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34)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34화(134/241)
“너를 다시 만나게 되다니! 이게 꿈은 아니겠지?”
비비안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나를 바라봤다.
맑은 은빛 머리카락. 다정한 기운이 묻어 나오는 갈색 눈동자.
한때는 정말 언니, 동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던 사람.
그녀를 본 순간, 온갖 생각으로 가득했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세상에, 정말 엘리잖아?”
게다가 록시 오라버니까지.
내가 입만 뻐끔거리자 비비안이 다시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엘리, 내가 널 얼마나 많이 생각했는지 알아?”
“…….”
“그렇게 보내서 정말 미안해. 두고두고 후회했어, 나. 편지도 몇 번이나 보냈단 말이야.”
“……정말요?”
“그럼.”
비비안이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어디로요?”
그러나 내 물음에 그녀의 손이 우뚝 굳었다.
“……어디긴.”
그녀가 반 박자 늦게 대답했다.
“네가 있던, 그…… 고아원이지.”
“고아원 이름을 기억하세요?”
“그럼.”
그녀가 싱긋 웃으며 록시를 쳐다보자 록시가 말했다.
“세인트 고아원, 맞지?”
어라, 진짜 기억하고 있네.
다른 속셈이 있어서 이러는 줄 알았는데……. 정말 고아원으로 편지를 보냈나?
내가 긴가민가한 얼굴을 하자 그녀가 서운하다는 듯 눈썹을 늘어뜨렸다.
“세상에, 엘리. 넌 내 동생이잖아.”
“…….”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내가 아무런 말이 없자 비비안 언니가 빙긋 웃었다.
“이리 와. 널 생각하면서 맛있는 걸 만들었어. 록시랑 같이-어머?”
내 팔을 이끌려던 비비안이 데미안을 보며 화색을 띠었다.
“이분이 바로…….”
“……데미안 클라이더 에르하르트 슈에츠입니다.”
데미안이 조금 굳은 얼굴로 정중히 인사했다.
“어머나, 반가워요. 난 비비안 마르시프예요.”
“록시 마르시프입니다.”
“편히 마르시프라고 불러주세요. 저도 데미안 님이라고-”
“그럼 마르시프 님.”
그때, 데미안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저는 슈에츠라고 불러주십시오.”
“……네?”
“더불어, 제 부인도 함께 슈에츠라고 불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비안과 록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알 것이다.
마르시프 백작가와 슈에츠 공작가는 차이가 존재했다. 서로 편히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데미안은 슈에츠의 성을 통해 그 간극을 알려준 것이다.
록시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제가 실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슈에츠 공자님.”
“별말씀을요.”
데미안이 부드럽게 웃었다.
“언니?”
그때, 방금 전까지 나와 이야기를 나눴던 클로비스 루디아가 의아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아, 인사도 없이…… 죄송합니다. 너무 오랜만에 동생을 만나서…….”
난감하게 웃던 비비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인사했다.
“클로비스 루디아 님이시죠.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비비안 마르시프라고 합니다.”
“록시 마르시프입니다. 엘리의 형제죠.”
“하지만 이 레이디께선…….”
“제 여동생입니다. 지금은…… 어떤 일 때문에 따로 지내고 있지만 우리가 가족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록시의 말에 비비안이 애처로운 얼굴로 말하다 다시 날 내려다봤다.
“비록 어머니가…… 그런 분이셨지만…… 정말 좋아했어요. 친여동생처럼.”
“어머니?”
“아…….”
클로비스의 되물음에 비비안이 실수했다는 듯 입을 닫았다.
“제가 실언을 했네요. 부디 잊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녀의 말에 클로비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이것 봐라?’
동생이라 말은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은근히 날 깎아내리는 모습이 가식적이기 그지없었다.
‘설마설마했는데, 날 초대한 이유가 결국 이거였구나?’
마르시프는 처음으로 날 입양한 가문이다. 얼마 안 가 파양 했다고 해도, 나를 잘 아는 척 떠벌릴 명분은 충분했다.
게다가 이 자선 행사엔 제국인이 아닌 사람들도 있다.
‘슈에츠의 악명을 대륙 너머까지 퍼뜨리기에 딱 좋은 상황이란 소리지.’
흐음. 이걸 어떻게 되갚아준다? 엿만 먹이긴 아깝다. 난 이곳에 이익을 얻으러 왔으니까.
가만히 생각하고 있을 때, 비비안이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쪽에…… 좋아하던 쿠키가 있습니다. 같이 가시지 않겠어요?”
존댓말은 쓰되 높여 부르지는 않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군.’
백작가의 남매와 지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 둘이 얼마나 삐뚤어진 사람인지 알기엔 충분했다.
“이 드레스. 아버지께서 너한테 준 거지? 참 예쁘다.”
“어, 언니 가지실래요?”
“얘는. 우리 체격 차이가 얼만데. 음, 그런데 너랑 잘 안 어울리는 것 같아.”
“아…….”
“그래서 내가 준비했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다른 드레스를 가져왔다.
“네가 있던 고아원, 그 근처 가게에서 사 온 드레스야.”
“…….”
“그때 기억도 나고 좋지 않아? 언니가 특별히 신경 좀 써봤어.”
겉으론 사람 좋은 척 웃고 있지만, 내가 고아인 걸 끊임없이 상기 시 켰다.
차라리 비비안은 양반이었다.
록시는 더 지독했다.
음식을 먹을 땐, “이거 고아원에선 못 먹어본 거지?”하며 물었고.
목욕을 하고 나오면 “고아원에서도 향유를 쓰니? 아, 처음이라고? 아아, 그래서 이 향을 골랐구나. 하긴, 이게 좀 싸긴 해”하고 웃었다.
게다가 알코올 중독이기까지 했다.
하나하나 나열하자면 끝도 없었다.
그때의 난, 아직 이곳이 책 속 세계라는 것을 몰랐기에 위축된 채 고개만 숙여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한번 받은 굴욕은 두 배로 돌려주지.
나는 손을 뻗어 비비안의 손을 잡았다.
“쿠키, 먹고 싶어요.”
“어, 어머…….”
비비안과 록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 그럼 언니, 오빠랑 같이 갈까?”
“으응, 싫어요. 데미안도 같이 갈래요.”
데미안과 잡은 손을 보란 듯이 들어 보이자, 두 사람이 얼굴을 굳혔다.
“엘리. 우리끼리 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래. 형제끼리 못다 한 이야기도 나누고.”
“하지만 혼자서는 손이 부족한걸요.”
“손? 그게 무슨 말이니?”
어리둥절한 그녀의 물음에 난시 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예전에 언니, 오빠 몫까지 가져오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전부 쏟았잖아요.”
“뭐?”
“데미안이랑 같이 옮기면 넘어지지 않을 거예요. 언니 드레스도 더러워지지 않을 거고요.”
내 말에 두 사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음식을 가져오는 건 시종의 일이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 동생이라 말했던 아이가 자신의 음식을 가져오다 넘어졌다고 말했다.
클로비스를 포함해, 함께 있던 어른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감사하게도 마르시프 백작이 똑똑한 사람들을 초대해 준 덕분에, 나는 구구절절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되었다.
“엘리, 너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래! 왜 없는 말을 지어내?”
당황했는지, 슬슬 두 사람의 가면이 벗겨지려고 했다.
“그래! 왜 없는 말을 지어내는 거야? 우리가 언제 널 부려먹었다고! 남들이 들으면 오해할-”
“부려먹었다고 말하지는 않았어요.”
“……뭐?”
“동생은 원래 뭐든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뭐가 잘못됐나요?
순진하게 눈을 깜빡이자 록시의 얼굴이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렸다.
방금 전의 발언만으로도 두 사람의 이미지는 최악으로 떨어졌을 텐데.
멍청한 록시가 굳이 부려먹었다고 말해주니, 이쪽에서 나서기 더 쉬워졌다.
울지 않는 아이가 더 안쓰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상황이고.’
어른들의 얼굴이 싸늘해진 걸 보면, 알 만하잖아.
내가 불쌍해서 이러는 건 아닐 것이다. 도둑의 딸, 이건 사실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들도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보는 눈이 있으니, 그들도 알 것이다.
두 남매의 인성이 개차반이라는 것을.
“이만 다른 곳으로 가봐야겠군.”
“저도 함께 가시죠.”
“자, 잠시만요! 아닙니다, 뭔가 오해가-!”
비비안이 다급히 붙잡았지만, 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몸을 돌렸다.
“……나도 이만 가봐야겠군.”
마지막까지 몸을 돌리지 않았던 클로비스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영애도 함께 가면 좋을 것 같은데. 같이 가지 않겠니?”
그녀가 다정히 웃으며 손을 내밀었고, 나는 “좋아요!”하고 외치며 데미안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 * *
“귀여운 아이야, 이것도 먹으렴.”
“감사합니다.”
“혹시 이 쿠키는 좋아하니? 아이들이 먹기에 조금 맛이 독특하다던데.”
“감사합니다.”
받는 족족 꾸벅 인사하자 그녀들의 얼굴에 하나같이 웃음꽃이 피어났다.
“영애같이 사랑스러운 아이는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자, 더 먹으렴. 많이 있단다.”
“감사합니다.”
다시금 꾸벅 인사하자 데미안이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흐뭇하게 웃던 클로비스가 문득 접시가 비었다는 것을 깨닫고 종을 울렸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시종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이들이 먹을 것을 좀 더 가져와줬으면 하는데.”
“알겠습니다.”
인사하며 그녀가 돌아서는데, 어쩐지 자세가 불편해 보였다.
‘허리를 너무 꽉 조인 것 같아.’
이곳 자선 행사의 시종들은 옷을 통일해 입었는데, 자세히 보니 여자들 복장이 유독 불편해 보였다.
신고 있는 구두도 너무 높았는지 휘청거리는 시종도 간간이 보였다.
‘저렇게 바쁘게 뛰어다니는데, 신발은 좀 편한 걸 신겨주지.’
그렇게 생각하며 쿠키를 냠냠하던 나는 우뚝 입을 멈추며 주위를 힐끔거렸다. 그러자 클로비스가 물었다.
“왜 그러니, 영애?”
“저, 화장실을 좀…….”
하필이면 이럴 때……!
부끄러움에 볼을 붉히자 같이 있던 부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다녀오너라.”
“죄송합니다…….”
나는 빠르게 인사하며 자리를 빠져나왔다.
저택 내의 화장실로 들어가는데, 살짝 열린 문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의 목소리였다.
‘뭐지?’
빼꼼 고개를 내민 나는 때마침 밖으로 나오던 아이와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아, 죄송합-”
나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 했다.
눈앞에 있는 건-
“……언니?”
“베티?”
세인트 고아원에서 나를 유독 잘 따랐던, 베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