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6)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6화(16/241)
* * *
얼마나 달렸을까. 어디선가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렸다.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눈을 뜨자 시야에 검은 머리칼이 보였다.
데미안은 내 어깨에 기댄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데미안의 잠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시선만 움직여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문 밖으로 까마귀들이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쟁이라도 난 것 같아.’
북부는 무척이나 척박했다. 손대면 그대로 빠져버릴 것만 같은 검은 늪과 앙상한 나무들, 까악 까악 울어대는 까마귀까지.
‘너무 음산하잖아!’
마물이 득실거린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몸을 흠칫 떨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벌써 기죽으면 안 돼.”
나는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그때, 까마귀 한 마리가 마차를 향해 날아오며 대답하듯 까악-하고 울었다.
나는 슬그머니 창문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왠지 쟤, 내 말 알아들은 것 같다. 분명 눈이 마주친 것 같은데.
그때였다. 덜컹거리던 마차가 점점 속도를 줄였다. 데미안도 그걸 느낀 듯 잠에서 깨어났다.
“도착했습니다.”
그때 안테가 마차 문을 열며 말했다. 나는 그의 도움을 받아 데미안과 함께 마차에서 내렸다.
‘우와…….’
으리으리한 성이었다.
오는 길에 보았던 까마귀들이 저택 주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는데, 손에 따스한 체온이 닿았다. 데미안이었다.
데미안 앞에선 더더욱 기죽은 티를 내고 싶지 않아, 나는 애써 웃어 보였다.
공작이 입구로 다가가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렸다.
“어서 오십시오, 공작님.”
희끗한 흰머리를 가진, 집사처럼 보이는 사내가 공작에게 반갑게 인사를 올렸다.
“공자님과 함께 오셨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그렇군.”
무심히 지나치려던 공작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집사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전갈 중 한 가지 빠뜨린 게 있다.”
“무엇입니까?”
“겸사겸사 며느리로 삼을 아이도 함께 데려왔다.”
“그렇군요. 겸사겸사 며느리도…… 예?”
고개를 끄덕이던 집사가 당황한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겸사겸사라는 말을 하기엔, 의미가 좀 크긴 하지.’
집사의 당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서, 나는 가만히 침묵했다.
적잖이 놀란 듯 입만 뻐끔거리던 집사가 안테를 바라보았다.
안테도 제게 무슨 대답을 바라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되었다네요.”
“기사님마저…….”
절망스러운 얼굴로 집사가 중얼거렸다.
‘역시 내가 반갑지 않겠지.’
문득, 파양 당했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앞으로 엄마라고 부르렴.”
친절하게 웃던 그녀는, 내가 도둑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태도가 변했다.
“왜 말 안 했니?”
“너…… 아주 뻔뻔하구나.”
그때의 그 눈빛이 아직도 선명했다.
지금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그때의 난 지금보다 어려서, 새로운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어리석게도.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내가 바라는 건 미래를 위한 준비뿐이었다. 따스한 가족 같은 건 바라지 않았다.
그러니 어떤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집사가 곤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를 보필할 하녀가 마땅치 않단 말입니다. 미리 전갈을 주지 그러셨습니까.”
아가씨? 보필할 하녀?
“저…… 혼자서도 잘해요.”
다른 사람까지 필요한 귀찮은 아이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얌전히 있을게요. 다른 사람들의 도움도 필요 없어요. 혼자 할 수 있어요.”
고아원에서도 궂은일을 묵묵히 했다. 혼자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나 자신만만한 나의 말과는 달리 집사의 얼굴은 더욱 흐려졌다.
“……프란츠.”
공작이 낮은 부름에 집사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십시오. 공작님께서 신경 쓰시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공작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공작님, 가신들과 방계 사람들이 공작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테가 공작에게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그새 소문이 새어나간 건가?”
“아마도 그런 듯합니다.”
“듣는 귀가 많으니 나불거리는 입도 많은 게 당연하지.”
공작이 귀찮다는 듯 혀를 찼다.
“나중에 보지. 일단은 쉬어라. 방은 프란츠, 그대가 알아서 마련해 줘.”
“알겠습니다.”
공작은 안테와 함께 멀어졌다.
나는 그 등을 멍하니 바라보며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가신. 방계.
‘모두 데미안의 미래를 위협하는 사람들이야.’
슈에츠 공작이 데미안을 입양하긴 했지만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유대감을 쌓는 건 먼 미래의 일이었다.
즉, 데미안이 겪는 시련은 아직 끝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또 그런 꼴은 못 보지.’
나는 결심하듯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 * *
공작과 아이들이 공작성에 도착하기 전.
한 방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목청을 높이며 싸우고 있었다.
“말도 안 됩니다. 아이를 찾았다니요! 살아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공작님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지 않나.”
“거짓말일 게 분명합니다. 솔직히 마나석 같은 거야 바꿔 치기만 하면 될 일 아닙니까? 더러운 수를 썼을지 어떻게 압니까?”
가신 중 하나가 분노하며 소리쳤다.
오랜 시간 슈에츠 공작을 보필했던 코르비노 자작이었다.
“생각해 보십시오. 10년. 아니, 정확히 따지면 11년이겠군요. 다른 상단도 아니고 클라이더 상단입니다. 그 큰 상단을 저희 쪽에서 운영해 왔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를 놈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크흠…….”
자작의 말에 다른 귀족들이 헛기침을 했다. 겉으로는 말리는척 하고 있었지만, 내심 그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국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던 클라이더 공작이 죽었을 때, 클라이더 공작가의 가신과 방계들은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 명예와 부를 가질 기회가 생겼으므로.
그러나 클라이더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슈에츠 공작에게 일임했다.
그 말은 호시탐탐 클라이더 가를 노리던 방계와 다른 귀족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안 그래도 진흙탕 싸움에 슈에츠 공작가까지 엮이게 되었으니.
때문에 클라이더 상단을 탐낸 귀족들은 상단의 운영에 트집을 잡기 위해 혈안이었다.
그러나 공작은 클라이더 상단을 훌륭하게 이끌었다.
슈에츠가의 방계들은 기뻐했다.
제국 최고의 상단을 이토록 손쉽게 가졌으니 말이다.
이대로 꿀꺽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공작은 기어코 클라이더의 아이를 찾았다.
눈앞에서 모든 걸 잃게 생겼다.
그러니 모든 걸 쏟아부어서라도 부정해야만 했다. 반드시.
“이것도 그동안 많이 참아온 것입니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어요. 저희도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코르비노 자작이 쐐기를 박듯 소리쳤다.
“우리도 뭐…… 자작과 비슷한 생각은 하고 있지만은…….”
“공작님을 이겨낼 사람이 있나. 그분의 뜻을 어길 수 있다면 진작 어겼을 거야.”
귀족들이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흐렸다.
그 태도에, 코르비노 자작이 이를 악 물었다.
‘말이 안 통하는 노친네들 같으니.’
모든 걸 허무하게 잃게 생겼는데, 그런 말이 나와?
코르비노 자작이 쌓아놓은 분기를 터뜨리려 할 때였다.
“무슨 말들이 그렇게 많은지.”
문이 열림과 동시에 에르하르트가 들어왔다.
“바깥에 있던 나도 귀가 아플 정도야.”
에르하르트가 감정 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들끓던 분위기가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가라앉았다.
“……오셨습니까, 공작님.”
“그래. 그대들이 기어코 한 마디씩 던지려는 것 같길래 친히 방문해 주었지.”
잘 벼린 칼날 같은 말이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무마하려던 귀족들이 하나씩 입을 다물었다.
방 안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그제야 에르하르트가 입을 열었다.
“굳이 다른 말로 시간 끌 필요는 없지. 그대들이 들은 대로다.”
“……!”
“아이를 찾았다. 클라이더의 아들이 맞더군.”
귀족들이 침음을 삼키며 애써 웃었다.
“참으로…… 축하드릴 일이군요. 공자님의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데미안이라고 하더군.”
공작은 가볍게 대꾸했다.
“그렇습니까. 참으로 씩씩하고 멋진 이름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그분이 클라이더 가문을 이끄실 분이 되시겠군요.”
귀족 하나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얹었다.
데미안과 슈에츠가가 어울릴 수없다는 듯, 선을 긋는 말이었다.
‘눈 뜨고 못 봐주겠군.’
데미안이 만약 바로 클라이더의 이름을 잇게 된다면 금방이라도 소년을 물어뜯을 작자들이었다.
에르하르트는 열심히 발악하는 그들을 지그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아주 영특한 친구를 사귀었더군. 가문에 도움이 될 것 같아 함께 데려왔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에르하르트는 의자 등받이에 등을 깊게 기대며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나는 두 아이에게 정식 후계 교육을 시킬 것이다.”
“예? 공작님, 그 말씀은…….”
“아이들이 클라이더의 이름을 훌륭히 이을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거라는 뜻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