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60)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60화(160/241)
피나에가 겁먹은 얼굴로 입만 벙긋거렸다.
그러자 데미안이 빙긋 웃었다.
걱정 말고 말해보라는 듯.
하지만 부드럽게 휘어진 눈매 사이로 보이는 벽안은 마치 칼날 같았다.
피나에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저건 완벽한 살기였다.
“고, 공작님…….”
그녀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러나 뒷말을 차마 내뱉을 수 없었다. 공포가 그녀의 목을 한가득 졸랐기 때문이다.
“그, 그것이…….”
“전까지는 잘 말씀하시던데, 더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저는…….”
“방금 전엔 잘만 입을 놀리던데. 혀가 잘리기라도 한 건가.”
데미안이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을 재촉했다.
가면으로 쓰고 있던 부드러운 미소는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였다.
“……공작님, 죄송합니다.”
피나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자 약혼자인 애슈턴이 대신 그에게 사과했다.
엘리는 새로운 신성석을 발견해, 황제에게 직접 면벌받은 몸이었다.
피나에의 발언은 황실에 대한 모욕으로 적용될 수도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모욕에 대한 처벌을 받기도 전에 죽을지도 몰랐다.
그 슈에츠 공작과 현 클라이더 공작이 엘리를 얼마나 끔찍이 여기는지 잘 알았으므로.
“부디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렇게 사과드립니다.”
데미안의 눈이 일순간 가늘어졌다.
지독히도 타인에 대해 무관심한 데미안이었지만, 엘리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누군지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애슈턴 레벨리오.
엘리를 두 번째로 파양했던, 레벨리오 후작가의 영식.
그리고 슈에츠 공작에게 서신을 보내 카르센과의 마찰을 알린 사람.
데미안은 딱히 그것을 고발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을 더 크게 만들려고 했다면 레벨리오 후작에게 알렸을 터.
하지만 후작 영식은 조용히 서신만을 보내왔다. 제 기사에 대한 사과도 함께.
‘아마도, 파양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이겠지.’
현 레벨리오 후작은 뻔뻔한 작자였다. 당장의 쾌락에 미쳐, 앞뒤 분간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
‘최근 노름에 빠져, 영지는 손을 놓고 있다지.’
현 후작저의 상황과 작금의 상황이 겹친다면 후작 영식도 꽤나골치가 아플 터였다.
하지만 그것이 오늘 무례를 눈감아줄 이유가 되진 못 했다.
무엇보다, 그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엘리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죄책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데미안은 그 눈빛을 잘 알고 있었다.
순간 살기가 치밀었지만 이를 악물며 감정을 참아냈다.
그는 오늘 막 작위를 받았다.
큰 소란을 피운다면 사람들은 이유를 찾으려 할 테고, 첼디어 영애가 엘리를 도둑년의 딸이라 말했다는 사실을 제 입으로 내뱉어야 할 터.
‘그건 엘리에게도 좋지 않다.’
판단은 빨랐다. 데미안은 그들을 향해 숙였던 몸을 다시 바로 세웠다.
“흐, 흐윽…….”
정말 죽음을 예상했는지, 살기가 거둬지자 피나에가 사색이 된 얼굴로 휘청거렸다.
그건 애슈턴도 마찬가지였다.
탁, 하고 숨이 트인 기분에 그가 떨리는 호흡을 내뱉었다.
“이 일은 어디서도 발설하지 마십시오.”
“…….”
“그것이 그대에게도 좋을 테니.”
데미안이 그렇게 말하며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저, 저어……!”
그때 피나에가 용기 내 그를 불렀다. 무어라 사과하지 않았다간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에게 용서를 받아야 했다.
“죄, 죄송합니다, 공작님.”
“…….”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됐습니다.”
우뚝 몸을 멈춘 데미안이 그녀를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더없이 상냥한 미소. 순간 피나에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앞으로 영애의 얼굴을 마주하는 건 오늘이 마지막일 테니.”
그러나 그 기대는 너무 쉽게 산산조각 났다.
피나에의 얼굴이 창백해졌으나 데미안은 싸늘하게 얼굴을 굳히곤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우뚝 몸을 멈춘 데미안이 뒤편에 잠시 시선을 주었다.
“숨어 있지 말고 나와.”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기둥 뒤에 숨어 있던 누군가 스윽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공작님은 대단하십니다, 하하.”
토미가 애써 밝게 웃으며 말했다.
주군의 곁을 따라다니는 건 보좌관으로서 당연했다. 황궁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때도 아니고, 엘리의 험담을 하다가 적발된 상황이다.’
데미안을 잘못 건드렸다간 제 목숨마저 위태로웠다. 이건 생존문제였다.
대충 상황이 끝난 후, 잘 따라가다가 티 나지 않게 합류하려고 했건만. 역시 눈치 하나는 빨랐다.
“엘리에겐 말하지 마.”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토미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에게 한번 시선을 둔 데미안이 엘리를 찾기 위해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토미는 그런 데미안의 뒤를 따라가며 생각했다.
‘진짜, 뭐 저런 놈이 다 있지.’
어릴 때도 보통 놈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귀환 후 더 무서워졌다.
예전의 데미안이 으르렁거리며 경계의 태세를 취했다면, 지금의 데미안은 경고 없이 목덜미부터 씹어 버릴 놈이었다.
그를 마냥 순하고 착한 애라고 생각하는 엘리가 걱정될 정도였다.
‘물론 이 생각을 말하기도 전에 난 죽겠지만.’
토미는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제 앞날을 위해 이 비밀은 절대 발설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 * *
피나에 첼디어 영애가 나가고 나서도 영애들은 가십에 대한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을수록 귀족들의 관계를 알 수 있었기에, 제국인이 아닌 아샤벨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고 보니 벨디노아 영애께서는 이번에 라디움 아카데미에 입학하신다고 하셨죠?”
한 영애가 벨디노아 영애에게 물었다.
“네. 학문에 관심이 많아서요.”
“어쩜, 정말 대단하시네요. 라디움 아카데미는 제국에서 제일 뛰어난 아카데미잖아요.”
“남매 두 분께서 나란히 제국 최고 아카데미에 입학하시다니. 벨디노아 백작님께서도 정말 기뻐하시겠어요.”
형식적인 덕담을 내뱉던 그들은, 곧 또다시 흥미로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 그런데 슈에츠 공자비님과 1 황자님께서 만나신 곳이 라디움 아카데미 라면서요?”
“저도 들었어요. 1 황자님께서 직접 콘체터 교수님께 자문을 구하셨다죠? 왜, 그 이혼에 대해서요.”
“그래서 승전 연회 때 그렇게 기 싸움을 벌이셨던 거군요. 저는 싸움이라도 나는 줄 알고 정말 무서웠어요.”
“그런데 정작 본인은 아닌 척하시다니……. 방금도 보셨죠? 성녀님께 되레 지적하는 거.”
“애초에 슈에츠 공자비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누구 때문인데요. 솔직히 호칭 운운할 자격이나 되나요? 막말로 그분이야말로 공자비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잖아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새로운 신성석을 발견한 데다가, 황제 폐하께서 직접 면벌해 주셨으니까요.”
나라의 대소사를 논하는 사람처럼 한숨을 푹 내쉬던 영애가 눈치를 보며 지나가듯 말했다.
“……우리 성녀님이야말로 클라이더 공작님과 더 잘 어울리실 텐데.”
“그야 성녀님이시니까요.”
너나 할 것 없이 내뱉는 말에 아샤벨이 세차게 손을 내저었다.
“제, 제가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돼요.”
그러나 그녀의 볼은 확연히 붉어져 있었다.
사교계에 잔뼈가 굵은 영애들은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성녀는 클라이더 공작에게 마음이 있다.’
새로운 신성석과 기차, 그리고 스나우트 령으로 인해 슈에츠 공자비는 현 제국의 모든 이권을 쥐고 있는 존재였다.
그들도 처음에는 슈에츠 공자비에게 어떻게든 연을 이어보려 했지만, 칼같이 거절당했다. 엘리가 개수작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은 건, 세계수의 힘을 이어받은 성녀밖에 없어.’
공자비가 1 황자와 소문이 도는 데다, 성녀도 마침 클라이더 공작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았으니까.
모두가 아니라고 말해도 사교계는 소문이 사실이 되는 곳.
‘승산이 있다.’
영애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도…… 그분께서는 정말 좋으신 분 같았어요.”
아샤벨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내뱉었다.
“제가 무례를 저지른 건 사실이니까요. 공자비님께서 저를 지적하시는 건 당연해요.”
“어, 어머……. 성녀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하하, 마음도 너그러우시네요…….”
그녀들은 구겨지는 얼굴을 애써 펴며 웃었다.
‘말 그대로 성녀군. 이렇게 쉽게 포기할 줄이야.’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렇게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샤벨도 이만 돌아가려는데, 문득 제 호위를 맡았던 그레이스가 보이지 않았다.
‘어딜 간 거지?’
아샤벨이 티룸 밖으로 나와 주위를 서성였다.
그러다 그레이스와 아델란과 함께 이야기 중인 엘리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너무나 편안한 얼굴로 엘리의 손길을 받고 있었다.
아샤벨은 문득 주먹을 꼭 쥐었다.
분명 안식을 안겨주는 건 저라고 했는데.
데미안 님부터 시작해 슈에츠 님도, 그리고 저 사람들도 모두 그녀만 찾았다.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때였다.
데미안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샤벨은 재빨리 몸을 숨겼다.
데미안을 발견한 아델란과 그레이스도 화들짝 놀라며 엘리 곁에서 떨어졌다.
“엘리, 여기 있었구나.”
“무슨 일 있었어?”
“그냥, 보고 싶어서.”
그러며 눈매를 곱게 접으며 사르르 웃었다.
뒤편의 토미가 끔찍한 광경을 본 사람처럼 경악했으나, 아쉽게도 데미안에게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나도 마침 돌아가려던 참이었어.”
엘리가 손을 뻗자 데미안이 재빨리 상체를 숙여 쓰다듬기 편하도록 자세를 잡아주었다.
제가 다가가기만 해도 인상을 찌푸렸는데. 저리도 편안한 얼굴을 했다.
‘남모르게 이혼 준비까지 했던 사람이 뭐가 좋을까.’
저도 모르게 말아 쥔 아샤벨의 주먹이 잘게 떨렸다.
그사이, 잔뜩 예쁨을 받은 데미안은 엘리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아델란과 토미도 그 뒤를 따랐고, 그레이스만이 몸을 돌려 다시 티룸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아샤벨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레이스가 멈칫하고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그 물음에 아샤벨이 환히 웃었다.
“아니요. 어서 신전으로 돌아가요.”
그러며 몸을 돌렸다.
그러나 뒤를 돈 순간, 표정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황궁을 나와, 신전에 도착한 그녀는 곧장 라미트라 대신관을 찾아갔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대신관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다정한 음성에 그녀가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성기사, 그레이스 님을 제 전속 보좌관으로 붙여주셨으면 해요.”
“……그레이스라.”
라미트라가 가볍게 그 이름을 곱씹었다.
“왜 하필 그 성기사입니까?”
“음…… 그냥요.”
이유를 생각하던 아샤벨이 배시시 웃었다.
“다른 남자 성기사님들은 조금 부담스러워서요.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분께서 호위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같은 성별을 가진 호위가 더 편하다는 것이 그녀의 이유였다.
납득 못할 것은 아니었지만 라미트라의 눈이 일순간 가늘어졌다.
그러다 이내 그가 빙긋 웃었다.
“알겠습니다. 해당 성기사에게 전달하도록 하지요.”
“와아, 감사합니다.”
아샤벨이 밝게 웃곤 인사와 함께 몸을 돌렸다.
복도를 걷는 내내 그녀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성기사는 공자비와 친해 보였지.’
그러니 제 옆에 두면 자연스럽게 공자비에게도 접근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그녀는 제국에 대해 잘 몰랐다.
여러 조언을 참고해 영애들과 어울리기는 했지만,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게다가 베인스 후작님께선 다른 연락도 없으시잖아.’
라미트라 대신관과 황제 폐하께선 베인스 후작이 저를 도와줄 거라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껏 연락 한 통 오지 않았다.
‘좀 더 확실한 연이 필요한데…….’
아샤벨이 초조하게 입술을 물어뜯을 때였다.
“어머나.”
상냥한 목소리에 아샤벨이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입니다, 성녀님.”
황후, 카르티아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