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27)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27화(127/241)
* * *
륀켈트 후작은 리번스 자작의 설계도를 보며 실현 가능한 부분과 수정 사항을 알려주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헤론은 눈빛에 가득했던 의구심이 한층 풀린 상태였다.
“……해서, 이 방향으로 만드는 게 좀 더 적합할 듯 하오만.”
“확실히 그렇군요.”
리번스 자작이 깨달음을 얻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륀켈트 후작이 제국 최고의 건설업 기술을 만들었다는 명성은 거짓이 아닌 듯했다.
“음…… 하지만 이 정도 규모를 만들려면 웬만한 인원 가지곤 힘들겠군요.”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스나우트 령의 청년들이 도와주기로 했으니.”
“예? 정말입니까?”
“진짜요?”
리번스 자작과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집에서 빈둥거리며 놀면 뭐하겠습니까. 부모님께 등짝 얻어맞는 것보다는 낫지요.”
륀켈트 후작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헤론을 바라보자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라는 뜻이다.
내가 입을 떡 벌리자 후작이 덧붙였다.
“참고로 강제성은 없습니다. 다들 작은 영주님에 대해 이야기하며 스스로 돕겠다 하더군요.”
후작은 ‘작은 영주’에 악센트를 주며 나를 쳐다봤다.
‘영주라고 밝히지 않아서 배신감을 느낄 줄 알았는데.’
내가 얼떨떨하게 굳어 있을 때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후입니다.”
묵묵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헤론이 말했다.
“대륙을 잇는 선로는 그만큼 규모도 커야 할 겁니다. 영주들이 자신의 땅에 선로를 허락할지 의문입니다.”
헤론의 지적은 날카로웠다.
선로를 놓는 건 기차를 만드는 기술력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선로를 놓으려면 우선 영지의 허락을 맡아야 한다. 하지만 땅은 대부분 귀족들의 소유다. 그들에게 일일이 허락을 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의 뜻에 동조했다간 황실과 척을 지게 될지도 모른다.
“스나우트 영지는 남쪽 끝자락이라, 일단 주변 영지 몇몇에만 허락을 구하면 될 것 같습니다만…….”
리번스 자작과 륀켈트 후작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슬그머니 눈치를 보던 나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럼 우선 이어진 서부의 륀켈트 령과 남부의 스나우트 령에만 선로를 놓는 건 어때요?”
“서부와 남부만요?”
“네! 리번스 자작님께서 구상하신 마나 기차는 큰 발명이에요. 나중엔 모두가 기차를 타고 싶어 할 거고, 그럼 자연스럽게 스나우트령에 오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많아지겠죠!”
“그 말씀은…….”
생각하던 리번스 자작과 륀켈트 후작이 무언가를 깨달은 얼굴을 했다.
“기차의 유용함을 증명하면 귀족들도 자신의 영지에 선로를 놓길 원하겠군요.”
“선로는 나중에도 놓을 수 있으니 그때 다시 논의하면 되는 것이고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차했다.
아직 기차는 만들어지기 전이었다. 설계도를 봤다고 해도 실제로 본 적도 없는 선로에 관한 의견은 아이답지 않을 수 있었다.
‘너무 나섰나?’
뒤늦게 드는 후회에 슬그머니 입을 다물고 눈치를 봤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영민하신 분이라던 슈에츠 공작님의 말씀은 거짓이 아니었군요.”
“이리도 생각이 깊으시다니.”
륀켈트 후작과 리번스 자작이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헤론도 별다른 말없이 찻잔을 기울였다.
‘잘 넘어간 것 같아.’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인력을 검토하던 륀켈트 후작이 곤란한 얼굴을 했다.
“그런데 스나우트 영지의 청년들로도 인원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지금 인력으로도 부족하단 말씀입니까?”
“부족하진 않습니다만, 이 인원으로 예상 완성 시기를 추측한다면…….”
그가 미간을 좁혔다.
“대략 2년 정도 걸리겠군요.”
“2년이요?”
“휴일 없이 매일매일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예측한 기간입니다.”
그건 안 된다.
노동에서 가장 중요한 건 충분한 휴식이다. 인력이 부족하다고 해도 사람들을 내 마음대로 부려먹을 권리는 없었다.
‘탈룸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부족해.’
앞으로 4년.
공작과 데미안이 전쟁에 나가기 전까지, 나는 홀로 버틸 수 있을만한 밑거름을 만들어놔야 한다.
그러려면 기차는 최소 3년 안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기차의 유용성을 알리고, 대륙 너머까지 소문이 퍼질 기간도 고려해야 하니까.
탈룸은 아만타 남작과 외보르크를 도와 무기를 만들고 있다. 도와달라면 도와주긴 하겠지만 또다시 인력 문제라니.
깊게 절망하고 있을 때였다.
“기차를 만드는 일, 많이 힘든가요?”
가만히 앉아,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데미안이 말했다.
“……예?”
“어느 정도 나이에 상한선을 둬야 하겠지만 성인이 아니어도 괜찮다면, 인력은 충분할 것 같습니다.”
인력이 충분하다고?
데미안의 말에 멍하니 눈을 깜빡일 때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응접실로 모이기 전, 잠시 자리를 비웠던 제리트가 급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연락을, 너무 늦게 받아서…… 정말 죄송합니다.”
쉬지도 않고 달려온 듯, 벽에 팔을 기댄 채 숨을 고르던 그가 기쁜 얼굴로 말했다. 헤론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저희가 후원하는 남부 지역 고아원에 연락을 돌렸습니다. 16살 기준으로, 도와줄 일손이 필요한데 혹시 가능하냐고요.”
“아……!”
고아원!
성년을 앞둔 고아원 아이들에게 자립할 자금과 일자리는 늘 절실하기 마련이다.
내가 눈을 크게 뜨자 제리트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답니다. 물론 일한 만큼 보수도 주기로 약속했고요.”
“그럼……!”
“예, 우선 일손 문제는 해결입니다.”
나는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 했다.
후원하는 고아원에 연락할 생각을 하다니!
“대단해요, 제리트 님!”
내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쳐다보자 제리트가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모든 건 공자님 의견이십니다.”
데미안이?
놀라 눈으로 쳐다보던 난 데미안을 와락 끌어안았다.
‘착하고 똑똑한 내 새끼!’
“잘했어, 데미안! 누굴 닮아 이렇게 똑똑해, 응?”
“에, 엘리…….”
마구 주접을 부리자 우리를 지켜보던 헤론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클라이더 공작님을 닮으셨습니다.”
제자를 자랑하는 스승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건 단순한 칭찬이 아니었다.
‘데미안을 클라이더로 인정해주고 계신 거야.’
모든 게 착착 퍼즐처럼 맞아 들어가고 있다. 신성석, 인력, 농지, 일자리, 기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러니 남은 일은.’
성공하는 것뿐!
눈을 빛내던 나는 멈칫했다.
그전에, 스나우트 령의 부흥을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사람이 있으니까.
륀켈트 후작을 향해 눈을 빛내자 후작이 “역시 괜히 했나…….” 하고 중얼거렸다.
* * *
1 황자의 탄신 연회로부터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황후의 새로운 사업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시녀들의 단장을 받던 그녀가 자신의 붉은 머리카락을 매만질 때였다.
시녀장, 리타가 카르티아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거울 속 자신을 응시하며 물었다.
“준비는 끝났니?”
“예.”
“다시 한번 확인해. 중요한 자리인 만큼, 이번 연회는 빈틈없이 준비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오늘 황궁 연회에 초대된 손님들은 제국의 성장에 기여한 사람들이었다.
그녀의 새로운 사업에 함께할 자격이 되는 자들.
그들이 어떤 대답을 할지,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1 황자 탄신 연회 때, 슈에츠 공작의 등장 때문에 황실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걸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연회는 반드시 눈부신 성공을 이뤄야 했다.
모든 시종들이 바쁘게 황궁을 돌아다닐 때였다.
“바빠 보이는군.”
익숙한 목소리에 카르티아가 고개를 돌렸다. 황제, 벤터스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폐하, 여기까진 무슨 일로-”
“황후가 또 연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찌 안 와볼 수 있나.”
“…….”
“황후 덕분에 황궁이 늘 활기차. 하루하루가 즐겁군.”
장난스럽게 말하고 있지만, 그동안 있었던 소란을 모두 탓하는 말투였다.
“너흰 모두 나가보거라.”
시종들을 물린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폐하, 그간 있었던 일은 예상 밖의 일이었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녀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했으나, 황제의 못마땅한 눈빛은 거둬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어떻게 할 것이오?”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이번 일은 제국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을 것입니다.”
“역사라고?”
자신만만한 카르티아의 말에 벤터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가 사르르 웃으며 그를 자리로 안내했다.
그러곤 자신이 구상한 새로운 사업에 대해 설명했다.
이것이 얼마나 제국에 큰 혁신을 가져올 것인지, 그에 따른 이익은 얼마나 되는지.
일목요연한 설명에도 벤터스는 못 미더운 기색을 지우지 못 했다.
그녀가 건설 문제로 자신의 아버지인 라티오넬 백작에게 꽤나 많은 돈을 빌렸기 때문이다.
카르티아가 웃으며 말했다.
“기술자는 많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휴일 없이 진행하면 앞으로 1년 안에 완성될 것입니다. 이 사업이 성공한다면 그에 따른 부채는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흐음…….”
그녀의 말대로, 건설은 인력과 기술 문제였다.
모든 기술자를 꿰고 있는 그녀라면 제가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던 벤터스가 슬며시 그녀에게 물었다.
“그날 이후, 요즘 슈에츠 쪽이 조용하던데.”
1 황자의 연회에 슈에츠 공작이 나타나 1급 마수를 선물로 바쳤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큰 화젯거리였다.
황실의 권위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오만방자한 살인귀.
그런데 본격적으로 성문을 개방할 것처럼 굴던 그가 돌연 조용해지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럴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녀가 붉은 입술을 끌어올리며 웃었다.
“그 계집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가둬 놨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