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75)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75화(175/241)
* * *
황후 카르티아는 여유로운 낯으로 신문을 보고 있었다.
신문에선 매일같이 성녀의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떠들고 있었다.
그녀의 힘을 알린 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지만, 다친 사람이 엘리가 아니라 데미안이라는 점에서 다소 아쉬웠다.
첼디어가 제대로 일을 수행하지 못한 탓이다.
그녀가 쯧, 혀를 차며 신문을 넘겼다.
뒷면엔 라티오넬 이름으로 새롭게 만들어지는 학술원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그리고 새로이 만들어질 학술원에 성녀가 힘을 보탠다는 내용도 함께 적혀 있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황후 폐하. 성녀님께서 오셨습니다.”
“모시거라.”
아샤벨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군요, 성녀님.”
“……안녕하십니까, 황후 폐하.”
아샤벨이 어두운 얼굴로 그녀에게 인사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안색이 좋지 않으시군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피나에 첼디어 영애가 구속되었다고-”
“아아.”
카르티아가 빙긋 웃었다.
“맞아요. 첼디어 영애가 아주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더군요. 슈에츠 공자비를 시해하려 했다지요? 성녀님께서 공자비를 그 위험에서 구해주셨고요.”
대외적인 사실만 읊는 그녀의 말에 아샤벨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찌…… 그것은 전부 저와 황후 폐하께서-”
“성녀님.”
카르티아가 전에 없는 싸늘한 목소리로 아샤벨의 말을 끊었다.
지그시 그녀를 바라보던 카르티아가 이내 빙긋 웃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저는 그저 스나우트 령의 수확제를 성녀님께 소개해 드렸을 뿐이지 않습니까.”
아샤벨은 창백하게 굳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다.
황후는 첼디어 영애를 버리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일을 꾸미겠지.
‘그리고 어쩌면 나도…….’
아샤벨이 치맛단을 꽉 쥐었다.
역시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일이었다.
그녀가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저, 저는 역시-”
“아, 그리고 성녀님께서 바라시던 일도 곧 해결이 될 듯합니다.”
카르티아가 또다시 아샤벨의 말을 끊었다.
“성녀님께서 슈에츠 공작과 클라이더 공작, 두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거든요.”
“……!”
아샤벨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런 방법이 있다고?
대체 어떻게?
아니, 그전에 그 방법이 과연 통할까?
데미안은 엘리를 지키기 위해 팔이 일그러지는 화상조차 견뎌냈다.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느꼈던, 절대 넘을 수 없던 간극이었다.
그런데 제가 어찌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단 말인가.
평소라면 기뻐해야 할 아샤벨이 침묵하자 카르티아는 빙긋 웃었다.
‘자각했구나. 자신이 절대 가질 수 없는 자리를 넘봤다는 것을.’
클라이더, 그 지독한 핏줄은 제 아내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마다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겠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웃는 낯을 지우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성녀님께선 기억을 잊은 상태라고 하셨지요?”
다소 뜬금없는 질문에 아샤벨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머니 한 분이 계셨다는 것밖엔…….”
“잘됐네요. 폐하께서 베인스 후작을 소개해 주셨지요? 오늘 한번 그분께 가보도록 해요.”
“예? 하지만…….”
아샤벨은 쉬이 대화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슈에츠 공작과 클라이더 공작, 그녀가 기억을 잃은 것, 그리고 베인스 후작을 만나라는 말까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셋의 연관성은 보이지 않았다.
아샤벨의 의문을 읽은 카르티아가 말했다.
“베인스 가문은 현 마탑의 유치에 큰 공헌을 한 가문입니다. 학문적으로 뛰어난 가문이지요.”
“…….”
“그러니 성녀님의 기억도, 두 공작과 함께하고 싶은 바람도, 전부 다 베인스 후작이 해결해줄 겁니다.”
카르티아가 아름답게 미소 지었다.
* * *
나는 초조한 얼굴로 방 안을 돌아다녔다.
“엘리, 앉아서 기다리는 게 어떨까? 아직 다리도 다 안 나았잖아.”
“나도 같은 생각이다.”
데미안과 공작이 달래듯 말했지만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레벨리오 후작이 라티오넬 백작을 찾아가게끔, 혀를 놀리게끔 유도하긴 했지만…….
내 뜻대로 판이 돌아갈지는 솔직히 장담할 수 없었다.
‘상대는 다름 아닌 라티오넬 백작가야.’
황후의 친정이자 엄마를 죽인 가문.
그들이 어디까지 계획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초조함에 입술을 물어뜯을 때였다.
지이잉. 주머니에 넣은 영상석이 울렸다. 나는 허겁지겁 영상석을 꺼냈다.
그런데, 영상석의 신호가 평소와는 달랐다.
‘이건 분명……!’
나는 재빨리 통신을 수락했다.
흐릿한 화면 너머로, 이모의 얼굴이 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기억 속 이모의 얼굴이 맞았다.
“이모!”
저절로 반가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잘 지냈어, 우리 조카? 어우, 너무 많이 커서 몰라보겠어.〉
이모가 호탕하게 웃었다.
아무리 힘든 일을 겪어도 늘 웃던 모습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했다.
“이모, 잘 지냈어요? 어디 아픈 데는 없고요? 그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황궁 감옥이라니.”
〈아아, 이래서 재회는 좀 귀찮다니까.〉
쏟아지는 질문에 이모가 귀찮다는 듯 귀를 후볐다.
〈그래도 우리 사랑스러운 조카가 원한다면 기꺼이 알려줄……. 커헉!〉
그때, 손이 불쑥 들어오더니 이모의 입을 틀어막았다.
〈칠칠맞지 못한 언니를 대신해 사과드립니다.〉
“메이! 메이는 괜찮아?”
〈저는 괜찮습니다.〉
메이가 옅게 웃었다.
〈엘리 님 덕분에 다시 언니를 만날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웃는 메이는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아, 좀 비켜봐! 나도 우리 조카랑 오랜만에 이야기 좀 하자!〉
겨우 메이에게서 벗어난 이모가 다시 화면을 제 쪽으로 가져왔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나중으로 미루자. 그래, 묻고 싶은 게 뭐야?〉
그녀의 물음에 난 망설이다 물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날이요.”
〈…….〉
“이모가 메이에게 슈에츠 공작성으로 간다는 연락을 했다고 들었어요. ……그게 정말인가요?”
이모의 얼굴이 서서히 굳기 시작했다.
얼마간 침묵하던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사실이야. 하지만 공작성에 가기도 전에 황궁 기사단에게 붙잡혔지.〉
“어째서요? 엄마가 이모한테 무슨 부탁을 한 건데요?”
내 물음에 이모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피나에의 일처럼 황실에서 이모에게 마법을 건 것은 아닐까? 초조한 마음으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릴 때였다.
한참 후, 이모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조카가 똑똑한 건 알았지만, 정말 많이 컸네. 이런 질문도 할 줄 알고.〉
“…….”
〈섀넌도 분명 기뻐할 거야.〉
나를 바라보며 빙긋 웃던 이모가 다시 말했다.
〈내가 슈에츠 공작성으로 향한 건, 섀넌의 부탁 때문이었어.〉
“무슨 부탁인데요?”
〈……섀넌을 대신해, 유리아의 이야기를 슈에츠 공작님께 전달하기 위해서였어.〉
나는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천천히 시선을 움직이자 딱딱하게 굳은 공작의 얼굴이 보였다.
유리아 님이라니.
죽은 공작부인의 이야기를, 엄마는 왜 이모를 통해 전달하려 했던 걸까?
이모가 유리아 님을 언급하자 방 안이 싸늘한 정적에 휩싸였다.
“이 또한 황후의 농락인가?”
그때, 공작이 서릿발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유리아 이야기를 꺼내면 내가 신뢰할 것이라고?”
〈아닙니다.〉
“하면.”
〈…….〉
“무엇 때문에 나를 찾아왔지.”
공작의 물음에 이모는 침묵했다. 공작의 붉은 눈동자가 살기로 일렁였다.
‘공작님의 이성이 흔들리고 있어.’
자칫하면 광증이 발현될 수 있었다. 나는 다급히 말했다.
“이모, 어서 이유를…….”
〈미안하지만, 엘리.〉
그때 이모가 내 말을 단호히 잘라냈다.
〈여기서부턴 어른들끼리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
“하지만……!”
〈성인이라고 해도, 어른들 눈엔 여전히 너희는 병아리처럼 보인단다.〉
이모가 빙긋 웃었다.
〈그러니 자리를 비켜줘. 그래 줄 수 있지?〉
긍정을 바라는 목소리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다.
“엘리.”
데미안이 나를 향해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두 분끼리 이야기하실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드리자.”
“…….”
“우리는 빠져드리는 게 나아.”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석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둔 나는 데미안과 함께 방을 빠져나왔다.
문을 닫기 전, 보았던 공작의 굳은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 * *
엘리와 데미안이 나간 후에도 집무실 안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말해.”
이윽고 에르하르트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가 유리아의 어떤 이야기를 내게 전하려고 했는지.”
〈…….〉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솔리오를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가 노골적인 살기를 내뿜었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엘리의 엄마, 그러니까 섀넌은 자주 유리아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
〈그때 저는 유리아가 공작님의 부인이신 줄 몰랐습니다. 그저 섀넌을 통해 이야기만 전해 들었을 뿐이니까요.〉
“본론.”
에르하르트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 빌어먹을 광증이 발현되기 전에, 어서 유리아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두 사람은 2차 대륙 전쟁 때 처음 만났다더군요.〉
2차 대륙 전쟁 당시, 에르하르트는 출정을 나가 있었다.
타인은 지켰지만 결국 제 가족은 지키지 못했던 그 시기.
에르하르트가 주먹을 꽉 쥐었다.
“내 죄책감을 이용해 시간을 벌 작정이었다면 안타깝게 됐군.”
그가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붙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것으로 내 자비는 완전히 바닥났으니.”
〈섀넌이 유리아를 처음 만났을 때.〉
그때 솔리오가 말했다.
에르하르트가 멈칫하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가가 슬프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때…… 유리아는 임신 중이었다더군요.〉
그 말에 에르하르트의 세상이 천천히 발밑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