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52)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52화(152/241)
그리고 그 소문은 귀환 중인 성기사단에도 흘러들어 왔다.
아샤벨을 통해 슈에츠 쪽과 어떻게든 연을 이으려고 했던 신전은 파비안과 엘리의 이야기에 누구보다 기뻐했다.
‘말도 안 돼…….’
따라서 신전 쪽 사람들 중, 소문에 의문을 느낀 건 그레이스가 유일했다.
엘리와 파비안 황자라니.
엘리가 데미안을 얼마나 아끼는데. 한 번이라도 그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현재 떠도는 소문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말들인지 알 수 있을 터였다.
‘무엇보다, 다른 건 둘째 치고…….’
데미안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그레이스의 눈에 데미안은 발톱을 숨긴, 순한 강아지인 척 하는 짐승이었다.
그나마 엘리 앞에서는 본성을 숨기니 괜찮겠지만, 슈에츠 공작님께선…….
상상만 해도 오싹 소름이 돋았다.
‘또 전쟁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그레이스는 슈에츠의 성을 가진 남자들이 진심으로 무서웠다. 그 집요함과 잔혹함을 곁에서 보았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물론 아직까지 조용한 것을 보니, 그들은 이 이야기를 아직 전해 듣지 못한 듯했다.
가만히 입 닫고 있는 것이 제게는 도움되는 일이겠지만…….
그레이스가 푹 한숨을 내쉴 때였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 아샤벨 님.”
아샤벨이 다른 성기사들과 함께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
“그레이스 님. 안색이 좋지 않으세요. 혹시 어디 아프신가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그레이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긴 손가락이 얼굴에 닿기 전, 그레이스가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다.
아샤벨의 손이 허공에 멎었다.
그녀의 입매가 순간 굳었다.
“아, 죄송합니다. 방금 전까지 마물의 피가 묻어 있어서요.”
스스로도 당황한 듯 그레이스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신관 행세를 한 오블리에의 일 이후 그녀는 낯선 사람의 접촉을 꺼렸다.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레이스가 인사와 함께 빠르게 아샤벨 일행을 스쳐 지나갔다.
“저거 또 저러네.”
“성녀님,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아샤벨이 상처 받은 얼굴을 하자 함께 있던 성기사들이 달래듯 말했다.
“저 자식, 좀 험한 일을 당한 적이 있어서 자신이 믿는 사람이 아니면 저렇게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흑마법사가 신관을 사칭해 슈에츠 공작가의 공자비를 공격하려 한 적이 있거든요.”
“……공자비요?”
이어진 말에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예, 슈에츠 공자님께선 혼인하신 상태입니다. 사실 출신 신분상으로만 따지면 그렇게 높은 분은 아니지만, 워낙 제국의 중심 흐름을 잡고 계신 분이셔서요.”
“……그렇군요.”
그녀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이…… 계셨구나.”
아샤벨의 목소리가 시무룩하게 가라앉자 성기사들이 다급히 그녀를 위로했다.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워낙 어릴 때 결혼하신 데다가, 그분도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썩 오래가실 것 같지는 않으십니다.”
“소문이라니, 어떤 건가요?”
그녀의 얼굴이 일순간 화색을 띠었다. 뿌듯해진 성기사들이 다시 입을 나불거렸다.
“듣기로, 1 황자님과…….”
성기사의 이야기를 듣던 그녀가 놀란 얼굴로 입을 틀어막았다.
“어, 어쩜 그런 일이……바람이라니. 나라면 절대 그러지 않을 텐데…….”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시선을 미끄러뜨렸다.
시선의 끝은 데미안과 이야기 중인 그레이스에게 닿아 있었다.
* * *
“그게 무슨 소리지?”
대뜸 내뱉어진 말에 데미안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귀환에 앞서, 마지막 마물 토벌을 앞둔 상태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들은 말이 이따위의 역겨운 것이라니.
“……말 그대로입니다. 공자비님과 1 황자님께서 친밀히 지내시는 걸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듯합니다.”
“…….”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라는 걸 알지만…… 공자님께서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 보고 드립니다.”
사실 신전 쪽 사람이 데미안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눈 밖에 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레이스는 진실로, 이 소문이 말이 되질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재미만을 찾을 뿐.
바꿔 말하면 상처 받는 사람이 엘리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공자비님께서 어떤 분인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 알지.”
데미안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느릿하게 중얼거렸다. 서늘한 눈빛이 잘 벼린 칼날처럼 섬뜩했다.
그레이스는 멈칫하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고 인사와 함께 그에게서 멀어졌다.
“하…….”
홀로 남겨진 데미안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1 황자. 그 자식이 기어이 제 주인에게 눈독 들이는 듯했다.
‘……하지만 이혼이라니.’
왜 그런 이야기를 1 황자와 나눴을까? 단순히 부풀려진 소문으로 취급할 수 있는가?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뱃속이 뒤틀렸다.
여태 혼신의 힘을 다해 참고 있던,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였다.
숨죽이며 기회를 엿보던 마물 하나가, 때마침 그에게 덤벼들었다.
크아악!
마지막 발악의 울부짖음은 세상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끝나고 말았다.
쿠궁!
큰 소리와 함께 마물이 바닥으로 널브러졌다.
잔해를 내려다보던 데미안이 얼굴에 묻은 피를 닦지도 않은 채 머리를 쓸어 올렸다.
‘……뭐가 어찌 되었건, 상관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엘리를 놓칠 생각이 없었으니까.
피로 물든 검은 머리칼 아래로 푸른 눈동자가 번뜩였다.
* * *
귀환 소식이 알려지자 제국이 큰 환호로 떠들썩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드디어 데미안과 공작님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와 제리트, 그리고 남작 부인은 함께 황궁으로 향했다.
제국 내 군대는 황실과 신전에 승전 사실을 알려야 했다. 공작님과 데미안도 그곳에 있을 터였다.
황궁으로 향하는 거리엔 벌써 귀환자들을 맞이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조심히, 천천히 내리셔요.”
황실에 도착한 우리는 부인과 함께 마차에서 내렸다.
“감사합니다, 엘리 님.”
부인이 옅게 웃었다. 점점 건강이 악화되어 가는 부인도 남작의 귀환은 기쁜 듯 표정이 밝았다.
연회장 안은 무척이나 화려했다. 승전 사실은 황궁과 신전의 입지를 높여주는 것이었으니, 그 어느 때보다도 성대했다.
“마지막 전투의 승리 요인은 슈에츠 공작님의 훌륭한 지휘 덕분이었다죠?”
“슈에츠 영식의 검술 또한 대단했다고 들었어요. 정말 대단한 분들이 세요.”
“괜히 두 분께서 부자지간이겠어요.”
“저도 기사 봤어요. ‘붉은 머리칼이 대지에 휘날릴 때, 비로소 제국은 승리했다.’ 정말 좋은 문구예요.”
하지만 사람들의 입에선 연신 공작과 데미안에 대한 찬사가 터져 나왔다.
데미안이 정말 클라이더의 아들이 맞는지 의심하던 사람들이, 이젠 너무나 당연하게 ‘슈에츠 영식’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것이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근데 웬 붉은 머리? 공작님이야 적흑발이지만 데미안은 흑발인데.’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할 때, 한 귀족이 말했다.
“어머, 저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게 성녀님 덕분이라고 들었는데요.”
‘성녀.’
아샤벨을 뜻하는 말이 분명했다.
“성녀님께서 폭주 직전까지 가셨던 슈에츠 공작님을 정화하셨대요. 심지어 들끓던 사기까지 없애셨다던데…….”
“그, 그런 일이 가능한가요?”
“그러니 성녀님이시죠. 신께서 저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또 다른 세계수를 내려주신 게 분명해요.”
귀족들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아샤벨과 만났구나.’
나는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원작보다 귀환 시기가 2년이나 빨랐다. 혹시나 아샤벨과 만나지 못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었다.
‘이제 안심하고 옆을 내어줄 수 있을 거야.’
부인이 아닌 누나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무언가로 쿡쿡 찌르는 것처럼 불편했다.
‘내가 왜 이러지.’
처음 느끼는 감각에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누군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찬란한 금빛 머리카락과 금안을 가진, 조금 정적인 얼굴을 가진 사내. 파비안이었다.
“또 만났군.”
그가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대에게 긴히 할 말이 있는데. 혹시 잠깐 시간 괜찮을까.”
“하실 말씀이시라면…….”
나는 주위를 힐끔거렸다.
여기서 해도 되지 않나? 왜 굳이 따로 보자는 거지?
“곧 기사단들이 귀환할 테니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거절에 그의 낯이 미묘해졌다.
“……그래. 그대의 생각이 그렇다면야.”
그러다 이내 옅게 웃었다.
“그대가…….”
그러곤 무어라 말했는데, 악단의 연주와 사람들의 대화에 섞여 잘 들리지 않았다. 파비안의 목소리가 유독 저음인 탓이었다.
“죄송합니다, 1 황자님. 잘 들리지 않아서요.”
못 들었다는 뜻으로 작게 미간을 좁히자 그가 나를 향해 상체를 낮췄다. 우리의 낯이 가까워졌다.
“그대가 추진하는 새로운 사업에 대해…….”
낮은 저음이 내 귓가에 내려앉을 때였다.
“황궁 기사단들이 귀환하셨습니다!”
문지기의 외침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데미안을 찾아 헤매던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결 좋은 검은 머리카락, 끝이 살짝 올라가 웃을 때마다 부드러운 눈웃음을 만드는 눈, 높은 콧대와 붉은 입술.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미모는 내가 알고 있던 데미안이 맞았다.
그런데…….
긴 다리, 떡 벌어진 어깨, 모든 게 근육으로 짜인 탄탄한 몸은 뭐랄까. 내 기억 속의 데미안과 너무 달랐다.
‘무엇보다 저렇게 서늘한 눈빛이라니.’
전혀 다른 사람을 마주한 것처럼 낯설었다.
멍하니 연회장 안으로 들어오는 그들을 바라볼 때였다.
문득 데미안과 눈이 마주친 순간.
그의 눈빛이 한겨울 서릿발보다도 차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