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64)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64화(164/241)
그때였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진다 싶더니, 벌컥 문이 열렸다.
첼디어 백작이었다.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후, 후작님!”
“이게 누구야, 첼디어 백작 아니신가. 여기까진 무슨 일이지?”
“제발, 제발 도와주십시오!”
첼디어 백작이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럽게 세금 감사가 열렸습니다. 누가 밀고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규모로 봐서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겁니다.”
그가 연거푸 바닥으로 고개를 숙였다.
“신전의 기부금을 명목으로 탈세를 저지르긴 했지만, 그리 큰돈은 아니었습니다. 신전에 잘 말씀드린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겁니다!”
“…….”
“제, 제 딸 피나에는 애슈턴 님의 약혼녀가 아닙니까. 부디 두 귀애들을 생각해서라도…….”
첼디어 백작이 애원하듯 말했다.
레벨리오 후작은 신전과 우호적인 관계였다.
그러니 그가 잘 말해준다면 이 일도 그냥 넘어갈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역시 그랬군. 들은 대로였어.”
레벨리오 후작이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 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나.”
“……후작님. 설마, 다 알고 계셨습니까?”
대체 언제부터?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후작을 바라봤다.
“사람은 착하게 지내야지. 신께서도 그걸 바라실 텐데.”
후작이 쯧쯧 혀를 찼다.
약혼으로 이어졌던 그들의 동맹은 더 이상 없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
애슈턴도 이건 아니라는 듯 소리쳤으나 후작은 뜻을 거두지 않았다.
“이만 나가줬으면 좋겠군, 첼디어 백작.”
“이러실 순 없습니다, 후작님. 후작님!”
첼디어 백작이 후작가의 기사들에게 끌려가며 애처롭게 소리쳤다.
그러나 레벨리오 후작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술병을 기울일 뿐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애슈턴은 주먹을 꽉 쥐었다.
무통보 세금 감사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제국이 승전의 기쁨에 취해 있는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세금 감사라니.
‘누가 밀고하지 않는 이상은…….’
애슈턴은 문득 숨을 삼켰다.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데미안 클라이더.
전쟁 영웅이자 현 제국 내 최연소 공작.
그자밖에 없었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았다.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제 아버지의 태도 때문이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탄식을 내뱉던 애슈턴이 아버지를 뒤로한 채 밖으로 나섰다.
당장은 제 약혼녀, 피나에 첼디어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애슈턴이 어찌할 바 모르고 동동거리던, 첼디어 쪽 시종을 붙잡았다.
“첼디어 영애는 어디 있지? 함께 온 것이 아닌가?”
“그, 그것이…….”
머뭇거리던 그녀가 겨우 답했다.
“세금 조사가 나오기 전, 갑자기 저택을 떠나셨습니다…….”
“그녀가 갑자기 사라졌단 말인가? 다른 말도 없이?”
“그, 말씀은 남기셨습니다.”
“무엇이지?”
그의 물음에 시종이 말했다.
“그분을 만나 뵈러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외에 다른 말은 없었나?”
“예…… 없으셨습니다.”
애슈턴은 골치 아픈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분이라니. 너무 모호한 말이지 않은가.
‘그녀가 그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문득 애슈턴의 얼굴에 깨달음이 스쳤다.
그가 곧장 몸을 돌려 마차에 올라탔다.
“신전으로 가지.”
이윽고 마차가 출발했다.
멀어지는 마차를 응시하는 시선이 어둠 속에서 잠시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 * *
나와 데미안은 기차를 통해 빠르게 스나우트 령까지 도착했다.
천연 마나를 한가득 머금은 스나우트 령은 1년에 두 번씩 수확제를 열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 시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사람들이 많네.”
데미안이 거리를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어.”
그러며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데미안, 너는 어딜 가도 잘 보일 것 같은데…….”
남들보다 한참은 큰 키와 예쁜 얼굴 때문에 많은 인파 속에 섞여 있어도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내가 무서워서 그래.”
그 말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데미안은 사람 많은 곳을 어릴 때부터 무서워했으니까.
“엘리, 여기.”
“응?”
그때, 데미안이 반대편 손을 들어 올렸다.
장갑을 낀 큼지막한 손이 뺨에 닿음과 동시에, 그가 낯을 가까이했다.
내 머리 위로 그늘이 지자, 나는 우뚝 굳고 말았다.
“속눈썹이 붙었어.”
“……아.”
나는 바보처럼 내뱉고 말았다.
‘나 진짜 왜 이래.’
데미안은 아무렇지 않은데, 왜 나만 이렇게 긴장하는 거지? 손만 닿아도 파드득 떠는 건 데미안 쪽이었는데.
이상하게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나는 보란 듯이 힘을 줘 데미안의 손을 잡았다.
“……얼른 가자.”
질질 끌어당기는 몸짓이었는데도, 뭐가 그리 좋은지 데미안은 빙글빙글 웃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데미안과 함께 새로 만들어진 학술원으로 향했다.
완성된 건물은 예상보다 훌륭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우리는 이곳을 제뮈엘 살롱 분점을 내겠단 명분으로 건물을 지었다.
그래서 건물 외향은 무척이나 세련되어 보였다.
‘드디어 완성됐구나.’
가슴 깊은 곳부터 뿌듯한 감정이 차오르는 듯했다.
어릴 때부터 난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교육시설을 만들고 싶었다.
제뮈엘 살롱도, 기차 사업도, 새로운 신성석을 유통하는 것도 전부 재밌었지만.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꿈이 눈앞에 있었다.
‘물론 이혼 후의 목표라, 데미안과 함께 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
슬쩍 시선을 흘려 옆을 보자 데미안이 건물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때, 데미안?”
“……살롱으로는 보이지는 않는데.”
“맞아. 여긴 내 꿈이야.”
“응.”
나는 뒷말은 잇지 않은 채 시선을 들어 건물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어른이 된다면, 그래서 혼자 독립하게 된다면 꼭 만들어보고 싶었거든.”
“…….”
“이것만 보고 달려왔어.”
“…….”
“실현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뻐.”
나는 데미안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데미안이 입술을 달싹였다.
“……꿈이 뭔지 물어봐도 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꿈은-”
그때였다.
“어머나!”
반가운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반가운 얼굴과 그렇지 못한 얼굴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여기서 다시 만나 뵙네요!”
그레이스에게 다정히 팔짱을 낀 채로, 아샤벨이 우리를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성녀님.”
무척이나 아름다운 미소였지만,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었다.
그레이스도 당황한 듯 입만 뻐끔거렸다. 우릴 만날 줄은 정말 예상도 못 했다는 듯이.
“남부 신전에 일이 있어서 잠깐 방문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정말 기뻐요.”
천진난만한 미소와 함께 아샤벨이 우리 곁으로 다가올 때였다.
“스나우트 령은 남부 신전과 거리가 있는 곳인데.”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그녀가 멈칫했다.
“이곳까지 친히 귀한 발걸음을 해주셨군요, 성녀님께선.”
데미안이 웃으며 말했다.
다정한 목소리에 가시가 박혀있는 듯했다.
잠시 당황하던 아샤벨은 이내 밝게 웃었다.
“공자비님께서 성공적으로 복구하신 영지를 꼭 보고 싶었거든요.”
그러다 아차하곤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많은 분들께서 제가 세계수의 힘을 가졌다고 말씀해 주시지만…… 정작 저 자신은 제 힘을 잘 알지 못해서요. 그래서 최대한 많은 영지를 둘러보며 마나를 느끼려 하고 있답니다.”
여러 곳을 둘러보며 자연에서 발생한 마나와 세계수의 힘을 익히려고 했다는 말엔 허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럴듯한 핑계네.’
“저어, 그래서 말인데요…….”
그때, 아샤벨이 망설이다 물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잠깐 시간을 나눠주실 수 있으실까요?”
“네?”
“저번에 공자비님께 실례를 저지르기도 했고…… 대화도 잘 나누지 못해서…… 무척 아쉬웠거든요.”
아샤벨이 소심하게 손가락을 꼬물거렸다.
수줍게 붉어진 뺨과 태도만 보면 정말 나와 함께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흐음.’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눈을 굴려 주위를 살폈다.
사람들 몇몇이 흥미로운 눈으로 우리가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재 스나우트 령은 수확제로 인해 제국의 여러 상인들이 몰려있었다.
스나우트령이 제도와 동떨어진 곳이라고 해도 성녀를 모를 리 없었다.
신문에서만 볼 수 있었던 성녀가 잘생긴 성기사와 함께 모습도 숨기지 않은 채 저리 당당히 돌아다니고 있으니 시선이 갈 수밖에.
‘게다가 데미안과 아샤벨에 대한 소문도 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내가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간 공자비가 성녀를 질투했다고 수군거릴 게 뻔했다.
‘거절하면 거절했다고 욕하고, 승낙하면 자존심도 없다고 욕하겠지.’
무엇을 하든 비난은 피해 갈 수 없는 상황이다.
‘아샤벨도 그것을 알고 온 것일 테고.’
그래도 나름 계획을 짜 놓았구나.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럴까요, 성녀님.”
“와아, 정말요?”
아샤벨이 기쁜 얼굴을 하자 웬만해선 표정을 좁히지 않는 데미안이 미간을 좁혔다.
“잠깐, 엘리-”
“데미안. 우리, 데이트는 조금 나중으로 미루자.”
나는 그런 데미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날씨가 너무 좋잖아. 성녀님이랑 함께 즐기면 더 좋을 거야.”
그러자 멈칫하던 그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푸른 눈동자가 나를 한번, 뒤편의 하늘을 한번 힐끔거렸다.
이내 그가 빙긋 웃었다.
“부인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러곤 잡고 있는 손을 들어 내 손등에 짧게 키스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나도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내 표정이 보일 텐데도, 데미안은 다시 손등에 짧게 입 맞추었다.
“부인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건 정말 아쉽지만, 기회는 많으니까요.”
더없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존칭이라니.’
그의 말대로 꼭, 진짜 부부가 된 것 같았다.
잠시 입을 뻐끔거리던 난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가다듬으며 아샤벨을 바라봤다.
“둘러보고 싶은 곳이 있으신가요?”
“아, 기차가 너무 궁금했어요. 여기 올 때는 이동 스크롤을 써서…….”
내 물음에 아샤벨이 밝게 웃으며 대답했지만, 나는 보았다.
데미안이 내 손등에 입 맞춘 순간, 흔들리던 그녀의 눈동자를.
그것에 시선을 뺏긴 그녀는 보지 못한 듯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스나우트 령을 메운 하늘에 까마귀들이 많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