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46)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46화(146/241)
‘말도 안 돼! 오러도 발현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마테오가 분한 듯 이를 갈았다.
제 검술은 완벽했다. 모두가 그를 인정했다.
‘그런데 어째서!’
그가 분에 찬 얼굴로 데미안을 노려볼 때였다.
“이게 무슨 소란이지?”
1 황자 파비안이 굳은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17살, 올해로 성년이 된 그는 다른 기사들에 견줘도 될 만큼 훌륭하게 성장했다.
날 선 턱선과 묘하게 음울한 눈빛은 신의 축복이라 일컬어지는 금안과 정반대인 분위기를 띠었는데, 그래서인지 자꾸만 시선을 끌었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힐끔거린 데미안이 검을 내렸다.
“레벨리오 영식. 이게 어찌 된 일이지?”
그의 물음에 애슈턴이 뜸 들이다 대답했다.
“……두 분께서 검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파비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장자인 형님만 참석하셔도 되는 게 아니냐며 빈정거릴 때부터 알아봤지만.’
이런 소란을 만들 줄이야.
후우. 파비안이 작게 한숨을 내쉴 때였다.
엘리와 눈이 마주쳤다.
또래에 비해 체구가 작았던 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 있었다. 탄신 연회 이후, 4년 만의 재회였다.
‘저 아이가 어째서 여기…….’
저도 모르게 표정을 굳힌 그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마테오가 그녀에게 시비를 걸자, 슈에츠 영식이 그를 대신해 검을 맞댄 것이 분명했다.
꾸욱.
한번 주먹을 쥐었다가 편 파비안이 살얼음 같은 분위기에 굳어있는 영애, 영식들에게 말했다.
“세례가 곧 끝나간다. 교황 대관식은 모두 함께 지켜봐야 하니 다시 중앙 홀로 돌아가는 게 좋겠군.”
그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이 우르르 정원을 빠져나갔다.
“젠장!”
이를 악물고 데미안을 노려보던 마테오가 욕설을 내뱉으며 자리를 빠져나갔다.
“전, 전하!”
“기다려 주십시오!”
그의 측근인 영식들이 빠르게 마테오의 뒤를 따랐다.
심상찮음을 눈치챈 성기사들도 서로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레이스가 엘리를 힐끔거리다 그들과 함께 정원을 빠져나갔다.
문제를 일으키는 건 마테오였지만, 뒤처리는 모두 파비안의 몫이었다.
익숙한 한숨을 내쉰 그가 데미안과 엘리를 향해 말했다.
“……소란을 일으켜서 미안하군. 2 황자를 대신해 사과하지.”
그의 목소리에 피곤이 묻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를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적어도, 더 좋은 곳에서 만났다면…….’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던 그가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멈칫했다.
엘리의 맑은 녹안에 그가 담겼다. 그저 바라보는 것뿐인데, 붙들린 것처럼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때 엘리가 말했다.
“1 황자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어려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말과 함께 그녀가 옅게 웃었다.
순간, 파비안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 입장에선 그저 형식적인 감사 인사를 건넨 것일 텐데도.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엘리가 짧게 인사하며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뒤를 따르던 데미안이 파비안 옆에 멈춰 섰다.
“하지 마십시오.”
그러곤 파비안만 들을 수 있도록 속삭였다.
싸늘한 눈빛이 금방이라도 본질을 꿰뚫어 볼 것만 같았다.
파비안의 목울대가 저도 모르게 꿀꺽이며 일렁였다.
“……무엇을?”
파비안이 조금 억눌린 목소리로 내뱉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짙은 주저가 담긴 목소리였다.
“그대가 무엇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군. 나는 그저-”
“전부 다.”
“…….”
“생각도, 감정도 전부 다 표현하지 마십시오.”
작지만 단호하다 못해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금방이라도 선을 넘으면 망설임 없이 잘라버릴 것만 같은.
그것은 경고이자 일종의 소유욕이었다. 제 주인을 넘보는 자의 목덜미를 가차 없이 물어뜯겠다는 짐승의 울림이었다.
두 눈동자가 빈틈없이 서로를 마주했다.
“데미안?”
그때, 엘리가 그를 불렀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데미안이 빙그레 웃었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그가 엘리 곁으로 다가가 손을 맞잡았다.
한 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두 손이 단단히 맞물렸다.
상체를 숙여 귓가에 무어라 속삭이는 모습이 더없이 행복한 연인 같았다.
파비안은 그런 데미안을 붙잡지 못했다.
아니라고 말해야 했는데.
끝까지 그 말을 입에 담을 수없었다.
파비안이 꾸욱, 주먹을 쥐었다.
* * *
대관식은 무척이나 성대했다.
‘말이 좋아 새로운 교황이지.’
신이 냉정히 한 사람을 버리고 또 다른 사람을 선택한 것에, 뭐가 좋다고 저렇게 환호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다행이야.’
나는 얼른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주 중요한 손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클로비스 님!”
“영애.”
그녀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무릎 아프시잖아요. 앉아 계셔요.”
그러곤 일어날 틈도 주지 않기 위해 재빨리 그녀 맞은편에 앉았다.
됐죠? 하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해가 갈수록 영애의 순발력이 늘어 가는군.”
“칭찬 감사합니다.”
“능청은 또 어떻고.”
그녀가 장난스레 날 흘겼다.
“그래서, 때가 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이니, 영애.”
“언데드의 출몰 소식은 들으셨죠? 오터스 왕국은 괜찮나요?”
“다행히 우리 쪽엔 큰 피해가 없단다. 하지만 대륙 최남단은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다는구나. 성기사들의 힘으로도 부족하니, 곧 제국에서 군대를 파견할지도 모르겠어.”
제국군은 황실 기사단과 귀족들이 이끄는 기사단. 종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건 슈에츠의 군대, 검은 사자들이었다.
초대 슈에츠 가주는 오래전, 제국에 발을 붙이는 조건으로 약속을 했다.
제국이 위험에 처했을 때 온몸을 바쳐 싸우기로.
슈에츠는 자신의 광증 약화를, 제국은 군사력을. 서로에게 이득인 조건이었다.
‘공작님께선 아직 광증 발현이 되지 않으셨으니,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되겠지만…….’
전쟁에 나가야 여주인공을 만난다. 영원한 안식을 위해선 그녀가 필요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약초의 상태는 어떤가요?”
내 물음에 클로비스가 품속에서 작은 약병을 꺼냈다.
그 안엔 푸른 액체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클로비스와 내가 함께 만든 상처 치유 포션이었다.
일반 시중에서 판매되는 포션은 아주 작은 찰과상만 겨우 치료할 수 있었다.
돈 없는 사람들은 통증을 잊어보고자 강한 독초를 썼는데, 효력이 너무 강한 나머지 약에 중독되기도 했다.
그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독초의 수요는 꾸준했다. 그만큼 대안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내가 클로비스에게 제안했지.’
사람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강한 치유 포션을 만들어보자.
하지만 대놓고 또 다른 치유 포션을 만들면 신전과 황실의 눈치가 보인다. 그건 타국 사람인 클로비스에게도 좋지 못 했다.
“이걸 어떻게 쓸 거니, 영애?”
그녀의 물음에 난 미리 준비해놓은 천을 꺼냈다.
“이게 뭐지?”
“흡수력 좋은 천이예요. 여기에 한 번 부어보시겠어요?”
천을 가리키며 말하자, 클로비스가 의아한 얼굴로 천 위에 포션을 부었다.
천이 포션을 머금자 난 당당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제 됐어요.”
“……이게 끝이라고?”
“네.”
나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씩 웃었다.
“앞으로 이게 대중적인 치료제가 될 거예요.”
치유 포션을 만들 수 없다면, 그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 명칭만 교묘히 바꾸면 된다.
“정확히 말하면, 통증완화제.”
전생의 기억을 빌려서 말하자면, 파스.
“이걸 아픈 부위에 대고 있으면 통증 완화 역할을 해 줄 거예요. 치유 포션을 묻힌 채, 붕대로 판매하면 신전 쪽에도 들킬 일 없고요.”
“아…….”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클로비스의 얼굴이 감탄으로 물들었다.
“역시 영애답군. 영민함이 이루 말할 수 없어.”
“감사합니다.”
나는 뿌듯하게 웃어 보였다.
“하루라도 영애를 빨리 만났다면, 오늘 그 사람에게도 줄 수 있었을 텐데.”
“그 사람이요?”
클로비스의 말에 난 고개를 기울였다.
“오는 길에 레벨리오 후작저의 시종과 마주쳤단다. 예전에 파티에서 얼굴을 마주한 적이 있어, 얼굴은 기억하고 있었거든.”
“레벨리오라면…….”
멈칫하던 난 이어 물었다.
“그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치유 약초가 없냐고 내게 묻더구나.”
“치유 약초요?”
“그래. 후작 영식의 담당 기사가 크게 다쳤다고 하더구나.”
“담당 기사…….”
“이게 있으면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녀가 아쉬운 얼굴로 파스를 바라보았다.
문득 생각나는 얼굴이 있었다.
설마 카르센은 아니겠지. 맞다고 해도 나와는 상관없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 생각을 멀리 떨쳐냈다.
* * *
흙먼지로 가득한 검무장 안.
데미안은 혼자 검술 연습을 하고 있었다.
몇 시간째 저 무거운 검을 휘두르고 있으니 지칠 법도 하건만.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눈빛이 살아났다.
토미가 작게 감탄하며 혀를 내두를 때였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슈에츠 공작이었다. 토미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미안이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며 공작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재밌는 이야기를 들어서.”
“…….”
“우리 아들과 이야기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은데.”
공작이 싱긋 웃으며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의 손엔 레벨리오 후작저에서 온 서신이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