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68)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68화(168/241)
* * *
“그랬단 말이지.”
공작님이 그렇게 말하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날 바라보는 살벌한 눈빛이 거둬졌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때 공작이 문득 데미안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거슬렸다만, 옷은 왜 벗고 있는 거지.”
그에 데미안이 덤덤히 대답했다.
“엘리가 보고 싶다고 해서, 벗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작의 얼굴이 구겨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하면 오해하시잖아!’
“환부! 환부를 보려고요.”
얼른 덧붙이자 공작이 혀를 차며 제 외투를 벗어 데미안에게 던졌다.
“레벨리오라. 그쪽도 가능성은 있지.”
“또 다른 의심의 대상도 있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데미안이 대충 옷을 걸치며 말했다.
“아직 완전하진 않지만, 그래. 하지만 구체적이지는 않다. 모든 가문이 표면적으로나마 신전에 우호적이니까. 뒤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알 수가 없지.”
“고발을 확인한 신전이 첼디어 쪽의 조사를 서두른 것도, 어쩌면 혼선을 주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군요.”
나를 공격한 아샤벨과 첼디어의 세금 조사가 단순한 우연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레벨리오 후작은 최근 도박과 유흥에 정신이 팔려 있다고 들었어요.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제정신이 아니라 정보를 신뢰하긴 힘들 거예요.”
내 말에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남은 건 첼디어 백작이나 레벨리오 영식밖에 없는데…….”
“둘에게 물어볼 게 있느냐?”
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공작이 물었다.
“네. 애슈턴이라면 혹시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탈룸과 그의 일족을 보낸 거다. 피나에를 통해 애슈턴을 부르기 위해서.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던데.”
“공작님을 마주하면 누구나 대답이 어려운…….”
자연스럽게 대꾸하던 나는 뒤늦게 멈칫했다.
설마, 하는 얼굴로 공작을 바라보자 그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계속 말을 더듬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군.”
“설마 공작님-”
“걱정하지 마. 예는 갖춰서 정중히 데려왔으니.”
팔다리도 멀쩡히 붙어있지.
그렇게 덧붙이는 공작은, 더없이 사악한 악당처럼 보였다.
‘탈룸의 정체는 들키지 않은 것 같아.’
안도하던 난 그에게 물었다.
“지금 어디 있는데요?”
“어렵게 모신 손님이니 응접실로 모셨지.”
믿을 수가 없어 눈을 가늘게 뜨자 공작이 가볍게 덧붙였다.
“물론 자유롭게 움직이기는 어려운 상태이지만.”
그것부터가 일단 손님 취급이 아닌데요.
공작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이번 일에 관하여 물어볼만한 기회이긴 했다.
“일단 제가 애슈턴이랑 이야기해 볼게요. 둘이서…….”
“함께 가지.”
“같이 가.”
그때 공작과 데미안이 말했다.
‘나 혼자 이야기해도 될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했지만, 두 사람의 눈빛이 너무 살벌해서 얌전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부축해 주지.”
“여기 잡아.”
공작이 내 왼편에, 데미안이 내 오른편에 서며 손을 내밀었다.
“……혼자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에요.”
“그 말을 하는 것부터가 상태가 좋지 않다는 뜻이다.”
공작이 말하자 데미안이 덧붙였다.
“그래, 엘리. 부담스러우면 내 손만 잡아도 돼.”
그러자 공작이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작은 틈마저 놓치질 않는구나.”
“부인의 안위를 걱정하는 건 남편으로서 당연한 겁니다.”
데미안이 빙긋 웃자 공작의 안광이 서늘해졌다.
‘방금 전까지 사이좋던 부자지간 어디 갔어.’
이러다 응접실에 가기도 전에 무슨 일이 나겠다 싶어, 나는 얼른 양손을 내밀었다.
그제야 두 사람 사이의 스파크가 한결 가라앉았다.
그렇게 난 덩치 큰 사내 둘의 부축을 받으며 응접실로 향했다.
* * *
응접실로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본 것은 창백하게 질려 있는 피나에 첼디어 영애였다.
나는 얼른 그녀의 팔과 다리를 살폈다.
움직일 수 없게 해 놨다는 말에, 손과 발이라도 묶어놓은 건 아닌가 싶었는데.
‘그런 건 아니었구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녀가 미동도 없이 꼼짝 않는 건 사실이었다. 게다가 잔뜩 겁에 질린 얼굴까지.
‘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나는 공작을 힐끔거리다 다시 피나에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흠칫 몸을 떨었다.
“오랜만이네요, 첼디어 영애.”
“…….”
“아니, 영애는 스나우트 령에서 절 봤을 테니 인사가 잘못됐네.”
웃으며 덧붙이자 그녀의 얼굴이 한층 창백해졌다.
“이야기는 다 들었어요. 그러니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나,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냥 시키는 대로…….”
“그러니까. 누가 시켰는지를 묻는 거예요.”
그러나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꾹 다물뿐이었다.
어떻게든 버텨보겠다는 듯이.
“첼디어 영애. 혹시 아버지이신 백작님께 들은 이야기 없나요?”
그래서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오래전, 첼디어 백작님께서 새로운 신성석을 공급받기 위해 공작성에 찾아오신 적이 있었어요. 제가 그때 말씀드린 게 있거든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공작성 주변에 까마귀가 많은 이유를.”
크게 뜨인 그녀의 눈동자가 두려움으로 차올랐다.
첼디어 백작이 우리가 까마귀밥으로 무엇을 주는지, 아주 잘 전달한 모양이었다.
“생각을 잘하는 게 좋을 거예요. 우리 쪽에 잡힌 이상, 영애에게 승산은 없어요. 신전 쪽에서도 구해주지 않을 거고요.”
피나에가 입술을 짓씹었다.
망설이는 듯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러나 끝끝내 입은 열리지 않았다.
“아직 혀는 자르지 않았는데…….
공작이 아직, 에 힘을 줘 말하자 피나에가 흐윽, 하고 겁에 질린 소리를 내었다.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여전히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저 억울하다는 듯 세차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말하지 못하도록 마법을 걸어놓은 거야.’
약속을 어긴다면 곧장 죽음에 이르게 되겠지.
교묘히 질문을 바꿔서 물을 수도 있지만, 마법의 수준이 어디까지냐에 따라서 그녀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자칫하면 역으로 우리가 공격당할 수도 있어.’
그때였다.
“……그녀가 스나우트에 오기 전, 찾아갔던 곳이 신전이라고 들었습니다.”
침묵하던 애슈턴이 말했다.
자유롭게 신전을 언급하는 것을 보니 그는 마법에 걸리지 않은 듯했다.
“첼디어 백작님께서 저희 영지를 찾아오셨습니다. 신전에 말씀드려, 감사를 피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셨지요. 하지만 아버지께선 그를 거부하셨습니다.”
“어째서지? 첼디어는 그대와 약혼을 맺은 사이 아닌가.”
공작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맞습니다. 하지만…… 거부하셨습니다.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
공작은 더 되묻지 않고 침묵했다. 데미안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없으니까.’
애슈턴은 그녀의 약혼자였다.
혹시 모를 상황을 고려해, 혼란을 주기 위한 용도로 마법을 걸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애슈턴, 최근 후작님께서 이상한 말을 하시진 않았어?”
“……이상한 말?”
갑작스러운 내 물음에 그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후작님께 이상한 말을 들었어. 첼디어 백작님께서 우리 쪽에 오셨을 때, 세금 감사가 나올 거라는 것을 미리 알고 계신 것 같더군. 그리고……
애슈턴이 한번 뜸을 들이다 입술을 달싹였다.
“슈에츠도 어쩔 수 없을 거다. 이렇게 덧붙이셨어.”
나는 숨을 삼켰다.
레벨리오 후작은 도박과 유흥에 미쳐 영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제정신이 아닌 그가, 첼디어의 세금 감사 소식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카지노에서 들은 거야.’
원작에서도 카지노가 한번 언급된 적이 있었다.
전쟁 후, 제국은 전에 없는 큰 부흥을 맞이했다.
귀족들은 돈을 펑펑 써 댔고, 그러다 카지노까지 손을 뻗었다.
‘그래서 한바탕 도박과 유흥이 귀족사회를 뒤흔들었다고, 원작에서도 언급되었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배후에 누가 있는지를.
‘라티오넬 백작.’
그 사람이 이 사건과 연관되어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아샤벨, 아니, 신전도 함께겠지.’
다친 보람이 있었네.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알려줘서 고마워.”
나는 애슈턴을 바라보며 말했다.
“넌 여전하구나. 변한 게 하나도 없어. 적군에 이로운 정보를 다 알려주면 어떡해?”
내 말에 입술을 벙긋거리던 그가 중얼거렸다.
“……내가 너에게 도움이 되었나?”
“응.”
“그러니 더 이상 나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
“비록 파양 당했지만, 덕분에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 있었거든.”
애슈턴의 눈동자가 크게 일렁였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는 듯이.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막지 못했다는, 그래서 폭력을 보고만 있어야 했던 무력감과 죄책감은 나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니까.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였다.
“레벨리오 영식이 우리에게 중요한 정보를 주었으니, 앞으로의 처우는 논의 후 알려드리겠습니다.”
또렷한 목소리로 말하자 애슈턴이 멈칫했다.
“하지만, 저를 공격했던 첼디어 영애는 논의 대상에서 제외하겠어요.”
내 말에 피나에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하, 하지만! 저는 애슈턴님의 약혼자-!”
“방금 전 레벨리오 영식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레벨리오 후작님께서 첼디어 백작님의 청을 거절하셨다고.”
“……!”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내가 빙긋 웃자 피나에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더 이상 두 가문은 약혼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애슈턴의 입으로 직접 들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애슈턴의 정보는 피나에를 보호해 줄 수 없었다.
‘이렇게 되면 일단 애슈턴은 돌려보낼 수 있겠지.’
이게 내가 한때 형제였던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다.
“신전까지 배웅해 주도록 하지.”
조용히 우리의 대화를 들어주던 공작이 말했다.
“영애의 시해 사실을 알리려면 우리의 증언도 필요할 테니.”
“……!”
피나에의 얼굴이 희멀게졌다.
같은 귀족끼리의 시해는 영지전까지 발발할 수 있는 큰 범죄였다.
그래서 일이 커지지 않도록 신전이나 황실 쪽에서 가문의 중재를 맡았다.
하지만 전쟁 영웅의 부인을 해치려다 실패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신전에서도, 아니, 설사 아샤벨이라도 그녀를 보호해 줄 수 없었다.
덜덜 떠는 그녀를 보며 난 빙긋 웃었다.
“잘 가요, 영애. 난 배웅은 안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