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42)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42화(142/241)
* * *
4년 후, 서부 륀켈트 후작령.
중앙 광장은 북적이는 사람들로 시끄러웠다.
제뮈엘 살롱 4호점이 새로 개업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전에 없던 운영 방식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살롱은 예약하는 것만으로도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런 살롱이 새로운 분점을 냈으니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은 당연했다.
“아유, 힘들어!”
그 넘치는 성원에 당장 죽어나는 건 테리드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본점을 훌륭하게 운영한 테리드는 4호점의 점장이 되었다.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었지만…….
‘상상한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어!’
밀려드는 사람들을 겨우 달래던 테리드가 한 아름 짐을 가지고 다가오는 일꾼들을 발견했다.
“아, 이쪽이에요!”
그녀의 부름에 일꾼들이 다가왔다.
“죄송해요, 기차 일로도 바쁘실 텐데. 얼른 이쪽으로 옮겨주세요.”
“아닙니다. 늘 고생하십니다.”
테리드의 말에 그들이 인사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살롱을 둘러보고 나오던 제리트가 일꾼들에게 눈짓으로 인사했다.
그들은 4년 전, 기차를 만드는 데에 도움을 주었던 고아원 아이들이었다.
늘어나는 기차 플랫폼 수만큼, 기차를 잘 아는 사람들도 더 필요해졌다.
하지만 각 지역마다 마도구 기술자를 배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하던 도중, 엘리가 한 가지 해결책을 내놨다.
“기차 제작을 도왔던 고아원 아이들과 함께 운송 사업을 꾸리는 건 어때요? 계속 기차에서 일할 수도 있고, 물건을 편히 배달해드릴 수도 있잖아요!”
엘리의 생각은 훌륭했다.
인력난과 구직난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던 테리드가 흐뭇하게 웃었다.
‘정말, 엘리 님의 계획은 어디까지일까.’
테리드의 눈이 존경심으로 반짝일 때였다.
“무슨 생각 해요?”
“당연히 우리 엘리 님 생각…… 엘리 님!”
테리드가 깜짝 놀라며 앞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앞엔 어느새 열일곱 살의 숙녀가 된 엘리가 자신의 하녀들과 함께 서 있었다.
제대로 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해 또래보다 작았던 아이가 어느새 테리드와 눈을 맞출 정도로 자랐다.
게다가 햇빛을 머금은 금빛 머리카락과 맑은 녹안, 또렷한 이목구비만으로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 텐데.
변함없는 사랑스러운 분위기까지 더해져, 엘리는 말 그대로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여인이 되었다.
“엘리 님! 여기까진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제리트의 물음에 엘리가 어깨를으쓱였다.
“4호점 개업일이잖아요. 게다가 테리드 님이 점장이 되신 건데, 당연히 와봐야죠.”
엘리가 밝게 웃자 테리드와 제리트가 “어흑”하며 가슴께를 부여잡았다.
“천사님……. 두 눈이 멀뻔했어요…….”
“또, 또 그런다. 또 제리트 오라버니께 배우신 거죠?”
“엘리 님과 함께할 수 있다면 전 세상의 모든 나쁜 짓이라도 배우겠어요.”
“하여튼 못 말려.”
테리드의 익숙한 주접에 푸스스 웃은 엘리가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에선 샬롯과 플린트가 4호점의 재단사들에게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 엘리 님!”
인기척을 느낀 샬롯이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
“일은 잘 되고 있어요?”
“물론이죠. 개업일부터 시작해, 한 달 뒤까지 예약이 벌써 다 찼는걸요.”
샬롯이 뿌듯해하자 플린트가 말했다.
“샬롯, 우리 예약은 네 달 뒤까지 차있다.”
“응, 조용히 해.”
그녀가 웃으며 살벌한 어조로 말하자 플린트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정말 저희를 보러 오신 거예요?”
“음, 사실 륀켈트 후작님의 연회에 초대받았거든요. 둘러볼 겸, 겸사겸사 온 거예요.”
“어머, 그럼 드레스는요?”
“기차에 함께 실어 와서, 갈아입기만 하면 돼요.”
엘리의 말에 샬롯이 도와드리겠다며 그녀를 이끌었다. 테리드도 함께하고 싶다고 성화여서, 엘리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녀들과 두 직원의 도움 덕분에 모든 세팅을 끝마쳤다.
엘리가 거울 앞에 서자 모두 황홀한 신음을 흘렸다.
“너무 아름다우세요.”
“눈이 멀 것 같아요…….”
“또 그런다, 진짜.”
민망해진 엘리가 작게 핀잔하자 아셀이 “여기는 참 베르가못 향기가 좋네”하며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어머, 향수에 대해 잘 아시나 봐요.”
그러자 테리드가 물었다.
“이번에 저희 살롱에서 출시 예정인 향수랍니다.”
새로운 향수를 만드는 건 제리트가 새로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 중 하나였다.
분점이 늘어난 만큼,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려야 했다.
살롱과 어울리는 것은 역시 향수였다. 하지만 웬만한 이름 있는 조향사들은 각자의 향을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향을 만드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래서 아셀을 함께 데려왔지.’
살면서 아셀보다 후각이 뛰어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지나가던 길에 꽃을 잠시 봤을 뿐인데, “엘리 님께 프리지어 향기가 나요”하고 맞춘 적도 있었으니까.
“혹시 향수에 관심 있으십니까?”
제리트가 눈치 빠르게 아셀을 포섭하기 시작했다.
4년이란 시간 동안, 살롱과 상단을 운영하면서 그는 훌륭한 사업가가 되었다. 필요한 인력을 제 편으로 끌어당기는 데 선수가 되었다는 뜻이다.
“저, 엘리 님?”
불안함을 느낀 아셀이 그녀를 쳐다보자 엘리가 웃으며 말했다.
“아셀, 네 도움이 필요해.”
“어, 어떤 도움이요?”
“남자도 함께 쓸 수 있는 향수를 만들어보려고 하거든. 그러기 위해선 후각이 예민한 사람이 필요해.”
“남자 향수요? 아…….”
되묻던 아셀이 문득 엘리의 머리 위쪽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엘리가 말을 이었다.
“웅, 그런데 남자 향수는 아무래도 취향을 맞추기가 힘들어서…….”
“남자 향수?”
그때, 머리 위로 낮은 저음이 내려앉았다.
깜짝 놀란 엘리가 몸을 돌렸다.
어느새 자신의 키를 훌쩍 넘어버린 열다섯 살의 데미안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데미안은 글자 그대로, 정말 잘 자랐다.
깡말랐던 체격은 웬만한 기사들과 견줘도 지지 않을 정도로 탄탄했으며 선도 굵어져, 제법 남자다운 태가 났다.
가만히 있어도 시선을 받을 텐데, 절세미인이란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외모까지 가졌으니.
엘리가 볼 때마다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데미안!”
“늦어서 미안해, 엘리. 늦지 않게 오려고 했는데, 훈련이 조금 늦게 끝났어.”
데미안이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보좌관이 시간을 잘못 알려줬거든.”
그러며 뒤편을 힐끔거렸다.
“그래서 공작님께선 후작저로 미리 출발하셨고, 나는 따로 왔어.”
한 자 한 자 힘을 줘서 말하자 토미가 흠칫 몸을 떨었다.
‘아니, 내가 뭘 어쨌는데!’
올해로 열일곱 살, 엘리와 함께 성인이 된 토미는 데미안의 보좌관이 되었다.
나이 때문에 고아원을 떠나야 하는 아이들이 생기자, 일부를 슈에츠와 클라이더 가문에서 고용했다.
그중에 한 명이 토미였다.
토미는 어렸을 때부터 눈치가 빨랐고 일처리에 능숙해, 데미안과 잘 어울릴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데미안의 보좌관이 되어 달라는 말에 둘 다 표정을 굳히긴 했지만, 어쨌든 상성은 잘 맞는 듯했다. 투닥거리긴 해도 곧잘 붙어 다녔으니까.
“공자님의 검술 훈련이 너무 늦게 끝난 겁니다. 항상 집중하시면 시간 가는 줄 모르지 않으십니까.”
토미가 억울하다는 투로 말하자 데미안의 얼굴이 더욱 시무룩해졌다.
“괜찮아, 집중하면 그럴 수 있어. 늦지도 않았는데, 뭐.”
엘리가 달래듯 손을 뻗어 데미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데미안이 재빨리 머리를 숙여 쓰다듬기 좋은 자세를 취했다.
‘하여튼 저 여우.’
날이 갈수록 내숭이 늘어가는 듯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휙휙 변하는 태도에 토미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엘리.”
기분 좋은 듯 눈을 감고 손길을 느끼던 데미안이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남자 향수라니.”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데미안이 빙그레 웃었다.
“향수, 필요해?”
더없이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엘리를 제외한 모두가 눈을 질끈 감았다.
슈에츠의 성을 가진 남자들에게, 다른 남자 이야기를 꺼내서는 안 되었다.
특히나 엘리와 관련된 일에서는 더더욱.
이는 그들의 평온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법칙과도 같았다.
‘망했다.’
모두가 덜덜 떨고 있을 때, 엘리가 데미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응, 살롱의 이름을 붙여서 한번 판매해 보려고.”
“살롱?”
“응, 아무래도 남자 향수는 많이 없잖아. 모두가 공용으로 쓸 수 있는 향수면 더 좋지 않을까 싶어서.”
정말 그게 전부라는 듯, 당당한 모습.
그러자 데미안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웃었다.
“그런 거라면 내가 도와줄게.”
“어…… 나야 고맙지만 바쁘지 않겠어?”
“난 괜찮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 일이잖아.
데미안이 싱긋 웃었다.
반짝거리는 미소에 엘리가 “어흑”하며 앓는 소리를 냈다.
‘내 새끼, 어쩜 이렇게 예쁘게 자랐을까.’
엘리가 익숙하게 데미안의 뺨을 주무르려다, 아차 하며 손을 내렸다.
어느 정도 자란 데미안의 뺨은 더 이상 말랑거리지 않았을뿐더러 이제 아이도 아닌데,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마워, 데미안.”
쓰다듬는 것으로 대신하자 데미안이 기분 좋은 듯 눈을 감고 엘리의 손바닥에 뺨을 비볐다.
애교 넘치는 한 마리의 강아지와 같았다.
물론 강아지라고 하기엔 너무…… 거대했지만.
어쨌든 엘리의 눈엔 강아지처럼 보였으니까.
‘다행이다…….’
주인 모르게 거둬진 살기에 모두가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 * *
륀켈트 후작령에서 열리는 연회는 무척이나 성대했다.
성공적인 철도 건설과 투자자 확보로 제국 내 후작의 입지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연회장 안이 사람들로 가득한 이유였다.
데미안이 마차에서 내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슈에츠 공자님……!”
“오늘도 멋있으시네요.”
수줍음 가득한 목소리에 귀가 간지러 울 법도 하건만.
데미안의 시선은 오로지 엘리에게 꽂혀 있었다.
“자, 엘리.”
잡고 내리라는 듯 데미안이 손을 뻗을 때였다.
“오오!”
익숙한 목소리의 감탄사와 함께, 귀족들과 이야기하던 후작이 화색을 띠며 다가왔다.
함께 기차 사업을 추진한 덕분에 매일매일 금고가 불어나고 있었으니, 륀켈트 후작에게 엘리는 그야말로 복덩이였다.
“안녕하세요, 후작님.”
“대녀님께서 너무 늦기에, 혹여 무슨 일은 없는지 걱정했습니다. 자아. 어서 내리시지요.”
엘리가 자연스럽게 그에게 손을 내밀 때였다.
“다른 남자 손은 함부로 잡는 게 아니지.”
익숙한 저음이 후작의 등 뒤로 내려앉았다.
슈에츠 공작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전히 잘생긴 얼굴과 조각 같은 외모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 뜨거운 시선을 느낀 륀켈트 후작이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래도 제가 명색이 대부인데, 에스코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대녀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나라서.”
공작이 빙긋 웃자 후작이 질린 얼굴을 했다.
‘또 저러신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다 싶어, 엘리가 공작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공작보다 먼저 엘리의 손을 잡는 사람이 있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은 저입니다.”
데미안이 단단히 엘리의 손을 붙잡으며 빙긋 웃었다.
두 부자가 서로를 마주했다. 시선 사이에 스파크가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