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14)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14화(114/241)
그는 다시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엘리와 함께 리번스 자작의 저택을 방문했던 것과 그들이 만든 설계도까지.
설명을 다 듣자 굳었던 헤론의 표정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마도국이었던 리번스 왕국을 이끌었던 사람이니, 실현 가능성은 높아 보였다.
“하지만 신뢰는 전무하지요.”
“…….”
“그것이 만들어진다 한들, 이용하는 사람이 없다면 헛수고가 될 겁니다.”
할 말이 없는 듯 제리트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에르하르트는 그때까지도 말이 없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가 제리트를 향해 툭 내뱉었다.
“엘리는 뭐라고 했지.”
“……예?”
“엘리도 그 자리에 함께 있다지 않았나.”
그건 왜 물으시는 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제리트는 순순히 대답했다.
“제가 비옥한 영지에 시들어버린 꽃이 있다면. 해서 그 꽃이 새로 자라날 땅을 망친다면.”
“…….”
“시들어버린 꽃을 뽑고 다시 심으실 거냐고 여쭸습니다.”
“이미 썩은 대지에 그렇게 정성을 들여 무엇에 쓰려는 것이지?”
순간, 잔상처럼 떠오르는 기억에 에르하르트가 입매를 굳혔다.
과거, 비슷한 질문을 했기 때문이 었을까.
“뭐라고 하던가.”
언젠가 들었던 대답을 떠올리며, 그가 물었다.
“그 땅에, 계속 그늘이 지냐고 물으셨습니다.”
“……뭐?”
에르하르트의 시선이 짤막하게 흔들렸다.
“공작님께선 고개 숙이고, 눈 맞춰 보지도 않으셨으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네요. 먹구름이 사라지고 난 다음엔 태양이 떠오르는 법이에요.”
“낮은 곳에 있는 것만큼 많이 밟히는 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더 애정을 주고 잘 보살펴야죠.”
“새로운 꽃을 심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고도 덧붙이셨습니 다.”
“함께 고민해 주면 더 고마울 것 같은데. 혹시 알아요? 답을 찾게 될지.”
제리트의 말이 기억과 맞물리기 시작했다.
에르하르트가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왜 갑자기 유리아의 목소리가…….’
잠잠해졌나 했건만.
제 몸에 흐르는 지긋지긋한 피가 또다시 저를 혼란 속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환청은 광증의 일부였다. 미치기 직전까지 그리워하는 목소리를 들려주고 절벽 끝까지 몰아붙였다.
그러다 한순간에 사라져, 그 목소리라도 다시 들려달라 빌게 만들었다.
“……공작님?”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살피던 제리트가 피어오르는 오러에 흠칫 몸을 떨었다.
예기치 못한 광증의 발현이었다.
‘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신관은 부를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피를 보는 것.’
제리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보좌관을 불러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가 허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이마에 핏줄이 불거질 정도로 고통스러워 보였으나, 에르하르트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별일 아니다.”
“하지만-”
테이블을 더듬던 에르하르트가 눈앞의 페이퍼 나이프를 그러쥐었다.
“공작님, 설마…….”
뒤이은 에르하르트의 행동에 제리트의 얼굴이 경악으로 차올랐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다. 신전과 교류가 끊긴 데다, 더 이상 종전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 번쯤 광증을 내보일 법도 하건만, 공작은 조용했다.
그래서 제리트는 광증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피를 통해, 그 오랜 시간을 버텨온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망설임 없이 자신을 찌르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제리트가 아연한 얼굴로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이지를 잃었던 눈동자가 천천히 제 빛을 찾기 시작했다.
흐릿한 동공과 거칠어졌던 숨이 아주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선혈이 천천히 줄어드는가 싶더니, 이내 완전히 상처가 사라졌다.
“……!”
두 눈으로 봐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미안하군.”
에르하르트가 전보다 나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발현할 줄은, 예상도 못해서.”
“…….”
“정말 미쳐가기라도 하는 건가.”
그가 자조 섞인 중얼거림을 내뱉으며 피식 웃었다.
“데미안과 엘리가 지금 있었던 일을 몰랐으면 한다.”
“……예, 알겠습니다.”
헤론과 제리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입안에 많은 말이 맴돌았으나 내뱉을 수 없었다.
이 순간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공작이었다. 어떤 말로도 그의 심정을 위로할 수 없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지.”
다시 무감한 얼굴로 돌아온 에르하르트가 피 묻은 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제국에 리번스 자작에 대한 신용이 없는 것은 사실이나 그가 가진 지식은 누구도 범접할 수없지.”
“하면…….”
“리번스 자작에게 신성석을 유통해. 그에 따른 기술은 아만타 남작과 제리트 경, 그대가 신경 써줬으면 좋겠군. 후퍼, 그대도 도움을 줬으면 좋겠어.”
“알겠습니다, 공작님.”
대륙을 잇는 새로운 운송 수단.
이 일이 성공한다면 클라이더는 물론 슈에츠까지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기반을 다지게 된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황후와 척지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만들어야겠지.’
일시적인 현상이면 좋겠지만, 오늘과도 같은 일이 반복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는 공작성을 떠나 있어야 했다.
이성을 잃은 상태로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지, 그조차도 알 수 없었다.
제 몸속에 흐르는 지긋지긋한 피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다.
그러니 꾸역꾸역 살아야 했다.
남은 삶은 그에게 벌이었으므로. 무저갱 같은 그리움 속에서 평생을 헤매야겠지.
내가 어떤 심정으로 날 찌르는지, 당신은 알까.
잔혹한 기분을 느끼며, 에르하르트는 눈을 감았다.
* * *
그 시각, 황후 궁.
오랜만에 찾아온 라티오넬 백작은 일그러진 얼굴로 자신의 딸 카르티아를 바라보았다.
“이 일을 대체 어떻게 할 게야? 신전에 무슨 말을 했길래!”
그는 길길이 날뛰며 자신의 분노를 표출했다.
신전이 유일한 신성석 유통처인 라티오넬 백작에게 더 이상의 배급은 없다며 통보했기 때문이다.
“너를 그 자리에 앉힐 수 있었던 게 다 누구 덕인데!”
“…….”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이 배은망덕한 계집!”
쨍그랑!
그가 내리친 꽃병이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바닥에 흩뿌려졌다.
놀랄 만도 하건만, 황후 궁의 시녀들은 담담한 얼굴로 조용히 그 잔해들을 치웠다.
라티오넬 백작이 씩씩거리는 동안, 카르티아는 태연한 얼굴로 찻잔을 기울였다.
“너무 분노치 마십시오, 아버지.”
“뭐야?”
“그에 대한 대안은 다 생각해두었으니까요.”
확신 섞인 어조에 그의 분노가 조금 가라앉았다.
“제리트 아만타에게 사업을 제안했습니다. 홍수 피해를 입은 스나우트 령, 그곳에서 새로운 사업을 함께하지 않겠냐고요.”
“제리트라면…… 슈에츠 공작가의 가신이군.”
“네. 듣기로 슈에츠 공작의 신임이 두텁더군요. 새로운 신성석도 잘 알고 있는 눈치였고요.”
백작의 험악한 얼굴이 한결 풀렸다.
“……스나우트 영지가 필요하다 말한 것도 이 때문이겠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나우트 백작이 아버지의 카지노에 푹 빠진 덕분에, 무사히 영지를 가질 수 있었어요.”
방긋 웃으며 감사 인사를 표한 그녀가 테이블 위에 서류를 내려놓았다.
라티오넬 백작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이게 무엇이냐?”
“마탑과 협력해 만든 새로운 운송 수단입니다.”
“운송 수단?”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서류 뭉치를 확인했다.
지정 스크롤의 제작 방식을 이용해, 새로운 운송 수단을 만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제국을 넘어, 먼 대륙까지 이을수 있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성공한다면 큰돈이 될 수 있을터.
“어차피 스나우트 영지의 현 작농법으론 간신히 입에 풀칠만 하는 신세 아닙니까.”
그녀가 빙긋 웃었다.
“영지 개혁도 마땅히 황후로서 해야 하는 일이지요. 저는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