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4)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4화(14/241)
“아이가 깨어나면 날 부르거라.”
“……예?”
예상치 못한 말에 엘리가 입만 벙긋거렸다.
“무슨 일 있으면 이 아저씨한테 이야기하고.”
공작은 그런 엘리를 뒤로한 채 방을 나갔다.
“아, 아저씨…….”
공작에게 지목당한 안테는 다시 들어도 생경한 호칭에 한숨을 내쉬었다.
“말씀대로입니다. 문 앞에 있을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제게 말씀해 주세요.”
그러면서도 엘리에게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주군처럼 아이를 울리는 건 꼴불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엘리는 문이 닫힌 후에도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 * *
선생들은 입양 관련 서류를 가져오기 위해 부리나케 자리를 빠져나갔다.
도망친 것이라고 해야 옳겠지만, 이미 고아원 밖은 공작성의 정예 기사단인 검은 사자들로 가득했다. 도망칠 구석은 없을 것이다.
“좀 조심해서 들어가시지…….”
안테는 문 앞에 기대어 선 에르하르트를 힐끔거리며 투덜거렸다. 그는 삐딱한 자세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무엇을.”
무심한 대꾸에 안테가 답답하다는 듯 대답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이들은 공작님을 귀신보다 무서워 한다고요.”
“…….”
“그런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이셨으니, 공자님도 순순히 따라가지는 않으실 겁니다. 귀신의 집에 끌려가는 걸로 생각하지나 않으면 다행이게요.”
주군은 아이를 찾으면 곧장 양자로 들일 생각이었다.
가문을 탐내는 이들 앞에 홀로서기에, 아이는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기가 막힌 타이밍 때문에 험악한 인상만 안겨주고 말았다.
안 그래도 험악한 인상인데 무서운 모습까지 보였으니, 아이가 따라가지 않겠다고 할 가능성도 있었다.
“……옆에 있던 아이 말이다.”
그때 에르하르트가 생각에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옆의 아이라면, 그 소녀 말씀이십니까?”
“그 애는 내가 여기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더군.”
“예? 공작님을요?”
안테가 말도 안 된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공작님은 이 영지에 발을 디딘 게 처음이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욱 의문이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아이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저토록 작은 아이가 어떻게.
물론 이야기야 엿들을 수 있다지만.
원장이 때마침 숨긴 한 명의 아이가 클라이더의 아들이며, 때마침 소녀가 마주친 사람이 아이를 찾던 사람이란 우연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지.’
에르하르트는 가능성을 하나씩 되짚었다.
생각을 역으로 바꿔보면 단순했다.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제가 이곳에 온다는 것도, 클라이더의 아들이 저 아이라는 것도.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그조차도 10년 넘게 찾아 헤맸던 아이다.
저 작은 소녀는 어떻게 클라이더의 아이를 알아차렸을까.
에르하르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뭐가 됐든 간에, 클라이더의 아들에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건 사실이었다.
소년은 열에 들뜬 와중에도 소녀의 앞을 막아섰다.
‘보호하려는 듯한 태도.’
그런 눈빛을 가진 자들은 쉽게 이길 수 없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저 또한 그런 눈빛을 가졌던 적이 있었으므로.
팔짱을 낀 그가 제 팔을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이걸 어쩐다.”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설마…… 죽이시려는 건 아니죠? 그렇게 어린아이를.”
“…….”
“아, 아니죠?”
불안해진 안테가 조심스럽게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안테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주군께서 인성 파탄자라고 해도 그렇게 막무가내는 아니실거야.’
그는 마음속 불안함을 애써 지워냈다.
그때, 에르하르트가 천천히 벽에 기댄 몸을 일으켰다.
“이야기를 해봐야겠지. 그래야 판단을 내릴 수 있을 테니.”
“이야기라면……?”
안테의 물음에 에르하르트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내 생각이 틀렸는지 아닌지를.”
* * *
마나석의 마나로 기력을 회복한 것인지, 데미안의 안색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게 바로 마나의 힘이구나, 하며 놀란 것도 잠시.
또 다른 산이 엘리의 눈앞에 있었다.
거대한 산을 닮은 남자. 데미안의 양아버지가 될 에르하르트 슈에츠 공작이었다.
‘왜 나를 저렇게 빤히 보는 거지.’
엘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이는 잠들었나?”
에르하르트가 살얼음 같던 정적을 깨며 물었다.
“네. 방금 막 잠들었어요.”
“그렇군.”
그리고 또다시 정적.
이쯤 되니 엘리는 조금 당황스러워졌다. 뚫어져라 자신을 보는 눈빛이 매서웠다.
엘리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릴 때였다.
“내가 아이를 찾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굴던데. 사실이냐?”
“……!”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질문에 엘리의 얼굴이 굳었다.
‘이걸 묻는 이유는 무엇일까.’
순간, 원작 소설의 수순이 떠올랐다. 데미안을 괴롭힌 대가로 길거리를 전전하며 살아야 했던 ‘엘리’의 삶이.
‘나를 시험하려는 거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혼란스러운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대답을 잘해야 해.’
하지만 눈에 보이는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생각을 마친 엘리가 마침내 입을 뗐다.
“……네. 알고 있었어요.”
“어떻게 알았지?”
“원장 선생님께서 그러셨거든요. 흑발에 벽안을 가진 아이가 이 곳에 있으니, 슈에츠 공작에게 은근슬쩍 말을 흘리라고요.”
오호. 안테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하고 눈치가 빠른 아이였다. 그러나 에르하르트는 흔들림 없이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아이가 다섯 명이라는 것도 일부러 알려준 것이 되겠군.”
“그건…….”
엘리는 잠시 멈칫했다.
일부러 접근했다는 것을 알면, 저를 의심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공작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어설픈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 공작이 간파하지 못할 리 없었다.
“네. 맞아요.”
순순한 긍정에 그가 느슨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다 알고 있었음에도 나를 곧장 아이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지 않은 건 무슨 이유지?”
“공작님께서 다 아시길 바랐으니까요. 이 고아원이 어떤 꼴로 돌아가는지를.”
일순간 공작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엘리는 굴하지 않고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눈치를 채셨겠지만 선생님들은 저희를 보살피지 않아요. 모든 일은 저희가 하고, 밤에는 아이들을 두고 카지노에 가서 도박과 유흥을 즐기죠.”
“…….”
“공작님께서 이곳의 상황을 직접 봐주시길 바랐어요.”
아이는 그렇게 말하곤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은 모두 끝났다는 듯이.
안테는 조금 감탄했다.
참으로 똑똑한 아이였다.
상황을 제게 유리한 쪽으로 이끄는 능력이 제법 능숙했다.
공작님을 앞에 두고, 올곧은 말을 하는 건 대단하지만…….
‘바꿔 말하면 공작님을 장기짝으로 이용했다는 뜻도 된다.’
안테는 초조한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공작님을 막을 만한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그가 억지로 머리를 굴릴 때였다.
“이름.”
침묵을 지키던 공작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네 이름은 무엇이지?”
예상치 못한 물음에 엘리는 눈을 깜빡이다 말했다.
“……엘리입니다.”
“이 아이는.”
“데미안. 데미안이에요.”
그렇군. 에르하르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안테를 바라보았다.
“원장은 어디 있지?”
“예? 아…… 다른 선생들과 함께 원장실에 있는 걸로 압니다.”
“그들을 불러와.”
공작의 명령에 잠시 갸웃하던 안테가 밖으로 나갔다.
원장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어떤 꼴을 겪었는지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었다.
“고, 공작님, 어떤 일로 저를…….”
그녀가 더듬거리며 앞을 보았다.
공작의 앞에 누워 있는 데미안과 옆에 앉은 엘리가 보였다. 순간, 원장의 얼굴이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렸다.
‘설마 모든 걸 고자질한 건 아니겠지?’
이미 교사들에게 데미안이 클라이더 공작의 아들이란 사실을 전해 들은 상태였다.
‘만약 모든 걸 고했다면, 가만두지 않을 테다!’
그녀가 이를 갈며 엘리를 노려볼 때였다.
“아이를 입양한다.”
공작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에르하르트의 손가락이 데미안의 옆에 앉은 엘리를 가리켰다.
“옆에 있는 저 아이. 저 아이도 함께 입양하지.”
“그게 무슨…….”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원장이 더듬거리자 안테가 재빨리 물었다.
“양녀로 들이실 겁니까?”
“아니. 며느리로 들일 거다.”
“예?!”
그 순간, 방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입을 떡 벌렸다.
그것은 엘리도 마찬가지였다.
‘며느리? 며느리라고?’
데미안과 이어져야 할 사람은 따로 있었다. 제가 그 자리를 빼앗을 순 없었다.
하지만 공작의 표정을 보니 이미 뜻이 확고해 보였다.
엘리는 시선을 내려 깊게 잠든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지금으로부터 4년 후, 열다섯 살의 데미안은 슈에츠 공작과 함께 전쟁에 나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주인공 아샤벨을 만난다.
저의 어쭙잖은 위로보다 더 큰 안식을 줄 수 있는, 완벽한 여주인공을.
엘리는 두 사람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원한 건 데미안이 무사히 공작가에 입양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엘리는 떨리는 시선을 움직였다. 데미안이 그녀의 손을 꼭 맞잡고 있었다.
엘리는 단단히 맞잡은 손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용기 내 제게 마음을 열어주고, 저를 필요로 해준 순하고 착한 아이에게.
짧은 시간이지만 벌써 정이 들어버린 듯했다.
“엘리는, 내가 싫어?”
“가지 마, 엘리…….”
울먹이는 목소리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엘리의 눈동자가 짧게 흔들렸다.
“안 됩니다, 공작님!”
그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아연실색한 분위기 사이로 끼어들었다.
원장이 핏발 선 눈으로 엘리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저 천박한 계집을 데려가시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