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56)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56화(156/241)
* * *
“정말 상처 난 곳은 없는 거지?”
“없어.”
“뭐, 잊히지 않는 잔상 같은 건 없고? 왜, 막 끔찍한 거 보면 기억에서 오래 남잖아.”
“그런 거 없다니까.”
인적이 드문 곳으로 자리를 옮긴 엘리가 데미안의 뺨을 붙잡은 채 이리저리 살폈다.
꽤 어지러울 법한데도, 데미안은 상체를 숙인 채 엘리에게 얌전히 얼굴을 내어주었다.
함께 온 에르하르트는 데미안의 열렬한 눈빛에 마지못해 자리를 피해 주었다.
데미안이 어떤 마음으로 전쟁에 나갔고, 어떤 마음으로 적을 베었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굴만큼은 사정없이 구겨져 있었다.
“공작님께서 기분 나쁘신 일이라도 있나 봐.”
“그런 것 같네.”
데미안은 굳이 그녀의 생각을 정정해 주지 않았다.
제게 쏟아진 엘리의 시선과 관심이 다른 데에 분산되는 것이 지독히도 싫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모르는 엘리는 미약한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예쁜 얼굴엔 작은 생채기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자식새끼 험한 데 보낸 엄마의 심정이 이런 걸까. 무사한 걸 눈으로 봤음에도 엘리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쳐놓고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내가 어떻게 너한테 거짓말을 해.”
데미안이 단언하며 뺨을 붙잡은 엘리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엘리는?”
“…….”
“엘리는 어땠어? 아픈 곳은 없었어?”
“내가 아플 곳이 어디 있어.”
엘리가 픽 웃으며 반대편 손을 내젓다가, 멈칫했다.
넘어져, 쓰러져, 피 나, 기절해…….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만 해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토미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여전히 양심이 없으십니다” 하고 덧붙였을 터였다.
‘내가 할 말이 아니었네…….’
민망해져 입을 다물자 데미안이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어디 다치기라도 한 거야?”
“아, 아니야. 하나도 안 다쳤어! 이제 몸도 건강하고, 무엇보다 네가 다치지 말라고 했잖아.”
데미안이 걱정이라도 할까 싶어, 엘리는 빠르게 부정했다.
“다행이네.”
그러자 데미안이 미약한 웃음기를 머금었다.
“여기.”
데미안이 손을 뻗어, 엘리의 이마를 엄지로 살살 쓸었다.
전쟁터로 떠나기 전, 데미안이 그녀에게 입 맞췄던 곳이었다.
“다치지 말라는 뜻으로 한 건데, 통한 것 같아 다행이야.”
데미안의 입가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다정한 저음에 엘리는 문득 목덜미에 쭈뼛 털이 서는 듯했다.
‘진짜 꿈 때문에 이게 뭐야. 괜히 나만 어색하잖아.’
엉뚱한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엘리는 생각을 떨쳐 내며 그에게 물었다.
“아샤벨 님은 어땠어? 듣기로, 정말 친절한 사람이라던데.”
“……아, 그 사람.”
일순간 데미안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나는 잘 몰라. 관심도 없고.”
“관심이 없다고?”
엘리가 당황해 되물었다.
“왜? 왜 관심이 없어? 아샤벨은 네게…….”
그러다 아차 했다. 둘 사이에 무슨 접점이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뉘앙스였기 때문이다.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해?”
데미안도 그것을 느낀 듯,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아, 그게, 음, 두 사람, 친해지지 않았을까 싶어서. 전쟁 때 서로 도와줬다며. 거처를 묻는 폐하의 물음에 널 바라보기도 했잖아.”
“사람들이 떠드는 말일뿐이야. 그런 접점 같은 거 없었어. 원하지도 않고.”
데미안이 사뭇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공작님의 폭주를 억제했다고 들었어. 그건 사실인 거지?”
“확실하진 않아. 워낙 찰나였으니까.”
확신을 담아 말했으나, 엘리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또다. 또 다른 세상 속으로 들어갈 것만 같은 얼굴을 했다.
성녀라 불리는 여자와 자신에 대해 무언가 연관성을 찾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둘 순 없었다.
“데미안, 있지-”
“엘리.”
그러나 데미안이 더 빨랐다.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뭔데?”
그녀의 물음에 데미안은 잠시 입술을 달싹였다.
엘리의 생각을 깨기 위해 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물어봐야 할 질문이기도 했다.
인상을 찌푸린 데미안이 조금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연회장에서, 1 황자랑 무슨 이야기 했어?”
“1 황자님?”
갑작스러운 인물에 엘리는 조금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그냥 별 이야기 안 했어. 제대로 이야기하기도 전에 끝났거든.”
“……그래?”
확신을 담아 고개를 끄덕이는데도 데미안의 미심쩍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엘리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건가?’
연락이 끊겼던 1년간의 시간.
갑자기 등장한 성녀.
그리고 1 황자와의 소문까지.
가능성은 있었다. 엘리는 도움이 될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겪은 맘고생만 몇 번이던가.
하지만 엘리가 원하는 게 데미안이 원하는 일이었다. 그녀만 곁에 둘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녀가 무언가를 숨기고자 한다면 보이지 않는 척, 영원히 모르는 척 해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혼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것만은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도와줄 수 없었다.
데미안은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있지, 데미안. 나도 물어볼 게 있어.”
그때, 엘리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데미안은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이 무엇일지 두려워졌다. 저절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왜 1년이란 시간 동안 연락하지 않았어?”
이윽고 나온 질문은 그의 예상과는 달랐다.
“……내가 연락을 안 했다고?”
데미안의 눈동자가 짧게 흔들렸다. 그가 세웠던 가설들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그럼…… 엘리는 계속 나한테 연락을 보냈어?”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해?”
엘리는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누나로서, 가족으로서 전쟁에 나간 가족이 걱정되는 건 당연하잖아.”
누나.
그 단어를 들은 순간, 데미안은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다.
“매일같이 신문을 봤어. 혹시나 나쁜 소식이 적혀 있는 건 아닐까, 작은 글자라도 빠짐없이 훑었어. 그렇게 1년을 버텼어.”
“…….”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말하다 보니 울컥하는 기분이었다.
엘리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실렸다. 데미안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미안, 내가 잘못했어. 울지 마. 응?”
“……안 울어. 그러니까 저리 가.”
손을 뻗어 밀어냈지만, 탄탄한 몸은 작은 미동조차 없었다.
“……네가 울면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
“그러니까 울지 마, 제발.”
데미안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깨지기 쉬운 유리를 어루만지듯, 눈가를 쓰는 손이 미약하게 떨렸다.
그 떨림이 그녀에게도 느껴졌다. 엘리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작게 달싹였다.
달빛을 등진, 그늘진 그의 얼굴 속 파란 눈동자가 너무나 반짝여서일까.
가까운 얼굴, 뺨을 붙잡은 손, 떨리는 숨결, 저를 향해 숙인 상체, 금방이라도 맞닿을 듯한 코끝.
‘마치 키스하기 직전 같은…….’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데미안과 눈이 마주쳤다.
“……!”
엘리는 반사적으로 그를 밀어냄과 동시에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동생 같은 데미안을 두고 무슨 생각을 한 걸까.
‘게다가 키스는 또 뭐고.’
스스로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꿈 때문인가. 데미안이 너무 훌쩍 자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미안. 감정이 좀 격해졌어.”
일렁이는 마음을 추스른 그녀가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상한 건 사실이야. 왜 갑자기 편지가 끊겼을까.”
“……글쎄.”
데미안은 떨어진 제 손을 한 번 내려다보다, 주먹을 꽉 쥐며 말을 이었다.
“누군가 중간에서 가로챈 거겠지.”
“우리 편지를? 하지만 그런 짓을 할 사람이라곤…….”
신전이나 황족밖에 없는데.
뒷말을 잇지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다. 데미안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고 보니 전시 중, 통신을 담당했던 가문이 한 차례 바뀌었다고 들었어.”
전쟁 중 연락은 신전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성기사들도 다수 참전한 데다가, 사기로 인한 정화 의식 때문에 신전이 모든 소통을 담당하는 데엔 무리가 있었다.
해서 몇몇 가문이 신전을 대신해 서신 전달을 담당했는데, 이는 곧 신전과의 결탁을 뜻했다.
‘1년 전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그 가문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무엇보다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속셈일까.
엘리의 눈빛이 깊어졌다.
* * *
한편.
라미트라와 함께 황궁 복도를 걷던 아샤벨이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게 반짝였다.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그녀의 시선이 한 곳에 멈췄는데, 천장에 그려진 세계수의 그림이었다.
아샤벨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내가 저 힘을 가졌다는 건가……
스스로 생각해도 믿기지 않았다.
“여기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그때, 라미트라의 말에 아샤벨이 발걸음을 멈췄다.
황실의 대전 앞이었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거대한 세계수의 문양 아래, 황제 벤터스와 교황이 앉아 있었다.
“신의 축복을 뵙습니다.”
뒤늦게 배웠던 인사를 서툴게나마 올리자, 벤터스가 웃었다.
“형식적인 인사는 되었네. 자, 자리에 앉지.”
아샤벨이 자리에 앉자, 라미트라도 함께 그녀의 옆에 앉았다.
“이렇게 그대를 부른 건 전에 말했던 그대의 거취 문제 때문이야. 내 고르고 골라, 그대가 마음 편히 의지할 만한 가문을 골랐지.”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