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45)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45화(145/241)
“아…… 죄, 죄송합니다.”
카르센이 곧장 사과했으나, 공작의 웃음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러다 무슨 일 일어나겠다.’
평화를 위해 얼른 공작의 팔을 붙잡을 때였다.
“아, 슈에츠 공작님.”
알은체하는 부름에 공작이 시선을 움직였다.
“……레벨리오 후작.”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가 너스레를 떨며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표정을 굳혔다.
레벨리오 후작가. 두 번째로 내가 입양된 곳이었다.
계산적인 성품과는 달리, 지금까지 조용하길래 최소한의 양심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만날 줄이야.’
그의 뒤편엔 아들, 애슈턴 레벨리오도 함께 있었다.
그동안 내가 거쳤던 가족들은 하나같이 싫은 사람들뿐이었지만, 애슈턴만은 예외였다.
나와 동갑인 애슈턴은 내가 도둑의 딸이라는 게 알려진 뒤에도 변함없이 잘 대해줬으니까.
‘아니, 오히려 너무 잘해줘서 부담스러울 정도였지.’
애슈턴도 적잖이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동안 많은 서신을 보냈는데, 답신이 없으셔서 걱정했습니다.”
그때 후작이 너스레를 떨며 친한 척을 했다.
“답장을 할 만한 내용이 아니기에 무시했을 뿐인데, 걱정을 할 줄은 몰랐군.”
그러나 상대는 공작이었다.
그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날선 말을 내뱉자, 후작의 얼굴이 감출 수 없이 일그러졌다.
‘그동안 레벨리오 후작가에서도 서신이 왔었구나. 전혀 몰랐네.’
뒤늦게 공작의 배려를 눈치챈 나는 핫, 정신을 차리곤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안녕하세요, 후작님.”
내가 먼저 인사하자 레벨리오 후작이 의외라는 듯 날 쳐다봤다.
“……슈에츠 영애.”
그가 한 박자 느리게 대답했다.
곧 죽어도 높임말은 쓰기 싫은듯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잘 지내셨나요?”
“크흠. 잘 지냈습니다. 이렇게 만나 뵐 줄은 몰랐군요.”
먼저 알은척을 하자 그가 ‘그럼 그렇지’하는 얼굴로 날 거만하게 바라봤다.
‘응, 아니야.’
누가 원하는 대로 해준대?
“보내주신 서신은 유용하게 잘 썼습니다.”
“……유용하게?”
“아시다시피, 북부는 무척이나 추운 편이라서요. 땔감으로 잘 썼답니다.”
싱긋 웃으며 덧붙이자 후작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가 말 붙일 틈도 주기 싫어서, 난 얼른 두 사람의 팔을 이끌었다.
표정을 굳힐 땐 언제고, 공작이 흡족스러운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고서 데미안을 잡아끌었다.
데미안은 여전히 카르센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르센의 복장과 허리춤, 그리고 함께 있는 사람을 보니 어느 귀족 집안의 기사가 된 듯했다.
그는 나와 처음 마주쳤을 때보다 표정이 더욱 굳어 있었다.
‘당연하지.’
나보다 한참 작았던 데미안은 이제 공작님 옆에 서도 될 만큼 자랐다.
저보다 약해 보일 땐 마구 주먹을 휘두르더니.
이제 와서 겁먹은 꼴이 퍽 볼만했다.
“흐음.”
미묘한 기류를 읽은 건지, 공작이 카르센을 바라보며 느릿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씨근덕거리던 후작이 몸을 돌렸다. 카르센도 그제야 후다닥 제 주군을 따라갔다.
비겁한 멍청이 같으니.
속으로 조소를 흘린 난, 데미안의 손을 잡았다.
“됐어, 그만 가자. 눈길 줄 가치도 없어.”
“……알았어.”
“공작님도요.”
“나는 좀 더 내빼는 꼴을 지켜보고 싶은데.”
“아, 빨리요.”
양손으로 다시 팔을 잡아끌자, 두 사람이 못 이기는 척 나를 따라왔다.
* * *
그라페스 대신전의 중앙 기도원. 중앙 기둥에 새겨진 세계수 문양 아래, 큰 의자가 있었다.
교황이 앉는 자리였으나, 아직은 그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 밑으로 홀이 둥글게 있었는데, 그곳을 중심으로 13명의 사제들이 함께 있었다.
교황 대관식은 먼저 정화 세례를 치른 뒤 이뤄졌는데, 귀족들은 그 성스러운 장면을 함께 지켜봐야 했다.
함께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입구를 지키던 성기사가 나와 데미안을 막아섰다.
“여기서부터는 각 가문의 가주님들만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그러자 공작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갑자기 일어난 서거에 따라, 혹시 모를 일을 방지하고자 함이니 부디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은 하고 있지만, 말투에 날이 서 있었다.
새로운 신성석과 가짜 다이아몬드로 인해 신전도 꽤 물을 먹었으니까.
공작이 쯧, 혀를 찼다.
“별의별 방식으로 사람 귀찮게 하는군.”
노골적인 언사에 성기사가 몸을 움찔 떨었지만, 공작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는 수 없지. 금방 끝날 테니 기다리고 있거라.”
공작이 중앙 기도원으로 들어가고 난 후, 나와 데미안은 넓은 정원에 나왔다.
성스러운 곳이라고 해도 기부금을 받는 곳답게, 몇몇 성기사들이 귀족가 영식들과 대련 삼아 검을 나누고 있었다.
영애들은 그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와중에 계속 어딘가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볼이 붉은 걸 보니 잘생긴 성기사라도 봤나 보다.
‘와, 진짜 잘생겼…… 어?’
자연스럽게 그들을 따라 시선을 옮긴 난, 눈을 크게 떴다.
“그레이스?”
“엘리?”
그 사람은 바로 그레이스였다.
그레이스가 화색을 띠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엘리, 정말 오랜만이야!”
그러곤 나를 냅다 끌어안았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마음은 나도 알겠지만, 영애들의 눈빛이 내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레이스, 숨, 막혀.”
“아, 미안.”
등을 몇 번 툭툭 때리자 재빨리 나를 놔주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미안.”
그레이스가 돌연 눈치 보듯 뒤편을 힐끔거렸다.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린 난 데미안의 굳은 표정을 발견했다.
두 사람의 앙금은 여전히 남아있는 듯했다.
“편지는 받았는데, 정말 성기사가 됐구나.”
“응, 얼마 안 됐지만 열심히 하고 있어.”
고개를 끄덕인 그레이스가 화사하게 웃었다.
‘악! 눈부셔!’
찬란한 빛이 얼굴로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영애들이 달콤한 탄식을 흘렸다.
‘그나저나, 정말 잘 컸네. 잘생긴 외모는 여전하고.’
쑥쑥 잘 크는 아이들을 보니 나까지 뿌듯했다.
그때였다. 주위가 소란스러워진다 싶더니, 모두가 한 곳을 향해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그곳을 따라 시선을 옮긴 난 왈칵 인상을 구겼다.
오랜만에 보는 2 황자, 마테오가 자신들의 측근들과 함께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쟨 또 왜 온 거야! 황족이면 황족답게 교황 즉위식이나 볼 것이지!’
마주치기 싫은 마음에 슬그머니 몸을 내빼려고 했다.
“반가운 얼굴이 있네?”
하지만 나보다 마테오의 이죽거림이 더 빨랐다.
그가 다가오는 이상, 모르는 척 무시하기도 어려워서 하는 수 없이 그에게 인사했다.
“……2 황자님을 뵙습니다.”
“슈에츠 사람들은 신전 근처는 얼씬도 안 할 것 같았는데. 웬일로 대신전까지 행차하셨군.”
그가 빈정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성공적인 마나 기차 개통 이후, 쓴 패배를 맛본 황실은 지난 4년간 조용했다. 2 황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동안 살기 편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기분이 참 더러웠다.
“새로운 교황 성하께서 즉위하시는 날이니 응당 참석하는 게 마땅하지요.”
“그래, 그렇겠지.”
어련하시겠냐는 듯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마테오 뒤편엔 여러 귀족 영식들이 함께였다. 무의식적으로 훑던 난, 애슈턴을 발견했다.
‘레벨리오 후작도 2 황자 쪽에 붙었나 보네.’
뭐, 나와는 전혀 상관없지만.
“막 자리를 뜨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럼 이만.”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그렇게 피하려고 했지만.
“어딜 가려고?”
우리의 멍청한 2 황자 전하께서는 원치 않으신 모양이었다.
“하면, 저희와 더 나누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래, 마침 이곳은 성기사들이 아침마다 대련을 하는 곳이지.”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뒤편을 눈짓했다.
“함께 검을 나눠보면 좋을 것 같은데.”
마테오가 그렇게 말하며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 * *
마테오가 데미안을 지목하자, 엘리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럴 만도 하지.’
마테오는 황궁 기사단장에게 검술 훈련을 받고 있었고,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는 오러까지 발현했다. 또래 중 실력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만만한 참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와 검을 맞대려 하지 않았다. 검을 휘두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던 중 마침 데미안을 맞닥뜨렸다.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전엔 잘도 날 무시했지.’
그 설욕을 되갚아줄 차례였다.
“……알겠습니다.”
이윽고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가 말리려는 듯 데미안의 팔을 붙잡았다.
“검을 맞대는 정도면 괜찮아. 사람도 많고.”
“하지만…….”
엘리는 무어라 말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무슨 말로도 마테오의 고집은 꺾을 수 없을 테니까.
엘리가 물러나자 마테오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까딱였다.
곁에 있던 그의 측근들이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검을 내밀었다. 마테오가 검을 쥔 순간, 황금빛 오러가 솟구쳤다.
“오, 오러를 발현하셨군요!”
“역시 2 황자님……!”
감탄과 아부 섞인 말들이 터져 나오자, 마테오가 자만 섞인 얼굴로 으쓱였다.
제 오러에 감응한 검을 미리 가져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검을 챙겨 오지 않은 데미안은 하는 수 없이 그레이스에게 검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테오와는 달리 데미안이 쥔 검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슈에츠 공자님도 오러를 발현하셨다고 들었는데…….”
“왜 저렇게 잠잠한 걸까요?”
그 수군거림에 마테오가 코웃음을 쳤다.
‘오러에 감응한 검이 없으면 뛰어난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별 볼 일 없지.’
그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검을 높이 세웠다.
짧은 인사를 마친 순간.
탓!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마테오가 몸을 내던졌다.
챙!
꽤 빠른 몸짓이었으나, 데미안은 가볍게 그의 검을 쳐냈다.
표정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예상했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데미안은 마테오를 공격하지 않았다.
‘공격은 전혀 못 하는군!’
승산이 있다!
마테오가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데미안에게 덤벼들었다.
결투 중, 부상을 입는 경우는 흔했다.
이 자식을 다치게 만들어도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주지!’
마테오가 검날을 치켜올린 순간이었다.
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큰 고통이 느껴졌다.
‘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검이 바닥에 떨어진 후였다.
“마, 말도…….”
더듬던 마테오가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목덜미에 닿은 서늘한 감각 때문이었다.
“방어 자세부터 다시 익히시는 게 좋겠습니다.”
“너……!”
“일부러 비껴 치지 않았다면 손목이 날아갔을지도 모르니.”
데미안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