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58)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58화(158/241)
* * *
‘데미안 님이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게 얼마만이더라.
표정 하나 없는 무감각한 얼굴마저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런데 저 사람은 계속 함께 있네.’
아샤벨이 슬쩍 엘리를 바라보았다.
‘분명 성기사님들께선 저분이 엄청 나쁜 사람이라고 했는데.’
신전에 기거하며, 아샤벨은 엘리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여럿 들었다.
새로운 신성석을 발견한 것부터 시작해, 죽어가는 영지를 살린 여자.
‘그리고…… 제국에서 유명한 도둑의 딸이라고 했었지. 손버릇도 나쁜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데미안 님께서는 어쩌다 저런 사람과 혼인하게 된 걸까.
만약 데미안 님이 어릴 때, 저 사람이 아닌 저를 만났다면 무언가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라미트라 대신관님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기억을 되찾으면 공작과 데미안 님의 곁에 있을 수 있게 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조금 참을만했다.
아샤벨은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그가 손등에 입을 맞춘다 생각하니, 미칠 듯이 긴장이 되었다.
이윽고 데미안이 그녀의 손을 잡고, 상체를 숙였다. 아샤벨이 눈을 질끈 감았다.
“……?”
그런데, 아무런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가 살며시 눈을 떴다.
입술이 닿아 있지 않았다.
그렇게 보이도록 자세만 취했을 뿐이었다.
아샤벨의 미소가 우뚝 멈췄다.
‘부인에게는 거리낌 없이 손등에 입 맞추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보다 더 성스러워야 할 계승식에서 자세만 취하고 있었다.
잠깐의 접촉마저 꺼리는, 명백한 거부였다.
“아…….”
당황한 그녀가 무어라 소리를 냈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된 후였다.
몸을 일으킨 데미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굳어 있던 얼굴이 어느 순간 사르르 풀렸다.
그의 시선이 엘리에게 닿아 있었다.
눈매가 곱게 접히고, 미동조차 없었던 하얀 뺨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얼굴이 저러하다는 것을.
그녀도 데미안을 저런 얼굴로 바라봤으니까.
아샤벨은 꾸욱 주먹을 쥐었다.
아주 찰나였지만 데미안과 닿았던 그 감각을 영원히 보존하려는 것처럼.
* * *
계승식이 끝나고 연회가 시작되었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아름답게 조각된 분수대. 시선을 사로잡는 것들로 가득했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건 따로 있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자 이젠 최연소 공작이 된 데미안이었다.
“축하드립니다, 공작님.”
“축하드립니다.”
데미안이 진짜 클라이더의 아들인지 어떻게 믿냐며 수군거렸던 사람들이 이젠 앞다퉈 인사를 했다.
물론 개중에는 아직 멋모르는 어린애라며 무시하는 시선들도 섞여 있었다.
그냥 무시해도 될 일이지만, 이제 데미안은 한 가문의 가주다.
좋든 싫든 여러 가문과 교류를 하며 살아야 했다.
‘그래서 공작님이 옆에 계셔주시는 거겠지.’
게다가 사업으로 대박을 친 제리트와 상업을 꿈꾸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헤론도 함께 있으니, 쉽게 데미안을 깔볼 수 없을 터였다.
안심하며 슬쩍 빠져나온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다.
“아델란!”
“여기 계셨군요, 엘리 님. 한참을 찾았어요.”
쉬지도 않고 나를 찾은 듯, 아델란의 뺨이 발그레했다.
“하아, 오늘도 너무 아름다우세요.”
아델란은 그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그녀가 더 아름다웠다.
‘그야 오늘을 위해 야심차게 새로운 디자인의 드레스를 만들었기 때문이지.’
최근 제국 내에서 인기 있는 공연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단연 아델란이 출연하는 오페라였다.
어찌나 인기가 많은지, 그녀가 공연하는 날에는 모든 자리가 매진이었다.
맨 뒷자리에 서서 관람하겠다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예술과 문화는 귀족들 사이에서 빼놓을 수 없었다. 때문에 상업에 발을 걸쳐둔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아델란에게 후원하고 싶어 했다. 그녀가 하고 다니는 모든 것이 광고였으니까.
‘하지만 아델란은 곧 죽어도 우리 제뮈엘 살롱만 고집하지.’
덕분에 안 그래도 인기 많은 살롱은 더더욱 바빠지고 있었다.
“공연 때문에 바쁠 텐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엘리 님께서 참가하시는데, 저도 당연히 와야죠. 게다가 이런 선물도 주셨잖아요.”
아델란은 그렇게 말하며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마치 고전 명작의 주인공이 현실로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계획대로군.’
속으로 사악한 웃음을 흘리고 있을 때,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저쪽 티룸에 엘리 님께서 좋아하시는 디저트가 잔뜩 있어요. 함께 가셔요.”
홍보를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나는 그녀와 함께 티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원래대로라면 아무도 없었어야 할 티룸 입구를 성기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설마…….’
나와 아델란은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였다.
아샤벨을 중심으로 어린 영애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그리고 그들 뒤편엔 성기사들이 우직한 자세로 올곧게 서 있었다.
‘어? 저 성기사는 그레이스잖아?’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던 그레이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반갑게 화색을 띠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영애들의 대화는 이어졌다.
“정말 대단하세요, 성녀님. 신관님들도 어려워하셨던 사기를 정화하시다니.”
“출정하셨던 저희 오라버니께서는 성녀님의 정화 의식 장면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하셨어요.”
“저도 들었어요.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지요.”
어린 영애들의 찬사에 아샤벨이 부끄러운 듯 손을 내저었다.
“그, 그 정도는 아닙니다. 정화되길 간절히 바라면 되는 거라서요. 의식이랄 것도 없어요.”
“하지만 간절함만으로는 사기를 정화할 수 없어요.”
“맞아요. 성녀님께선 고위 신관님들도 하기 힘든 일을 행하셨잖아요. 게다가-”
한 영애가 말끝을 늘이며 우리가 있는 곳을 힐끔거렸다.
“슈에츠 공작님의 광증을 정화하셨다면서요.”
“그토록 강력한 힘은 오직 마나의 근원이었던 세계수밖에 없지요.”
세계수를 언급하자 영애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다.
‘흐음. 일부러 공작님 이야기를 꺼냈구먼.’
아샤벨과 친해지기 위해 공작님의 이야기를 꺼내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사교계란 원래 그런 곳이니까.
하지만 눈빛과 말투를 보면 알 수 있다.
모두를 덜덜 떨게 만들었던 슈에츠 공작의 광증은 아샤벨과 함께 있으면 별게 아니다.
어쩌면 슈에츠 공작보다 강한 사람은 아샤벨이다, 하고-
‘내게 말하는 거지.’
어떻게든 깎아내리고 싶은데 공작님과 데미안은 건들 수 없으니, 만만한 게 나였겠지.
내가 화내거나 기죽을 줄 알았겠지만, 오히려 감사했다.
‘저 영애들 중에 바로 신전과 결탁한 가문이 있다는 뜻이니까.’
나는 열심히 떠드는 영애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언제쯤 터질지 모르는 공작님을, 성녀님께선 제어하시는-”
“제어라기보다는.”
그때였다. 아샤벨이 영애의 말을 잘랐다.
“그분의 고통을 줄여드린 거라고 생각해요.”
“네?”
“제가 무슨 힘을 가졌는지, 저도 잘 모르지만 정말 세계수의 힘이라면 그건 제어가 아니라 치유가 아닐까요?”
용기 내 말한 듯, 아샤벨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전 그저…….”
무어라 반박하려던 영애가 당황한 시선을 돌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는 듯 빙긋 웃자 그녀가 분한 얼굴로 고개를 홱 돌렸다.
‘응, 너 일단 내가 눈여겨봤다.’
그나저나 아샤벨은 꽤 소심해 보였는데, 저런 말도 할 줄 알고.
역시 여주인공다웠다.
작게 감탄하고 있을 때, 아샤벨과 눈이 마주쳤다. 흠칫 몸을 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어…….”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곁으로 다가왔다.
“전에 인사드렸었죠. 아샤벨이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엘리 슈에츠입니다.”
갑작스러운 인사에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했다.
“괜찮으시다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가능하실까요?”
“음…….”
나는 조금 난감해졌다.
전부인이자 시누이가 될 사람과 하하호호 이야기하는 그림은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나랑 무슨 할 이야기가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샤벨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작님에 대한 무례를 갚아주었다. 여기서 내빼는 것은 우리에게도 좋지 못 했다.
나는 마지못해 그러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델란은 조금 싫은 기색이었지만 별말 없이 내 옆에 앉았다.
“저, 레이디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많이 들었어요.”
앉자마자 아샤벨이 눈을 빛내며 내게 말을 걸었다.
“새로운 신성석도 발견하신데다 스나우트 령을 살리셨다면서요.”
“네, 뭐 어쩌다 보니…….”
“정말 대단하세요. 새로운 신성석이라니.”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반짝이는 그녀의 눈빛이 마냥 순수해서 마음이 더욱 불편해졌다.
그때 한 영애가 물었다.
“아샤벨 님께서도 신성석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하지만 공자님의 검에 있는 신성석은 봤답니다.”
함께 했던 날들이 꽤 즐거웠는지, 회상하는 아샤벨의 얼굴이 밝았다.
“공작님도 그렇고, 공자님도 정말 대단하신 분이세요. 두 분이 아니었다면 전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지도 몰라요.”
“슈에츠 공자님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오러를 발현하셨다지요?”
“이젠 공작님이시지요. 제국 내 최연소 공작님이라니. 정말 멋지시네요.”
“어머나, 성녀님과 두 공작님의 활약이라니. 정말 대단하세요.”
다른 영애들이 앞다퉈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난 가만히 침묵했다.
방금 전, 들었던 아샤벨의 말에 강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승전 연회 때, 거처를 묻는 황제의 질문에 아샤벨은 데미안을 바라봤다.
그땐 아샤벨이 데미안의 부인인 내 존재를 모르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저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전쟁 때부터 내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뜻인데.’
원작대로 따지자면 이 자리가 그녀의 자리이긴 했으나, 어찌 됐건 현재 데미안의 부인은 나다.
그녀가 데미안에게 마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인 있는 남자의 집에 기거하고 싶다는 생각은…….
‘상식적으로 하기 힘들지.’
나는 여전히 해맑게 웃으며 대화하는 아샤벨을 지그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