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78)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78화(178/241)
대외적으로 베인스 후작은 자식이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웬 허름한 옷차림을 한 남자아이가 후작 옆에서 구슬프게 울고 있다니.
황궁 기사단은 당황했지만 곧 이해했다. 귀족사회에서 사생아는 흔한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자식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하나같이 충격적이었다.
그토록 명예를 원한 사람이었으니, 하다못해 손가락질 받으며 죽었어야 했는데!
내가 당신의 몰락을 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아버지를 데리러 온 황궁 기사단 앞에서, 아르펜은 땅을 치며 죽은 아비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결국 그녀는 희대의 사이코라 불리게 되었고, 후작은 자식은 제대로 키우지 못한 불쌍한 작자라는 불명예와 함께 눈을 감았다.
그녀의 삶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아르펜의 말은 패륜이었으니, 그런 말이 도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엘리의 생각은 달랐다.
베인스 후작은 저보다 똑똑하단 이유 하나만으로 자식을 외면했다. 살아 있는 생명을 모르는 척, 지우려고 했다.
물리적으로 퍼부어지는 폭력만이 학대는 아니었다.
그러니 적어도, 엘리는 아르펜의 생각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엘리도 처음 아르펜을 봤을 땐 무척이나 무섭다고 생각했다.
“아,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엘리에요…….”
“…….”
“자, 잘 부탁 드립…….”
“다섯 번째네.”
“……네?”
“심지어 제일 맑은 색깔이야.”
어색하게 건넨 인사에 아르펜은 대뜸 이런 말을 늘어놓았다.
무슨 말이냐고 묻는 시선에도 그녀는 엘리의 눈동자만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말 편하게 해. 어차피 얼마 못 갈 테니까.”
엘리가 뜻을 알아차릴 틈도 없이 아르펜은 홱 몸을 돌려 멀어졌다.
처음엔 좀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저랑 동갑이라고 들었는데.
무표정한 얼굴에 퀭한 눈 밑, 항상 웅크리고 멍하니 허공을 보는 그녀는 쉬이 호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너, 그 도둑의 딸이라며?”
그래서 아르펜이 이 말을 꺼냈을 땐 무척 놀랐다.
어떻게 알았지?
원장 선생님이 절대 알려져선 안 된다고 했는데…….
또다시 파양 당하는 건가?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가게 되면 원장 선생님이 날 가만두지 않을 거야.
엘리가 덜덜 떨자 아르펜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가 널 왜 입양한 줄 알아?”
“아, 아니.”
“네 눈동자 때문이야.”
“……눈?”
멍하니 눈만 깜빡이는 엘리에게 아르펜은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았다.
“살고 싶다면 네 어머니가 누구인지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아르펜은 그렇게 말하며 홱 몸을 돌렸다.
아르펜은 저와 동갑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무서운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 말을 믿어야 할 것 같았다.
항상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던 양아버지가 가끔 저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으니까.
그래서 엘리는 자신의 엄마가 누구인지를 밝혔고, 늘 그래 왔던 것처럼 파양당했다.
그땐 아르펜이 저를 쫓아내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다섯 번째라던 그녀의 말이 무엇이 었는지.
녹색 눈을 가진 아이는 강한 마나를 가질 확률이 높았다. 연구에 미친 후작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아르펜이 저를 동정해서 엄마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아르펜이 먼저 엄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파양 당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후작의 실험체로 쓰였을지도 몰랐다.
아르펜은 제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나를 도와 줄 사람이기도 하지.’
“어때?”
엘리가 빙긋 웃었다.
패륜을 제안하며 이렇게 아름답게 웃을 수 있다니.
참으로 괴이한 상황이었으나, 아르펜은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한 마디 할 뿐이었다.
“불.”
“어?”
“불 달라고.”
그녀가 손을 까딱였다.
잠깐 당황하던 엘리는 담뱃대에 불을 붙여주었고, 아르펜은 깊게 연기를 들이마셨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아르펜이 뒤쪽의 데미안에게 시선을 주며 물었다.
“남자 친구?”
“응?”
엘리가 되묻자 아르펜이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눈빛이 무시무시하길래 날 죽일 건가 싶어서.”
“……남편입니다.”
거침없는 그녀의 말에 데미안이 대답했다. 하지만 경계심으로 가득한 눈빛은 거두지 않은 채였다.
“아아.”
무미건조한 대답을 흘린 그녀가 다시 엘리에게 물었다.
“네 편인 건 확실해?”
“그게 무슨 뜻이야?”
“네 남편이란 사람, 믿을 만하냐고.”
그녀가 엘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르펜의 물음에 엘리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평생을 외면당한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믿지 않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엘리는 대답했다.
“믿을 수 있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데미안이다.
‘데미안이 날 배신할 리 없잖아.’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엘리는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사람의 마음은 쉽게 변한다. 엘리가 살아오면서 뼈저리게 느꼈던 하나의 진리였다.
그런데 어째서 저는 쉽게 단언한 걸까.
그러면서도 덜컥 두려워졌다.
데미안이 내게서 등을 돌리면 어떡하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곁에 두고 싶다 말하면, 나는 어떡하면 좋지…….
생각하던 엘리는 벼락 맞은 사람처럼 깨닫고 말았다.
아. 난 데미안 곁에 있고 싶은 거구나.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그의 안식이었으면 하는 거구나.
“엘리.”
그녀가 뒤늦은 자각에 멍해 있자, 데미안이 빠르게 안색을 살폈다.
“어디 안 좋아?”
엘리는 그렇게 묻는 가만히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푸른 눈동자는 오롯이 저만을 향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그 순간, 엘리는 확신할 수 있었다.
데미안은 저를 배신할 리 없다고. 그리고 저 또한, 데미안을 놓치지 않을 거라고.
그녀가 이내 옅게 웃었다.
“아니, 괜찮아.”
그녀의 웃음에도 데미안은 걱정스러운 낯을 지우지 못했다.
정말 괜찮다는 듯 빙그레 웃은 엘리가 다시 아르펜을 바라보았다.
“난 데미안을 믿어.”
그 당당한 대답에 아르펜은 느릿하게 시선을 움직여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제 아내에게 잠시라도 걱정을 안겨준 것이 못마땅한 듯, 경계의 빛이 짙어져 있었다.
아르펜은 그 눈빛을 잘 알았다.
실험용으로 데려온 짐승들이 저런 눈빛을 띠었으니까.
그녀는 각인을 마친 짐승이 제짝을 지키기 위해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인간들은 자신이 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가족이 어떻게 되는지는 상관없었다.
그렇다면, 인간보다 지능이 낮은 짐승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발버둥 쳤다. 짝을 살리기 위해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반려의 피를 핥았다. 제 살가죽에서 울컥울컥 쏟아지는 피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래 보이네.”
그래서 아르펜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데미안은 절대 엘리를 배신할 수 없다는 것을.
버려질까 봐 두려워할 사람은 그라는 것을.
“계획이 뭔데? 난 최대한 아버지가 비참하게 죽었으면 해.”
베인스라는 이름이 세상에서 지워지면 더더욱 좋을 것 같은데.
“가능해?”
무시무시한 요구사항에 엘리가 옅게 웃었다.
* * *
며칠 후. 제국신문 1면에 기사가 실렸다.
베인스 후작이 라티오넬의 지원을 받아 갖은 연구를 한 끝에 정확한 친자 검사 마법식을 만들었다는 소식이었다.
기존의 친자 검사는 성수에 피를 떨어뜨려, 마나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하지만 평민들은 비싼 성수를 구입할 수 없었다.
그런데 베인스 후작이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발명을 해낸 것이다.
대륙 전쟁 이후, 많은 고아들로 고난을 겪었던 제국이었기에 베인스 후작의 마법식은 큰 찬사를 받았다.
헤어진 자식과 부모의 재회로 제국엔 한 차례 감동의 물결이 일었고, 자연스럽게 베인스 후작과 라티오넬 쪽에도 영광이 이어졌다.
라티오넬이 인재양성을 목표로 내건 학술원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공작은 굳은 얼굴로 그 내용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모에게서 딸 이야기를 들은 공작님은 며칠 동안 공작성에 돌아오지 않으셨다.
오랜만의 귀환에도 나는 그가 어딜 다녀왔는지 일부러 묻지 않았다.
망토와 장갑에 묻은 검붉은 피가 행적을 증명했으니까.
‘아샤벨은 만나지 않으신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보다 걱정이 앞섰다.
혹시 신전에서 수를 쓸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죄책감 때문에 쉽사리 갈 수 없으셨겠지.
20년이란 시간이 지나도록 딸의 존재조차 몰랐다는 것이 되니까.
“엘리. 표정이 왜 그러지?”
그때, 공작님이 내게 물었다.
“……아, 잠깐 다른 생각 중이었어요.”
“충분히 잠을 자거라. 또 무리해서 쓰러지면, 알지?”
공작님이 날 바라보며 옅게 웃었다.
애써 웃고는 있지만 피곤한 기색이 가득했다.
어떻게 이 순간에도 나를 걱정할 수 있을까.
지금 그의 마음은 타들어가는 중일 텐데…….
그래서 나는 애써 웃어 보였다.
당장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 최선이었으니까.
그때였다.
“공작님……!”
프란츠가 다급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 들린 신문에 속보, 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성녀라고 쓰인 글자도 함께였다.
공작님의 붉은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무어라 말하려던 안테는 함께 있는 나와 데미안을 발견하곤 입을 다물었다.
공작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실례하지.”
차분하지만, 그러나 미약한 흔들림은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인사를 전한 공작님이 방을 나섰다.
데미안이 나를 바라본 순간.
지이잉. 주머니에서 신호가 울렸다.
아르펜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새로 만든 마나석에 글자가 떠올랐다.
[성공.]글자가 주는 쾌감이 강렬했다.
나는 마나석을 꽉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데미안.”
복수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