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3)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3화(13/241)
에르하르트는 인상을 찡그리다 상대가 아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무릎을 굽혔다.
“미안하구나.”
그가 손을 내밀자 아이가 눈을 떴다.
아이는 눈에 띌 정도로 맑은 녹안을 가지고 있었다. 일순간 에르하르트의 눈이 커졌다.
“감사합니다.”
아이가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아저씨들은 누구세요?”
“아, 아저씨…….”
안테가 넋 나간 듯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공작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모양이군.’
인성 파탄자인 공작님이라도 아이에게 해를 가할 리는 없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안테가 나서서 아이를 말리려고 할 때였다.
“혹시 아이를 입양하러 오신 건가요?”
이어진 아이의 말에 두 사람 모두 멈칫했다.
“……그렇다만.”
“역시 그러시구나! 아이들은 지금 원장님 방에 있어요!”
“원장님?”
“네! 흑발에 벽안을 가진 아이들을 원하시는 거 맞죠? 다섯 명 모두 거기 있어요.”
아이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순수한 얼굴이 맑았다.
“……아무래도 원장은 여기 있나 보군.”
에르하르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무슨 수작일까요.”
“글쎄. 하지만 기분이 아주 더럽다는 건 잘 알겠어.”
에르하르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시선을 내렸다.
“알려줘서 고맙구나.”
“뭘요!”
환하게 웃은 소녀는 꾸벅, 인사와 함께 자리에서 벗어났다.
‘이상한 아이군.’
안테는 멀어지는 소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공작님을 정면에서 마주치고도 울음을 터뜨리지 않는 아이는 처음이었다.
아니, 딱 한 명 더 있었다.
공작님을 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사람이.
‘그것도 다 옛날 일이지만.’
안 테는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 * *
“어서 오십시오, 공작님. 이렇게 저희 고아원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장을 끝낸 원장이 공작을 향해 우아한 인사를 올려 보였다.
에르하르트는 아이들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이 아이들인가?”
“예. 그렇습니다.”
원장은 자신의 말이 무시당한 것은 신경 쓰이지 않는 듯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공작님께서 찾으시는 흑발에 벽안을 가진 아이들입니다. 분명히 중에 계실 겁니다.”
에르하르트는 느릿한 눈길로 아이들을 훑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아이들은 공작과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와앙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 얘들이 왜 이런담. 잘 우는 아이들이 아닌데…….”
원장은 애써 웃으며 아이들을 달랬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르하르트는 침잠한 눈으로 아이들을 살피며 손 안의 마나석을 굴렸다.
그 안엔 클라이더의 아들, 제가 찾는 아이의 마나가 담겨 있었다.
자신의 친우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아들의 마나를 넣어둔 것이었다.
그러니 이 중에 클라이더의 자식이 있다면 반응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여기도 아닌가.’
에르하르트가 기쁨에 찬 눈으로 저를 보는 원장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거짓말 같으니 죽여버려.”
“예? 공, 공작님, 무슨 말씀을…….”
“알겠습니다.”
“공작님!”
안테가 고개를 숙이며 원장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이들이 숨넘어갈 듯한 소리를 내며 덜덜 떨었다. 무심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에르하르트가 멈칫했다.
아이들은 네 명이었다.
하지만 저와 부딪혔던 금발의 소녀는 분명 이렇게 말했었다.
“네! 흑발에 벽안을 가진 아이를 원하시는 거 맞죠? 다섯 명 모두 원장실에 있어요.”
아이가 다섯이라고.
에르하르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안테.”
주군의 부름에 안테가 곧장 행동을 멈췄다.
그러곤 안테는 곧장 아이들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혹시 모를 끔찍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에르하르트가 원장을 향해 한걸음 다가가며 중얼거렸다.
“하나가 없지 않나.”
“예? 그게 무슨 말씀…….”
“끝까지 시치미를 떼려는 건가.”
에르하르트가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아 들어 그녀의 옆에 콱, 내리찍었다.
원장은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풀썩 주저앉았다.
“네가 숨긴 아이, 지금 어디 있지?”
에르하르트의 적안이 흉흉하게 빛났다.
* * *
밖이 소란스러웠다. 데미안은 천천히 눈을 떴다.
몸이 무거웠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색색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자 햇살 같은 금발이 눈에 들어왔다.
엘리였다.
가지 않고 제 옆을 지켜주고 있었던 모양이다. 데미안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엘리…….”
색색거리는 숨을 내뱉으며 힘겹게 이름을 부르자 엘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데미안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너무나 좋아, 데미안은 눈을 꼭 감고서 뺨을 비볐다.
“엘리 손, 시원해서 좋아.”
“내 손이 시원해?”
“으응…….”
데미안은 어리광 부리듯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는 옅게 미소 지었다. 무척이나 아프고 쓰린 미소였지만 열에 들뜬 데미안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데미안, 이제 아프지 않아도 돼.”
엘리가 혼잣말처럼 작게 중얼거렸다.
“네 가족이 왔어.”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데미안이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그 순간, 소란스러운 문이 열리고 누군가 안으로 들이닥쳤다.
마물처럼 덩치가 큰 남자였다.
남자는 짙은 눈매, 붉은빛이 도는 검은 머리카락에 숨 막힐 듯한 위압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뒤편으로는 보육교사들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서 있었다.
데미안에겐 익숙한 표정이었다.
마물을 모조리 다 죽이면, 경기장의 관중들이 데미안을 향해 저런 표정을 보이곤 했었다.
‘……꿈인가?’
데미안이 몽롱한 정신으로 눈만 깜빡였다.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시리도록 푸른 눈동자가 드러났다.
‘사내아이라 들었는데, 웬 여자아이가…….’
그 눈동자를 본 안테는 슈에츠 공작을 힐끔거리다 침을 꿀꺽 삼켰다.
평온함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지금 주군의 표정은 전장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딱 한번 본 적이 있었다.
마님이 돌아가셨을 때였다.
‘그때 이후로 두 번 다신 저런 표정을 못 지으실 줄 알았는데.’
안 테는 긴장감이 흐르는 얼굴로 공작을 바라보다 시선을 내렸다.
게다가 그 아이의 옆엔 작은 여자아이도 함께였다.
공작님과 부딪혔던 금발의 소녀였다.
소녀의 얼굴엔 ‘아저씨’라고 불렀던 그때의 천진난만함이 보이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얼굴이었다.
마치 그들이 찾는 아이가 이 소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에르하르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다른 아이였다면 울음을 터뜨리거나 혼절했을 일이었다.
그러나 소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얌전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를 비켜주겠다는 뜻이다.
그때였다.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데미안이 엘리의 앞을 막아섰다.
사람들의 시선이 제게 닿을 땐 꿈쩍도 하지 않았던 아이가, 소녀에게 시선이 닿은 순간 앞을 막아섰다.
휘청거릴지언정, 물러나지 않는다.
주인을 보호하는 맹수의 자세였다.
엘리도 이런 상황은 예측하지 못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런.’
첫 단추를 잘못 끼웠군. 안테가 나서서 그들을 중재하려 할 때였다.
“상태가 심각하군.”
공작의 무심한 말이 살얼음 같던 분위기 위로 내려앉았다.
“그 꼴로 누굴 지키겠다는 거냐.”
공작의 말에 데미안이 입술을 깨물었다. 반박하고 싶은데, 쉬어버린 숨소리밖에 나오질 않았다.
그때였다.
공작의 품에서 은은한 푸른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무감정했던 표정에 금이 간 공작은 품에 있던 걸 꺼내어 데미안을 향해 휙 던졌다.
작은 돌이었다. 데미안이 얼결에 그것을 받아 든 순간, 돌이 더욱 밝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방 안이 선명하게 푸른빛으로 가득 찼다가 이윽고 서서히 가라앉았다. 안테는 터져 나오는 탄성을 애써 틀어막았다.
‘찾았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클라이더 공작의 아들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데미안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 순간, 데미안의 몸이 휘청거렸다.
“데미안!”
엘리가 다급히 데미안을 끌어안았다. 몸이 축 늘어진 데미안은 몇 번이나 이름을 불러도 눈을 뜨지 못했다.
“걱정할 필요 없을 거다.”
그때 에르하르트가 금세 감정이 갈무리된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빼앗겼던 마나가 다시 흡수된 것뿐이니. 오히려 체력을 키워주는 데에 도움이 될 거다.”
엘리는 눈을 깜빡이다 손을 들어 데미안의 이마를 짚었다.
확실히 뜨끈한 열이 점점 사그라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 정말 저 아이가 클라이더 공작의 아들이었단 거야?’
모든 상황을 지켜본 선생들이 덜덜 떨기 시작했다.
“아이는 찾은 것 같군.”
에르하르트가 데미안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아이의 꼴이 왜 저렇게 되었는지, 설명을 들어볼까.”
“……!”
“마땅치 않은 대답이라면 차라리 혀 깨물고 죽는 게 나을 거야.”
공작의 선언에 교사들은 입을 딱 다물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제압할 수 있는 위압감. 그 앞에 서면 감히 입도 뗄 수 없다고 했었다.
‘책에서 묘사된 그대로야.’
엘리는 멍하니 공작을 바라보았다.
그때, 공작의 시선이 엘리에게 닿았다. 엘리는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흔들림 없는 눈으로 엘리를 바라보던 공작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