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50)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50화(150/241)
“공자님.”
데미안이 미동도 없자, 성기사가 그를 재촉했다. 연합군들이 더욱 가까워지고 있었다.
“데미안.”
그때, 에르하르트가 말했다.
“검을 내려라.”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냉정히 판단해.”
에르하르트의 서늘한 시선이 훌쩍이는 아샤벨에게 닿았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작게 일렁이고 있었다.
‘공작님의 광증을 진정시킬 수 있는 사람은 작고하신 유리아 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어떻게.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점을 지적하려면, 이 여인의 힘이 공작의 광증을 진정시켰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했다.
만약 모든 게 다 계획된 것이라면, 이 또한 신전의 수작 중 하나일 터.
‘빌어먹을.’
결국 데미안은 검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 * *
갑자기 나타난 여인이 사기를 정화했다.
신전도 하지 못한 일을, 여리디 여린 여인이 해낸 것이다.
신전은 아샤벨에게 합류를 요청했고, 그녀는 망설였지만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고로 기억을 잃어, 자신이 누구인지 겨우 기억하는 그녀에게 더 이상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샤벨을 수상하게 여길 수도 있었지만, 그녀의 능력은 대단했다. 죽은 언데드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사기를 순식간에 정화했다.
산 사람마저 오염시켰던 사기가 사라지자 자연스럽게 연합국의 내분도 사그라들었으니, 그녀를 수상하게 여길 리 없었다.
엘리에게서 편지가 끊긴 것도 그즈음이었다.
아샤벨에 대한 찬사가 커지는만큼, 데미안의 신경은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아, 꽃이…….”
그러던 어느 날, 성기사들의 보호 아래, 함께 이동하던 아샤벨이 오염된 땅에 피어난 꽃을 보며 기쁜 얼굴을 했다.
“이 땅은 괜찮나 봐요. 저기 꽃이-”
“아샤벨 님, 위험하십니다!”
그녀가 꽃을 향해 다가간 순간이었다.
꽃잎이 갈라지더니, 마물의 주둥이로 변했다.
“……!”
쩍 갈라진 그것이 아샤벨을 집어삼킬 듯 덤벼들었다.
그녀가 몸을 움츠린 순간이었다.
아샤벨의 눈이 크게 뜨였다.
눈부신 빛 아래, 데미안과 슈에츠 공작이 있었다.
데미안은 단숨에 마물의 목을 베었고, 에르하르트는 보호하듯 아샤벨을 밀쳤다.
최악!
큰 소리와 함께 마물의 목이 베였다.
“아직 남아 있었군.”
에르하르트가 혀를 차며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다친 곳은.”
“없습니다.”
데미안이 뺨에 튄 마물의 피를 무심히 닦아내며 말했다.
무사를 확인한 에르하르트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주위를 잘 둘러봤으면 좋겠는데.”
“아, 가, 감사합니다…….”
아샤벨이 멍한 목소리로 뒤늦게 인사했다.
황급히 멀어졌지만,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그들에게 꽂혀 있었다.
본능에 가까운 공격이었다.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항상 저를 보며 표정을 굳혔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녀를 구해주었다.
‘저 사람들도 웃을 줄 알까?’
문득 아샤벨은 두 사람의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 졌다.
그렇게 그녀는 두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공자님……! 저도 같이……!”
“따라오지 마십시오. 방해됩니다.”
“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옆에 있게 해 주세요.”
싸늘한 말에 겁먹을 법도 하건만, 아샤벨은 굴하지 않았다.
“곧 전투가 시작된다. 어서 물러나.”
“하지만…….”
“어서!”
에르하르트가 단호한 말로 그녀를 저지할 때였다.
검은 사기가 바닥에서 솟구치기 시작함과 동시에 마물이 그에게 덤벼들었다.
에르하르트의 눈빛이 번뜩이더니, 단숨에 그것을 잘라냈다.
함께 전투에 임하던 성기사들이 멍하니 그를 바라볼 정도였다.
그러나 에르하르트의 살기는 쉬이 거둬지지 않았다.
엘리와 연락이 끊긴 데에, 그도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온 것이었다.
감정의 혼란은 폭주를 야기한다. 그가 미약하게 비틀거릴 때였다.
“괜찮으신가요?”
아샤벨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 순간.
들끓던 그의 검은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에르하르트마저 얼떨떨한 얼굴이 될 정도였다.
“공작님!”
데미안의 부름에 다시 정신을 차린 그가 아샤벨의 팔을 뿌리쳤다.
그러나 이미 모두가 목격한 후였다.
“봐, 봤어? 공작의 과, 광증이 가라앉았어.”
“어떻게 이런 일이……!”
그때, 성기사들이 찬사를 터뜨렸다.
슈에츠 공작의 힘을 진정시켰다.
신성력으로도 완전히 공작의 광증을 억누르지 못 했다.
신성력보다 강한 힘은 하나밖에 없었다.
“……세계수.”
누군가 넋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외쳤다.
“성녀님! 성녀님이시다!”
“신께서 우리에게 또 다른 세계수를 보내주신 거야!”
연이은 환호에 에르하르트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대는 운동신경에 자신이 있나 보군. 검 한 자루도 없이 이런 자리에 뛰어들다니. 아니면 달리기에 소질이라도 있는 건가?”
“아, 아뇨. 달리기는 잘 못합니다만…….”
방해하지 말라는 뜻이었으나, 아샤벨은 볼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 에르하르트의 얼굴이 더더욱 구겨졌다.
“그렇다면 사교계 화술도 함께 배우는 것이 좋겠군.”
“여,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수줍게 대답한 아샤벨을 뒤로한 채, 에르하르트와 데미안이 멀어졌다.
대답조차 듣지 못했음에도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그들에게 꽂혀있었다.
그때, 신관들이 그녀에게 무릎을 꿇은 채 사정하기 시작했다.
“성녀님, 부디 저희와 함께 제국으로 가주시지 않겠습니까.”
“제, 제국이라면…….”
“세계수의 힘을 받으신 성녀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면 더없는 광영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 게다가 슈에츠 공작님의 광증도 정화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신관들의 말에 망설이던 아샤벨이 데미안과 에르하르트를 힐끔거렸다.
“제가 도움이 된다면야……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의 승낙에 슈에츠 공작과 공자가 그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아샤벨이 수줍게 웃었다.
“그 어떤 찬사를 들어도 저렇게 부끄러워하지는 않으셨는데…….”
“설마 성녀님께서 슈에츠 공자님을?”
“생각해 보면 두 분의 첫 만남도 슈에츠 공작님의 광증 정화 때문이었잖아. 운명이나 다름없지!”
“하지만 이미 공자님께선 혼인을 하셨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렸을 때 치른 결혼이잖아. 약혼 같은 관계일 텐데, 그거야 깨뜨리면 그만이지.”
팍팍한 전시 상황 중, 재밌는 이야깃거리만큼 흥미로운 것은 없었다.
성기사들 사이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점점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신전 쪽에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성녀라 불리는 아샤벨을 슈에츠 쪽에 붙이면, 좀 더 간섭이 쉬울 것이니 일부러 소문을 막지 않은 것이다.
‘빌어먹을.’
데미안이 탄식 섞인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가뜩이나 엘리와 연락이 되질 않아, 걱정되어 미칠 지경이건만 느닷없이 성녀라니.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만일 이 이야기가 엘리의 귀에 들어가 기라도 한다면…….’
상상만 해도 눈앞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데미안이 힘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주먹을 쥐었다.
“흥분을 가라앉혀라, 데미안.”
그러나 분노하는 데미안과는 다르게, 에르하르트는 침착한 낯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이 뭣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먼저야.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것뿐이다.”
그러나 그의 가라앉은 눈빛 속, 흉흉한 살기는 숨기지 못 했다.
무자비하게 언데드와 마물을 베어내는 것으로 그 분노를 대신했다.
묵묵히 검을 들고 덤벼드는 모든 것을 베었다.
스러진 마물의 시체가 산맥을 이뤘을 때.
마지막 정화 의식이 끝났다.
‘엘리.’
드디어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
3년, 길고 긴 전쟁의 종식이었다.
* * *
눈을 떴을 때,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러니까, 늘 내가 잠을 청하는 내 침실 말이다.
그런데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훌쩍 자란 성인의 데미안이 내 위로 올라와 있었다.
우린 데미안이 13살이 된 이후, 한 번도 함께 자본 적이 없었다.
‘그럼 이건 꿈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데미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가가 붉었기 때문이다.
결 좋은 검은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를 스쳤다.
“악몽이라도 꿨어?”
꿈속의 내가 묻자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꿈인데?”
내 물음에 데미안이 말했다.
“네가 날 버리는 꿈.”
“어?”
이어진 말에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내가 데미안을 버린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멍하니 굳어 있자, 데미안이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나 버리지 마, 엘리.”
데미안이 우뚝 멎은 내 손에 자신의 뺨을 비볐다.
“말 잘 들을게.”
물기 젖은 낮은 목소리가 내 귓가를 훑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등줄기가 찌릿했다.
“나만 예뻐해 줘.”
그러며 고개를 돌려 내 손바닥에 짧게 입 맞췄다.
언뜻 보이는 입술 너머 맹수의 송곳니가 보인 것도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난…….”
이윽고 살짝 벌어진 입술이 손바닥 살을 아프지 않게 깨문 순간이었다.
“……!”
번쩍 눈이 떠졌다.
짹짹, 저 멀리서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멍하니 눈을 깜빡이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미친…….”
이갈이 하는 강아지도 아니고, 애 가지고 대체 무슨 꿈을 꾼 거야. 진짜 미쳤나 봐.
원해서 꾼 꿈이 아니지만 짙은 현타가 몰려왔다.
이마를 팍! 하고 때리던 나의 시야에 빨개진 손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꿈속의 데미안이 깨물었던 그 자리였다.
이상하게 손바닥이 간질거렸다.
나는 붉어진 부분을 괜히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