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66)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66화(166/241)
자세히 보니 알 수 있었다.
저것은 까마귀였다.
‘까마귀가 왜……!’
생각하던 피나에의 눈이 곧 크게 뜨였다.
한때 사교계엔 이런 소문이 돌았다.
슈에츠 공자비가 까마귀를 잔뜩 키우는데 그 까마귀의 식사로 살아있는 인간을 먹이더라, 하는-
“영애!”
그때,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붙들었다.
익숙한 음성. 피나에가 멈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애슈턴 님……?”
어둠 속 인영, 그러니까 피나에 첼디어가 믿기지 않는 얼굴로 제 약혼자를 올려다보았다.
“여, 여긴 어떻게…… 서, 설마 다 보신…….”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만행을 저지르신 겁니까!”
애슈턴이 기가 찬 목소리로 내뱉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슈에츠 공자비를 공격하다니요!”
“고, 공격한 게 아닙니다!”
당황한 피나에가 애써 부정했다.
“저는 그저, 그저 잠시만 시간을 벌려고…….”
변명을 말하던 그녀의 얼굴이 천천히 흐려졌다.
그래. 잠시만 시간을 벌려던 것뿐이었다.
“……시간을 벌어야 해요.”
“영애.”
“그래야 우리가 산다고요. 그분께서 분명 그리 말씀하셨어요. 이 일만 성공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그분의 피만 있으면, 그러면…….”
피나에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이지를 잃은 눈동자는 그녀가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지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일어난 세금조사의 원인이 데미안이라고 생각했다.
신전의 이름을 빌려 돈을 세탁한 사실이 밝혀진다면 모든 게 끝장이었다.
이 일을 진정시켜 줄, 하다못해 시간이라도 벌어줄 대상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녀는 신전으로 향했다. 아샤벨의 부탁이라면 조사를 멈춰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우연히 황후를 만나, 그녀에게 조언을 들었다.
클라이더 공작이 아무런 일 도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묶어둘 유일한 방법이 있다고.
‘공자비를 다치게 하는 것.’
물론 이 일을 들킨다면 세금 조사 수준으로 끝나지 않을 테지만.
스나우트 령은 현재 수확제로 인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내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터.
게다가 그냥 밀친 것뿐이잖아.
많이 안 다쳤을 거야.
게다가 성녀님께서 함께 계시니, 상처쯤은…….
“……괜찮을 거야. 그래야만 해. 반드시…….”
그녀가 반쯤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성을 잃은 상태였으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애슈턴이 억눌린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여길 빠져나가야 합니다. 그대가 한 일이 밝혀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애슈턴이 피나에의 손목을 잡아 이끌 때였다.
까아악! 까아악!
문득, 까마귀들이 시끄럽게 울음 울기 시작했다.
애슈턴이 반사적으로 보호하듯 피나에를 끌어안은 순간이었다.
“쥐새끼가 움직일 만한 구멍은 다 막아놨는데.”
소름 끼치도록 낮은 저음이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본능적인 살기에 두 사람이 흠칫하며 몸을 돌렸다.
“아직도 살고 싶어 발악하는 꼴이 볼만하군.”
느릿하게 말끝을 늘이며,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애슈턴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디로 도망가려는 건지 이야기나 한번 들어볼까.”
“…….”
“혀가 붙어 있을 때 말하는 게 좋을 거야.”
궐련을 손에 든 슈에츠 공작이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얼굴로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어떻게……!’
피나에는 당황해 주춤거렸다.
클라이더 공작이라면 몰라도 슈에츠 공작이 제 계획을 눈치챌 거라곤, 전혀 조금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공작님, 이건…….”
애슈턴이 뒤늦게 변명하려고 했지만, 공작은 궐련을 저 멀리 내던지는 것으로 말을 대신했다.
그녀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이 돌아온 골목, 반대편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든 도망갈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 사이에 숨는다면 그 슈에츠 공작이라고 해도 찾기 힘들터였다.
하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아.’
누군가 목전에 검을 드리운 것처럼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 순간, 애슈턴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계승식 날, 공자비의 험담이 들켰을 때, 애슈턴은 멀어지는 데미안을 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나마 슈에츠 공작님께 들키지 않은 게 다행이겠군요.”
“그나마라니요. 전 지금도 너무 무서운데…….”
피아네는 덜덜 떨며 그렇게 말했지만, 애슈턴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이젠 알 수 있었다.
사냥법을 잊었던 맹수에게 본능을 깨우쳐준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을.
피나에는 입 밖으로 작은 탄식조차 내뱉을 수 없었다.
* * *
탈룸은 당황한 얼굴로 끌려가는 애슈턴과 피나에를 바라보았다.
분명, 은인이 이렇게 말했었다.
피나에가 저를 해치면, 그녀를 뒤쫓아 잡아 달라고.
한데 붙잡기도 전에 슈에츠 공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피나에의 암수를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공작이 데려가는 것이, 일적인 면에서는 더 수월할 거야. 인간으로 변하지 않아서 다행이군.’
그가 그렇게 안심하고 있을 때.
궐련을 피던 슈에츠 공작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은 알 수 없는 위압감이 풍겼다.
설마 수인이라는 것을 알아본 것일까. 슈에츠 공작이라면 그럴지도 몰랐다.
그가 수인이라는 것이 들키면 저도, 소수 일족의 피가 흐르는 엘리도 위험해진다. 탈룸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에르하르트는 다시 시선을 내렸다.
언뜻 보면 무심한 시선이었으나…….
어쩐지, 탈룸의 눈에는 보고도 못 본 척해주는 것으로 보였다.
설마.
얼떨떨하게 서 있는 탈룸과 그의 일족을 뒤로한 채, 에르하르트의 마차는 앞으로 달려갔다.
* * *
스나우트령에 있는 의원에서 간단한 응급 처치를 받은 엘리와 데미안은 곧장 공작저로 돌아왔다.
“세상에, 공작님, 엘리 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괜찮으신 거예요?”
두 사람이 들어가자마자 사용인들이 놀란 음성을 터뜨렸다.
허둥거리는 그들을 뒤로한 채, 메이는 차분히 깨끗한 물수건을 준비해 왔다.
그러곤 부산스러운 다른 사용인들을 데리고 방을 나섰다. 두 사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여기 앉아.”
엘리를 먼저 자리에 앉힌 데미안이 그녀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엘리는 흠칫하며 몸을 뒤로 물렸다.
넘어지면서 발목에 조금 무리가 가긴 했지만,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데미안에게 발을 내어준다는 것이 민망했다.
치료가 가장 급한 게 데미안이기도 했고.
“내, 내가 볼게. 다른 주치의도 있고, 나보다 네가 더…….”
“내가 걱정돼서 그래.”
“…….”
“내가…… 그래야 안심할 것 같아서.”
그러나 데미안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녀를 올려다보는 데미안의 얼굴이 너무나 어두웠다.
이런 억눌린 표정을 본 건 처음이라서,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 했다.
그사이,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긴 데미안이 탄탄한 허벅지 위에 엘리의 발을 올렸다.
그러곤 붉은 입술로 장갑 끄트머리를 물고 벗었다.
핏줄이 툭툭 불거진 하얗고 예쁜 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으로는 엘리의 종아리를, 다른 한 손으로는 엘리의 발을 조심스레 감쌌다.
“여긴 어때. 아파?”
“……안 아파.”
그녀가 억눌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기는.”
그러자 이번엔 데미안의 엄지가 그녀의 발목, 오목한 부분을 느릿하게 눌렀다.
“아…….”
엘리는 모르게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찌릿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통증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조금 부은 것 같은데.”
여전히 그녀의 발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데미안이 미약하게 인상을 썼다.
하지만 그녀의 발은 저보다 한참 작은 데다, 다른 여자의 발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정말 부은 것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괘, 괜찮다니까. 그보다 네 몸을 먼저 봐야 할 것 같아.”
민망함에 엘리는 다시 몸을 뒤로 물리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 했다.
데미안이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데미안.”
“다시는.”
“…….”
“다시는 이런 일 하지 마.”
“…….”
“네가 다치면서까지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차라리 나를 이용해.”
“…….”
“네가 다치면, 그때마다 난…….”
데미안은 말을 이으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엘리는 원하는 바는 반드시 쟁취했다. 설사 제가 다치더라도, 오히려 기회로 여기며 기뻐했다.
그때마다 데미안의 속은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물론 엘리가 원해서 다친 게 아니라는 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상황이, 그녀를 공격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을 뿐이다. 그건 절대 엘리의 잘못이 아니었다.
게다가 엘리는 반격할 기반을 다져 놔, 무조건 되갚아 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다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건가.
‘이럴 거면 차라리…….’
절대 내뱉을 수 없는 생각이 한가득 쌓였다.
그가 평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을 억누르고 사는지 엘리가 알아서는 안 되었다.
참아내려는 듯 그의 목울대가 작게 일렁였다.
그 대신,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뼈대 굵은 손목이 그녀의 발목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러나 저를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한없이 순종적이어서, 엘리는 자신의 발목이 붙잡혔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 했다.
“미안해…….”
그때, 엘리가 시선을 떨어뜨리며 말했다.
“나 때문에…….”
그녀의 눈가가 죄책감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데미안은 다시 정신을 차렸다.
“……당분간 무리하지 않는 게 좋겠어. 일단 좀 쉬자.”
치미는 욕구를 억지로 참아낸 데미안이 몸을 일으켰다.
그의 검지가 발목을 부드럽게 쓸다가, 이내 떨어졌다.
뜨거운 온기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아, 엘리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그러다 뒤늦게 데미안을 붙잡았다.
“환부…… 보여줄 수 있어?”
“……아직 통증은 없어. 환부도 다 나았고.”
세계수인지 뭔지, 그 빌어먹을 힘 덕분이었다고 덧붙이고 싶었지만 데미안은 굳이 내뱉지 않았다.
“그래도 보여줘. 보고 싶어.”
“……나 때문에 다친 거잖아.”
그녀 때문이 아니었다.
램프를 밀쳐낸 것도, 화상을 입은 것도 모두 제 선택이었다.
램프는 그녀의 얼굴, 바로 위에 위치해 있었다. 제가 밀치지 않았다면 그대로 화상을 입었을 것이다.
그러니 제 피부가 일그러지는 일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맑은 녹안이 죄책감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성녀가 치유를 해주었으니, 환부도 징그럽지 않겠지.’
어찌 됐건 팔을 보여주면 그녀도 자책을 덜고 안심할 터였다.
“하지만 엘리.”
“응?”
“환부를 보려면 셔츠를 벗어야 할 텐데.”
“…….”
“그래도 괜찮겠어?”
그는 엘리가 스나우트에서 의원에게 상태를 확인받을 때, 급히 구한 셔츠를 입고 있는 상태였다.
저 셔츠를 벗으면 고스란히 맨몸이 드러날 터.
그의 물음에 엘리는 입술을 한번 달싹이다 겨우 대답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냥.”
“…….”
“신경 쓸 것 같아서.”
옅게 미소 지은 그가 천천히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이윽고 셔츠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넓은 어깨와 근육으로 가득 짜인 탄탄한 몸이 시야에 들어왔다.
입을 뻐끔거리던 엘리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엉뚱한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팔 좀 보여줄래?”
데미안은 얌전히 팔을 내밀었다.
아샤벨 덕분인지 피부는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통증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었지…….’
그녀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환부를 쓸었다.
데미안은 그 시선을 놓치지 않고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화상 덕분에 엘리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나 하다니.’
역시 미친 걸까. 데미안이 스스로에게 조소를 흘렸다.
문득 엘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흉측한가 싶어 그가 팔을 내리려고 할 때였다.
“잠깐만.”
엘리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종을 울렸다.
대기하고 있던 사용인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혹시 공작성에 끝이 세 갈래로 나뉘어 있고, 살짝 갈색빛 도는 풀이 있을까?”
다소 뜬금없는 물음에 사용인들의 얼굴에 물음표가 떴다.
전혀 모른다는 눈치였다.
엘리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이럴 때 그게 있으면 좋을 텐데.’
그녀는 어릴 때부터 화상에 익숙했다.
그래서 화상 입은 환부에 어떤 약초가 유용하게 쓰이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알음알음 알려진 민간요법이라 정식적으로 의술을 배운 의원들은 잘 모르는 풀이었다.
하지만 워낙 어릴 때이기도 했고, 풀을 구해준 사람이 자주 왕래했던 이모였던지라 풀의 이름은 몰랐다.
그때였다.
“리크레 풀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침묵하던 메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리크레 풀?”
“엘리 님께서 말씀하신 특징이 제가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해서요. 물론 시든 잎으로 보여서 구별이 좀 어렵긴 하지만 화상에 유용하단 것까지 똑같습니다.”
그녀는 물론 아닐 수도 있다며 덧붙였지만, 가능성은 있었다.
그게 있다면 데미안의 흉터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엘리의 얼굴이 밝아지자 메이가 말했다.
“시간만 주신다면 구해오겠습니다.”
“부탁해도 될까?”
메이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방을 나섰다.
‘그게 있으면 조금 진정될 거야.’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했는지, 엘리는 다시 데미안의 환부를 살폈다.
아샤벨 덕분에 한 차례 치유되었다고 해도 환부는 환부였다.
퍽 징그러울 법도 하건만, 상처를 확인하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화상 입은 적 있어?”
그래서 데미안은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 물었다.
“응.”
엘리가 대답했다.
“우리 엄마.”
“…….”
“얼굴이랑 목 쪽에 화상을 입으신 적이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