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17)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17화(117/241)
진열되어 있던 조각상이 일부 깨져 있었다. 그 옆에 있던 황궁 소속 시종이 어쩔 줄 몰라했다.
“이런. 내 신경 써서 만든 것인데. 잠시 실례하지.”
작게 혀를 찬 륀켈트 후작이 누군가를 향해 손짓했다.
다가온 사내는 연회복이라기엔 무척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륀켈트 후작의 속삭임을 전해 들은 사내가 “알겠습니다.”하고선 조각상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곤 품에서 뭔가를 꺼냈는데, 조각을 할 때 쓰는 망치와 정이었다.
이윽고 그가 무너진 부분을 빠르게 복구하기 시작했다.
“저 사람은…… 조각사입니까?”
제리트의 물음에 륀켈트 후작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조각에 관심이 많은 시종일 뿐이지. 내 담당 조각사가 무척이나 아낄 정도로 실력도 뛰어나다네.”
“그래도 저렇게 능숙히 수습할 정도면 보통 실력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대 말대로네. 나이젤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지만 않았더라면 이름깨나 알렸을지도 모르지.”
그가 딱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나는 눈을 빛냈다.
‘저 사람이 나이젤이구나!’
그는 훗날 제국에서 제일가는 조각사가 될 사람이었다.
나이젤은 평범한 시종이었지만 조각 공예 실력은 뛰어났다.
그 또한 조각사가 되고 싶었지만, 그의 집안은 대대로 농사를 지었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예술을 감당하기 빠듯했다.
제도로 올라온 그는 륀켈트 후작의 시종으로 들어가지만 재능은 숨길 수 없는 법.
그는 적은 월급을 털어 계속 작품을 만들었고, 그를 딱하게 여긴 후작이 작게나마 후원을 해준다.
‘그리고 나이젤의 작품은 만들어지는 족족 높은 값에 팔리게 되지.’
자, 그럼 생각해 보자.
훗날 제국에서 제일가는 조각사가 대륙에 큰 획을 그을 무한 마나 기차의 디자인을 맡는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씩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우와, 조각상이다!”
밝게 소리치며 다가가자 망치를 두드리던 나이젤이 나를 힐끔거렸다.
“이렇게 두드리는 거구나.”
땅땅 내리치는 손짓을 따라 하며 눈을 반짝반짝 빛내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레이디께선 조각에 관심이 많으신가 보군요.”
“네에. 하지만 맨날 깨부숴서, 혼나기만 해요!”
일부러 밝게 말하자 그가 푸스스 웃었다.
“힘 조절이 필요한 일이지요. 저도 어릴 때는 많이 부쉈답니다.”
“연습하면 저도 나아지겠죠?”
“물론입니다.”
따라 웃던 나는, 꼬물거리며 미리 가져온 뤼겔 나무껍질을 그에게 내밀었다.
“이것은…….”
“사포예요! 빌려드릴게요!”
조각이 끝나면 사포로 결을 정리했다.
뤼겔 나무껍질은 사포 역할을 못하지만, 내 행동은 퍽 귀엽게 보일 터였다.
“하하, 감사합니다.”
내 예상대로, 그가 웃으며 나무껍질을 받아 들었다.
뿌듯하게 웃던 나는 아차 하고 그에게 인사했다.
“앗, 인사가 늦었습니다. 엘리 슈에츠라고 합니다. 슈에츠 공작가의 며느리예요. 처음 뵙겠습니다.”
내가 공손히 인사하자 나이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그 소문의……. 제, 제 이름은 나이젤입니다. 륀겔트 후작님의 시종입니다.”
“후작님께서 말씀하신 분이셨군요!”
“후작님께서…… 제 이야기를 하셨습니까?”
“조각 공예 실력이 무척 뛰어나다고 하셨어요!”
“어, 어찌 그런 말씀을…… 아직 한참 부족합니다…….”
그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여기, 정말 깔끔히 정리됐는걸요?”
나는 방금 전까지 무너져있던, 그러나 완벽히 재탄생한 석고상을 가리키며 눈을 깜빡였다.
“원래부터 훌륭한 석고상이니까요. 저는 그저 잘 수습했을 뿐입니다.”
“으응? 그럼 나이젤 님께선 조각상을 만들지 않으시나요?”
“만들기야…… 합니다만…….”
“우와, 보고 싶어요!”
짝, 박수를 치며 눈을 빛내자 나이젤이 머뭇거렸다.
“제 작품은 가치가 없습니다. 레이디께서 시선을 두실 만한 게 못 됩니다.”
“궁금한데…….”
어깨를 축 늘어뜨리자 그가 움찔 몸을 떨었다.
“그…… 알겠습니다.”
나이젤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울창한 나무를 표현한 듯한 석고 조각상이었다.
“볼품없지요. 일하면서 틈틈이 조각한 것이라, 이리저리 흉도 많이 졌답니다.”
“아뇨, 정말 예뻐요!”
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럴 게, 무려 세계수 조각상이었다.
‘나이젤의 첫 번째 작품!’
시장에서 가장 비싸게 취급되는 건, 화가가 유명해지기 전에 그린 그림이다.
날것 그대로의, 가난한 신인 감성. 뭐 이런 거랄까. 수집가들은 그런 거에 환장하거든.
완성만 됐다면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렸을 테지만,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돈 주고도 못 사는 그 조각상을 내 두 눈으로 보다니!’
나는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이거, 제가 사도 될까요?”
“예? 이것을요?”
“이렇게 예쁜 세계수 조각상은 처음 봐요.”
“세계수라는 걸…… 알아보셨군요.”
꽤 감동한 얼굴로 나를 보던 그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완성이 덜 되어서, 다 만든 후에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좋아요!”
나는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야 또 만날 구실이 생기니까!’
그럼 마나 기차 이야기를 은근슬쩍 흘리기도 편해진다.
“그럼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예에…….”
나는 아직도 얼떨떨한 나이젤을 뒤로한 채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엘리는 그 조각상이 예뻐?”
나와 나이젤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만 있던 데미안이 물었다.
“으응, 데미안이 제일 예쁘지.”
“그, 그런 거 말고……!”
앗, 이게 아니었구나.
습관적으로 대답한 게 미안해진 나는 얼굴이 빨개진 데미안에게 물었다.
“왜? 데미안도 갖고 싶어?”
데미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완성도 안 됐잖아.”
“아직 뭘 모르네. 데미안, 그 건 돈 주고도 못 사는 거야.”
“왜?”
“있어, 그런 게.”
나는 갸웃하는 데미안의 뺨을 콕 찌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일단 목적 하나는 달성했고.’
그때, 주위를 훑어보던 나의 시야에 1 황자 파비안이 눈에 들어왔다.
곧장 1 황자 파비안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쭉 지켜보기라도 한 것처럼.
‘괜히 트집 잡힐지도 모르니까 모르는 척 해야지.’
나는 슬쩍 보고 안 본 척 시선을 피했다. 그런데 그가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니, 네가 이쪽으로 오면 안 되잖아!’
그럼 내 계획이 전부 어긋난다고!
나는 다급히 데미안에게 말했다.
“데미안,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가, 같이 가.”
“아니야. 나 혼자 금방 다녀올게.”
나는 데미안이 말 붙일 틈도 주지 않고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 * *
홀로 남겨진 데미안은 멀어지는 엘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1 황자, 파비안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데미안은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무조건 경계해야 할 황족.
자신의 부모님을 죽인 자들이었으니까.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파비안이 얼떨떨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다.
데미안은 본능적으로 그가 찾는 사람이 엘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꾸욱. 저절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였다.
눈이 마주치자 파비안이 데미안에게 다가왔다.
“미안하지만 혹시 함께 있던 영애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나?”
“제 부인껜 무슨 볼일입니까?”
데미안의 물음에 파비안의 미소가 굳었다.
‘부인이라면.’
설마 이 아이…….
파비안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데미안은 그런 파비안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황자님. 데미안 클라이더 슈에츠라고 합니다.”
그의 인사에, 잠시 입을 다물었던 파비안이 말했다.
“처음 만나는군요. 방금 전 무례는 부디 잊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데미안은 선을 긋듯, 딱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이 아이, 알고 있구나.’
자신의 가문에 황실이 어떤 짓을 했는지를.
그런데도 나름 선을 지켜 대답하다니. 듣기로 파비안과 동갑이라고 했는데.
날 선 말을 내뱉어도 모자랄 제게 표면적으로라도 정중히 예를 갖춘다.
‘성숙한 아이구나.’
어찌 됐건 이 아이에게 자신의 존재가 달갑지 않을 터였다. 파비안이 해명하듯 말했다.
“공자의 부인께 고맙단 이야기를 하려고 왔습니다.”
“…….”
“덕분에 제 소중한 물건을 찾을 수 있게 되었거든요.”
파비안이 부드럽게 웃었다.
발그레한 얼굴이 꼭 꿈이라도 꾸는 사람 같았다.
왜 저런 얼굴을 하는 거지? 엘리는…… 저 사람을 왜 만난 걸까?
저 아이에게, 그것도 황족인 파비안에게 어떤 도움을 준 걸까? 입안에 질문이 맴돌았다. 새어나가기라도 할까 입을 꾹 다물었지만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데미안은 목 끝까지 올라온 질문을 삼키고서 싱긋 웃었다.
“찾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전하의 말씀은 제가 직접 부인께 전해드리겠습니다.”
“아, 직접 만나서-”
“2 황자님께선 제 부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더군요.”
“…….”
“제 부인이 무서워할지도 모르니, 그 말씀은 제가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그 단호한 말에 파비안은 조개처럼 입을 딱 다물었다.
데뷔탕트 때, 그는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테오가 엘리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지 못한 것이다.
데미안의 말이 맞았다.
제가 다가가면 그 아이에게 피해가 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파비안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차올랐다.
반박이라도 하려는 듯, “그래도……” 하고 입술을 달싹이던 그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2 황자와 마찰이 있었다면.’
황후 폐하께서 무슨 짓을 벌일지도 몰랐다.
“뱀…….”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린 파비안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데미안의 귀에 들어간 후였다.
‘뱀?’
데미안이 미간을 좁혔다.
“죄송합니다, 그럼 전 이만……가보겠습니다.”
파비안은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꼭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설마 엘리를.’
파비안은 엘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는 황족이었다. 무조건 경계해야 할 대상.
‘그러고 보니…….’
엘리가 왜 이렇게 늦지?
덜컥 불안해진 데미안이 엘리를 찾기 위해 연회장을 나섰다.
화장실은 연회장 가까이 있었다. 엘리가 정말 화장실에 갔다면 진작 돌아오고도 남았을 시간.
가슴이 쿵쿵 뛰었다. 조급해진 데미안은 엘리를 찾아 황궁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서 엘리의 목소리와 함께,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