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48)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48화(148/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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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정 일이 되었다.
공작성의 분위기가 늪에 빠진 것처럼 침울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이 순간을 잊지 않았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덤덤했다.
“치료용 붕대는 이걸로 부탁해. 지혈엔 이게 더 좋을 거야. 포션은 깨지면 소용없으니까 구급약품을 더 챙기는 게 좋겠어.”
“네, 엘리 님.”
착착 움직이는 시종들과 함께 나는 마지막까지 빠진 게 없는지 확인했다.
몇 번이나 둘러봐도 잊은 건 없었지만, 계속 무언가를 빠뜨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엘리 님. 안색이 좋지 않으세요.”
“그래? 좀 피곤했나 봐.”
“나가서 산책이라도 하는 게 어떠신가요? 남은 일은 저희에게 맡기세요.”
괜찮다고 말하려 했지만, 나를 바라보는 사용인들의 얼굴이 어두웠다.
‘내가 우울해하면 사람들도 걱정할 거야.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돼.’
“알았어. 그럼 잠깐만 쉴게.”
나는 웃으며 성을 나섰다. 근처를 산책하는데, 큰 나무를 바라보는 공작이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는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간 원작과는 다른 많은 일이 일어났다. 다행히 공작의 광증은 심해지지 않았지만, 황실과의 약속에 따라 공작은 전쟁에 참가해야 했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조심스레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무슨 생각 하세요?”
“엘리.”
내가 다가가자 공작이 날 바라보았다.
그가 보고 있던 나무엔 나와 데미안의 키가 기록되어 있었다.
“밤톨만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공작이 픽 웃으며 자국을 쓸었다.
“어느새 많이 자랐구나.”
“제가 말씀드렸죠? 데미안은 공작님만큼 커질 거라고.”
“그래.”
공작이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많이 컸더구나.”
내뱉는 목소리에 미약한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공작과 데미안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모르지만,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너도 많이 컸다. 평생 꼬꼬마일 줄 알았건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장난스럽게 으스대던 난 미리 챙겨뒀던 것을 그에게 내밀었다.
“이건…….”
“성수예요. 신전에서 몰래 가져왔어요.”
“…….”
“혹시 모를 일에 쓰셨으면 좋겠어요.”
굳은 얼굴로 작은 약병을 바라보던 공작이 옅은 한숨과 함께 병을 받아 들었다.
“세 번째 보물이군.”
그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시선을 내렸다. 그의 허리춤엔 내가 처음으로 만들었던 매듭 장식이 달려 있었다.
세월의 흔적으로 매듭은 원래 모양을 찾아볼 수 없었다.
더 좋은 걸로 만들어드리겠다고 해도, 공작은 이 매듭만을 고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무사히 다녀오실 거라고 믿어요.”
“믿음에 보답하는 취미는 없지만, 네가 원한다면야.”
공작이 장난스럽게 말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번 안아볼까.”
그가 나를 향해 팔을 벌렸다.
나는 잠시 멈칫하다, 공작에게 안겼다. 큰 손이 내 등을 토닥였다.
분명 괜찮았는데, 조금 불안할 뿐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공작의 품을 느낀 순간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프지 말고. 사고도 치지 말거라. 다른 일들은 헤론과 제리트에게 일임했으니, 필요하면 두 사람의 도움을 받도록 해.”
“그건 걱정 마세요. 저 얌전히 일 잘하는 거 알고 계시잖아요.”
“다른 말은 동의하지만 얌전히란 말은 동의하기 힘들구나.”
“……공작님도 다치지 마세요.”
“그런 걱정은 하지 마.”
“밤새우지도 마시고요.”
“…….”
“악몽은 제가 다 가져갈 테니까…….”
애써 밝은 척 목소리를 내었지만, 울음기는 숨기지 못 했다.
공작도 눈치챈 듯, 토닥이던 손길이 한번 멈칫했지만 다시 이어졌다.
평소 같으면 두고두고 놀릴 사람이 오늘은 아무 말이 없다.
나도 모르게 픽 웃자 공작도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오래간만에 진지해졌는데. 분위기를 깨는구나.”
“공작님 답지 않으니까요.”
“그래. 나답지 않지.”
공작이 내 눈가를 쓸었다.
“걱정하지 마라. 데미안도, 나도 무사히 돌아올 테니.”
“……네.”
“한눈도 팔지 말고.”
“한눈이요?”
“그래. 난 내 아들이 미치는 꼴을 보고 싶지 않거든.”
그가 이상한 말을 내뱉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날처럼, 같이 갈까.”
결혼식 때, 그의 손을 잡고 들어갔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웃으며 그와 손을 맞잡고 앞으로 걸어갔다.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신도 함께 출정해야 했기에, 그들 중엔 아만타 남작과 그를 배웅하는 남작 부인, 제리트도 함께였다.
제리트는 연신 눈물을 훌쩍이고 있었다.
“……어머니를 잘 모시거라.”
“걱정, 걱정 마십시오.”
제리트가 힘겹게 대답했다.
남작 부인은 앓고 있던 오클루먼시 병이 점점 악화되어 가는 중이었다.
아픈 부인을 두고 가려니, 아만타 남작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듯했다.
마음이 무거워진 나는 데미안을 찾았다.
데미안의 무표정한 얼굴엔 그 어떤 두려움도 보이지 않아서, 더욱 걱정이 됐다.
공작이 가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데미안.”
“……엘리.”
나는 손을 뻗어 데미안의 뺨을 감싸려다 파란빛으로 반짝이는 귀걸이를 발견했다.
“이건…….”
내가 처음으로 외출했을 때, 데미안에게 사준 귀걸이였다.
내내 하지 않기에, 그냥 취향에 맞지 않나 보다 생각했는데.
‘공작님은 매듭, 데미안은 귀걸이.’
부자가 닮은 것 같았다. 나는 옅게 웃으며 데미안의 뺨을 쓸며 말했다.
“잘 다녀와.”
“…….”
“편지도 자주 할게. 절대 다치면 안 돼. 알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데미안을 그대로 끌어안았다.
나보다 한참 작았던 아이였는데, 언제 이렇게 훌쩍 자랐는지 모를 일이다.
“이제 그만 출발하지.”
공작의 말에 기사들이 말에 올라탔다. 보내주기 위해 그를 품에서 놓아주려는데, 데미안의 시선은 여전히 나에게 닿아 있었다.
“데미안?”
날 바라보는 눈동자가 짧게 일렁인다고 느꼈을 때였다.
부드러운 손길이 이마를 스치더니, 곧 따스한 것이 내려앉았다.
그게 데미안의 입술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건 몇 초 뒤의 일이었다.
어릴 때, 내가 먼저 장난친 경우를 제외하곤 한 번도 데미안이 먼저 입 맞춘 적은 없었다.
‘물론 이마였지만, 그래도…….’
입만 뻐끔거리며 얼떨떨하게 서있는 나와는 달리, 데미안은 옅게 웃는 낯이었다.
“다녀올게.”
잠깐 눈물을 흘려 붉어진 내 눈가를 살살 쓰다듬은 데미안이 짧은 인사와 함께 몸을 돌려 말에 올라탔다.
불만스러운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던 공작이 출정을 알렸다.
나는 그때까지도 떠나는 행렬을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머나.”
“세상에.”
뒤에서 들려오는 장난스러운 말투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이바나와 아셀이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데미안 공자님도 참, 너무 스위트하시네요.”
“애정의 향기가 폴폴 풍겨요.”
“가, 가족끼리 뭐 어때서!”
부끄러운 마음에 발끈하며 소리치자 두 사람이 한층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그만.”
그러자 메이가 두 사람의 입을 턱 틀어막았다.
메이는 유독 손이 큰 편이라, 두 사람의 코까지 다 가릴 수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이바나와 아셀이 허우적거렸다.
커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메이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인사하고선 두 사람을 질질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메이가 제일 무섭다니까.’
하지만 덕분에 정신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자.
“헤론 님.”
나는 고개를 돌려 헤론을 바라보았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
“제 이름으로 된 상단을 만들고 싶어요.”
대뜸 던진 말에 놀랄 법도 하건만, 헤론은 담담했다.
“무엇을 판매하실 겁니까?”
“치료 붕대를 만들었어요. 통증을 완화해 주면서, 피 흡수가 빨라요. 전시 상황이나 의원을 찾아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일 거예요.”
잠자코 내 말을 듣던 헤론이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곳엔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살롱의 아이디어와 패드, 기차, 스나우트 령에서 났던 곡식들 등등의 수익이 적혀 있었다. 가히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이건 왜…….”
“공작님께서 엘리 님 앞으로 수익의 일부를 돌려놓으셨습니다. 신성석의 유통도 제리트 님이 아닌, 엘리 님 앞으로 이전되었습니다.”
“예?”
“전부 엘리 님의 아이디어였으니까요. 다시 돌려주신 것뿐입니다. 이제 엘리 님 이름으로 상단을 만드실 테니, 가져가시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나는 얼떨떨한 눈으로 눈앞의 서류를 바라보았다.
‘별말 없으시길래 잘 숨긴 줄 알았는데.’
신성석까지 내 앞으로 돌린 걸 보면, 공작은 진즉에 다 알고 있었던 듯했다.
‘정말 무서운 사람이야.’
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 서류에 서명을 했다.
완벽히 내 앞으로 명의가 바뀔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헤론은 마저 업무를 보기 위해 방을 나갔다. 혼자가 된 나는 멍하니 밖을 바라보았다.
문득 주위가 이렇게 조용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 옆에 차를 놔주던 메이가 말했다.
“엘리 님, 편지라도 써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편지?”
“예. 기다리는 사람에게 편지가 오는 것만큼, 기쁜 건 없습니다.”
마물이 들끓는 땅은 강한 사기 때문에 마나석을 이용한 통신이 통하지 않았기에, 전장과의 연락수단은 편지가 유일했다.
“메이도 편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예. 지금껏 연락이 오지 않아서 슬프지만요.”
“…….”
“그러니 엘리 님도 써보시는 게 어떨까요. 감정도 정리될 거예요.”
메이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그 무뚝뚝하던 사람이 이렇게까지 말해주는 게 좀 고맙기도 하고, 맞는 말이기도 해서 난 다시 펜을 들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에게.두 사람과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보고 싶어서 펜을 들었어요.
이렇게 적은 순간, 공작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그새를 못 참네’
하고 말씀하셨죠? 다 알아요. 데미안이 옆에서 한 소리 해줬다고 믿을게요.
하지만 말해야겠어요.
공작성은 제가 잘 돌볼게요. 그러니까 아프지 말고 잘 지내야 해요. 악몽도 내가 다 가져갔으니 걱정하지 말고요.
헤어짐은 정말 슬프지만, 돌아올 땐 더 큰 행복이 두 사람과 함께 할 테니까.
……의미심장한 말이라고 공작님께서 한 소리 하시는 게 들려요. 데미안, 나 대신 한 소리 해 줘.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될 거예요.
내 말이 사실이라는 걸.
음…… 쓰다 보니 정말 보고 싶어지네. 이만 줄여야겠어요.
두 사람이 건강히 돌아오는 게재 행복이에요.
또 편지할게요.
사랑하는 엘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