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31)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31화(131/241)
후작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대체 언제……. 아니, 그보다도 들키면 어쩌시려고 그러셨습니까!”
“한 번도 들킨 적 없어서 괜찮아요.”
자신만만한 대답에 후작이 앓는 소리를 내며 마차에 몸을 기댔다.
“이러려고 신전에 가신 거죠?”
“아니라곤 말 못 하겠어요.”
엘리가 배시시 웃자 후작이 마른세수를 했다.
진짜 목적은 세례였지만, 겸사겸사 성수도 가져왔다.
황후의 마법이 약해졌다면 함부로 쓰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녀도 마지막 동아줄을 잡고 있는 셈이니까.
성수는 오블리에의 흑마법도 풀었다. 타인의 마법을 쓰는 황후에게도 통하겠지.
이 성수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엘리의 보험이었다.
물론 이 말을 할 수는 없어서, 엘리는 그냥 씩 웃었다.
륀켈트 후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 달이란 짧은 시간 동안, 곁에서 지켜보며 느꼈지만.’
역시 일반적인 13살과는 다르다.
마탑이 일으킨 홍수 피해를 나무를 통해 없앤 것만으로도 놀랄 일이건만.
영지 복구는 물론, 피해 입은 땅을 성공적으로 재건했다.
어디 그뿐인가. 기부를 통해 호감을 얻어 인력 문제까지 해결했다.
가신인 제리트가 함께한 것이라 했지만, 사람을 많이 상대해 본 자라면 한눈에 파악했을 것이다.
‘상황을 이끌어간 주체는 이 아이라는 것을.’
무엇보다 제일 놀란 점은, 계획이 조금 틀어져도 좌절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체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있는 걸까.’
역시 이 아이의 손을 잡은 건 옳은 선택이었다.
‘뭐, 그냥 자연스럽게 돈의 흐름을 따른 것뿐이지.’
그가 변명하듯 자신의 생각을 부정할 때였다.
‘……그나저나 신성력을 못 받아들이는 체질이라니.’
그런 사람도 있나?
있었다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텐데.
‘한번 조사를 해봐야겠군.’
* * *
후작의 도움으로 공작성에 도착한 나는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지정 스크롤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하지만 지정 스크롤을 만들려면 사용자가 누구인지 황실에 보고를 해야 했다.
황실이 그걸 허락해 줄 리 없었다.
‘에휴.’
돈이 있어도 쓰질 못하네.
나는 한숨을 폭 내쉰 나는 공작성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 님!”
나를 발견한 아셀이 반갑게 이쪽으로 달려왔다.
북부와 남부를 오가는 나 때문에 아셀과 로이나는 북부에, 이바나와 메이는 남부에 있었다.
아셀이 울상을 지으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아아, 엘리 님. 정말 보고 싶었어요…….”
“나도 보고 싶었어.”
“그럼 뺨 한 번만…….”
선심 쓰듯 뺨을 내밀자 아셀이 검지 손가락으로 내 뺨을 콕 찔렀다.
앓는 소리를 낸 그녀가 얼굴을 감싼 채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하여튼 이곳 사람들은 내 볼을 좋아한다니까.’
나는 뺨을 쓱 닦으며 물었다.
“데미안이랑 공작님은 어디 계셔?”
“공작님은 업무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우셨고, 공자님도 훈련 중이세요.”
“아직도?”
내가 알기로 데미안의 수업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다. 연달아 훈련을 받지 않는 이상, 오후 중으로 끝난다.
하지만 지금은 하늘이 노을로 물들 무렵이다. 밤으로 물드는 건 시간문제일 텐데.
‘무리하는 건 아니겠지.’
슬쩍 가볼까 생각하던 나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괜히 집중하는 아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있기도 했고.
나는 곧장 아셀과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방에 들어오자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들이 보였다.
‘……이거 설마 다 데미안이 보는 건 아니겠지?’
뜨악한 얼굴로 책상을 보자 아셀이 어색하게 웃었다.
“공자님께서 공부에 열중하시느라…… 매일 치우는데도 이러네요.”
아셀이 그나마 서류가 없는 쪽을 넓게 치워줘서 나는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다.
‘데미안이 이렇게 열심이었구나.’
좋아.
나는 시종들에게 모아놓은 고아원 리스트를 전부 가져오라고 말했다. 깃펜을 쥐고서 두 팔을 걷어붙였다.
누나로서 질 수 없지.
오늘 안에 기필코 검토를 끝내고 말겠어.
* * *
어둠이 가득 내려앉은 검무장.
기진맥진한 기사들 가운데에서 데미안이 천천히 숨을 내쉬며 검을 내렸다.
“후우…….”
한시도 쉬지 않고 검을 잡은 터라,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혼자서 검을 휘두르는 연습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했다.
근육 하나하나가 움직이는 감각을 느껴야 했으니까.
‘그래도 아직 부족해.’
탈룸이 한번 써보라며 만들어준 검은 이제껏 써왔던 다른 검들과는 달랐다.
제 신경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있었다.
‘그러니 좀 더 길들여야…….’
천천히 눈을 뜬 데미안이 주위를 살폈다.
조금 더 상대를 해줬으면 싶었지만 기사들은 이미 나가떨어진 상태였다.
북부에 살면서, 그들도 웬만한 마물은 손쉽게 처리했다.
체력적으로는 어디 나가서 아쉬운 소리 한번 들은 적이 없건만.
그들이 더는 못 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데미안이 검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이만 하지. 다들 수고했어.”
“공자님께선 안 가십니까?”
화색을 띠며 일어나던 기사들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조금만 더 하려고.”
“예?”
“시간이 늦었습니다, 공자님. 내일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긴 했으나, 데미안도 아직은 아이였기에.
기사들이 달래듯 말했으나 꿈쩍도 않았다.
그들이 포기하며 한숨을 내쉴 때였다.
“공자님!”
안으로 들어오던 아셀이 “커흑!”하며 코를 틀어막았다.
기사들이 머쓱해하며 서로를 킁킁거렸다.
“무슨 일이야?”
“공자님, 엘리 님께서 오셨어요.”
데미안의 눈이 크게 뜨였다.
감정 없는 인형 같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디 있어? 지금 온 거야?”
“방에서 업무를 보고 계세요. 공자님 훈련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다 하셨거든요. 어, 그런데…….”
코를 틀어막은 채 열심히 이야기하던 아셀이 난감한 얼굴을 했다.
데미안이 아직도 검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훈련 중이셨군요. 죄송해요. 나중에 다시-”
“끝났어.”
데미안이 단숨에 검을 내려놓았다.
“다 끝났어. 다른 훈련도 없고.”
“그러시군요. 그럼 어서 가실까요?”
아셀은 데미안과 함께 검무장을 빠져나 갔다.
남겨진 기사들은 검을 너무 쥐어, 빨개진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엘리 님께서 오셔서 다행이야.’
말하지 않아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서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듯 엘리의 호감도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그사이, 바쁘게 방으로 향하던 데미안이 급하게 발걸음을 멈췄다.
“왜 그러세요?”
“……목욕.”
“예?”
잘 들리지 않아 아셀이 가까이 몸을 낮췄다.
그러자 고개를 푹 숙인 데미안이 작게 우물거렸다.
“먼저 목욕부터 할래.”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엘리 님 이야기만 나오면 열 일을 제쳐두는 분이신데, 무슨 일이실까.
아셀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데미안이 우물거렸다.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
“……예쁜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오물거리는 소년의 귀가 붉었다.
‘예쁘게 보이고 싶다니.’
어흑. 아셀은 가슴을 부여잡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과도한 훈련으로 좀 흐트러졌을 뿐, 냄새 같은 건 나지 않았다.
오히려 청량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한 달 새에 데미안의 키는 눈에 띄게 자라 있었다. 엘리와 눈높이가 비슷해질 정도였다.
워낙 체구가 작았던지라, 변화가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그러니 지금 이 상태로 가도, 엘리 님께서 놀라실 게 보이지만…….”
무표정했던 공자님이 이토록 설레어하는 모습은 오랜만이기에, 아셀은 거칠어지는 콧김을 억누르며 간신히 대답했다.
“그, 그러셨군요. 그럼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데미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아주 긴 시간 같았던 목욕이 끝났다.
머리는 끝까지 말리는 게 좋을 텐데도, 데미안은 그 시간마저 아까운 듯 조급한 기색을 보였다.
“감기 걸리실 거예요, 공자님.”
“상관없어.”
늘 무언가를 물어도 “괜찮아. 난 상관없어. 나쁘지 않아”만 반복하던 공자님이 오늘따라 고집을 부리는 탓에, 아셀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머리카락 끝에 살짝 물방울을 머금은 채, 데미안이 서둘러 방으로 향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제일 먼저 보인 건, 창문에 걸린 달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 달빛을 덮은 채 곤히 잠든 엘리가 보였다.
멈칫한 데미안이 조심스레 엘리 곁으로 다가갔다.
‘여기서 자면 불편할 텐데.’
들어가서 자라고 말을 해야 하지만 혹시나 제 목소리가 단꿈에 방해가 될까 싶어서 입을 열 수 없었다.
데미안이 두꺼운 담요를 덮어주자 엘리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테이블에 얼굴을 비볐다.
‘잠투정.’
그래도 오늘은 얌전한 편이었다. 그렇게나 피곤한 걸까.
깨우기가 어려워졌다. 데미안은 혹시나 엘리가 깰까, 조용히 의자를 가져와 그녀의 옆에 앉았다.
그러곤 엘리처럼 팔을 모은 채, 그 위에 얼굴을 기대 누웠다. 뺨의 열감이 손등 위로 내려앉았다.
이렇게 마주 보고 누워본 게 얼마 만이더라.
엘리가 북부로 자주 오는 편이었지만, 기다리는 데미안 입장에서는 더없이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온다고 해도, 피곤해 일찍 쓰러져 자는 게 대부분이었으니까.
데미안이 천천히 손을 뻗어, 엘리의 검지에 조심스레 제 검지를 얽었다.
그 작은 접촉만으로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데미안은 부끄러운 듯 반대편 손등에 얼굴을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