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67)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67화(167/241)
데미안은 어머니가 화상을 입었다는 엘리의 말에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좀처럼 알기 힘들었다. 그녀가 언급하지 않기도 했고, 사람들도 구태여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상이라.’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제국을 뒤흔들 정도로 큰 도둑이었다. 원활한 추적을 위해서 신체적 특징을 알렸을 터인데.
보물을 훔쳐 갔다고만 알려졌을 뿐, 그 외 다른 건 알려진 사항이 전무했다.
도둑의 얼굴을 모르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일부러 알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째서지?
데미안의 눈빛이 생각으로 깊어질 때, 엘리는 설명을 이어갔다.
“오래된 흉터여도 가끔씩 통증이 느껴질 때가 있대. 우리 엄마는 그 풀을 갈아서 환부에 올려놓으면 괜찮아진다고 하셨어.”
그러니까 너도 괜찮을 거야.
안도하며 옅게 웃던 엘리의 표정이 다시 천천히 흐려졌다.
‘애초에 좀 더 경계를 했어야 했는데.’
피나에가 황궁에서 황후를 만났다는 사실은, 레이쿠스 덕분에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샤벨의 동행도 승낙했다. 필연적으로 피나에가 접근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게다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무슨 일이 일어나면 탈룸과 그의 일족이 한꺼번에 잡아올 수 있게끔 했다.
하지만, 데미안이 저를 대신해 몸을 던질 거라곤 생각지도 못 했다.
엘리가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해, 데미안. 나 때문에 너까지 다쳤어.”
익숙한 죄책감이 그녀를 옥죄었다.
“다 나 때문이야.”
그녀가 치맛단을 움켜쥘 때였다.
데미안이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장갑은 벗은 터라 굳은살 박인 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저보다 한참 작았던, 말랑말랑한 손이 아니었다.
어느새 훌쩍 자라 버린 사내의 손이었다.
“엘리, 네 잘못이 아니야. 이건 내 선택이었어.”
“…….”
“무엇보다, 널 공격한 건 다른 사람들이야. 그건 네 잘못이 될 수 없어.”
그가 손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그러니 자책하지 마. 넌 이미 많은 걸 했어.”
“…….”
“내가 너의 증명이야.”
그 말에 엘리는 시선을 들어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그냥 달래기 위해 내뱉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데미안의 진심이며 자신이 평소 다른 사람들에게 해왔던 말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녀 자신에게는 한 번도 해준 적이 없는 말이기도 했다.
그녀는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성과를 내서 증명하는 것만큼 쓸모를 인정받는 건 없었다.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상처 입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익숙했고 면역이 되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고 가만히 숨죽여 자신의 흔적을 지우던 11살 소년은 어엿한 성인으로 자라, 제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그녀의 증명이라고.
그 순간 파도처럼 요동치던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엘리의 혼란이 조금씩 사그라들자 데미안이 그녀의 머리를 귀 뒤로 정리해 주며 물었다.
“이제 좀 진정됐어?”
“응. 고마워.”
“나는 네가 하는 일이라면 다 괜찮아. 하지만 오늘 같은 일이 없도록, 앞으로는 무슨 계획인지도 말해줬으면 좋겠어.”
“……응.”
옅게 미소 짓던 엘리의 웃음이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정면에 보이는 그의 탄탄한 상체 때문이었다.
순간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분명 괜찮아졌다 생각했는데, 다시 마음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데미안과 눈을 마주할 수도, 그렇다고 그의 몸을 바라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맞잡은 손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우선 의심 가는 사람이 있었어.”
데미안은 편히 말해 보라는 듯 그녀의 손을 토닥였다.
평소 같으면 시선을 피하지 못하도록 갖은 핑계를 댔겠지만, 그녀의 혼란이 저를 남자로 느끼는 데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기에 말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종전 1년 전, 남부 진영의 연락을 담당했던 가문을 알아냈어.”
“어딘데?”
부드러운 빛을 띠었던 그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레벨리오 후작가.”
“하지만 레벨리오는…….”
“너무 티 나지. 나도 알아. 그래서 그들과 약혼으로 얽힌 첼디어가 빼돌린 게 아닐까 싶었어. 첼디어는 신전과 사이도 좋으니까.”
엘리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첼디어는 최근 탈세로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야. 신전과 우호적인 관계라면 조사를 나올 리 없어.”
승전 이후, 아샤벨의 등장으로 제국은 전에 없는 부흥기를 맞이했다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에 황실과 신전은 대륙 전쟁 때 구금된 죄인들에 대한 특사(特救)도 고려하고 있을 정도였다.
“누가 첼디어를 고발한 걸까?”
“……글쎄.”
데미안은 구태여 말을 보태지 않았다.
첼디어의 뒷조사는 꽤 오래전부터 진행됐다. 그들이 레벨리오와 약혼으로 얽혀 있었고, 레벨리오는 엘리를 두 번째로 파양한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데미안이 두 가문을 주시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의 탈세 정보를 신전 쪽에 은밀히 흘리긴 했지만, 이렇게 대대적인 조사에 나설 거라곤, 솔직히 데미안도 예상치 못 했다.
첼디어가 세금 조사를 받는다면 약혼으로 이어진 레벨리오가 신전 쪽에 부탁을 할 것이 분명했다.
해서 그들이 혼란을 겪는 틈을 타, 두 가문과 신전의 결탁을 밝혀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 신전의 행동은.
‘마치 고발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 같지 않은가.’
레벨리오와 첼디어를 버림으로써 무슨 이득을 얻으려는 것이지?
‘단순히 엘리를 공격한 것은 세계수의 힘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 아니었나?’
대체 누가, 어디까지 계획하고 있단 말인가.
그의 눈이 가늘어질 때였다.
“하면 물어보면 될 일이지.”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문가에서 들려왔다.
“공작님!”
에르하르트가 무표정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달랐다.
그저 지그시, 그러나 집요하게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윽고 다가온 에르하르트가 억눌린 얼굴로 엘리를 바라보았다.
“공작님, 저-”
“또 네 몸을 던지려 했지.”
에르하르트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내 속이 얼마나 타들어가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까만 재로 변한 심장을 보여줘야 직성이 풀릴까.”
“……죄송해요.”
“…….”
“죄송해요, 공작님.”
엘리는 고개를 숙였다.
늘 같은 사과였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자신이 다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상처 받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시는 이런 일 만들지 않겠다고 내게 약속해라.”
“…….”
“어서.”
엘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렁이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에르하르트가 엘리를 끌어안았다.
그의 몸이 얕게 떨리고 있었다. 소중한 것을 잃었다가 다시 되찾은 사람처럼.
이런 동요는 처음이라, 엘리는 멍하니 굳어 있었다.
“엘리는 괜찮습니다.”
그때 데미안이 말했다.
“주치의도 잠시 놀란 것뿐이라고 했으니, 며칠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
“…….”
“그러니 공작님께서도 걱정 마시고-”
그때였다.
에르하르트가 성큼성큼 다가가 데미안의 팔을 붙잡았다.
강한 악력에 데미안의 팔이 고스란히 밖으로 드러났다.
에르하르트의 눈빛이 한층 서늘해졌다.
“그럼 이건.”
“…….”
“이건 왜 설명하지 않는 거지.”
데미안은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의 상처는 엘리가 다친 것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보고조차 잊은 것이다.
“……죄송합니다.”
“사과를 듣기 위해 물은 것이 아니다.”
“…….”
“너희가 서로를 끔찍이 생각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나부터 지켜야 다른 사람도 지킬 수 있다.”
“…….”
“무슨 말인지 알겠지.”
에르하르트의 말에 데미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에르하르트는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엘리는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데미안은 작위를 이은 공작이었다. 경험이 없는 그를 위해 조언을 해 줄 수는 있지만 꾸중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같은 공작이기 전에 아버지였기에, 이런 질책으로 끝난 것이다.
엘리는 옅게 웃었다.
제가 많은 걸 비틀었지만, 그래도 두 사람이 더할 나위 없는 부자 사이라는 건 어긋나지 않은 것 같았기에.
“사위는 다 혼냈고…….”
그때, 에르하르트가 말끝을 늘리며 시선을 내렸다.
눈이 마주쳤다.
에르하르트의 눈빛이 더없이 싸늘해져 있었다.
“이젠 딸을 혼낼 차례군.”
“……네?”
엘리가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에르하르트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 딸 입으로 직접 보고를 들어볼까.”
그가 다리를 꼰 채, 삐딱한 얼굴로 엘리를 바라봤다.
무뚝뚝하게나마 조언하던 어른은 없었다.
지금 그의 모습은 사고뭉치 아이를 둔 하나의 보호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고뭉치는…… 나인가?’
불길함을 느낀 엘리가 눈치를 살피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무지막지하게 혼날 것이란 걸 본능적으로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러자 공작이 고개를 까딱였다.
“아직 잔소리는 시작도 안 했는데, 어딜 가는 거지.”
“데, 데미안이 말씀드린 것과 같아요. 게다가 저 아프지도 않고-”
“앉아.”
“넵.”
그러나 엘리는 얌전히 자리에 앉아, 그간 일어났던 일을 제 입으로 한 치의 거짓 없이 토해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