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72)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72화(172/241)
지금까지의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면 내통자가 누구인지 추리하는 것은 쉬웠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그 사람일까? 어째서? 왜 하필 라티오넬 쪽에 붙은 걸까?
생각과 생각이 꼬리를 물고 점점 크게 팽창해 갔다.
“엘리.”
그때, 데미안이 조용히 날 불렀다.
“진정해. 아직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어.”
“…….”
“일단 사실 확인이 먼저야.”
차분한 목소리에 거세게 뛰던 마음이 한차례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맞아, 맞는 말이야.”
고개를 끄덕인 난 제리트를 바라보았다.
“오라버니, 우선 학술원 건설계획은 계속 추진해 주세요. 제국 법에 뛰어나고, 스탄과 관련 없는 클럽 소속이라면 이야기 나누기에도 수월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헤론 님께도 그리 전하겠습니다.”
“엘리 님, 어서 가보셔요.”
이어서 테리드가 말했다.
두 사람의 배려 덕분에 나와 데미안은 곧장 아카데미를 빠져나와 마차에 올라탔다.
심장이 거칠게 뛰고 있었지만, 견딜 만했다. 단단히 맞물린 우리의 손 때문일지도 몰랐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는 공작성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공작님, 드릴 말씀이…….”
나는 말을 잇지 못 했다.
공작이 굳은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을 할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공작님.”
“이걸 한번 보겠느냐.”
그가 책상 위의 서류를 우리에게 내밀었다.
“이건…….”
“10년 전, 황궁 감옥에 구금되었던 범죄자 명단이다. 그리고.”
그가 서류 위에 또 다른 서류를 올렸다.
“22년 전 구금되었던 자들의 명단도 함께 가져왔다.”
“22년 전이라면…….”
첫 번째 대륙 전쟁이 일어났을 때다.
“그런데 이걸 왜…….”
“그건 엘리, 네가 직접 봐야 할 것 같군.”
나는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받아 들었다.
오래된 데다 복제본이라 글자가 희미했지만 누구의 이름이 쓰여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서류를 쥔 손이 천천히 떨렸다. 공작은 나의 혼란을 지켜보다 조용히 물었다.
“어떻게 하고 싶지.”
“…….”
“엘리, 네가 원하는 대로 하거라.”
그 말에 난 시선을 들어 공작과 데미안을 바라봤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모르는 척하겠다고 말하면, 기꺼이 따라주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난 말했다.
“……잡아야죠.”
“…….”
“잡아서 어떻게든 배후를 밝혀야, 우리도 복수할 방법을 찾을 수 있어요.”
그러자 데미안이 말했다.
“하지만 피나에 첼디어처럼 마법이 걸려 있을 수도 있어.”
그 말도 일리는 있었다.
“그래. 그러니까 현장에서 잡아야지.”
나는 굳은 입꼬리를 애써 끌어올리며 웃었다.
“빠질 수밖에 없는 덫을 놓으면 돼.”
* * *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아셀이 콧노래를 부르며 복도를 청소하고 있었다.
“아셀, 기분 좋아 보이네.”
“아, 이바나.”
아셀이 방긋 웃으며 그녀를 반겼다.
“그게 아니고, 가족에게서 연락이 왔거든.”
“가족? 아, 따로 떨어져 지내고 있다고 했지?”
“응. 그런데 있지, 며칠 전에 편지를 받았는데 우리 언니가 아들을 낳았대!”
“세상에! 너무 잘됐다!”
“축하해, 아셀!”
이바나가 축하한다는 듯 그녀의 손을 잡자, 다른 하녀들도 연달아 축하의 말을 전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더 이상 행복은 없을 줄 알았는데. 아이 덕분에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아.”
미래를 상상하는 듯, 아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축하해.”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메이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즐겁게 이야기하던 하녀들은 곧장 업무 자리로 복귀했다.
아셀이 홀로 복도 창문을 닦고 있을 때, 엘리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셀.”
“아, 엘리 님.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별건 아니고, 이거, 늘 놓던 거기에 가져다 놓을래? 곧 헤론 님이랑 제리트 님이 오시거든. 미리 자료를 검토하려고.”
엘리가 그렇게 말하며 서류를 내밀었다.
“네, 알겠습니다.”
아셀이 그녀의 손에서 서류를 받아 들었다.
잠시 후. 바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하인이 근처를 지나가던 메이에게 물었다.
“혹시 아셀 어디 갔는지 봤어?”
“아셀은 왜?”
“아, 전해줄 물건이 있어서.”
그 말에 잠시 빤히 그를 바라보던 메이가 말했다.
“응접실 쪽으로 가는 걸 봤어.”
“아, 고마워.”
시종이 인사하며 그녀의 곁을 지나갔다. 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메이가 서재 안으로 들어왔다.
서재 앞, 책상 위에는 엘리가 아셀에게 맡겼던 서류가 놓여있었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녀가 다시 몸을 돌려 서재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였다.
그녀의 몸이 우뚝 굳었다.
“에, 엘리 님.”
제 앞에 서 있는 엘리 때문이었다.
“안녕, 메이. 갑자기 나타나서 놀랐겠지만.”
엘리가 그녀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할까?”
* * *
테이블을 중심으로, 나와 메이는 마주 보고 앉았다.
그녀는 늘 그렇듯 굳은 얼굴이었는데,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늘 차분하게 두었던 손을 꽉 맞잡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선 바로 본론부터 말할게.”
나는 미리 가져온 서류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걸 찾았어.”
“이, 이건……!”
“황궁 감옥에 구금되었던 사람들의 명단이야. 정확히 22년 전이지. 그리고 여기.”
“지워진 흔적이 있어. 너무 오래된 데다, 잉크가 번져 있지만 자세히 보면 글자를 읽을 수 있어.”/
“…….”
“메이, 네 이름이야.”
내 말에 메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다. 그 침묵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황궁 감옥에 갇히는 죄수들은 중범죄 이상의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악질로 여기는 것은-
‘살인.’
황궁을 상징하는 치유력, ‘모든 이를 사랑하라’는 신전의 교리와 완벽히 어긋났다.
그만큼 쉽게 풀려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예외는 있었다.
황실의 입김이 들어간 경우다.
“황궁 감옥에 들어갈 정도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어느 날 공작성의 하녀로 들어왔어. 공작성은 범죄의 질에 신경 쓰지 않으니, 신경 쓰지 않은 것도 당연하지만.”
“…….”
“지금 상황을 보니, 이게 증거 같아서.”
네 생각은 어때?
내 물음에 메이가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죄송합니다, 엘리 님.”
짧은 침묵 후, 그녀가 천천 히입을 열었다.
“엘리 님께서 절 믿어주셨는데, 제가 그 믿음을 져버렸습니다.”
“…….”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메이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까만 머리칼이 커튼처럼 늘어져 그녀의 얼굴을 가렸다.
“신전이야?”
“…….”
“그것도 아니면, 황궁?”
“…….”
“황궁이구나.”
나는 수긍하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꾸욱, 주먹을 말아 쥐던 메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엘리 님. 저는-”
“그런데 메이.”
나는 단호히 그녀의 말을 잘랐다.
“왜 다른 건 말하지 않아?”
“……예?”
“정보를 빼간 사람은 다른 사람이잖아.”
“……!”
메이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 얼굴이었다.
“방금 전, 나는 아셀에게 서류를 주면서 ‘늘 두었던 곳에 가져다 둬라’고 말했어.”
“……
“늘 두었던 곳은 로이나, 이바나, 메이, 아셀. 이 네 명밖에 모르지. 그곳이 지금 우리가 있는 서재라는 것 또한.”
“…….
“그런데 넌 그 하인을, 응접실로 안내했어. 내 물건을 빼돌리지 못하게 하려고.”
“…….”
“맞지?”
메이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가설은 맞아 들었다.
‘처음엔 내통자가 한 명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여러 명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우자 그 범위가 넓어졌다.
해서 난 덫을 두었다.
일부러 제리트와 헤론을 언급하며 아셀에게 서류를 맡겼다.
‘그리고 그녀에게 접근하려는 하인을 주시했지.’
하지만 메이는 그 하인에게 전혀 다른 곳을 알려주었다.
아셀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다면 제대로 된 방향을 알려줬을 터.
‘일부러 다른 데로 유인한 거야.’
그가 내통자인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그녀 또한 내통자라는 뜻이 되지만…….
나는 보았다.
그녀가 정말 이 정보를 황실에 가져가려고 했다면, 안심하며 돌아서지 않았을 것이다. 곧장 그 안에 무엇이 쓰여 있었는지 눈으로 살폈겠지.
‘제안은 받았지만, 따르지 않은 거야.’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는 뜻이다.
“메이, 이제 네 이야기를 해줘야 할 것 같아.”
“…….”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네 생각이 궁금해.”
내 물음에 메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아버지께선 주정뱅이셨습니다. 도박과 술에 미쳐 계셨죠.”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친언니는 돈을 벌기 위해 밖으로 나갔지만, 저는 나이가 너무 어렸죠. 도박 밑천이 부족해진 아버지에게, 저는 당신이 가진 유일한 재산이었습니다.”
“그럼…….”
“예, 아버지에 의해 도박장으로 팔려 갔습니다.”
엘리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메이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마냥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언니들은 제게 험한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호신술 같은 걸 알려주었고, 먹을 것도 많이 나눠주었어요.”
“…….”
“하지만 저는 그때 너무나 어렸고, 보다 못한 언니들은 돈을 모아 제가 도망치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
“하지만 갈 곳이 없었죠.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여전히 술에 취한 그녀의 아버지는 겨우 도망친 딸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마침 잘됐다. 돈이 필요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메이는 알 수 없는 살의를 느꼈다. 정신을 차렸을 땐, 모든 게 끝나 있었다.
“저는 그 즉시 황궁 감옥에 구금되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가지 않아 풀려났죠.”
“어떻게?”
“저희 언니가 제 죄를 뒤집어썼거든요.”
“……!”
“제가 죽인 게 맞다고 했지만, 언니는 자잘한 범죄를 많이 저지른 사람이었어요. 전과가 없는 저와 수차례 감옥을 들락날락한 언니. 누구의 말을 들어 줄지는 명징했죠.”
그녀가 조소를 흘렸다.
“게다가 그때 당시엔 첫 번째 대륙 전쟁으로 인해 제국이 혼란을 겪던 터라, 범죄자는 빨리 처리하고 싶었던 법관들의 귀찮음도 한몫했습니다.”
명단의 이름이 지워진 게 이 때문이었구나. 황실 쪽에서 풀어준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엘리가 조용히 안도하며 수긍하는 사이, 메이가 말을 이었다.
“저는 언니가 풀려 나오길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3년 후, 2차 대륙 전쟁 즈음 언니에게서 편지가 왔어요.”
“…….”
“하지만 별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황궁 감옥을 나왔다고. 사정이 있어, 지금은 말을 못 하지만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겼어요.”
황궁 감옥은 경계가 삼엄했다.
쉽사리 빠져나오기 힘들 텐데, 그녀의 언니는 무슨 방법으로 빠져나왔던 것일까.
“그렇게 저희는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언니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어서, 제가 필요한 물건을 구해주었어요. 그중엔 리크레 풀도 있었죠.”
“…….”
“언니에게서 마지막으로 연락이 온 것은 그로부터 8년 후였어요.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죠.”
메이가 엘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정이 있어서 슈에츠 공작가로 가고 있다고. 그 이후에 만나자고.”
“……!”
“그리고 며칠 후, 제국을 흔들었던 유명한 도둑이 죽었죠. 그 이후로 언니와의 연락도 끊겼습니다.”
그 말에 엘리의 눈이 크게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