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74)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74화(174/241)
아니나 다를까.
귀에 맞게 크기를 줄인 신성석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은인이라니!〉
엘리의 애탄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내가 넓은 어깨를 움츠렸다.
“그게…….”
〈대답 안 해도 돼요!〉
아, 맞다.
저도 모르게 대답하려던 사내, 그러니까 탈룸은 입을 합 다물었다.
엘리는 이마를 짚었다.
덩치에 맞지 않게 소심한 자세로 눈치 보는 모습이 눈앞에 선명했다.
하지만 저를 위해 먼저 도와주겠다고 나선 탈룸을 면박할 순 없었다.
엘리가 미약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전, 누굴 카지노에 보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지그시 그녀를 바라보던 탈룸이 말했다.
“……은인, 요즘엔 왜 내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지?”
“예?”
“이제 내 도움이 필요 없어진 건가?”
탈룸이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뜨렸다. 내심 엘리가 저를 믿고 의지해 주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내 쓸모가 없어진 거지…… 그런 거지…….”
“그, 그건 절대 아니에요 정말 위험해서 그래요.”
엘리가 당황해 손을 내젓자, 탈룸이 말했다.
“은인, 우린 이미 한번 죽은 자들이야. 이 세상에 우리 존재를 아는 사람은 없지.”
“…….”
“그러니 은인을 위해 돕게 해 줘. 늘 그래 왔던 것처럼.”
탈룸은 그렇게 말하고서 씩 웃었다.
제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서라고 해도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웠을 터였다.
그런 탈룸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이 판을 승리로 가져와야 했다.
엘리가 반대편 통신구를 향해 물었다.
〈잘 보고 있어?〉
“잘 보고 있어.”
반대편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미리 카지노에 숨어든 레이쿠스였다.
레이쿠스가 레벨리오 후작과 딜러가 조작한 패를 엘리에게 알려주면, 그녀는 승리할 수 있는 패를 조합해 통신구로 탈룸에게 전달했다.
과연 이게 통할까? 묻는 레이쿠스에게 엘리는 당당히 말했다.
“그쪽에서 대놓고 속임수를 쓰는데, 우리라고 못 할 거 있나? 그러지 말고 VIP 입장권이 어떻게 생겼는지나 알아와 줘.”
“모양만 알려달라는 뜻이야? 그럼 그냥 훔치면 되잖아.”
“다른 것도 아니고 VIP 입장권이야. 개수는 한정되어 있을 거고, 입장권마다 표시를 해놨을 수도 있어. 훔친 게 들킨다면 시작도 전에 끝나.”
“위조 입장권을 만들겠다는 거네. 나야 상관없지만, 너야말로 괜찮겠어? 만약 이 일이 들키면…….”
“보수는 이만큼 줄게.”
“큰일에는 그만한 위험 부담이 따르는 법이지. 네 선택을 존중한다.”
엘리 덕분에 어느새 자본의 노예가 되어버린 레이쿠스였다.
“그런데 이걸 직접 그리겠다고? 너무 조잡하지 않을까?”
“손기술이 내 분야라는 걸 잊었어? 그건 비단 훔치는 것만을 뜻하는 게 아니야.”
그녀는 그 말과 함께 씩 웃었고, 정말로 위조 입장권을 만들어냈다.
성인이라지만 다른 귀족들에 비하면 턱없이 어린 나이였다. 대체 이런 기술은 어디서 배웠단 말인가. 게다가.
“이건 또 뭐야?”
“신성석을 이용해 만든 영상구야. 우리 대부님께서 특별히 신경 좀 써주셨지. 마나가 통신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어.”
새로운 물건까지 만들어냈다.
일반적인 영상구는 화면이 흐릿하게 보이거나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거리가 멀수록 자연에서 흐르는 마나가 통신을 방해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통신의 제약을 받지 않는 영상구라니. 이러한 발명은 마탑에서도 아직 해내지 못할 터였다.
“이 영상구라면 라티오넬도 알아차릴 수 없을 거야. 이걸 우리 이모한테 전달해 줘. 아, 처음 만든 제품이라 사용시간이 짧다는 말도 꼭 덧붙여! 우리 이모가 좀 수다쟁이거든.”
그렇게 덧붙이는 엘리를 보며, 레이쿠스는 속으로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대체 어디까지 계획한 것일까.
‘……친구 제안을 수락해서 다행이군.’
적으로 돌리면 뼈도 못 추릴 터였다.
레이쿠스가 진심으로 안도하고 있을 때, 엘리는 탈룸의 로브 단추에 달아놓은 영상구로 후작을 살폈다.
묘한 낯이긴 했으나 의심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엘리가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요, 조금만 더 고생해줘요.〉
애원하는 목소리에 탈룸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다 멈칫했다. 이번엔 실수할 수 없었다.
그가 귓가로 들려오는 엘리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제 스승님이 누구신지 궁금해 보이시는군요.”
“크흠.”
후작이 헛기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면 좀 더 흥미를 돋워 드리지요. 저는 후작님께서 딜러와 함께 패를 조작하셨다는 것까지 알고 있습니다.”
“……그, 그게 무슨!”
“그리고 소매에 다른 패를 숨기고 계신다는 것 또한.”
후작의 눈이 크게 뜨였다.
번들거리는 입술을 몇 차례 벙긋거렸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다.
제가 무슨 패를 가지고 있는지, 이 사내가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 스승이란 사람이 알려준 것인가?’
대체 어떻게?
후작이 물었다.
“그 스승께선 그대에게 상대의 패를 보는 기술도 가르쳤단 말인가?”
“예. 그분께선 못 보시는 게 없으셨지요. 한때는 모든 카지노를 평정하셨지만…….”
〈거기서 말끝을 좀 늘려요.〉
탈룸은 착실하게 엘리의 말을 이행했다.
“지금은 제 곁에 없으십니다.”
“돌아가시기라도 한 건가?”
“그것은 아닙니다.”
살아는 있다는 소리군.
후작의 눈동자가 탐욕으로 번뜩였다.
‘그 스승이란 자를 밑에 두면 모든 승리가 내 것이 될 터.’
어쩌면 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도박장에 있는 이를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건 없었지만, 후작은 잔뜩 술에 취한 데다 승리에 눈이 멀었기에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아차리지 못 했다.
후작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 스승은 어디 있지? 그와 꼭 함께 게임을 겨뤄보고 싶은데.”
“귀하신 분이라고 하셔도 쉽게 만나시기 어려우십니다.”
“뭐라? 내가 누군지 알고!”
후작이 게임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내가 누구의 신임을 받고 있는데! 누구인지 잔말 말고 말이나 해보게!”
귓가로 들려오는 악에 받친 음성에 엘리가 씩 웃었다.
드디어 호구가 미끼를 물었다.
* * *
며칠 후.
새로 작성된 카지노 보고서를 둘러보던 라티오넬 백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카지노의 매출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하루쯤 매출이 감소한 것이라면 그러려니 했을 테지만, 추이가 회복되지 않는 건 문제가 있었다.
서류를 검토하던 라티오넬 백작이 눈을 크게 떴다.
“돈을 따낸 사람이 레벨리오 후작이라고?”
항상 잃기만 하던 호구가 하루아침에 제 돈을 모두 가져가다니.
믿을 수 없는 소식에 백작은 곧장 자신의 카지노로 향했다.
그가 들어서자 풀어진 자세로 앉아 연신 술을 홀짝이는 레벨리오 후작이 보였다.
백작을 발견한 레벨리오 후작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이제 오시는군요, 백작님.”
“좋지 않은 자세군.”
백작이 불편한 기색을 내보였지만, 레벨리오 후작은 자세를 고치지 않았다.
백작이 카지노의 주인이라는 것을 몰랐을뿐더러, 연이은 승리로 수중에 많은 돈이 들어왔으니 자만할 수밖에 없었다.
“듣기로 꽤 많은 돈을 땄다던데.”
“백작님도 소식을 들으셨나 보군요.”
그가 히죽이며 웃었다.
“아주 솜씨가 좋은 친구를 만났습니다.”
“친구? 솜씨가 좋아?”
“예. 아, 마침 잘됐습니다. 백작님께 드릴 말씀이 있었습니다. 백작님께만 특별히 말씀드리지요.”
그가 번들거리는 입술을 쭉 끌어올리며 속삭였다.
“아주 신묘한 놈입니다. 실력이 뛰어나더군요. 글쎄, 조작한 패를 모두 알아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이가 있다고?’
백작이 미간을 좁혔다.
카지노의 게임 중 몇몇은 플레이어의 패배를 조작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데 그것을 알아보다니.
그럴 리 없다는 말이 입안에 맴돌았으나, 백작은 겨우 참아냈다.
“글쎄. 나로서는 쉬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군.”
그렇게 말은 했지만, 후작의 태도와 매출이 그를 증명했다.
모든 돈을 이 멍청한 후작에게 다 털릴지도 몰랐다.
백작의 초조한 기색을 읽은 후작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뛰어난 실력자가 있다고 합니다.”
“뭐라고? 그자가 누구인가?”
“이곳엔 없습니다. 하지만…… 백작님이라면 그자를 이곳에 불러올 수 있으시겠지요.”
“그게 무슨 뜻이지?”
백작이 눈살을 찌푸리자 후작이 말했다.
“무려 황궁 감옥에 갇혀 있다더군요.”
“……!”
“이보다 더 뛰어난 자가 감옥에서 썩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입니다, 후작님.”
백작이 은근한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그자를 빼내 올 수는 없습니까?”
“말이 되는 소리군! 어찌 그런 부탁을 내게 하는가!”
백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후작은 지지 않고 그에게 간사한 혀를 놀렸다.
“승전을 기념해 죄수들을 특사(特救)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백작님이시라면 황궁 감옥의 죄수를 빼내는 것쯤은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
“그것도 아니면 황후 폐하께서 곤란해지실까 봐……?”
“말도 안 되는 소리!”
백작이 역정을 냈다.
아무리 황후라고 해도 제 딸이었다. 아비가 일하는 데 황후가 대수일까!
그가 발끈하자 후작은 멈추지 않고 그에게 속삭였다.
“그자들만 있다면 후작님과 저는 더 큰 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번뜩이는 눈빛은 흡사 광인의 것이었으나, 백작의 귀엔 꽤 그럴듯하게 들렸다.
특사를 핑계로 죄수 하나를 빼내는 것쯤은, 제 선에선 아무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제 밑에 그들을 둔다면 더 많은 돈을 카지노에 축적할 수 있을 터.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지. 그런데, 그 죄수 이름이 무어라고?”
“무려 2인조라고 하더군요. 뭐랬더라…….”
후작이 겨우 기억을 더듬어 이름을 말했고, 백작은 곧장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와 은밀히 황후의 뱀들을 불렀다.
황후에게 밝히지 않고 자신의 선에서 은밀히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황궁 감옥 죄수 명단을 가져와.”
이윽고 뱀들이 명단을 가져왔다.
백작이 명단을 빠르게 훑어 내렸다. 그리고 두 개의 이름을 찾아냈다.
백작의 눈이 탐욕으로 번뜩였다.
‘어차피 시체가 되어서야 나올 것들이니, 내 밑에서 일하는 게 서로 좋을 테지.’
그가 사악하게 웃었다.
뱀들이 가져온 서류가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거짓 서류임은 생각지도 못한 채.
* * *
며칠 후.
알음알음 알려졌던 특사(特救)가 확정되자 사람들이 눈을 크게 떴다.
“승전한 것도 좋지만, 굳이 범죄자들을 풀어줄 필요가 있나?”
“성녀님께서 제국에 오셨으니 기념하는 것 아니겠어. 성녀님이 계신다면 더 이상 제국에 악은 없을 테니까.”
사람들이 여러 이야기를 늘어놓는 가운데, 특사 날이 되었다.
몇몇 죄수들이 기쁨을 느끼며 부르짖는 가운데.
절대 열리지 않아야 할 황궁 감옥의 뒷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혹시라도 들킬까, 겁먹은 기사들을 뒤로한 채 두 명의 여인이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 나왔다.
여인 중 하나가 쭉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 발로 당당히 나올 수 있게 되다니.”
눈을 감고 햇빛 내음을 들이쉬던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역시 우리 조카가 날 닮아서 머리 하나는 참 좋다니까.”
이내 다시 고개를 내린 그녀가 뒤편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렇지, 내 동생?”
그 물음에 메이가 말없이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