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21)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21화(121/241)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지.”
내가 그대로 굳어 있자 공작이 미심쩍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 사실은…….”
나는 공작에게 카르티아 황후가 나와 제리트에게 스나우트 영지를 주었다고 이야기했다.
“이젠 별의별 개수작을 다 부리는군.”
공작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다 죽어가는 영지를 준 속셈이야 뻔하지.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저, 공작님……!”
다급한 부름에 공작이 또 무슨 말을 할 거냐는 듯 나를 쳐다봤다.
“저는 그 영지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어째서지.”
“……마나 기차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우물거리며 말하자 공작의 얼굴이 굳었다.
“마나 기차는 우리의 일이다. 네가 영지를 받아들이면서까지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어.”
“하지만 인력이 필요하잖아요.”
공작이 멈칫했다.
“……어떻게 안 것이냐.”
“아델란 님께 들었어요. 마도구 기술자들을 구하는 데에 문제가 생겼다고요.”
공작이 괜한 것을 들켰다는 듯한 숨을 내쉬었다. 나는 다급히 말을 이었다.
“스나우트 영지는 발전 없는 땅이긴 하지만 땅이 넓고 영주민이 많아요. 마나 기차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될 거예요.”
“영주가 된다고 해도 영지민을 함부로 다룰 수는 없다. 게다가 가장 먼저 피해 복구부터 해야 할 텐데, 그에 대한 평가도 온전히 네 몫이 된다. 무슨 짓을 해도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거야.”
맞는 말이었다.
영주는 땅의 주인이긴 하나, 그 땅 위의 영지민을 함부로 다룰 순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홍수 피해를 복구하는 게 먼저였다.
황후가 마법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일으킨 재난이 분명했다. 마탑의 마법사들을 동원했다면 복구는 힘들 터였다.
하지만 우리가 복구에 실패하면 새롭게 발견한 신성석의 가치는 떨어진다. 황후의 뜻대로 두게 할 수는 없었다.
‘뭐라도 해야 돼.’
“그…….”
나는 다시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공작은 지금 막 귀환한 상태다.
더 피로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이만 가볼게요, 공작님. 푹 쉬세요.”
데미안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이었다.
“어……!”
“……!”
공작이 나와 데미안을 와락 끌어안았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데미안도 놀란 듯 입술을 벙긋거렸다.
멍하니 있을 때, 공작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리를 비워 미안하다.”
그 말속엔 깊은 자책이 섞여있었다.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리가 황후에게 무슨 일을 당하진 않았을까 걱정한 모양이었다.
멍하니 눈만 깜빡이던 난 꾸욱 주먹을 쥐었다. 미세한 작은 떨림을 느낀 건지 공작이 내 등을 천천히 쓸어주었다.
잠시 후, 공작이 우릴 놓아주며 말했다.
“옷이 엉망이 되었군.”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의 말투로 돌아온 공작이 말했다.
“이제 그만 들어가 쉬거라.”
무어라 말하려던 난 그냥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데미안과 함께 손잡고 집무실을 나오는데, 제리트와 마주쳤다.
공작이 우릴 데리고 나올 때, 그도 곧장 따라 나온 듯했다.
“아, 엘리 님.”
그가 날 발견하고선 재빨리 손에 들고 있던 걸 등 뒤로 숨겼다.
하지만 난 봤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황후의 인장이 찍힌 양피지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평소 같으면 이런저런 말을 붙였을 제리트가 빠르게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가 향한 곳은 공작의 집무실이었다.
‘스나우트 영지 건을 무산시키려고 하나 봐.’
누구보다 피곤할 사람은 본인이면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한숨을 내쉬자 데미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눈치가 빨라서, 어른들의 불안함을 귀신같이 눈치 챈다.
난 애써 웃으며 데미안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내 손길을 받아들이던 데미안이 조심스레 물었다.
“……방법, 없을까? 마법으로 복구하면 되잖아.”
“물을 흡수하는 마법 같은 건 없어. 있다면 불을 쓰는 방법인데, 그럼 영지가 망가질지도 몰라.”
그래도 날 생각해 줬다는 게 기특했다.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려는데, 데미안이 말했다.
“하지만 엘리, 마법은 자연에서 발생했다고 했잖아.”
“응, 그랬지. 그게 왜?”
“바꿔 말하면 자연이 마나를 흡수할 수 있다는 뜻 아니야?”
자연? 흡수?
알쏭달쏭한 말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자연이라니. 어떤 말을-”
물으려던 난 뒤늦게 알아차리고 손으로 입을 턱 틀어막았다.
방법이 있었다.
마법을 쓰지 않고, 마나를 흡수할 수 있는 방법이!
“어쩜 좋아. 데미안, 너 왜 이렇게 똑똑해? 예뻐 죽겠어, 진짜!”
데미안의 양 볼을 붙잡은 난 경이로운 눈빛을 보냈다.
오리 입술이 된 데미안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만 깜빡였다.
‘확실하진 않지만, 가능성은 있어.’
그렇다면.
나는 주먹을 꼭 쥐었다.
* * *
며칠 후.
나는 제리트, 헤론과 함께 스나우트 영지로 가는 마차에 올라탔다.
스크롤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거리가 멀수록 사용자의 마나가 소진된다.
아직 어린 내가 사용하기에는 몸에 너무 부담이 되었다.
해서 번거롭지만 마차로 이동하기로 한 것이다.
“영지를 둘러보는 것뿐이니, 엘리 님께서는 너무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리트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지만.
그의 얼굴이 한없이 퀭한 걸 보니 그럴듯한 해결 방안은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때, 마부가 도착을 알렸다.
제리트의 도움을 받고 마차에서 내리던 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홍수가 왔다고 들었는데.’
눈앞의 백작성은 너무나 멀쩡해 보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멍하게 있는 사이, 시종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우리에게 인사했다.
“저는 스나우트 백작성의 관리인, 루만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인사를 들어보니 황후 쪽에서 벌써 말을 전한 모양이었다.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
“영지를 좀 둘러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네, 이쪽으로 오시지요.”
둘러보고 싶다고 했으니, 밖으로 안내할 줄 알았는데.
루만은 우리를 백작성 안으로 안내했다.
어리둥절하게 있던 우리는 일단 그를 따라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스나우트 령이 제국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얼마나 오랜 역사를 가졌는지 같은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그래서 난 중간에 그의 말을 잘랐다.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저희는 영지의 피해 사항을 알기 위해 왔습니다. 급한 것부터 우선-”
“영주님.”
그때, 루만이 가만히 나를 불렀다.
“다른 곳은 굳이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예?”
“어차피 영주님께서 지내실 곳은 백작성입니다. 피해 복구는 영주님과 상관없는 이야기 아닙니까.”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영주가 영지를 둘러보는 게 이상한 건가요?”
“미관상 좋지 못하다는 생각에 말씀을 올린 것뿐입니다. 영주님 같은 분들은 그저 예쁜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그가 미소를 유지하며 덧붙였다.
“어차피 자주 들르실 것도 아니실 테니, 그냥 주위만 대충 홅고 가시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
“피해 복구를 할 수 있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습니다. 영지 복구에 들어간 백작성 예산도 지금이 최대고요.”
차분한 목소리로 내뱉는 말이 전부 가관이었다.
“이게 무슨 무례인가!”
“교양 없는 태도군.”
제리트가 발끈하며 소리치자 헤론이 거들었다.
“기분 나쁘시다면 죄송합니다.”
루만이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저는 사실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하나도 죄송하지 않은 얼굴로, 루만이 덧붙였다.
태도를 보아하니, 새로운 주인중 한 명이 한참 어린 꼬마라 배알이 꼴린 듯했다.
‘게다가 예산을 언급하는 걸 보면 빼돌린 돈도 좀 되어 보이는 것 같고.’
지그시 그를 바라보던 난 제리트를 향해 말했다.
“오라버니.”
“……예, 엘리 님.”
내가 울상을 짓자 제리트가 덩달아 속상한 얼굴을 했다.
힐끔 곁눈질하자 루만이 비릿하게 웃었다.
이 정도면 자신이 우위를 잡았다 생각하고 있으려나.
‘하지만 어림도 없지.’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오라버니, 이 사람들 다 잘라주세요. 한 사람도 남김없이, 전부 다요.”
그러니 아예 씨를 말려버려야지.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희를 해고라도 하신단 말씀입니까?”
루만이 당황한 얼굴로 쏘아붙였다.
“저희는 백작성을 오랜 시간 지켜왔습니다. 일언반구도 없이 이렇게 자르시는 건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스나우트 백작성 사람들은 주인을 무시해도 된다고 배웠나?”
억울함을 호소하던 그가 입을 딱 다물었다.
내가 이런 질문을 할 거라곤 예상치도 못했다는 듯이.
그 모습에 더더욱 확신이 들었다.
백작성 사람들은 내가 도둑의 딸이며, 함께 어울리는 가신, 제리트는 지독히도 소심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듯했다.
‘예를 들면, 황후 같은?’
나는 빙긋 웃으며 손으로 목덜미 위쪽을 쓰윽, 그었다.
“당신들 전부 다 해고야.”
마치 성호를 그리듯이, 부드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