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20)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20화(120/241)
“두 사람이라면 스나우트 령을 잘 돌볼 수 있을 것 같아 내린 결정이니 너무 부담 갖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카르티아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언뜻 보면 천사의 미소 같겠지만, 내 눈엔 그저 한 명의 악마처럼 보였다.
스나우트 령.
얼마 전 대대적인 홍수 피해를 입은, 영주마저 손을 놓은 땅.
그런데 그 땅이 나와 제리트 것이 되었다니.
나와 제리트가 딱딱하게 굳어있자,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스나우트는 너무하지 않나요?”
“홍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던데…….”
그 술렁거림을 들은 것인지, 카르티아가 덧붙였다.
“절차 없이 진행하는 이례적인 일이지요. 나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애. 영애는 저주받은 땅이라 불렸던 북부에서 신성석을 찾았습니다.”
“…….”
“불가능한 일을 해냈으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요.”
그녀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건 협박이자 압박이었다.
나는 저주받은 땅에서 신성석을 찾아냈다.
발견 자체가 기적인 행위.
도둑의 딸이란 꼬리표를 떼어낼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다.
‘내가 신전에서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으니까. 다들 날 신기하게 생각할 테지.’
하지만 내가 홍수 피해를 입은 영지를 복구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신성석에 의문을 가질지도 몰랐다.
신성석도 사실 거짓말 아니야? 하고.
아직 새로운 신성석을 시장에 풀지 않았으니, 그 의문은 더욱 커질 것이다.
시장에 내놓지도 않은 우리 쪽 신성석의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신전의 신성석의 수요가 다시 늘어날 테고 어쩌면 황후는 이로 인해 신전과 다시손을 잡을지도 몰랐다.
‘거절해야 돼.’
그런 건 못 받는다고, 천연덕스럽게…….
“확실히, 황후 폐하 말씀이 맞군요.”
“신성석 발견은 역사에 없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너무한 게 아니냐 수군거리던 사람들도 황후의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게다가 돌보면 나아질 거라던 제리트의 말까지 합쳐졌다.
여기서 거절한다면 비겁한 궤변론자가 된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
내 표정이 굳자 카르티아가 빙긋 웃었다.
“홍수 피해는 걱정하지 마세요. 황실과 마탑 쪽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
“스나우트령은 땅이 넓은 만큼 인구도 많고, 경의 가치관과 영애의 영민함이라면 영지를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어서 빨리 복구가 되면 좋겠군요.”
저절로 치맛단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1 황자.”
내가 딱딱하게 굳어 있는 사이, 카르티아 황후가 파비안을 불렀다.
“……예, 폐하.”
“정겨운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철없는 이 어미를 용서하세요.”
부끄러운 듯 손으로 입가를 가리던 그녀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1 황자, 무슨 말을 하려고 했나요?”
그녀의 보랏빛 눈이 번뜩이는 것처럼 보였다.
파비안은 굳은 얼굴로 대답하지 못했다.
“……별 이야기 아니었습니다.”
한참 만에 대답이 나왔다. 황후가 잠시 파비안을 바라보다 부드럽게 눈을 휘며 웃었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마저 황비를 닮았군요.”
그녀가 죽은 황비, 파비안의 어머니를 언급하자 좌중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어미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사라지면 곤란해요. 이쪽으로 오는 게 좋겠습니다.”
파비안은 잠깐 주먹을 폈다가, 다시 꾹 쥐고선 황후에게 다가갔다.
그제야 편안한 숨을 내쉰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영애, 잘할 수 있겠지?”
“…….”
“내 영애를 믿으니 그 넓은 영지도 영애에게 준 것이다. 그러니 부디 잘 가꿔나가길.”
빙그레 웃던 그녀가 덧붙였다.
“아, 물론 반대 경우도 생각해두었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배운 게 없으니 실수하는 건 당연해.”
“폐하.”
제리트가 나서자 카르티아가 짐짓 놀란 척 어머나, 하고 제 입을 막았다.
“실수했구나. 부담 갖지 말라고 한 말인데…… 너그럽게 용서해주렴, 영애.”
그녀가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에 대한 적의를 숨기지 않는다.
‘믿는 구석이 있는 거야.’
내 곁에 공작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설마-‘
설마 공작님이…….
불안함이 극에 치달았을 때였다.
쾅!
큰 굉음이 터졌다.
사람들은 물론, 카르티아 황후도 조금 놀란 눈으로 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봤다.
작은 흙먼지가 가라앉은 후, 모습을 드러낸 건 일반 사람의 두배 정도 되어 보이는 마물이었다.
이미 한 차례 도륙되어 목숨이 끊어진 후였지만, 그 공포감은 어마어마했다.
“꺄아악!”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 소리에 내가 흠칫 몸을 떨자 데미안이 반사적으로 보호하듯 나를 막아섰다.
“이 마물이 대체 어디서-”
소리치던 카르티아 황후가 놀란 듯 입술을 달싹일 때였다.
완전히 흙먼지가 가라앉은 후, 죽은 마물 뒤에서 누군가의 인영이 드러났다.
카르티아 황후가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찢어진 옷가지, 그 사이로 보이는 한 시도 검을 놓지 않은 듯 탄탄한 몸과 덕지덕지 묻은 피, 막 전쟁이라도 치르고 귀환한 기사처럼 흐트러진 머리카락.
그리고 다음 사냥감을 찾기 위해 섬뜩하게 번뜩이는 붉은 눈동자.
‘……아.’
치맛자락을 쥐었던 손에 힘이 풀렸다.
‘공작님이야.’
공작님이 왔어.
며칠 동안 보지 못했으니 반가운 마음이 들어야 할 텐데 가슴이 꾹 조이고 눈 밑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슈, 슈에츠 공작?”
황후의 부름에 공작의 적안이 그녀에게 향했다.
느릿하게 머리를 쓸어 올린 그가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1 황자님 탄신 연회라는 말을 뒤늦게 접한지라.”
당당히 말하는 모습은 조금 뻔뻔스럽기까지 했다.
“슈에츠 공작! 이게 지금 무슨 짓입니까. 이것은 또 무엇이고요!”
“닥치는 대로 인간을 잡아먹는 1급 마수입니다. 한번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고 하더군요.”
무시무시한 말에 황후가 흠칫하곤 다시 말했다.
“이곳은 신성한 황궁입니다. 이런 마물을 들고 쳐들어 올 곳이 아닙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제가 미쳐가는 것을 원하신 게 아니었습니까?”
“……뭐?”
황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의 입술이 몇 번 달싹이던 찰나, 공작이 여상한 얼굴로 대꾸했다.
“실수했습니다, 너그럽게 용서해주십시오. 아직 제정신이 아닌지라.”
그가 그렇게 말하며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올렸다. 이마에 검붉은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하면 연회에 방해가 되는 것 같으니,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슈에츠 공작!”
“피를 봐야 진정되는 이 빌어먹을 광증은, 저조차도 언제 터질지 모르니.”
마지막 말에 황후가 입을 꾹 다물었다.
모두가 침묵에 휩싸이자 공작은 천천히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숨 막히는 위압감에 사람들 이 몸을 움츠렸다.
공작이 우리를 향해 무릎을 굽혔다.
“가자.”
“…….”
“집으로 돌아가야지.”
나는 시선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거칠어진 피부. 피곤이 가득한 눈 밑이 그가 얼마나 괴로워했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어쩌면, 정말 공작님은…….’
나는 입술을 꾹 깨물다 고개를 끄덕이며 양손을 뻗었다. 공작이 멈칫하며 팔을 뒤로 물렸다.
“……드레스가 더러워질 텐데.”
“상관없어요.”
꼭 안고, 직접 확인해야 실감이 날 것 같으니까.
머뭇거리던 공작이 나를 가볍게 안아 들었다.
“여전히 가볍군. 며칠 새에 밥이라도 굶었나 보지.”
익숙하게 장난을 치던 그가 데미안을 내려다보았다.
“너도 안아줄까.”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가 픽 웃고선 그대로 앞으로 걸어갔다.
제국의 안주인인 황후에게 인사도 올리지 않은 채로.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는 듯이.
* * *
공작이 나와 데미안과 함께 돌아오자 공작성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공작님! 언제 귀환하신 겁니까?”
“급한 일이 있어 일정을 앞당겼다. 마물들은 모두 처리했으니 걱정하지 마.”
기계적으로 대답한 그가 우리를 데리고 성 안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앉은 공작이 피로한 듯, 이마에 제 손등을 대었다.
“며칠 성을 비우면 꼭 사고가 터지는군.”
자조적인 목소리였지만 혼내는 투로 들리진 않았다.
몸은 괜찮으시냐고.
혹시 광증이 다시 폭주하는 건 아니냐고 묻고 싶었는데.
내 목소리를 담아 오라던 황후의 명령이 자꾸만 생각나,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나 때문에 공작이 또다시 고통스러워할지도 모르니까.
입만 우물거리고 있을 때, 공작이 손을 떼곤 나를 힐끔거렸다.
“왜 아무런 말이 없어. 평소 같으면 변명이라도 했을 녀석이.”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던 공작이 문득 미간을 좁히곤 몸을 일으켰다.
내 몸을 번쩍 들어 올린 그가 이리저리 둘러보며 날 살폈다.
“다친 덴 없는데.”
“…….”
“하면 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냐.”
“……괜찮으신 거예요?”
“무엇이.”
“……공작님의…… 그거요.”
일부러 뭉뚱그려 말하자 공작의 얼굴이 굳었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나를 자리에 앉혔다.
“그 이야기를 어디에서 들었지.”
“…….”
“제리트냐.”
“…….”
“하면. 안테냐.”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공작에게 레이쿠스가 알려줬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레이쿠스는 황후의 편이었으니까.
“전에…… 공작님의 팔이……그렇게 됐을 때…… 공작님께선 제게 다가오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전의 일을 말하자 공작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며칠 동안 자리를 비우시고 북쪽 절벽으로 가신 게 혹시나……그것 때문이진 않을까 싶었어요.”
나는 말하는 내내 공작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공작은 평온한 얼굴이었다. 아직은 내 목소리가 공작의 광증에 영향을 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걱정한 것이냐.”
“……네.”
고개를 끄덕이자 공작이 입매를 비틀며 웃었다.
“누가 할 소릴.”
“…….”
“난 아무렇지도 않다. 마물 토벌은 늘 있는 일이야. 너도 알지 않느냐.”
그가 나와 데미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앞으론 이런 일 없게 하마. 걱정시켜서 미안하다.”
다정한 말투였지만 내 마음속의 불안함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공작의 광증은 더 심해질 테니까.
원작에서도 그랬다.
공작이 4년 뒤 있을 전쟁에 나간 것도 점점 심해지는 광증 때문이었다. 지금은 시작에 불과했다.
‘공작은 우릴 위해 성을 나가 있을 거야.’
그럼 다른 세력들이 나를, 데미안을, 공작성을 넘보려 들지도 몰랐다.
‘그건 공작님에게도 좋지 않아.’
공작이 없더라도 넘보지 못할 만한 기반을 다져야 한다.
그래야 공작이 마음 편히 광증을 해소할 수 있다. 그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
‘방법은 마나 기차뿐이야.’
하지만 황후가 독점한 마도구 기술자는 차치하고서라도 만드는 데에 영지 하나만 한 인력이 들어갈 터였다.
‘그만한 인원이 당장 어디서…….”
생각하던 난 눈을 번쩍 떴다.
있었다.
넓은 땅인 데다가 인원도 충분한 영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