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38)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38화(138/241)
그 누구도 쉬이 대답하지 못 했다.
“자선 행사라더니.”
그때, 저벅저벅 걸어오는 소리와 함께 낮은 저음이 울려 퍼졌다.
슈에츠 공작이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네 사람을 훑었다.
“술에 취하질 않나, 이 더운 날씨에 옷을 껴입히질 않나, 다른 하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니.”
“…….”
“게다가 다른 하나는-”
“거짓말쟁이죠.”
엘리가 공작의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공작이 픽 웃으며 엘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옳은 명명이구나.”
엘리가 배시시 웃었다.
“행사는 끝난 것 같으니, 이제 그만 가자꾸나.”
“벌써요? 아직 아이들이랑 이야기도 제대로 못 했는데…….”
엘리가 시무룩하게 시선을 늘어뜨리자 제리트가 말했다.
“같이 공작성에 데려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좋은 생각이군.”
“정말 그래도 돼요?”
엘리가 활짝 웃자 공작이 픽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어차피 이곳에 있어 봤자, 하등 도움도 되지 않을 테니.”
공작의 시린 적안이 마르시프 백작 일가에게 닿았다.
그러다 발등에 묻은 먼지만도 못하다는 듯 냉정히 고개를 돌렸다.
“언니, 어디 가……?”
함께 있던 아이들이 울상을 지으며 엘리를 바라보았다.
“얘들아, 언니랑 놀러 가지 않을래? 눈도 엄-청 많이 쌓여 있어서 눈싸움도 실컷 할 수 있어!”
“그런 곳이 있어?”
“응. 언니가 자주 놀러 가는 곳이야.”
엘리가 과장된 손짓을 하며 말하자 긴장이 풀린 듯 아이들이 배시시 웃었다.
“언니, 거기서 노느라 우리 보러도 안 온 거지!”
“아, 들켰네.”
“너무해-!”
베티가 투정 부리며 엘리에게 포옥 안겼다.
엘리가 웃으며 베티의 등을 쓰다듬다 뒤편의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같이 안 갈래?”
“……정말 여기보다 시원해?”
“응. 두꺼운 옷은 추운 북부에서만 입는 거니까.”
엘리가 마르시프 백작 일가를 힐끔거리다 빙긋 웃었다.
“오히려 시원할 거야.”
“그럼 갈래.”
“나도!”
아이들이 앞다퉈 외쳤다.
볼이 발그레한 설렘으로 물들어있었다.
일부러 옷을 껴입혔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래, 언니, 오빠랑 같이 가자.”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엘리를 따랐다.
멀리서 저희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저씨들은 무서웠지만, 엘리와 함께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멀어지는 그들을 보며, 여태껏 침묵하던 귀족들이 수군거렸다.
“그 유명한 살롱이 아만타 영식의 소유라니! 사업 수단이 대단하시네요.”
“워낙 매너가 좋기로 유명하시잖아요. 뒤늦게 도착하신 것도, 넘어질 뻔한 시종을 부축해 주시느라 늦은 거던데.”
“어머나, 정말 멋지신 분이시네요.”
“듣기로, 또 다른 사업을 추진하신다던데.”
“정말요? 어떤 사업인데요? 저희도 꼭 함께하고 싶은데.”
이익을 찾아 눈을 빛내던 귀족들이 파르르 떠는 마르시프 백작 일가를 확인하곤 표정을 굳혔다.
“크흠. 남은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하시죠.”
“예, 장소가 썩 좋지 못하군요.”
“같은 생각입니다.”
귀족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마르시프 백작이 야심차게 준비했던 자선 행사는 본격적인 순서가 진행되기도 전에 마무리되고 있었다.
엘리는 백작 일가에게 말을 더 붙이는 대신 철저히 무시하며 아이들을 챙겼다.
때론 조용한 무시가 피를 보는 것보다 더욱 비참한 복수가 되기도 하는 법.
“부인, 저희도 이만 가시지요.”
그때, 엘리와 함께 있던 대부인중 하나가 클로비스에게 말했다.
그녀는 그런 멀어지는 엘리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 * *
아이들과 함께 공작성으로 온 우리는 재밌는 눈싸움을 하며 놀았다.
배가 터질 만큼 맛있는 것도 잔뜩 먹고 나서야 헤어질 때가 되었다.
“언니, 우리 이제 가?”
“누나는? 누나는 계속 여기 있어?”
나는 그 물음에 빙긋 웃었다.
“언니 집은 여기서 아-주 멀리 있어. 너희들이랑은 방향이 달라서 같은 마차는 타기 어려울 것 같아.”
“으응, 아쉬운데…….”
“나중에 또 놀자.”
“알았어! 하는 수 없지!”
살살 달래주자 금세 수긍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배웅을 마친 나는 그대로 녹초가 되어 쓰러졌다.
“괜찮아, 엘리?”
데미안이 울상을 지으며 내 어깨를 통통 때려주었다.
같이 놀았는데, 나만 이 꼴인 게 조금 억울하긴 했다.
‘쉬지 않고 뛰논 덕분에 비록…… 이 몸은 불살랐지만……그래도 이득이 있을 거야.
후후후…… 나는 찌르르한 근육통을 느끼며 사악하게 웃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역시나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발을 흔들고 있었다.
아주 중요한 손님이 공작저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바로…….
“만나서 반갑습니다, 클로비스님.”
“오랜만이군, 영애. 갑자기 찾아와서 놀라진 않았니?”
오터스 왕국의 클로비스 루디아였다.
“조금 놀랐지만, 다시 만나게 되어서 기뻐요.”
내가 활짝 웃자 클로비스가 후후 웃었다.
‘사실 다시 만날 거라고 예상은 했지.’
아이들과 함께 마르시프 저택에서 빠져나오기 전, 유심히 나를 바라보던 클로비스의 눈빛을 봤으니까!
클로비스 루디아.
그녀는 대륙의 남쪽에 있는 오터스 왕국의 귀족으로, 대륙의 모든 약초학을 정립해 치료제를 만든 루디아 님의 후손이었다.
시중에 판매되는 치유 포션의 제조 방법도 루디아의 치료 술식에서 따온 것이었다.
‘클로비스가 힘을 빌려준다면 강력한 치유 포션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지.’
흑심을 숨긴 나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여기까진 무슨 일이신가요?”
“글쎄, 영애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고 해야 할까.”
클로비스가 빙긋 웃었다.
플러팅이나 다름없는 말에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나도 그 분야에선 지지 않지.’
“저도 클로비스 님을 다시 뵙고 싶었어요.”
“어머나. 영광이구나. 자아, 그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눠보자꾸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가볍게 티타임을 가졌다.
“그래, 영애는 어떻게 약초학 책을 읽게 되었을까?”
찻잔을 내려놓은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무척이나 어려운 책이라, 영애가 읽기엔 조금 부담스러웠을 텐데.”
그녀의 눈빛이 꼭 나를 떠보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난 미리 준비한 답변을 내놓았다.
“공작성에 오기 전, 고아원에 있을 때 아이들이 자주 아팠어요.”
“…….”
“하지만 치유 포션은 너무 비싸서, 해열제를 먹이는 게 고작이었거든요…….”
“그래서였구나.”
그녀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애는 치유 포션을 만들고 싶은 거니?”
“네. 하지만 치유 포션에 들어가는 약초는 너무 비싼 데다가 무척이나 까다롭다고 들었어요.”
“그래? 하지만 몇몇은 제국에서도 쉽게 키울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어른들이 까다롭다고 하던걸요.”
내 말에 그녀가 멈칫했다. 한 박자 느리게 숨을 내쉰 그녀가 물었다.
“……어른들이 영애에게 그렇게 말했니?”
“네. 약초를 키우면 곤란해진대요. 그게 키우기 힘들다는 뜻 아닌가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언뜻 들으면 약초가 예민해 키우기 어렵다는 말로 들릴 수 있지만, 자세히 들으면 알 수 있다.
내가 말하는 ‘까다롭다, 곤란하다’의 주체가 어른들이라는 것을.
황족은 한때 강한 치유력을 가졌으나 지금은 아니다. 덕분에 신전의 세력이 강해졌다.
그런데 강력한 치유 포션이 나온다면?
‘황족은 물론 신전의 미움을 받게 되겠지.’
만들지 못하는 게 아니라, 만들지 않는 거다.
내 말을 이해했는지 그녀의 눈이 깊어졌다.
하지만 그녀도 섣불리 말을 잇지는 못 했다.
그녀는 타국의 사람이다. 제국의 일에 간섭을 한다면 이는 나라 문제로 번질 수 있다.
‘그래서 생각해 둔 게 있지.’
나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약초를 구하려면 오터스 왕국에 가는 방법밖에 없대요. 하지만 왕국은 너무 멀리 있어요.”
“……맞는 말이지.”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최근, 슈에츠 공작님의 가신이신 제리트 아만타 님께서 새로운 이동 수단을 만든다던데.”
“네! 맞아요!”
나는 활짝 웃었다.
원하는 대로 대화 주제를 이끌어가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영애가 자선 행사 때 나를 찾아온 건, 이 때문이겠구나. 이동수단을 통해 제국과 우리 오터스 왕국을 잇기 위해서.”
그런데 이어진 그녀의 말에 나는 흡, 하고 숨을 들이켜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