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36)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36화(136/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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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가 시작됐다.
각 나라의 특산품과 전설에 관련된 귀중품을 파는 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치솟았다.
게다가 형식적이긴 하지만, 경매로 인한 수익은 고아원에 쓰인다는 명목이 있었으니.
사람들은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행사를 즐길 수 있었다.
모두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으나, 데미안은 행사가 시작되어도 오지 않는 엘리 때문에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클로비스는 그런 데미안을 힐끔거리다, 저편에서 다가오는 인영에 눈길을 주었다.
엘리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미안, 많이 늦었지? 죄송합니다, 클로비스 님.”
“늦어서 걱정했구나. 길이라도 잃은 거니?”
“친구들을 만나고 왔어요.”
“친구들?”
“네.”
엘리가 활짝 웃을 때였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성공적으로 경매가 끝났다는 소리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단상 위로 향했다.
행사의 주최자인 마르시프 백작이 인자하게 웃었다.
“뜨거운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자리해 주신 분들 덕분에, 이런 행사도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제 옆에 선 록시를 눈짓했다.
뒤늦은 술기운에 어리벙벙하게 있던 록시는 흠칫 몸을 떨고서 다시 정신을 차렸다.
“예…… 와, 와 주셔서 감사합, 읍…….”
갑작스러운 토기에 록시가 입을 틀어막았다.
몇몇 사람들이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하하. 요 며칠 새 행사 준비로 정신이 없었나 봅니다.”
마르시프 백작이 그럴듯한 변명을 내뱉으며 록시의 등을 토닥였다.
“넌 일단 물러나 있거라.”
그러곤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 아버지.”
“우선 내려가 있어. 다른 분들이 오해하시잖니.”
벌게진 얼굴로 구역질이나 하느니, 차라리 빠져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 저는-”
“어서. 시간이 없구나.”
마르시프 백작이 다정히 웃었다. 입술을 꾹 깨물던 록시는 하는 수 없이 단상 밑으로 내려가야 했다.
‘젠장.’
사람들 앞에 제가 마르시프의 후계자라는 것을 알릴 기회였는데.
평소라면 겨우 이 정도로 취하는 일은 없을 터였다.
‘이게 다 그 계집 때문이야.’
씩씩거리던 그가 눈앞에 보이는 술을 집어 들었다.
독한 술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며 속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그래도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테이블을 더듬거리던 그는 어느새 술을 다 마셨다는 것을 깨닫곤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그가 자주 찾던 독주가 있었다.
‘미리미리 준비 좀 해둘 것이지. 시종들은 대체 뭘 하는 거야?’
신경질적으로 입술을 잘근거리던 그가 몸을 돌리려 할 때였다.
“아……!”
“뭐야?”
하필 이쪽을 향해 다가오던 시종이 그와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쨍그랑!
들고 이동하던 잔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앞을 보고 다닐 것이지…….”
쯧, 혀를 차던 록시가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는 것을 알고 뒤늦게 시종을 부축했다.
“눈 뜨고 다니자, 어?”
살벌한 말을 시종의 귓가에 속삭인 그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리트가 시종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아…… 가, 감사합니다.”
시종이 휘청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아픈 듯 연신 표정이 좋지 못 했다. 시선을 내리자 높은 굽의 하이힐이 보였다.
‘이렇게 사람들 많은 곳에서 굽 높은 구두를 신기다니.’
인상을 찌푸리던 제리트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부축해드리겠습니다.”
“괘, 괜찮습니다. 이미 결례를 저질렀는 걸요.”
“제 마음이 편치 않은 탓입니다. 부디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중한 표현에 시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리트가 시종과 함께 자리를 비우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록시가 이죽거렸다.
“하여튼 착한 척은.”
쯧쯧 혀를 차고 있을 때,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을 눈치챈 백작이 백작 부인에게 눈짓했다.
아이들을 데려오라는 뜻이었다.
부인이 아이들을 대기해둔 공간으로 갔다. 미리 옷을 다 입혀놨으니, 데리고 나오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아이들의 옷차림이 턱없이 헐렁해져 있었다.
부인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설마 내의를 벗은 거니? 입고 있으라고 했잖아!”
“하지만…….”
부인의 추궁에 아이들이 몸을 움츠렸다.
“안 되겠어. 거기, 나 좀 도와서 아이들 옷 좀 입혀. 시간 없으니 빨리!”
시종이 그녀를 도와 꾸역꾸역 옷을 입혔다.
처음보단 조금 흐트러져 있었지만, 이 정도면 괜찮을 듯했다.
한숨을 내쉰 그녀가 조금 헝클어진 아이들의 머리를 대충 정리해 주며 문을 나섰다.
단상 위로 올라가기 전, 그녀가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하라고 말했지?”
“활짝 웃으라고…….”
“그래, 그거야. 잘 기억하고 있으렴.”
그녀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단상 위의 백작을 바라보았다. 백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좌중을 향해 말했다.
“이번 자선 행사에 오신 분들께 저희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마르시프의 이름으로 직접 후원하는 아이들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마르시프 백작부인이 아이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아이들은, 마치 천사가 내려온 것 같았다.
사람들이 흐뭇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역시 호감을 사는 데엔 아이들만 한 게 없지.’
백작이 속으로 자신에게 떨어질 이익을 계산하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 다른 부인들과 함께 있는 엘리가 보였다. 엘리도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가 비릿한 미소를 억지로 참아냈다.
‘역시나 그럼 그렇지.’
사랑받았던 기억은 잊을 수 없는 법.
이럴 줄 알고 뒷조사를 해, 유독 친하게 지냈다던 아이를 후원했다.
눈빛을 보아하니, 베티라는 아이를 데려온 건 옳은 선택인 듯했다.
마르시프 백작이 아이들과 함께 인사를 마쳤다.
쏟아지는 박수 속에서, 백작이 은밀하게 부인에게 속삭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가 있어. 알아서 제 발로 찾아올 게 분명하니, 어디 가지 못하게 붙잡아두고.”
“알았어요.”
이야기를 끝낸 백작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후원하는 아이들이 어쩜 저리도 곱고 귀여울까요.”
“다 백작님의 사랑 덕분이죠.”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겠어요.”
하하호호 가식적인 말들을 늘어놓던 백작이 한쪽에서 술을 마시는 록시를 힐끔거렸다.
꽤나 기분이 상한 듯, 연신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쯧. 저래선 인사도 못 시키겠군.’
다시 표정을 푼 그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꾸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 모습에 록시가 이를 갈았다.
‘왜 나를 부르지 않으시는 거지?’
이런 자리에서는 차기 가주가 될 아들을 소개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시선만 주고 다시 돌아서다니!
록시가 왈칵 인상을 썼다. 고조되는 감정 때문에 술기운이 더욱 강해 졌다.
‘그 계집을 마주치고는 되는 일이 없어!’
씨근덕거리던 록시의 시야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엘리와 아이들이 보였다.
아버지께서 천사라 칭했던 아이들이었다.
‘우리의 후원이 아니면 다 굶어 죽을 아이들인데, 천사는 무슨.’
술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정작 가문의 차기 가주가 될 사람은 혼자 남겨졌는데, 저 아이들만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술잔을 아무렇게나 내려놓은 록시가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사이 그의 어머니, 마르시프 백작 부인은 엘리와 함께 있던 대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클로비스 님.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훌륭한 자리군요. 저택이 무척 아름다워요.”
“과찬이십니다.”
호호 웃으며 이야기하는 동안, 엘리는 자신이 가져온 음식을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자.”
아이들은 음식을 보며 연신 침을 꼴딱이고 있었다.
“정말, 먹어도 돼요?”
“당연하지. 얼른 먹어.”
엘리가 다정히 웃자, 마음을 놓은 아이들이 순식간에 음식을 먹어 치웠다.
“어, 어머, 얘들이…….”
백작 부인이 당황한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봤다.
“이렇게 교양 없이 구는 아이들이 아닌데…… 호호.”
어색한 웃음에 클로비스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 식성이 좋군요.”
“워, 워낙 잘 먹는 아이들인 건 알고 있었지만……. 호호. 얘들아, 예절을 지켜야지.”
“그래, 얘들아. 체할지도 모르니까 천천히 먹자. 저기도 엄청 많아.”
엘리가 거들자 그제야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시름 덜었다는 생각에 백작부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엄마였다고 편을 들어주는구나.’
그녀가 흐뭇하게 웃을 때였다.
허겁지겁 먹던 한 아이가, 갑자기 인상을 찡그리며 배를 감쌌다.
“왜 그래?”
“배가 아파요.”
아이가 울상을 지었다. 갑작스러운 통증 호소에 백작 부인이 당황할 때였다.
“급하게 먹으니 그렇지.”
빈정 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록시가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무 급하게 먹으면 원래 배가 아픈 법이란다.”
“로, 록시.”
당황한 백작 부인은 아들이 취했다는 것을 깨닫곤 남몰래 붙잡았다. 그러곤 작게 속삭였다.
“그만하렴. 보는 눈이 많잖니.”
“어머니까지 왜 그러세요? 제가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록시.”
이쯤 되니 오기가 생긴 록시가 아이들을 향해 웃었다.
“천천히 먹으렴. 엘리가 말했듯이, 음식은 저기도 많이 있거든.”
언뜻 들으면 상냥해 보이는 말투였다. 록시를 붙잡던 백작 부인의 손이 느슨해졌다.
“들었지? 오라버니 말씀대로 저기도 음식이 많이 있어.”
때마침 엘리가 옆에서 그를 거들었다.
‘이 계집이 웬일로?’
록시의 눈이 가늘어질 때였다.
엘리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베티, 방금 네가 느낀 건 배가 아픈 게 아니라 고파서 그런 거야.”
“고픈 거?”
“응. 너무 굶어서 배가 고프면, 도리어 아프게 느껴진대.”
엘리가 록시를 올려다보았다.
“예전에 오라버니께서 나한테 그렇게 말씀하셨거든. 내가 배가 아픈 건, 너무 굶어서 그런 거라고.”
“아아, 그래서 그런 거구나!”
“굶겼다고?”
엘리의 말에 대부인들의 경멸스러운 시선이 록시에게 향했다.
록시가 딸꾹! 하고 딸꾹질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