을 거뒀다.
“자책하지 마라.”
“…….”
“난 네 보호자야. 어른으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다.”
어른.
데미안은 조용히 그 말을 입안에서 굴렸다.
‘공작님처럼 어른이 되면 나도 누군가를 지킬 수 있을까?’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야겠다는 것도 잊은 채, 데미안은 오도카니 서서 그 생각을 곱씹었다.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데미안은 내일을 꿈꾸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버겁고 무서웠다.
그랬던 아이가 지금은 내일을 꿈꾼다. 아주 먼 미래를 상상한다.
엘리를 만나지 않았다면, 제게 손 내밀어주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기적이었다.
아무도 믿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각 따윈 신경 쓰지 않은 채 그저 어둠 속을 헤맸겠지.
그 순간, 고아원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저를 대신해 카르센과 그 무리들을 쫓아낸 엘리는, 이렇게 말했다.
“원래 어른들은 아이들을 도와줘야 해.”
“물론 네가 본 어른들 중 아직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데미안, 널 도와줄 사람은 있어, 분명히.”
“그 사람은 믿어도 돼.”
그 말에 저는 믿으면 어떻게 되냐고 물었고, 엘리는 이렇게 말했다.
“행복해질 거야.”
마치 모든 이야기의 결말을 아는 사람처럼.
믿을 만한 어른.
믿게 해 준 사람.
“……엘리”
엘리를 떠올리자 인형처럼 무감한 소년의 얼굴에 빠르게 감정이 드러났다.
이에 에르하르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이 모습을 내 며느리도 봐야 할 텐데.”
그럼 그토록 싸고도는 일도 없을 테지.
입가에 삐딱한 미소를 건 채로, 그가 고개를 까딱였다.
“어서 가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귀찮다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그 속의 애정이 느껴졌다.
데미안은 꾸벅, 고개를 숙인 후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시도 쉬지 않고 온실로 향했다. 아셀과 함께 있다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그녀는 혼자였다.
따뜻한 햇빛이 엘리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 광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데미안은 못 박힌 것처럼 멍하니 엘리를 바라보았다.
엘리를 보자 가슴을 억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한순간에 사라진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심각한 얼굴로 무어라 중얼거리던 엘리가 데미안을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데미안!”
헐레벌떡 달려온 소녀가 데미안을 붙잡고선 모습을 살폈다.
“괜찮은 거야? 무슨 일 없었지? 어…… 머리는 왜 이래?”
엘리가 엉망으로 헝클어진 데미안의 머리를 정리해 주며 물었다.
데미안은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 엘리를 꼭 끌어안았다. 엘리가 놀란 듯 입을 뻐끔거렸다.
그들의 포옹은 엘리가 데미안의 귀여움을 이기지 못해 와락 끌어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부끄러움이 많은 데미안은 엘리의 손만 닿아도 파드득 몸을 떨었기 때문에, 먼저 안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데미안이 먼저 엘리를 안은 건 처음이란 뜻이었다.
입을 뻐끔거리던 엘리가 날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데미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음, 데미안이 안았다기보단 내가 안은 것 같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저보다 한 뼘 정도 작은 데미안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울거나 우울해할 줄 알았는데…….’
데미안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 모습에, 문득 고아원에서의 첫 만남이 생각났다.
어차피 다시 맞을 테니, 상처를 치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던.
체념을 먼저 배웠던 데미안이.
엘리는 속상해졌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저를 찾아줬다는 게 고맙기도 했다.
“엘리, 고마워.”
그때, 데미안이 작게 속삭였다.
“뭐가?”
“그냥, 다.”
“그게 뭐야.”
엘리가 픽 웃었다. 그러면서도 데미안을 밀어내지 않았다.
데미안은 엘리를 안은 손에 힘을 주며 생각했다.
놓치고 싶지 않다고.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겠다고.
소년의 안식이 여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