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44)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44화(144/241)
교황 서거라니.
19년 전, 그러니까 대륙 전쟁 때 내려온 신탁으로 신병을 앓던 교황이 결국 죽었다는 뜻이었다.
바꿔 말하면 신이 차기 교황을 선택했다는 뜻도 되었다.
‘하지만…… 원작에서 이런 내용은 없었는데.’
“……일단 알았어. 알려줘서 고마워.”
영상구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혼란스러움에 주먹을 꽉 쥘 때였다.
“엘리.”
어느새 다가온 데미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데미안, 공작님은? 공작님은 어디 계셔?”
“각 가문의 가주들과 함께 자리를 옮기셨어. 금방 오실 거야.”
“다른 증세는 없으셨고? 평상시랑 똑같으셨어? 다른 건-”
“엘리.”
초조하게 묻자 데미안이 제 팔을 붙잡은 내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쳤다.
“공작님께선 평소와 똑같으셨어. 연회장에 사람들이 많아서, 혼란이 커질까 봐 따로 이야기를 하러 가신 것뿐이야.”
“…….”
“그러니까 우선 진정해.”
낮은 저음에 미친 듯이 뛰던 가슴이 다시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미안, 나도 좀 놀랐나 봐. 너도 이야기 들었어?”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교황이 곧 즉위할 거야. 사람들은 라미트라 대신관이 뒤를 이을 거라 생각하나 봐.”
“하필 이 시기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대륙 남부 쪽 언데드의 급증으로 성기사들이 병력을 요청하는 마당에 교황 서거라니.
‘아니야, 진정하자. 이 상황을 위해 그동안 달려왔잖아.’
천천히 호흡하며 마음을 가다듬을 때였다.
논의가 끝났는지, 각 가문의 가주들이 연회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곤 하나같이 파트너들과 영지로 돌아가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쪽에 있었군.”
“공작님.”
공작이 다가와서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회를 제대로 즐기지 못해 아쉽겠지만, 일단 너희는 공작성으로 돌아가야겠다.”
“공작님께서는요?”
“나는.”
한번 뜸 들인 공작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라페스 대신전으로 간다. 각 가문의 가주가 교황의 서거를 애도해야 해.”
내가 덩달아 굳은 얼굴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공작이 위로했다.
“걱정하지 마. 아무런 일도 없을 테니.”
“…….”
“금방 돌아오마.”
공작이 그렇게 말하며 데미안을 바라봤다. 데미안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멀어지는 공작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난 주먹을 꽉 쥐었다.
“데미안, 우리도 공작성으로 돌아가자.”
“움직여도 괜찮겠어?”
“당연하지.”
난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였다.
지금 여기서 멍하니 혼란스러워할 때가 아니었다.
“우리의 일을 할 차례야.”
* * *
어두운 밤, 그라페스 대신전.
오랜 신병을 앓았던 교황의 죽음으로 빛만이 가득했던 신전은 짙은 우울로 가득했다.
몇몇 신관이 울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라미트라 대신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덮이지 않은 관 속엔 교황이 잠들어 있었다.
“태양과 세계수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짧은 기도를 마친 그가 천천히 관 뚜껑을 덮었다.
각 가문의 가주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 표정을 마주하던 라미트라가 말했다.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
“신께서 새로운 교황을 이 땅에 내려주셨습니다.”
다들 새로운 교황은 라미트라 대신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교황의 대리인이자 강력한 신력을 가진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뒤편으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 라미트라 대신관과 함께 신어를 공부하던 신관, 키엘이었다.
“키엘? 키엘이 새로운 교황이라고?”
“말도 안 돼. 분명 키엘은…….”
함께 있던 신관들도 놀란 듯 웅성 거 였다.
성실하긴 했으나, 그의 신력은 라미트라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조용. 조용히.”
라미트라가 그들의 소란을 짧게 일갈했다.
“신께서 내려주신 새로운 교황이십니다. 저희는 그분의 선택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라미트라의 말에 모두가 신실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는 가운데.
유일하게 숙이지 않은 한 남자가 있었다.
에르하르트 슈에츠 공작이었다.
라미트라와 그의 시선이 맞닿았다. 피의 색을 닮은 적안이 금방이라도 그를 꿰뚫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라미트라는 빙긋 웃을 뿐이었다.
선언이 끝난 후, 각 가문의 가주들이 신전을 빠져나왔다.
“공작님.”
그를 기다리던 안테가 초조한 얼굴로 그를 반겼다.
“괜찮으십니까?”
“별일 없었다.”
그가 짧게 대답하며 마차에 올라타려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달빛 아래에 있는 대신전이 유독 음산해 보였다.
“안테.”
가라앉은 눈빛으로 신전을 바라보던 공작의 부름에 안테가 다가왔다.
“정보원들은 뭐라고 하였지.”
“대륙 남부 쪽, 언데드의 급증에 따라 대신전의 성기사들도 함께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금 특이사항이 있습니다.”
안테의 말에 공작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죽기 직전 언데드들의 행동입니다.”
“언데드들의 행동?”
“예. 언데드는 지능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꼭 죽기 전에 이상한 굉음을 낸다고 합니다. 꼭 누군가를 부르는 것처럼요.”
공작의 눈이 깊어졌다.
대륙 남부. 급증한 언데드.
그리고 때맞춰 서거한 교황.
‘이 모든 게 우연일 수 있는가.’
시선을 옮겨 대신전을 바라보던 공작이 다시 마차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우선 공작성으로 돌아간다.”
공작이 그 말을 남긴 채 마차에 올랐다. 창문 너머로 스며든 달빛이 공작의 얼굴을 비췄다.
제국력 894년 겨울.
그라페스 대신전의 9번째 교황의 서거였다.
* * *
공작성으로 돌아온 나는 곧장 클로비스에게 보내는 전서구를 띄웠다.
때가 된 것 같다는 연락이었다.
레이쿠스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새로운 교황이 즉위할 터였다.
타국의 출입이 통제되기 전에 클로비스를 만나야 했다.
다음 날 곧장 답신이 도착했다.
거기엔 빠른 시일 내에 제국으로 가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오터스 왕국은 대륙 남쪽에 위치해 있지만 최근 급증한 언데드 출몰지와는 거리가 있어, 아직까지는 피해를 입지 않은 듯했다.
안심하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응, 들어와.”
문이 열리고 데미안이 안으로 들어왔다.
같은 방을 썼던 우리는 데미안이 열세 살이 되던 해부터 방을 따로 썼다.
공작에게 먼저 각방을 요청한 사람은 데미안이었다.
“방을 따로 쓰고 싶습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내 새끼가 나를 멀리하다니, 하는 생각에 조금 서운하기도 했지만…….
언제까지 함께 잘 수 있는 노릇도 아니니까. 전쟁 후를 생각한다면 미리 적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준비 다 끝났어?”
“응. 곧 나갈게.”
교황 서거 후, 신탁이 내려와 새로운 교황을 지목했다.
제국 내의 모든 귀족들은 새로운 교황 즉위식에 참석해야 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밖으로 나가자 우릴 기다리는 공작이 보였다.
나를 발견한 공작이 미간을 좁혔다.
“아침보다 안색이 더 안 좋군.”
“잠을 좀 설쳤거든요. 공작님은요?”
“덕분에 아주 잘 잤지. 그런데…….”
대답하던 공작이 시선을 미끄러뜨리며 피식 웃었다.
“내 아들은 잘 잤는지 모르겠군.”
그의 시선이 데미안에게 닿았다.
“데미안, 또 악몽 꿨어?”
나는 데미안을 향해 손을 뻗었다.
움찔하며 얼굴을 붉히면서도, 내 손길을 피하지 않는 걸 보니 또 악몽을 꾼 듯했다.
언제쯤 사라질까.
나는 한숨을 내쉬며 하얀 뺨을 쓰다듬었다.
“매번 힘들어할 거면서 왜 방을 따로 쓰자고 했어.”
“그…….”
데미안이 말끝을 흐리며 내 눈을 피했다.
“새벽이라도 괜찮으니까 악몽 꾸면 바로 내 방으로 와. 알았지?”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데미안이 끄응, 하고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데미안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다 마차에 올랐다.
“뭣하면 내가 자장가라도 불러줄까.”
“……됐습니다.”
공작이 무어라 덧붙이자 데미안이 단호히 대꾸하며 마차에 올랐다.
무슨 말을 들은 건지, 데미안의 귀 끝이 붉었다.
“역시 사춘기 애들은 까칠하다니까.”
공작이 한숨을 내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 * *
새로운 교황 즉위식답게, 대신전으로 가는 길목부터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물론 대신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귀족들뿐이었기에, 안으로 갈수록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각 영지의 귀족들이 모인 덕분에 거리엔 마차들로 가득했다.
나는 공작의 도움을 받아 마차에서 내렸다.
‘여기가 바로 중앙 신전…….’
위압감에 입을 떡 벌릴 때였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신관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그들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아…….”
때마침 마차에서 내리던 귀족과 부딪혔다.
덕분에 내 몸이 힘없이 휘청거렸는데, 넘어지려는 것을 누군가 받아주었다.
“괜찮으십니까?”
“아, 죄송…….”
사과를 하려는데,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의아함에 고개를 든 난, 그대로 표정을 굳히고 말았다.
“……카르센?”
“……엘리.”
나를 붙잡은 사람은 다름 아닌 카르센이었다.
고아원에서 항상 말썽을 피우고, 나중엔 데미안을 괴롭히다 호되게 당했던 그 카르센.
그간 제리트와 함께 고아원들을 후원하면서, 원생이 고아원을 나간 후 어디로 가는지를 추적해왔다.
하지만 그 수많은 아이들을 직접 케어하는 건 후원의 수준을 넘어섰기에, 혹시나 이상한 곳으로 가지는 않을까 조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하지만 카르센의 정보는 나와 데미안이 공작성에 입양된 이후로 끊겨 찾을 수 없었다.
당시 고아원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구나, 하고 막연하게 생각만 했다.
‘그런데 여기서 만날 줄이야.’
악운도 이런 악운이 없었다.
카르센도 적잖이 놀란 듯,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즉, 아직도 그와 가깝게 붙어있다는 뜻이었다.
‘이건 좀 불편한데.’
작게 미간을 좁힌 내가 한 마디 하려고 할 때였다.
누군가 붙잡은 손을 떨어뜨렸다. 휘청거리던 몸이 곧장 탄탄한 무언가에 닿았다.
“괜찮아, 엘리?”
고개를 들자 단단히 나를 붙든 데미안이 다정히 웃고 있었다.
“위험해, 큰일 날 뻔했어.”
“아, 응. 고마워.”
얼떨떨하게 대답할 때, 공작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남자 손은 함부로 잡는 게 아니라고 말한 것 같은데.”
공작은 카르센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나에게 하는 말이 분명했지만, 공작의 시선은 카르센에게 닿아있었다.
“그대의 생각은 어떻지?”
그가 카르센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