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23)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23화(123/241)
* * *
서부, 륀켈트 후작령.
마도 기술자라는 말을 최초로 만든 곳답게, 성 곳곳에 마나의 기운이 느껴졌다.
륀켈트 후작은 의자에 몸을 깊게 기댄 채 앉아 있었다.
“흐음.”
그가 심오한 얼굴로 눈앞의 마나석을 바라보았다.
스나우트 령에 심어놓은 마나 탐지석이었다.
그 귀한 물건을 홍수 난 땅까지 가져간 이유는 하나였다.
스나우트를 덮친 홍수.
그 홍수가 마법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가설은 들어맞았다.
마나 탐지석이 강한 빛을 내뿜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 그 추이를 기록해, 마탑에 가져가 어찌 된 일인지 물으려고 했건만.
며칠 전부터 빛이 사그라들더니, 은은하게 반짝였다.
마나가 사라진다면 빛도 완전히 꺼져야 했다.
그런데 이 애매한 밝기는 무어란 말인가.
후작이 인상을 찡그리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
익숙한 목소리에 그가 마나 탐지석을 내려놓았다. 륀켈트 후작 영애, 샤르나였다.
“오오, 우리 예쁜 샤르나. 아버지를 두고 어딜 다녀온 게야.”
“제뮈엘 살롱에 다녀왔어요.”
“제뮈엘? 거기가 뭐하는 곳이냐?”
“아이 참, 아버지는 그것도 모르세요? 요즘 최고로 인기 많은 곳이잖아요.”
샤르나가 눈을 빛내다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뜨렸다.
“전에 클로라 웰시 영애 때문에 제대로 구경을 못 했거든요. 그래서 오늘만큼은 슈에츠 영애가 입은 드레스랑 비슷한 게 있나 보려고 갔는데…….”
샤르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랑 색이 안 어울린대요. 다른 게 더 낫다고 하더라고요.”
“흠. 마음에 들면 그냥 사면 되는 것 아니냐.”
“아버지도 차암. 그럼 얼굴색이 죽어 보인다고요.”
샤르나가 그것도 모르냐며 툴툴거렸다.
후작은 머쓱한 얼굴로 콧수염을긁적였다.
‘잠깐. 슈에츠 영애라.’
그러고 보니…….
그의 시선이 마나 탐지석 위로 내려앉았다.
마나 탐지석이 이상해진 것은 약 한 달 전.
슈에츠 공작가의 며느리와 그의 가신인 제리트 아만타가 스나우트 령에 도착한 이후였다.
‘설마 그 두 사람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한 달 전 추이만 봐도 어마어마한 마나의 양이었다. 마법사도 아닌 그들이 무슨 수로.
하지만 이상한 건 사실이었다.
짧게 고민하던 그는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이 추이를 가져가봤자 카르티아는 모른다고 잡아뗄 것이 뻔했다.
한때 저를 매정히 버린 약혼녀이자 현 황후에게 복수하기 위해선 철저히 준비해야 했다.
‘스나우트 령에 가봐야겠군.’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영지를 원래대로 돌린 지도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스나우트령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건 바로-
“고구마!”
“옥수수다!”
“엉니, 냐쑤가 심은 호박이야!”
영토가 전보다 더 비옥해졌기 때문이다.
마법사들은 땅이 단단해지지 못하도록 마법을 걸어놨고, 우리는 그 마나를 뤼겔 나무를 심어 흡수하도록 만들었다.
자, 그럼 여기서 다시 되짚어보자. 마나는 어디서 근원했다? 자연에서 근원했다.
자연(땅)과 자연(뤼겔 나무)의 결합 덕분인지 흡수된 마나는 말 그대로 영양소가 되었다.
따스한 남부의 햇빛과 돈 주고도 못 사는 영양분.
덕분에 농작물이 시간을 빠르게 돌리기라도 한 것처럼 쑥쑥 자라났다.
이 속도라면 1년 치 작물은 물론, 앞으로 몇 해 동안은 농사 걱정 없을 터였다.
‘황후가 스나우트령에 축복을 내려준 셈이지!’
요건 몰랐을 거다!
히죽 웃던 난 각자 캐낸 작물을 자랑하는 아이들의 머리를 아낌없이 쓰다듬어주었다.
“이게 가능한 일이라니!”
“믿을 수가 없구먼!”
농부들이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체념했던 그들이 웃는 모습을 보자 덩달아 나까지 흐뭇해졌다.
“이게 다 슈에츠 님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버려진 저희 영지를 다시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하하.”
양심이 찔려, 웃음이 흐려지긴 했지만…….
그들은 내가 영지를 살리기 위해 선의를 베푼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와 제리트가 새로운 스나우트 령의 주인임은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슬슬 새로운 스나우트령의 주인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전 주인이 워낙, 좀 그랬던 터라 입이 움직이질 않았다.
난감함에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엘리 님, 괜찮으십니까?”
옆에 있던 제리트가 걱정스럽게 속삭였다. 나는 괜찮다고 손을 흔들어 보였지만…….
‘사실 괜찮지 않아!’
약 한 달 동안, 나는 남부와 북부를 오가며 바쁘게 지냈다.
공작과 데미안은 탐탁지 않은듯했지만, 내가 원하는 일이라 말하자 마지못해 수긍했다.
거리가 멀다 보니, 그중에 절반은 이동 스크롤을 썼다.
시간을 줄여주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마나를 소모하기 때문에, 내 체력은 갈수록 떨어지는 중이었다.
다시 말해, 내가 흘리는 땀은 온전히 남부의 더운 햇빛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으…… 죽겠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왔다.
“아버지!”
“나이젤? 여긴 어떤 일로 온 게냐!”
나이젤?
익숙한 이름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1 황자 탄신 연회에서 봤던 시종, 나이젤이 내 눈앞에 있었다.
나이젤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슈, 슈에츠 님께서 여기엔 무슨 일…….”
그러다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당연한 일을 여쭸군요. 죄송합니다.”
“응? 나이젤. 너 이분을 아는 것이냐?”
“네. 당연하죠. 새로운 스나우트의-”
“연회에서! 연회에서 만났어요!”
재빨리 그의 말을 가로챘다.
어서 그렇다고 하세요!
강하게 눈빛을 쏘아 보내자 그가 눈을 굴리더니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하. 그러셨군요. 나이젤은 제 아들입니다. 륀켈트 후작님의 성에서 일하고 있지요.”
농부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나이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농사는 영 아닌 것 같아서 돈이라도 벌어오라고 내보냈는데, 여전히 예술은 손에서 못 놓은 것 같구나.”
“아버지……!”
나이젤이 창피한 듯 볼을 붉혔다.
‘원작에서 나이젤의 조각품 중엔 스나우트 지역을 배경으로 조각한 것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구나.
‘스나우트는 나이젤의 고향이었던 거야!’
내가 깨달음을 얻는 사이, 나이젤이 말했다.
“아버지의 편지를 읽고 걱정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초록 넝쿨로 가득한 밭을 보며 얼떨떨한 얼굴로 물었다.
“생각보다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하하. 그렇지. 전부 슈에츠 님 덕분이야.”
“그래. 어찌나 영민하신지. 손끝은 또 어떻고.”
“우리 영지를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힘써주신 분이지.”
‘대가가 없다고는 말 못 하는데…….’
난 어색하게 웃으며 슬그머니 몸을 움츠렸다.
“그래도 나이젤은 나은 편이지. 알아서 밥벌이는 하고 있잖아.”
그때, 옆에 있던 다른 농부가 말했다.
“농사에 소질 없는 아이들은 차라리 다른 일을 하는 게 나아. 맨날 집에서 놀고 있으니, 답답해 죽을 것 같다고.”
“일이 없으니 어쩔 수 있나.”
농업 중심인 영지답게 농사일이 아니면 일자리도 없었다. 농업에 관심이 없는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나이젤처럼 타 지역으로 나간 듯했다.
‘청년들이라.’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문득 든 생각에 눈을 번쩍 떴다.
‘일손!’
청년들이 도와준다면 마나 기차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제 마도구 기술자만 손에 얻으면 돼!’
나는 기쁨에 방방 뛰다가, 정작 마도구 기술자를 아직 포섭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어깨를 늘어뜨렸다.
‘기술자 없는 기술자 팀이네…….’
마음이 조급해졌다.
영지를 살려, 영지민들의 환심을 사면 마나 기차를 만드는 데에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싶었다.
다행히 영지는 되살렸지만, 어느덧 벌써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났다.
아직 공작의 광증은 심해지지 않았지만…….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초조해진 탓일까.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삐질삐질 흐르던 식은땀은 더욱 심해졌다.
하루빨리 마나 기차를 만들어야 해.
아델란에게 연락도 해야 하고, 리번스 자작님께 마법석도 받아야 하고.
탈룸이랑, 그리고 또 사람들을 모아서…….
‘공작님께서 걱정하시는 일이 없도록…….’
순간 눈앞이 어지러웠다.
나는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며 제리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제리트의 얼굴이 굳었다.
“……스크롤.”
“엘리 님, 안색이 왜…….”
“스크롤을 주세요. 제도로, 아니, 마탑에 가봐야 해요. 빨리 기술자를 구해야…….”
내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눈앞이 흐려지고, 곧 시야가 어둡게 변했다.
털썩, 하는 소리가 들린 것으로 보아 내 몸이 쓰러진 것 같긴 한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엘리 님!”
나는 제리트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