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26)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26화(126/241)
쿵.
문 닫히는 소리가 꼭 내 마음이 내려앉는 소리처럼 들렸다.
뚜벅뚜벅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두 개의 발걸음이었다.
나는 최대한 숨을 죽였다.
이대로 자는 척을 하면 무사히 넘어갈-
“엘리.”
……줄 알았는데.
“자는 척하는 거 알고 있으니, 이만 일어나.”
꿰뚫어 보는 말투에 난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데미안과 공작이 심각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고, 공작님…… 데미안…….”
“…….”
“여, 여긴 어쩐 일로 왔어?”
아무것도 모르는 척 밝게 인사했지만 눈빛이 한없이 싸늘했다.
‘역시 쓰러진 걸 들켰나 봐.’
입만 뻐끔거리고 있을 때, 데미안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빨개진 눈가를 보아하니, 또 걱정시켰다는 생각에 양심이 콕콕 찔렸다.
데미안이 주먹을 꼭 쥔 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당황한 나는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나, 나 많이 무리 안 했어! 그냥 스크롤을 많이 써서, 몸에 무리가 간 것뿐이야. 그 외 다른 건-”
“왜 맨날.”
“…….”
“왜 맨날 다쳐, 왜.”
“…….”
“내가 얼마나…….”
데미안이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날 바라보는 눈이 불안하게 일렁였다.
‘많이 걱정했구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미안해, 그리고……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해요, 공작님.”
“…….”
“몸을 돌보지 않아서, 걱정 끼쳐 드려서 죄송해요.”
내 말에도 공작은 대답이 없었다.
그저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자 덜컥 겁이 났다.
다시 공작성으로 복귀하라고 하는 건 아닐까.
‘그건 안 돼.’
필요한 건 다 모였다. 이제 시작인데, 이대로 물러날 순 없었다. 나는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건 죄송해요. 하지만 영지가 다시 살아나고 있어요. 이대로 돌아가면 황실이 괜한 트집 잡을지도 몰라요.”
“…….”
“그리고, 그리고…….”
간절히 말했지만 여전히 공작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침잠한 얼굴로 나를 바라볼 뿐.
그러나 나를 바라보는 눈빛 속엔 걱정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할 말이 떨어져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을 때였다.
공작이 낮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스나우트 령을 돌보겠다는 말을 반대하지 않은 건, 네 미래를 위해서였다.”
“…….”
“영지를 돌보는 건 영주다. 곧, 네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 무엇보다, 네가 원했기 때문에 말리지 않았어.”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네 체력까지 갉아먹는 일은 허락하지 않는다.”
“…….”
“그런데 지금 네 모습이 어떻지.”
“…….”
“쓰러지기까지 하고, 그 사실을 우리에게 숨기려고까지 했지.”
“…….”
“뒤늦게 이야기를 들은, 우리 심정이 어땠을 것 같으냐.”
백 번을 물어도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게 맞아.’
뻔뻔하게 사과도 할 수 없었다.
고개가 점점 아래로 떨어졌다.
그때 공작이 한숨을 내쉬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스나우트 령은 제리트에게 단독으로 넘기겠다. 이번엔 어떤 말로도 통하지 않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
“대답.”
“네…….”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였다.
“……엘리.”
공작이 전보다 낮아진 목소리로 날 불렀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외에, 내게 더 할 말은 없느냐.”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할 말?
무엇을 묻는지 알 수 없었다.
잘못했다는 말을 바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설마 륀켈트 후작님과의 대화를 묻는 것일까.
난 가만히 고개만 저었다.
잠깐의 침묵 후, 공작이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래.”
“…….”
“이만 쉬거라. 데미안, 너도 잠시 나와 있어. 엘리는 좀 더 휴식을 취해야 해.”
“하지만…….”
“어서.”
공작의 재촉에 데미안이 마지못해 그를 따라 나갔다.
문이 완전히 닫히고 나서야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까악…….
그러자 한쪽 구석에 여태껏 숨어 있었던 탈룸이 지친 모습으로 나타났다.
“미안해요. 이제 괜찮죠?”
까악.
탈룸이 날개를 펄럭였다.
“그럼 진짜 진짜 미안한데, 이거 들고 다시 공작성으로 돌아가 줄 수 있어요?”
나는 협탁 위에 올려놨던, 바이올렛 다이아몬드의 재가 들어 있는 봉투와 마나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륀켈트 후작님이 훔쳐갈지도 몰라서요.”
부탁 좀 할게요.
양손을 싹싹 비비며 말하자 탈룸이 하는 수 없다는 듯 까악…… 하고 대답했다.
탈룸이 마나석과 서신 봉투를 부리로 앙 물었다.
그러곤 늠름하게 날개를 펼치더니 털 속에서 이동 스크롤을 꺼내곤 쫙, 하고 찢었다.
휘잉.
약간의 바람과 함께 탈룸이 사라졌다.
‘됐다. 이제 한시름 덜었어.’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지만…….
“세상에, 엘리 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으아아…….’
눈물범벅이 되어 달려온, 세명의 하녀들 때문에 나는 또 한참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 * *
한편.
스나우트령의 농민들은 슈에츠 공작의 등장에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 했다.
“정말, 정말 슈에츠 공작가의 며느리라고? 그 아이가?”
“게다가 우리 영지의 새로운 주인이라니.”
정확히 말하면 그 이복 오라버니도 함께였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그들에게 귀족은 사치와 무례를 피부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오만방자함의 극치.
저보다 낮은 사람은 가차 없이 짓밟되, 높은 사람에겐 한없이 고개를 조아리는.
하지만 그 아이는 어떠했던가.
먼저 나서서 나무를 심었다.
사람들에게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함께 나무를 심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렇게 죽어가던 땅이 살아났다.
그 작은 아이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는, 그들이 제일 잘 알았다.
“그래서 쓰러진 거군…….”
“추운 북부에서 살았다면 남부의 더운 기온을 이기지 못했을 거야.”
하얀 얼굴에 연신 홍조를 띠면서도 아이는 활짝 웃었다.
땅이 살아나는 걸 진심으로 기뻐했던 것이다.
도박에 미쳐, 영지를 팔아 버린 전 주인과는 달랐다.
농부들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륀켈트 후작이 옆에 있던 나이젤에게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지.”
나이젤은 잠시 침묵했다.
본디 주인의 질문은 정말 제 의견이 궁금해서 묻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이젤은 대답했다.
“……저도 그분이 좋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영지를 소유지로만 둘 수도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땅을 엎어서 새로 만들었을 수도 있겠죠. ……여러모로 상냥한 분입니다.”
나이젤의 대답에 륀켈트 후작이 낮은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 건방진 꼬마가 뭐가 좋다고.”
연신 싱글거리던 얼굴이 눈앞에 선명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성공한다면 카르티아의 심기를 제대로 긁어놓을 수 있을 터.
그러니까 이건, 그 아이의 협박에 넘어간 것이 아니었다. 복수할 다른 방법을 찾은 것뿐.
“슈에츠 공작님은 어디 계시지?”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찾으리라는 것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그가 헛웃음을 흘렸다.
며칠 전부터 슈에츠 공작이 그가 운영하는 건설업을 주시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제가 아직 황후의 편이라고 생각했는지, 직접적으로 몰아붙이지는 않았지만.
그 아이가 쓰러졌으니 더는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작정인 듯했다.
‘같은 슈에츠라 그런지, 닮았군.’
륀켈트 후작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자 굳은 얼굴의 슈에츠 공작이 그를 반겼다.
* * *
일주일 동안 절대 안정이란 말을 들었지만, 매일매일 갇혀 있으란 말은 아니었다.
이틀이나 내리 잤으니, 마나도 회복된 지 오래였다.
즉, 계속 갇혀 있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었다.
“햇빛이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데!”
“광합성해야지! 키 클 거야!”
“비타민, 비타민!”
-하고 몇 번이나 폴짝거렸더니 그제야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일은 안 돼요. 엘리 님,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해요.”
“지금이야 공작님께서 잠시 자리를 비우셨지만, 들키는 날엔 저희 목숨이 위험합니다.”
“일 안 할 거야. 그래서 데미안도 함께 가잖아.”
나는 울상 짓는 하녀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데미안과 맞잡은 손을 붕붕 흔들었다.
데미안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나와 데미안은 줄 곧 붙어 다녔으니 제약 수준에도 못 꼈다.
“뭐, 공자님께서 곁에 계시니 상관은 없겠지만…….”
그제야 하녀들이 안심한 듯 말했다.
‘내가 그렇게 문제아인가……?’
조금 애석한 마음을 뒤로한 채, 나는 데미안과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사람들을 걱정시키게 한 건 미안하지만,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륀켈트 후작은 돌아갔을까?’
조급함에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백작성을 나서려던 난 깜짝 놀랐다.
“……아델란? 리번스 자작님?”
내 눈앞에, 뜻밖의 두 부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 님!”
아델란이 단숨에 달려와 날 꼭 끌어안았다.
그때 작은 손이 불쑥 들어와, 나와 아델란을 떨어뜨려 놓았다.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하셨습니다.”
데미안이 싱긋 웃으며 정중히 말했다.
“앗, 그렇죠. 죄송합니다, 엘리님. 너무 반가운 마음에 그만…….”
“전 괜찮아요. 그보다, 무슨 일이에요?”
내 물음에 리번스 자작이 말했다.
“마도구 기술자를 구하셨다는 연락을 받고 왔습니다.”
마도구 기술자?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아델란이 말했다.
“전해 들으신 게 없으신가요?”
“네. 하나도…….”
내가 어리둥절하게 서 있을 때였다.
“오. 리번스 자작.”
뒤편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륀켈트 후작이 웃으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제리트와 헤론도 함께였다.
“회신에 응해줘서 고맙군.”
“저야말로 소중한 인력을 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리번스 자작이 고개를 숙이자 륀켈트 후작이 껄껄 웃었다.
“다 서로 돕자고 하는 일이지 않나. 자, 일단 긴말은 필요 없고 설계도부터 보도록 하지.”
“잠시만요.”
나는 손을 들어 륀켈트 후작을 막았다.
‘후작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도와주는 척하며 설계도를 유출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당신의 말을 어떻게 믿냐는 물음을 내뱉을 수 없었다.
내가 우물거리자 륀켈트 후작이 뭘 그런 걸 묻냐는 듯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시는 게 무엇인지 압니다.”
그러더니 장갑을 벗어 손등을 보여주었다.
손등 위에 맴도는 붉은 기운.
슈에츠 공작의 시동인이었다.
“제가 허튼수작을 부릴 시, 바로 목숨이 끊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
“가벼운 마음으로 이 일에 동참한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또렷했다. 륀켈트 후작을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작의 시동인은 믿을만했다.
내가 수긍하듯 한 걸음 물러나자 륀켈트 후작이 언제 그랬냐는 듯 빙긋 웃으며 리번스 자작에게 다가갔다.
“제국 역사에 큰 획을 그을 작품을 만들어 보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