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24)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24화(124/241)
* * *
의원은 체내 마나 소진이 원인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라서, 휴식을 취하면 금방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제리트는 걱정을 지우지 못했다.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으니까.
“어서, 어서 공작님께 알려야…….”
“안 돼요, 오라버니.”
이틀 만에 잠에서 깬 엘리가 그를 저지했다.
“공작님께 더 이상 걱정을 끼쳐드릴 수는 없어요.”
“엘리 님…….”
“전 괜찮아요. 정말이에요.”
엘리가 흐리게 웃었다.
“저도 엘리 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곁에 있던 헤론이 동의했다.
“엘리 님의 상황을 공작님께 알리면 두 분 다 힘들어지실지도 모릅니다.”
제리트의 눈이 크게 뜨였다.
공작은 며칠 밤낮 동안 마물 절벽에서 마물을 베었다.
그렇게 간신히 잠재운 광증이다.
그런데 지금 엘리 님의 모습을 보신다면.
‘다시 폭주하실지도 몰라.’
그럼 엘리 님께서 또 죄책감을 가지시겠지.
‘그건 안 돼.’
헤론의 말대로 일단 엘리 님부터 완전한 휴식을 취하게 한 후, 보고 드리는 것이 나을 듯했다.
안도한 엘리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저렇게 어리신 분께서, 영지를 살리기 위해 이토록 노력하시다니.’
짠한 마음에 제리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헤론이 주책이라는 듯 헛기침을 했지만 그의 목울대도 일렁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나이젤이 안으로 들어왔다.
“저, 실례합니다.”
“무슨 일이지?”
“그…… 저희 주인님께서 제리트 님을 뵙고자 청하셨습니다.”
제리트의 눈이 커졌다.
그의 주인이라면.
‘륀켈트 후작가.’
뛰어난 건설 기술과 최초로 마도 기술이란 말을 만든 가문.
그리고 마탑에 소속하지 않은 마도구 기술자를 가진 자.
‘황궁에서 뵈었을 땐, 관심도 없으신 줄 알았는데…….’
스나우트까지 무슨 일로 온 거지?
“알았네. 금방 나가지. 헤론 님.”
“알겠습니다.”
제리트와 헤론이 자고 있는 엘리를 뒤로한 채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후작님.”
“오랜만이군, 제리트 경.”
후작이 인자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잘 지냈나?”
“예,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후작님께선 어쩐 일로…….”
“며칠 동안 졸졸 따라다니던 자네가 없으니, 내 심심해져서 말이야.”
후작의 호탕한 웃음에 제리트가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후작은 그 틈을 타 주위를 살폈다.
‘……믿기지 않는군.’
마나 탐지석을 심을 때까지만 해도 폐허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한 달이란 짧은 시간 내에 이런 변화가 가능하단 말인가.
게다가 곡식으로 가득한 농경지들은 또 어떻고.
‘무슨 수를 쓴 거지?’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질 때였다. 헤론과 눈이 마주쳤다. 후작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었다.
“앉아서 이야기 좀 하지. 마도구 기술자에 대해서 할 이야기도 있고.”
제리트의 눈이 크게 뜨였다. 헤론은 조금 탐탁지 않았지만, 마도구 기술자는 필요했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일은 잘 되어가고 있나?”
자리에 앉은 그가 곧장 본론을 꺼냈다.
“자네가 만들겠다던 새로운 이동 수단 말이네.”
“아, 그게…….”
제리트가 말끝을 흐리자 후작이 그럴 줄 알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스나우트 일로도 바빴으니, 그럴 만도 하지.”
“하, 하지만 후작님께서 기술자를 저희에게 빌려주신다면 곧장 작업에 착수할 수 있습니다.”
제리트가 열심히 설명했지만 후작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정말 마도구 기술자를 빌려주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마나를 없앴을까.’
무슨 수로, 대체 어떻게?
그 생각이 후작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엘리 님?”
들어온 사람은 엘리였다. 엘리가 치맛단을 공손히 잡으며 후작에게 인사했다.
“피곤하실 텐데, 더 쉬시지 않고요.”
“괜찮아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륀켈트 후작님. 엘리 아만타 클라이더 에르하르트 슈에츠입니다.”
완벽한 제국식 인사. 후작이 조금 의외라는 얼굴로 엘리를 바라봤다.
1 황자의 탄신 연회에서 봤을 때보다 안색이 창백해 보였다.
‘체력이 약해졌나?’
하지만 남부는 사람들이 요양으로도 자주 찾는 지역이다.
건강해진거면 몰라도, 저리 파리한 낯인 건 이상했다.
‘어린아이가 여기서 무엇을 했길래.’
그의 눈이 가늘어진 순간.
문득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말이 스쳤다.
“영애는 저주받은 땅이라 불렸던 북부에서 신성석을 찾았습니다. 불가능한 일을 해냈으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마나가 사라지고, 영지가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 설마…….
후작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어찌 기적과도 같은 일을 해낸단 말인가.
하지만 마나가 줄어든 시기와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어느새 륀켈트 후작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때 엘리가 방긋 웃었다.
“륀켈트 영애와 함께 오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그 웃음에 후작이 다시 정신을 차렸다.
“하하, 죄송합니다. 워낙 더운 걸 싫어하는 아이라서요.”
“스나우트 령이 유독 덥지요. 하지만 북부보다 따뜻해서 좋아요. 몸이 움츠러들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북부의 기후보다 남부의 기후가 체질적으로 잘 맞는다는 소리인데.’
기후 문제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 때문에 저리 창백하단 말인가.
‘아무래도 저 아이를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군.’
그때였다.
똑똑, 타이밍 좋게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시종이 들어왔다.
“제리트 님, 헤론 님.”
“무슨 일이지?”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스나우트 령까지 손님이 올 이유가 있단 말인가?
어리둥절해하는 둘에게 시종이 말했다.
“발음이 좋지 않으셔서 저도 잘못 들었습니다만…… 본인을 ‘탈룸’이라고 소개하시더군요.”
“탈룸? 탈룸이라고?”
제리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국어가 미숙한 탈룸이 그를 찾아 남부까지 올 정도면 심각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아, 알았다. 곧 나가지.”
후작에, 탈룸까지. 당황한 제리트가 마구 허둥거리자 헤론이 말했다.
“저도 함께 가보겠습니다.”
“다녀오세요.”
엘리가 괜찮다는 듯 웃었다. 후작과 둘만 두고 나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쉬이 건들지 않겠지. 영지가 원래대로 돌아온 이상, 엘리 님을 건드리는 건 자살 행위니까.’
판단을 마친 헤론이 제리트와 함께 방을 나섰다.
“어디 계시지?”
“저쪽에 계십니다.”
시종이 가리킨 곳으로 향하자, 정말 탈룸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탈룸, 여긴 무슨 일입니까?”
“그게…….”
탈룸이 어색하게 웃었다.
어째 말하기를 꺼리는 눈치였다.
‘무슨 심각한 일이길래.’
제리트의 얼굴이 심각해질 때였다.
“미안하네!”
그 말과 함께, 탈룸이 헤론과 제리트를 와락 끌어안았다.
“타, 탈룸! 뭐 하는 짓입니까?”
깜짝 놀란 제리트가 발버둥쳤고.
헤론은 멍하니 굳어 있었다.
저를 이토록 강하게 끌어안는 남자는 처음이었기에, 이것이 꿈인가 생각하는 중이었다.
“잠깐, 잡아서…….”
탈룸이 무어라 중얼거렸다.
“자, 잡아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탈룸의 제국어는 오늘따라 알아듣기 힘들었다.
제리트의 외침에 탈룸이 눈을 질끈 감았다.
‘나도 남자랑 안고 있는 거 싫다고!’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탈룸은 꾹 참았다.
“꼭 붙잡아놔야 해요. 알았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은인의 부탁이었으니까.
물론 엘리는 탈룸이 말 그대로 ‘잡고’ 있을 줄은 몰랐겠지만. 어쨌든 탈룸 입장에선 열심히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은인.
‘대체 언제까지 이 멀대들을 안고 있어야 하는 건데!’
탈룸은 울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두 사람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 * *
‘드디어 단둘이 남았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처음부터 륀켈트 후작을 알아본 건 아니었다.
스나우트 영지에서 나이젤을 만났을 때, 처음으로 의구심이 들었다.
원작대로라면 스나우트 영지는 한참 후에 언급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전개를 비틀면서 원작보다 한참 이르게 1 황자 탄신 연회가 열렸고, 덜컥 스나우트 영지를 받았다.
‘그런데 나이젤이 갑자기 스나우트에 나타났어.’
황궁에서 그를 만난 건, 있을 수 있었다. 귀족이 시종을 대동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우연히 그를 다시 만났는데 마침 여기가 고향일 확률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긴 힘들지.’
결론은 하나다.
륀켈트 후작이 일부러 나이젤을 보낸 거야.
거기까지 깨달은 난 마나 고갈로 쓰러졌고, 잊고 있었던 원작이 떠올랐다.
카르티아 황후가 리번스 자작의 설계도를 빼앗아 마나 기차를 만들었을 때.
그때 그 설계도가 황후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내 눈앞에 있는 남자. 륀켈트 후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