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22)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22화(122/241)
* * *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다.
스나우트 백작은 도박에 빠져 흥청망청 돈을 날렸다. 날마다 술에 취해 얼마를 잃은지도 몰랐겠지.
사용인들은 그런 스나우트 백작을 대신해 일하는 척하면서 돈을 횡령했을 거고.
제리트와 헤론이 장부를 보며 한숨을 푹푹 쉬는 것만 봐도 알만하잖아.
눈치를 보던 나는 슬그머니 물었다.
“저…… 그럼 저는 영지를 둘러보고 올게요.”
“함께 가시지요.”
제리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겠냐는 얼굴로 바라보자 헤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부는 제가 살펴볼 테니, 엘리 님께서는 편히 둘러보고 오십시오.”
“부탁드려요, 헤론 님.”
난 제리트와 함께 백작성을 빠져나왔다.
피해 복구를 돕겠다는 황후의 말은 거짓이 아닌 듯했다.
무너진 집의 잔해들이 어느 정도 정돈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몸을 숙여 흙을 만져보았다.
발이 푹푹 들어갈 때부터 알아봤지만, 역시나 땅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땅이 탄탄해야 집을 지을 수 있다. 건설 공사가 이뤄지지 않은걸 보면 땅이 마르길 기다리는듯했다.
하지만 해는 무척이나 쨍쨍했다. 햇볕에 마를 거라면 진작 말랐을 것이다.
‘마법을 쓴 게 분명하네.’
나는 흙을 털어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땅이 넓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무슨 일이십니까?”
그때였다.
허름한 옷을 입은 사내 하나가 우리를 위아래로 훑으며 물었다.
뒤편에 다른 사람들도 함께였는데, 하나같이 두 눈에 피로가 가득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그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재해 물품과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해 왔습니다. 혹시 담당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제리트의 물음에 사내가 무슨 말하냐는 듯 의문스러운 얼굴을 했다.
“아무도 없습니다. 이게 끝이에요.”
“예? 하지만…….”
금방이라도 빗물이 스며들 것 같은 쉘터가 끝이라고?
나와 제리트가 믿기 힘든 얼굴을 하자 사내가 흐리게 웃었다.
“도와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이미 다 끝났습니다. 마탑에서도, 황실에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거든요.”
사내가 체념 섞인 눈빛으로 땅을 내려다보았다.
“거긴 원래 제 땅이었습니다. 지금은…… 다 죽어버렸지만요.”
억눌린 목소리로 말하던 사내가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겠다는 듯 몸을 돌렸다.
다른 귀족이었다면 건방지다며 불호령을 내렸을 터였다.
하지만 나와 제리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제리트가 골치 아프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쉘터를 다시 만드는 게 먼저 겠군요.”
나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피해를 입은 수재민들이 편히 누울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게 먼저다.
그리고 그다음엔.
‘황후에게 엿을 먹이는 거지.’
* * *
농민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갑작스러운 홍수로 한순간에 집과 농지를 잃었다. 1년 동안 열심히 키웠던 농작물들은 붙잡을 틈도 없이 떠내려갔다.
설상가상으로 도박에 미친 영주는 영지를 팔아넘기기까지 했다.
‘이제 끝이지.’
그들이 자조하듯 한숨을 내쉴 때였다.
한 남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일을 지시하고 있었다.
뭔가 낯익은 얼굴이다 했더니, 며칠 전 만났던 귀족이었다.
그의 명을 받은 일꾼들이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또 뭘 하려는 것인지.’
그들이 익숙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실례합니다.”
낯선 목소리에 그들이 고개를 돌렸다.
시종처럼 보이는 남자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임시 쉘터를 다시 만들었습니다. 이쪽에서 휴식을 취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쉘터?”
농민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기가 쉘터인데 또 어디로 옮기라는 거지?’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이동을 명하니 갈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더 누추한 곳으로 보낼 것이기에.
-하고 생각했지만.
“여, 여기라고?”
새로운 쉘터는 상상 그 이상으로 깔끔했다.
바닥에 빗물이 스며들지 않았고 마련된 침구도 깔끔했다.
무척이나 놀랐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귀족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이것도 하나의 수단일 것이 뻔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가장 기초적인 식량부터 시작 해물, 기본적인 위생물품이 차례로 지급됐다.
개중엔 패드도 섞여 있었는데, 여러 사람들이 함께 지내야 하는 쉘터에서 이것만큼 좋은 물자는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따로 다치신 곳은 없으시고요?”
“후유증이 있을 수 있으니 며칠 후 다시 체크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의료진들이 수재민들의 상태를 하나하나 체크했다.
이쯤 되면 그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들이 꽤 정성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우웅?”
그사이, 쉘터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던 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 멀리, 어떤 언니가 땅에 무언가를 심고 있었다.
아이가 뒤뚱거리며 다가가자 금발을 가진, 무척이나 예쁜 언니가 말했다.
“안녕.”
“……안농.”
“이름이 뭐야?”
“……냐쑤.”
“나스구나. 만나서 반가워.”
언니가 손을 흔들자 아이가 얼결에 따라 손을 흔들며 말했다.
“엉니, 고기서 모 해?”
“땅 보고 있어.”
“……아빠야가 그랬는데, 이제 이 땅에선 아무것도 안 나온다고.”
그러자 언니가 말했다.
“땅 파는 게 아니라, 나무를 심는 거야.”
“왜에?”
“그래야 땅이 다시 살아나거든.”
“거짓말. 나무로 땅이 어떻게 살아나.”
“아니, 살아날 거야.”
그러자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뤼겔 나무니까.”
그 목소리엔 확신이 섞여 있었다.
그걸 알 리 없는 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리겔이 머야?”
“있어, 그런 거.”
웃으며 말하던 언니가 아이에게 말했다.
“나스도 같이 심을래?”
“구고 재미 써?”
“엄청 재밌지. 에이, 아니다. 그냥 나 혼자 해야겠다.”
내빼듯 몸을 돌리자 아이가 으으응! 하며 언니에게 다가갔다.
“나도. 나도 할래.”
“그래, 특별히 끼워줄게.”
아이는 언니를 따라 몸을 굽혔다. 축축한 흙을 만지니 기분이 좋았다. 아이가 까르르 웃었다.
언니, 그러니까 엘리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함께 놀고 싶어 하는 눈치다.
“같이 놀래?”
엘리의 물음에 아이들이 흠칫하더니, 슬그머니 이쪽으로 다가왔다.
“자,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나무 심기 대결이야. 묘목이 크니까 조심해야 돼.”
대결이란 말에 아이들이 너나없이 분주히 움직였다.
부모님을 따라 우울한 얼굴이었던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어느새 해가 져 있었다.
한참 후, 엘리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나는 이만 가봐야겠다.”
“벌써?”
“응. 다음에 또 놀자. 그동안 나무한테 빨리빨리 자라라, 하고 기도해 줘. 알았지?”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엉니, 언니는 이름이 모야?”
“언니는.”
잠시 망설이던 엘리가 말했다.
“슈에츠야.”
“슈에츠?”
“응. 내 이름, 슈에츠.”
엘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또 만나자.”
엘리가 인사하며 멀어졌다. 따라서 인사하던 아이들이 쉘터로 들어갔다.
“세상에, 옷이 그게 뭐야!”
“나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온 거니?”
꼬질꼬질해진 아이들의 행색에 부모들이 놀라며 다가왔다.
“슈에츠 엉니랑 놀았어!”
“징짜 재밌었어!”
아이들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슈에츠?”
“설마, 내가 아는 그 슈에츠?”
부모들이 믿기 힘들다는 듯 되물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흙 묻은 얼굴로 활짝 웃었다.
* * *
뤼겔 나무 묘목을 심은 건 옳은 생각이었다.
높은 흡수력을 가진 나무답게, 축축하던 땅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마나가 나무에 감응한 덕에 단단해지기까지 했다.
마나가 완벽히 스며든 뒤, 뤼겔 나무를 수거하면 본래의 비옥한 스나우트령으로 돌아올 터였다.
‘우린 그 뤼겔 나무껍질을 이용해 패드를 만드는 거지.’
땅도 살리고, 필요한 자원도 얻고.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아아, 엘리 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뤼겔 나무를 통해 마나 흡수를 생각하시다니요.”
나는 믿을 수 없어하는 제리트와 헤론에게 방긋 웃어주었다.
“정말 다행이에요!”
늘 그랬듯이, 우연인 척하면서.
“엘리 님을 모시게 되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제리트 님.”
눈물을 글썽이는 제리트를 헤론이 주책이라는 듯 흘겼지만.
그런 헤론의 입꼬리도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자, 여기도 해결됐고.’
나는 슬쩍 바깥을 내다보았다.
붉은 호수 때부터 느꼈는데, 마나는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는 듯했다.
내 키보다 작았던 나무가 벌써 웬만한 어른들보다도 커져 있었다.
나무를 바라보는 농민들의 표정이 묘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기겠지만, 스나우트 사람들은 평생 땅을 일구며 살았다.
땅과 나무가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님은, 누구보다 잘 알 터였다.
자, 땅을 다시 복구했으니.
이제 반격할 차례다.
내가 나무 근처로 가자 아이들이 알은체를 하며 달려왔다.
“엉니! 나무 자랐어!”
“쑥쑥 컸어!”
나는 아이들을 향해 웃어주다, 얼떨떨한 얼굴로 날 쳐다보는 농민들을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저번에 봤던…….”
그들 중엔 이곳에서 처음 마주쳤던 사내도 있었다.
그래서 난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엘리 아만타 클라이더 에르하르트 슈에츠라고 합니다.”
내가 인사하자 그들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날 함께 나무를 심었던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잘 말해준 듯했다.
처음으로 나무를 심자고 말한 게, 슈에츠라고 말이야.
‘이 정도면 나름, 기적을 일으킨 셈 아닐까?’
나는 방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