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71)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71화(171/241)
* * *
한 차례 다툼이 마무리되고 난 후.
데미안은 치미는 욕지거리를 꾸역꾸역 삼켜내고 있었다.
며칠 전 일 때문에 엘리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엘리의 손만 닿으면 파드득 몸을 떨며 얼굴을 붉혔다.
성인이 된 후, 이제는 좀 사라졌나 싶었건만. 엘리 앞에선 여전히 속수무책이었다.
하필이면 그것을 엘리에게 들키기까지 했다.
장난기 많은 엘리가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사실 빨개진 얼굴 같은 건 엘리가 원한다면 몇 번이고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저를 동생으로 여길 터였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그녀를 끌어당겼다. 그녀가 원한대로 벗겨줄 것을 요구했다. 부부라는 좋은 핑계를 입에 올렸다.
효과는 있었다.
그날 이후, 저와 가까이할 때마다 엘리가 잔뜩 긴장하는 것이 눈에 보였으니까.
예전 같았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겠지만…… 솔직히, 참기 힘들었다.
저를 남자로 생각한다는 선명한 의식이 눈에 보일 때마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충동이 그를 부추겼다.
게다가…… 부부끼리는 더 한 짓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직접 말까지 해버렸으니, 엘리에게 하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제 입으로 스스로의 행동에 제약을 건 것과 마찬가지였다.
데미안이 소리 없는 한숨을 삼킬 때였다.
“그보다 엘리.”
그때, 엘리에게 혼난 후 계속 입을 다물고 있던 에르하르트가 말했다.
“전에 부탁했던 황궁 감옥 구금자 명단 말인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구나.”
“그래요?”
“오래되기도 했고, 그때 당시에도 특사가 열려서 몇몇 범죄자가 풀려났더군. 기록을 모두 모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구나. 오래 걸리진 않을테니 걱정하지 마.”
“감사합니다, 공작님.”
엘리가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에 에르하르트가 데미안에게 시선을 주었다.
부럽지? 하는 얼굴로 눈썹을 까딱이자 데미안의 눈빛이 살벌해졌다.
어떻게든 엘리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모습이 퍽 볼만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놀려대고 싶었지만, 친절히 어른의 관용을 베풀어주기로 했다.
“엘리, 학술원 일은 어떻게 되었지?”
“아, 건설 공사는 다 끝났어요. 안 그래도 오늘 라디움 아카데미 학생들이랑 최종 계약을 맺기로 했어요. 저번에 다른 일 때문에 한 학생과는 계약을 끝맺지 못했거든요.”
“하면 같이 다녀오면 되겠군.”
“네?”
엘리가 멍하니 눈을 깜빡이자 그가 말했다.
“아카데미에 데미안과 함께 다녀오너라.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눈에 띌 정도는 되니 걸어 다니는 광고가 되어주겠지.”
“걸어 다니는 광고라면…….”
엘리가 시선을 미끄러뜨려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엘리가 흠칫하며 시선을 피했다.
“저,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어차피 아카데미에서 오라버니랑 테리드 님도 함께 하기로 했고…….”
“두 사람의 능력도 뛰어나긴 하지만 데미안의 명성에 비할바는 아니지.”
“…….”
“다녀와. 못 걸을 정도는 아니라지만 부축할 사람도 필요할 테니. 가는 김에 이혼이니 뭐니 하는 소문들도 좀 없애고.”
“…….”
“부부다운 모습을 보이란 뜻이다.”
엘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다.
에르하르트는 데미안을 향해 시선을 두었다.
됐지? 하는 얼굴에, 데미안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살벌한 기운은 한층 옅어졌다. 데미안 입장에서는 퍽 감사하게 느끼고 있다는 뜻이었다.
‘마음껏 놀릴 수 있는 기회일 텐데. 같이 가지 못한다는 게 진심으로 아쉽군.’
그가 소리 없이 웃었다.
* * *
덜컹거리는 마차 안.
나는 딱딱하게 굳은 채 차렷 자세로 앉아 있었다.
혼자 가려고 했지만, 공작님이 데미안을 마차로 밀어 넣는 바람에 결국 우리는 함께 아카데미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숨 막히는 정적도 함께였다.
눈치를 보던 난 용기 내 입을 열었다.
“그, 데미안. 팔은 어때?”
“……네가 구해준 약초 덕분에 괜찮아졌어.”
“그, 그렇구나…….”
그리고 또다시 정적.
어색한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나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가면 될 텐데, 데미안이 동생이 아닌, 한 명의 남자라고 인식해버리니 긴장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애꿎은 손바닥만 긁적이고 있을 때였다.
“아파?”
그때, 데미안이 물었다.
“어?”
“저번부터 계속 손을 만지길래.”
“아, 아픈 게 아니라 그냥 좀 간지러워서…….”
우물거리며 대답하자 데미안이 미약하게 미간을 좁혔다.
“한번 봐도 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검은 장갑을 낀 큼지막한 손이 내 손을 잡았다.
“빨갛네. 부은 것 같아.”
손바닥에 낯을 가까이 한 데미안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래로 깔린 속눈썹 밑, 푸른 눈동자가 내 손에 고정되어 있었다.
찌푸린 곧은 눈썹마저 조각상처럼 예뻐서, 나는 홀린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만 만지는 게 좋겠어.”
“아, 응. 그럴게.”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손을 거두려는데, 데미안이 그대로 내 손을 맞잡았다.
뼈마디가 도드라진 데미안의 손이 내 손가락 사이로 들어와 깍지를 꼈다.
한 치의 틈도 없이 우리의 손이 맞물렸다.
“계속 긁으면 안 되니까.”
데미안은 그렇게 말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검은 머리칼 밑으로 드러난 귀가 붉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 사이에 손 잡는 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 * *
아이들을 내보낸 뒤, 에르하르트는 공작성의 주치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덜덜 떠는 주치의를 보아 대화라는 말에는 다소 어폐가 있었지만, 어쨌든 주고받는 것이 말뿐이었으니 대화는 맞았다.
“데미안의 상태는.”
“에, 엘리 님께서 구해주신 약초가 큰 효과가 있는 듯했습니다. 그 작은 풀을 어떻게 구하셨는지…….”
“엘리 앞에서만 아팠다는 뜻이군.”
그가 데미안의 꾀병을 날카롭게 파악하자 주치의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 성녀님의 힘으로 초기 치료를 완벽히 끝낸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 에르하르트의 눈빛이 짙어졌다.
성녀의 힘이라.
그가 검지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고 있을 때였다.
“공작님.”
문이 열리고 프란츠가 안으로 들어왔다.
“전에 말씀하신 황궁 감옥 수감자 명단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조금 특이사항이 있습니다.”
“특이사항?”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것이…… 아무래도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프란츠가 명단을 내밀었다.
명단을 확인한 에르하르트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 * *
마차가 멈추고, 마부가 아카데미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이제 자연스럽게 손을 놔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데미안은 여전히 내 손을 놔주지 않았다.
“사람이 많네. 조심해.”
오히려 내 손을 단단히 붙잡을 뿐이었다.
아카데미 학생들 몇몇이 흥미로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데미안이 전쟁 영웅인 탓도 있지만, 그보단…… 우리가 손을 잡고 있어서겠지.
귀족 사회는 꽤나 고리타분해서, 연회나 파티가 아닌 곳에서 남녀가 손을 잡는 건 서로에게 죽고 못 사는 것을 뜻했다.
그래서 간단히 팔짱만 끼거나 아무런 접촉 없이 나란히 걷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데미안도 그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손을 놔달라 말하지 못 했다.
“어디로 가면 돼?”
“아, 저쪽으로 가면 돼. 오라버니랑 테리드 님께서 미리 기다리고 계신다고 했어.”
함께 약속한 장소로 향하자 저 멀리 제리트와 테리드가 보였다.
그런데 두 사람의 표정이 너무나 어두웠다.
“오라버니? 테리드 님?”
“아, 엘리 님.”
“왜 밖에 나와 계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그게…….”
제리트와 테리드가 난감한 얼굴로 시선을 교환했다.
이윽고, 제리트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말했다.
“다른 학술원이요?”
“네……. 그래도 알과 클로이는 계속 함께하겠다고 했지만, 스탄이 갑자기 못 하겠다고 해서요. 이유를 물어보니, 더 좋은 조건을 제안해 주셔서 그쪽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나는 소리 없이 절망했다.
스탄은 재수 없는 타입이긴 했지만 제국 법 분야에선 1등이었다.
게다가 명망 있는 사교 클럽의 회장이라 그를 따르는 후배들도 많았다.
그 말은 곧, 스탄이 있는 학술원에 스탄 쪽 후배들이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알과 클로이도 뛰어난 학생들이긴 했지만, 다음 아카데미 졸업생들이 스탄이 있는 학술원에 간다면.
그래서 인재가 몰려 그쪽 규모가 커진다면.
우리는 이름을 알리기도 전에 명성에서부터 밀리게 될 터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스탄이라니.’
제국 법은 주로 세금과 금융을 다루는 학문이었다. 평민은 모를 수밖에 없는 분야.
귀족가라면 몰라도, 학술원에서 그를 스카우트할 이유는 없었다.
절망하던 나는 제리트에게 물었다.
“혹시 어떤 가문에서 만든 학술원인지 아시나요?”
“새로 지어지는 곳이라고 들었는데…… 그것이…….”
제리트가 머뭇거리자 테리드가 말했다.
“……라티오넬 쪽에서 만든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성녀님께서도 라티오넬 학술원 쪽에 지지를 보낸다는 소문까지 퍼져서…… 아마 화제가 더 그쪽에 쏠릴 것 같아요.”
라티오넬.
황후의 친정 가문이었다.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스나우트 령에 새로운 학술원을 짓고 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새로 지을 건물이 제뮈엘 살롱이라고 언급해두었다.
그런데 또 다른 학술원 건설부터 미리 선별한 인재 빼돌리기까지.
내가 세운 계획과 하나부터 열까지 똑같지 않은가.
‘……게다가 성녀 아샤벨도 있지.’
이로써 확실해졌다.
그날 스나우트에서 아샤벨이 세계수의 힘을 사람들에게 보인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엘리, 이건…….”
“맞아.”
나는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우리 쪽 정보가 새어 나가고 있는 거야. 그래서 아샤벨이 스나우트에 온 거고.”
“우리 쪽에 내통자가 있다는 뜻이네.”
데미안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터 내통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짐작이가.”
“누구인지 알겠다는 뜻이야?”
“엘리.”
“……응.”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지 알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