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61)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61화(161/241)
“화,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아샤벨이 뒤늦게나마 예의를 갖춰 그녀에게 인사했다.
“후후, 격식 있는 인사는 되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성녀님께 인사를 드려야 하는 걸요.”
사르르 휘어지는 눈가에는 한점 거짓조차 없어 보였다. 한결 마음을 푼 아샤벨이 따라 웃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그야 성녀님을 뵈러 왔지요.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저와 함께 차를 즐기시는 게 어떻습니까.”
거절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아샤벨은 그러겠노라 말했고, 카르티아는 그녀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거절은 생각지도 않은 듯, 응접실 테이블엔 이미 차와 다과 같은 것들이 한가득 놓여 있었다.
“제국 생활은 좀 어떻습니까?”
“아, 다른 영애님들께서 친절히 대해주셔서요. 열심히 적응하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형식적인 대화들이 어느 정도 이어질 때였다.
“그래서, 그걸로 만족하나요?”
“……네?”
당황한 목소리로 되묻자 카르티아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전보다도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성녀님께서 원하시는 자리는 신전이 아닌 것 같길래.”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지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슈에츠 공자비와 친한 성기사를 호위로 붙여달라 청하셨더군요.”
“그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호위가 필요해서…….”
아샤벨이 당황한 목소리로 애써 부정을 말했다.
“그녀보다 실력이 뛰어난 다른 성기사들은 많습니다. 여자 기사를 찾는 거라면 더더욱.”
“…….”
“솔직해지십시오, 성녀님. 슈에츠 공작과 클라이더 공작이 탐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어진 말에 그녀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카르티아는 붉은 입술을 끌어올리며 웃었다.
‘저리도 티 내는 걸, 제국의 모두가 다 알 텐데. 아닌 척 숨기다니.’
아직 뭘 모르는 아이라 그런가.
‘그래도 휘두르기는 쉽겠어.’
“성녀님께서 원하신다면 그 자리, 가지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어떻게, 말도 안 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그야 그분 마음도 제게 향해있지 않으시고, 또-”
“혹시 그 소문은 들으셨나요?”
아샤벨의 말을 자른 카르티아가 테이블 위에 놓인 장미에 시선을 주며 말했다.
“1 황자와 슈에츠 공자비에 대한 소문 말입니다.”
“아, 예.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아요.”
데미안이 엘리에게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까.
“문제는 만들면 됩니다.”
카르티아의 단언에 그녀의 얼굴이 번쩍 들렸다.
“1 황자가 아카데미의 콘체터 교수에게 혼인 무효에 대한 자문을 구한 건 사실입니다.”
“혼인 무효…….”
“상대방 쪽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진 경우, 혼인무효 소송을 걸 수 있죠.”
“……하지만 슈에츠 공자비께서는 아무 문제도 없으시지 않나요?”
굳이 따지자면 도둑의 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지만, 그건 황제의 이름으로 면벌을 받았다. 억지로 흠을 만드는 건 무리였다.
그러자 카르티아가 말했다.
“다른 문제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면요?”
“……예?”
카르티아가 부드럽게 웃었다.
“혹시 알고 있나요? 왜 클라이더 공작이 슈에츠 쪽에 입양되었는지?”
“……아뇨,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선대 클라이더 공작 부부가 슈에츠 공작을 만나러 오던 중, 사고로 죽었기 때문이지요.”
“…….”
“슈에츠 공작은 그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어요. 그를 만나러 오지 않았다면 사고를 당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처음 듣는 말들에 아샤벨이 놀란 얼굴로 굳어 있을 때였다. 카르티아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사고를 일으킨 건 우리 황실입니다.”
아샤벨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어, 어떻게 그런…….”
“황실의 이익을 위해서였다고만 말해두지요.”
“…….”
“두 공작도 대충 눈치는 챘을 겁니다. 물론, 증거는 없어 제대로 공격은 못 하고 있지만 어쨌든 그 두 사람은 황실을 원수보다도 증오합니다.”
“그런데 만약, 슈에츠 공자비가 그토록 증오하는 황족이라면.”
“…….”
“두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나요?”
충격적인 사실에 굳어 있던 아샤벨은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황실 쪽에서 많은 부담을 져야 하지 않나요?”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카르티아가 단언하며 찻잔을 들어 올렸다.
마테오를 황태자로 만들기 위해 갖은 수를 썼지만, 번번이 슈에츠 공자비 때문에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 이렇다 할 성과도 내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고 1 황자 파비안은 20세, 2 황자 마테오는 18세를 맞이했다.
황태자 임명식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귀족, 신전, 그리고 제국인의 선택을 받은 자만이 황태자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이건 형식적인 말일뿐, 제국인은 투표권이 없었다.
그들을 예외로 친다고 하더라도 신전과 사이가 틀어진 지금의 상황에서, 마테오의 입지는 너무나 불안정했다.
게다가 승전으로 인해 제국 내 슈에츠 공작과 데미안의 명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슈에츠 공자비와 파비안의 스캔들이 터졌다.
이혼하지 않는다고 해도, 귀족들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핑계로 1 황자의 편을 들지도 몰랐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무슨 일이 있어도 제 아들을 황태자의 자리에 앉혀야 했다.
설사 그 일을 위해 자신의 치부였던 레일리의 존재를 밝혀야 한다고 해도 말이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선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이미 많은 걸 포기해 왔고, 사생아 딸이 생기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사, 사생아요?”
“진실인지 아닌지는 성녀님께서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이쪽에서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
“내가 도와드리지요. 성녀님은 슈에츠 공작과 클라이더 공작을, 나는 제국의 권력을 갖고 싶어요.”
“…….”
“그러니 이것은, 일종의 협력이라고 생각해도 되겠군요.”
함께 할 건가요?
카르티아의 물음에 아샤벨이 입술을 벙긋거렸다.
황족을 증오하는 데미안.
그리고…… 황족의 숨겨진 딸인 엘리.
그녀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선 힘겹게 입술을 달싹였다.
“제가…….”
“…….”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죠?”
아샤벨의 눈빛은 카르티아의 욕망과 닮아 있었다.
카르티아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 * *
“그러니까, 뭐라고?”
나는 심각한 얼굴로 통신석을 쥐었다.
“내가, 1 황자님이랑?”
어처구니가 없었다. 누가 누구랑 바람이 나?
“허무맹랑한 말이야.”
〈알지. 아는데 사람들은 진실은 신경 쓰지 않아. 그건 너도 잘 알지?〉
머리가 아파 와서,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았어, 일단 알려줘서 고마워.”
그렇게 통신을 끊은 후,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데미안이 승전 연회에서 왜 그리도 예민하게 굴었는지 이해가 갔다.
‘1 황자랑 아카데미에서 잠깐 마주친 것이 이런 결과를 낳았을 줄이야.’
데미안에겐 바로 해명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수군거릴 게 분명했다.
‘앞으로 최대한, 1 황자와는 만나선 안 되겠어.’
결심한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린 후, 레이쿠스에게 들은 내용을 복기했다.
전쟁 중, 남부 진영의 편지 유통을 담당한 가문이 한 차례 바뀌었다.
그곳은 바로…….
‘레벨리오 후작가.’
나를 두 번째로 파양했던 가문이었다.
후우. 머리가 아파 오는 것 같았다.
‘레벨리오 후작이 나와 데미안의 편지를 빼돌렸다는 건가.’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너무 노골적이었다. 아무리 레벨리오 후작이 멍청하고 염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렇게 티 나는 짓을 할 리가.
‘그게 아니면 배후에 다른 가문이 있다는 소리인데.’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피나에 첼디어.’
아샤벨 옆에서 나를 살살 긁었던 첼디어 영애는 애슈턴 레벨리오의 약혼녀였다.
첼디어 가문은 신전에 호의적인 가문이었으니, 마냥 허무맹랑한 추측은 아니었다.
‘하지만 증거가 없단 말이지.’
인상을 쓰며 깊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노크 소리와 함께 메이가 안으로 들어왔다.
“엘리 님, 말씀하신 신문입니다.”
“아, 고마워.”
신문을 받아 들고 우선 옆에 두렸는데, 믿기지 않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첼디어 가문의 탈세가 적발됐다고?”
믿기지 않아 눈을 벅벅 비볐다.
그냥 탈세도 기함할 일인데, 신전에 기부한다는 명목으로 탈세를 저질렀다니.
‘간도 크다, 간도 커.’
혀를 내두르던 나는 문득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였다.
지금 제국은 승전 소식으로 인해 크게 들썩이고 있었다.
탈세 같은 큰 잘못은 누군가의 고발이 아니고서야 들키기 어려울 텐데.
불쌍하게 됐네. 나는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그럼 첼디어 가문도 아니라는 소리인데.’
신전 쪽에서 자신의 암수를 도운 가문을 버릴 리 없었다.
‘끄응. 일이 더 어려워지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신문을 내려놓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엘리.”
문이 열리고 데미안이 안으로 들어왔다.
“일하는 중이야?”
“음, 일하는 중이긴 한데 거의 다 끝났어. 공작님은?”
“공작님께선 잠시 일이 생겨서 자리를 비우셨어.”
“그렇구나. 너는 무슨 일이야?”
“그냥.”
내 물음에 데미안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보고 싶어서.”
그러며 나를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는 뜻이었다.
익숙한 제스처였지만, 나는 멈칫했다.
데미안은 이제 성인인 데다가 공작위까지 이어받은 몸이다. 부인이라고 해도 다 큰 성인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뭔가…… 좀 그래.’
다 같이 있을 땐 괜찮지만, 단둘이 있으면 이상하게 긴장이 된다고 해야 하나.
내가 머뭇거리자 데미안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날 바라봤다.
“안 해줘?”
“그……..”
나는 말끝을 늘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자 데미안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기다란 속눈썹이 아래로 늘어뜨린 채, 붉은 입술을 오물거렸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분홍빛으로 물든 눈가가 자칫 처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순간, 나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느릿하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냉큼 고개를 들어 손바닥 아래에 머리를 대었다.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 눈매를 접으며 배시시 웃기까지 했다.
‘그래. 전쟁에서 험한 말을 배워왔다고 해도 원래 데미안은 애교가 많은 편이었지.’
데미안은 아무렇지 않은데, 나 혼자 의식하는 게 더 이상했다.
나는 그러려니 생각하며 데미안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데미안의 커다란 등 뒤로 보이지 않는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