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41)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41화(141/241)
***
그날 밤, 황후 궁.
카르티아가 입매를 파르르 떨었다.
제리트가 루버나일 리번스와 함께 물자의 운송도 도울 수 있는 이동 수단을 완성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 앞에 불려 온 마탑의 마법사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서있었다.
달빛 아래, 헝클어진 머리를 한 황후의 모습은 마치 악마 같았다.
“……우리 쪽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그때, 한동안 침묵하던 그녀가 물었다.
서늘한 칼날 같은 목소리에 마른침을 꿀꺽 삼킨 마법사가 겨우 입술을 달싹였다.
“그, 그것이…….”
“공표한 날짜는 일주일 후. 그에 따른 준비는 다 끝났겠지.”
“……폐하.”
“끝나지 않았냐고 물었다.”
“……죄송합니다.”
마법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휙- 하고 무언가가 날아왔다.
쨍그랑!
마법사의 뺨을 스치고 날아간 찻잔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자칫하다간 얼굴에 맞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저를 노려보고 있는 황후의 눈빛이었다.
살의가 가득한 얼굴. 그는 저도 모르게 흠칫 물러났다.
“기간은 충분했을 텐데, 왜 완성하지 못했다는 거야!”
고함과도 같은 목소리에 그가 헐떡이며 대답했다.
“완, 완성은 되었습니다! 하, 하지만 휴식 기간도 없이 계속 인원을 돌린 터라, 마도구 기술자들이 많이 지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어…… 시범 운행 도중 자꾸 어긋나서…….”
수면 부족과 과로로 인해 기술자들의 업무 효율이 떨어졌고, 이는 곧 일정 지연으로 이어졌다.
더듬거리며 말하고 있지만 주제는 명확했다.
“결론은.”
그녀가 섬뜩한 눈빛을 번뜩이며 물었다. 넘실거리는 분노가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그가 자백하는 죄인의 심정으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전체적으로 다시 상태를 체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마법사가 눈을 질끈 감았다.
방금 전, 찻잔이 날아왔듯이 이번엔 정말 칼날이 날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느껴지는 건 없었다. 마법사가 슬그머니 눈을 떴다.
고개를 숙인 채, 그녀가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다.
“폐하……?”
그가 조심스레 물을 때였다.
“하하하…….”
그녀가 천천히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하하하!”
작은 실소로 시작했던 웃음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이럴 줄 알았어!”
고개를 쳐든 그녀가 허공에 대고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레일리! 그 아이가 기어이 모든 걸 망쳐 놓는구나! 모든 걸! 얼굴을 망가뜨리는 게 아니라 목숨줄을 끊었어야 했는데!”
붉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랏빛 눈동자가 번뜩였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그렇지 않았다.
광기에 절어 있는 모습에 마법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살기와는 또 다른 공포였다.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 않고 웃음을 흘렸다. 킥킥거리는 소리가 문 밖까지 울려 퍼졌다.
그 웃음을 듣고 있던 시녀장, 리타가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황제궁이었다.
“폐하.”
“왔군.”
기다렸다는 듯 벤터스가 그녀를 반겼다.
“어떻게 되었나.”
리타가 숙연히 침묵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폐하.”
벤터스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자, 뒤편의 누군가가 말했다.
“신경 안 쓰게 생겼소? 슈에츠 공작을 견제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건만. 모두 실패하지 않았소!”
그가 분노하며 소리쳤다.
“……이러다 정말 신탁대로 될까 봐 두렵군.”
“그럼 남은 방법은 하나지요.”
자신만만한 어조에 벤터스가 그를 바라보았다.
“라미트라 대신관, 그대에게 무슨 생각이 있단 말인가?”
“예.”
그라페스 대신전의 대신관, 라미트라가 빙그레 웃었다.
* * *
기차 발표회로부터 일주일 후.
나는 데미안과 함께 공작성 내의 정원을 산책하는 중이었다.
내 얼굴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흐뭇한 웃음으로 가득했다.
‘그야, 황후의 사업이 시작도 전에 쫄딱 망했으니까!’
이제 당분간 그녀도 조용할 거다. 그녀에게 투자한 고위 귀족들을 어떻게든 설득해야 할 테니까.
그럼 그동안 우리는 기차 사업으로 승승장구하면 되는 거지.
플랫폼 유지비와 기차 권한 양도세만 챙겨도 주머니는 두둑해진다.
더불어 기차를 만들 때 우리를 도와줬던 고아원 아이들이 각 지역의 기차역 담당을 맡았다.
우리 쪽 사람들이 제국에 포진해 있다는 뜻이었다.
‘아이고, 꼬셔라.’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게 이런 거구나.
킥킥거리며 웃을 때, 함께 손을 잡고 걷던 데미안이 물었다.
“엘리, 좋은 일 있어?”
“응, 좋은 일이 너무 많아. 제리트 오라버니의 사업부터 시작해서…… 어?”
설명하려던 나는 뭔가 달라졌음을 깨닫고 고개를 갸웃했다.
“데미안, 너 또 키 컸어?”
“응?”
“아니, 뭔가 눈높이가…… 저번보다도 높아진 것 같은데.”
“…….”
“이리 와봐.”
나는 데미안을 우뚝 선 나무 앞에 세웠다.
늘 가지고 다니는 옷핀을 꺼내 가까이 다가가자 데미안의 몸이 흠칫 굳는 게 느껴졌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자, 잠깐만. 너무 가깝…….”
“어허.”
쓰읍, 하는 소리를 내자 데미안이 그제야 얌전해졌다.
한 손을 나무에 댄 채 쭈욱, 옷핀으로 일자를 표시한 나는 데미안의 얼굴을 품에 파묻게 한 후, 곧장 자국을 확인했다.
진짜 키 컸네.
자국이 내 시야보다 조금, 더 위였다.
‘나는 아직도 이 정도인데.’
억울함에 울상을 지으며 서 있을 때였다.
문득 뜨거운 열기가 느껴져 시선을 내렸다.
빨갛게 달아오른 데미안의 귀가 보였다.
“아, 답답했지, 미안.”
나는 얼른 데미안을 품 속에서 놔주었다.
데미안이 잠깐 휘청이다 얼른 나무에서 떨어졌다.
“데미안, 나도 해 줘.”
“응?”
“키, 키 재 줘. 얼른.”
나무에 등을 댄 채 손을 까딱이자 데미안이 머뭇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손만 쭉- 뻗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표시하면 정확히 못 재잖아. 더 가까이 와.”
“하, 하지만…….”
“그럼 내가 해줄까.”
데미안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공작님!”
언제 온 건지, 공작이 고개를 기울인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키라도 재고 있었나?”
그러며 나와 데미안의 머리를 꾹 눌렀다.
“흐음. 내 눈엔 여전히 밤톨만 한데.”
“고, 공작님이 너무 크신 거예요.”
내가 지지 않고 맞받아치자 공작이 “어쭈”하며 내 뺨을 쿡 찔렀다.
“짐마차처럼 부릴 땐 언제고.”
“그건…….”
할 말이 없어 입만 오물거리자 공작이 픽 웃었다.
“키는 계속 자랄 거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
“그럴까요?”
“그래. 원래 애들은 순식간에 성장하는 법이지. 언젠간 내 키를 따라잡을지도 모르겠군.”
그러다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매달며 말했다.
“물론 날 따라오려면 멀었지만.”
“데미안은 공작님만큼 클 거예요!”
원작에서 그랬으니까.
데미안은 공작과 견주어도 지지 않을 정도로 자란다고.
내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하자 공작이 나른한 숨을 내쉬었다.
“내 편은 하나도 없군.”
“헤헤.”
“웃기는.”
공작이 피식 웃으며 턱을 까딱였다.
“키는 내가 재어주마. 데미안이 했다간 기절할지도 모르니까.”
의미 모를 뒷말에 고개를 갸웃할 때, 공작이 얼른 안 서고 뭐하냐는 얼굴로 날 쳐다봤다.
얌전히 나무에 등을 대자 공작이 정수리 위에 표시를 했다.
얼른 떨어져 자국을 확인했다.
데미안과 그렇게 심하게 차이가 나진 않았다.
아주, 아주 미세한 차이였다.
‘가능성이 있다!’
또래보다 작은 체구가 조금 신경 쓰였던 지라, 키가 컸다는 게 무척이나 기뻤다.
눈을 빛내며 좋아하고 있을 때, 공작과 눈이 마주쳤다.
‘또 이걸로 잔뜩 놀리겠지.’
그 장난스러운 웃음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나는 몸을 움츠렸다.
“그렇게 기쁘냐.”
내 예상대로 공작은 웃었다.
그런데 평상시와 같은 웃음이 아니 었다.
입매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고 덩달아 눈가가 휘어지는, 더없이 편안해 보이는 미소.
이상한 일이었다. 공작의 미소를 봤으니, 기뻐야 할 텐데. 마음이 꾹 조여 오는 것 같았다.
내가 공작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공작이 말했다.
“너희의 성장을 눈에 잘 담아놔야겠구나. 지금 이 시간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영원히.
나는 조용히 그 단어를 입안에서 굴리다, 우리의 키를 새긴 나무를 바라보았다.
이 자국은 점점 늘어나겠지.
그렇게 우리의 시간이 어느 정도 쌓여갈 때쯤이면 공작님과 데미안은 전쟁에 나갈 것이다.
‘돌아올 땐 여주인공과 함께…….’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을 주었다. 오래전부터 각오한 사실인데도, 유달리 오늘따라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 아니야.’
입술을 깨물던 난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어. 우리가 가족인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까.
‘그러니 지금 이 시간을, 눈과 마음에 담아두자.’
생각을 마친 나는 공작에게 손을 뻗었다.
“안아주세요.”
갑작스러운 부탁에 공작이 멈칫하며 물었다.
“……갑자기 어리광이 늘어나기라도 한 것이냐.”
“얼른요.”
재촉하며 손을 까딱이자 공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튼, 제멋대로구나.”
공작이 툴툴거리면서도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너도 안아줄까.”
공작의 물음에 데미안은 고개를 저었다.
“내 아들은 너무나 까칠해. 역시 딸이 최고지.”
“…….”
“부러우면 너도 빨리 커라.”
공작이 장난스럽게 말하며 내 등을 토닥였고, 나는 그런 공작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내가 사랑한 지금의 평화를 영원히 새겨두기 위해서.
햇빛이 한가득 내리쬐는, 눈이 꽃잎처럼 흩날리던 열세 살의 계절.
그 잊지 못할 기억들을 마음에 담은 채, 시간은 흘러갔다.
그렇게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