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82)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82화(182/241)
멈칫한 에르하르트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여기 계셨군요, 한참 찾았어요.”
엘리가 옅게 웃으며 그와 눈을 마주했다.
그녀가 천천히 반대 팔을 뻗어, 단도를 잡은 그의 손 위에 제 손을 얹었다.
“공작님.”
엘리가 작게 중얼거렸다.
“지금은…… 안 돼요.”
그러나 이내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엘리.”
“알아요.”
“…….”
“공작님께서…… 어떤 마음인지, 저도 알아요.”
엘리의 눈동자에 슬픔이 한가득 어려 있었다.
그의 마음이 어떨지는, 엘리도 알고 있었다.
그녀도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아 보았으니까.
뼈에 사무친 죄책감의 고통이 얼마나 클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다 체념해 버린 거겠지.
하지만 엘리의 생각은 달랐다.
이모와 엄마는 유리아 님을 알고 있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아직 그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지 못했다.
어쩌면 살아 있을지 모르는 딸도, 아직 찾지 못했다.
엘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꾸욱, 포갠 손 위로 힘을 주었다.
“함께 있게 해 주세요.”
“…….”
“부탁드려요.”
그 순간,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에르하르트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단도를 바닥에 떨어뜨린 엘리가 천천히 그를 끌어안았다.
에르하르트는 엘리를 밀어내지 않았다. 아니, 밀어내지 못했다.
모든 걸 놔버린 사람처럼, 무감할 뿐이었다.
그에 엘리는 울컥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에게 에르하르트는 오랜 시간, 거친 풍랑을 이겨냈던 사람이었다.
그 어떤 일에도 무너지지 않고 견고히 맞설 사람.
하지만 지금의 그는 너무나 쓸쓸해 보였고…… 너무나 지쳐 보였다.
제가 너무 커버린 탓일까.
엘리는 말없이 그를 꽉 끌어안았다.
토닥이는 손길이 아이 다루듯 부드러웠다.
기계적으로 눈을 깜빡이던 에르하르트가 문득 피식, 건조한 웃음을 흘렸다.
“나를 아이로 보는구나.”
한결 나아진 말투였다.
멈칫하던 엘리가 말을 이었다.
“오늘은 아이처럼 생각하려고요.”
“한 마디를 안 지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에르하르트는 엘리를 밀어내지 않았다.
“……저희 엄마가 그랬거든요.”
그때 엘리가 작게 속삭였다.
“가장 좋은 위로는 안아주는 거라고.”
잠시 침묵하던 에르하르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또…….”
“…….”
“……또 비슷한 말을 하는구나.”
“비슷한 말이요?”
“그래.”
에르하르트가 작게 중얼거렸다.
“……유리아도 너랑 같은 말을 했거든.”
그래서일까.
엘리의 곁에 있으면 유리아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영원한 안식을 얻는 것처럼.
그녀와 함께 있는 것처럼-
“당신을 증오해.”
그때였다.
에르하르트의 귓가로 유리아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말들이었으나, 몸속에 흐르는 오랜 저주가 빠르게 날뛰기 시작했다.
폭주의 전조 증상이었다.
“크흑……!”
에르하르트가 재빨리 엘리를 밀쳤다.
갑자기 밀려난 몸에 당황한 얼굴을 하던 엘리가 경악한 표정을 했다.
“공작님!”
“다가오지……!”
에르하르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서 피를 보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엘리가 위험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위로를 해줄게요.”
“당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크흑…….”
그녀의 목소리가 여러 개로 뒤섞이기 시작했다.
몸이 수 갈래로 쪼개지는 듯한 고통이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하지만 여기서는 안 되었다.
이곳만은. 그리고 엘리만은.
에르하르트가 검을 들어 다급히 자신의 가슴께를 찔렀다.
이렇게 해도 몸속에 도는 피가 그를 꾸역꾸역 살릴 것이 뻔했다.
하지만, 폭주하는 시간을 늦춰줄 수는 있을 터였다.
“공작님!”
엘리가 다급히 그의 곁으로 달려갔다.
에르하르트는 검을 더 깊이, 밀어 넣었다.
눈앞이 흐릿해졌다. 하지만 죽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기절하는 것뿐.
‘이렇게 된다면 폭주는 멈출 수 있겠지.’
그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검게 물드는 시야 속에서, 저를 향해 달려오는 엘리가 보였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아아.
이것은 벌이었다.
감히 안식을 찾으려 했던 벌.
엘리의 비명을 뒤로한 채, 이윽고 그의 눈이 완전히 감겼다.
* * *
데미안은 눈앞의 사람을 굳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제법 부담스러울 법한데도, 아르펜은 시선을 무시한 채 연기를 내뿜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아르펜이 허공을 응시한 채 말했다.
“웬일로 반려를 두고 혼자 왔네.”
“…….”
“궁금한 거라도 있나 봐.”
신분 따위는 아랑곳 않는 말이었다.
이름이 올라가지 않은 자식이라지만 아버지가 황족 시해로 죽었으니, 그녀는 더 이상 후작 영애가 아니었다. 평민보다 못한 존재가 쓸 언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데미안은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까.
“그대가 만든 마법식에 대해 물어볼 게 있습니다.”
데미안은 한번 뜸 들이다 물었다.
“친자 키트에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그러자 아르펜이 데미안을 힐끗 쳐다보았다.
“난 그런 두루뭉술한 말 싫어해.”
“하면 제대로 묻겠습니다.”
데미안이 주먹을 꽉 쥐었다.
“친자 키트에 손을 써, 황후의 얼굴과 목덜미에 흔적을 남긴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에 아르펜이 고개를 돌려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푸른 눈동자가 잔뜩 억눌려 있었다.
지그시 바라보던 아르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엘리가 부탁한 대로, 마나 흐름을 추적해 증폭시켰을 뿐이야.”
엘리의 계획은 이러했다.
죽은 공작부인은 소수 일족이었다.
그리고 황후는 소수 일족의 힘을 억지로 빼앗아 가지고 있었다.
“그 힘을 아샤벨에게 써서 소수 일족인 것처럼 보이게 할 거야. 황실과 신전은 그것을 근거 삼아 공작님의 딸이라고 우길 거고.”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
“아르펜. 마나 흐름 추적, 가능하지? 그럼 본래 주인에게 돌아가게 만드는 것도 가능해?”
본래 제 것이 아니었다고 해도 제 것처럼 사용했다.
그러면서 본래의 마나와 황후의 마나가 뒤섞였다. 마나가 황후를 기억했다.
강제적인 증폭을 이겨내지 못 한 마나가 본래 소유자인 황후에게 돌아가도록 만든 것이다.
“그런데 엘리가 연출이 중요하다고 하길래.”
아르펜이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황후가 제일 싫어할 게 뭘까, 생각해 봤어. 그뿐이야.”
“제대로 설명하십시오.”
굳은 어조에 아르펜이 말했다.
“카르티아 라티오넬에게는 동생이 하나 있었어. 하녀 소생 사생아라서 귀족 명부에 이름을 올릴 수도 없었지.”
“…….”
“그리고 황제는 그 동생을 정부로 삼았어.”
“부인의 동생을, 정부로 삼았단말입니까?”
데미안이 혐오스러운 것을 보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귀족사회에서 정부를 두는 일은 흔했다.
그런데 저런 반응이라니.
아르펜은 문득 클라이더의 몸속에 흐르는 피를 연구해 보고 싶어 졌다.
생각을 뒤로한 채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래. 하지만 황후는 알다시피 야망이 넘쳐나는 사람이라서.”
아르펜이 하늘로 퍼지는 담뱃대의 연기를 내려다보다 말했다.
“황제의 총애를 빼앗는 걸 지독히도 싫어했어.”
“그래서 그녀를 죽인 겁니까?”
“아니. 죽이진 않았어. 그저.”
그녀가 입술을 달싹였다.
“얼굴을 망가뜨려 놨다더군.”
“……뭐?”
“사생아 동생은 황후와 외형이 아주 흡사했다고 들었어. 차이가 있다면 동생 쪽이 무척 소심하고 유약했다는 것 정도.”
그리고 황제는 똑같은 얼굴에 다른 성격을 가진 것을 무척이나 흥미로워했다.
“그래서 또 다른 차이점을 만들어준 거지.”
아르펜이 데미안과 시선을 마주했다.
“아무리 닮았다고 해도 그런 흉터가 있으면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지. 황제는 그날 후, 사생아 동생에게 관심을 끊었어.”
“……다른 귀족들도 모르는 이야기를, 그대는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황후가 직접, 아버지에게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 흉터를 만들어달라고 했으니까.”
“……!”
데미안의 눈이 크게 뜨였다.
“마탑을 이용하면 마나 흔적이 남을 테고, 적당한 게 한때 천재라 불리었던, 그래서 이용해 먹기 좋았던 우리 가문이었지.”
“…….”
“마침 아버지께서 사라지지 않는 저주를 연구하고 계셨거든.”
나한테 써보려고.
“아쉽게도 내가 해독식을 만들어, 나한테는 쓰지 못하셨지만.”
아르펜이 무심히 연기를 내뱉었다.
“내가 아는 건 이게 전부야. 그 후, 사생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몰라.”
데미안은 인상을 찌푸린 채 그녀를 응시했다.
도저히 분간이 안 되는 사람이긴 했으나, 그렇기에 진실처럼 들렸다.
‘황후의 사생아 동생이라.’
대체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데미안이 생각하고 있을 때, 아르펜이 무심하게 말했다.
“남의 것을 탐내는 성미였다던데. 아마 도둑질을 하다 죽지 않았을까. 그렇게 추정하고 있어. 게다가 임신까지 했으니, 더더욱 혼자 살기 힘들었겠지.”
“……뭐?”
데미안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임신이라고?”
“그래. 아마 황제의 아이를 가졌을 거야. 물론 황후의 성격상, 어떻게든 유산하도록 만들었겠지만…….”
아르펜의 말이 이어졌으나 데미안의 귓속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응, 우리 엄마.”
“얼굴이랑 목 쪽에 큰 화상을 입으신 적이 있거든.”
사라지지 않는 통증. 얼굴과 목의 화상.
쌍둥이처럼 닮은 황후와 그녀의 사생아.
제국을 뒤흔든 유명한 도둑의 딸, 엘리.
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그럴 리 없다고 강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마음대로 퍼즐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엘리가 제국에 몇 없는 금발인 것, 수인의 언어를 쓸 줄 아는 것까지.
만약 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엘리는 황제와 사생아의…….’
데미안이 이를 악물었다. 이 사실이 절대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되었다.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편지 안 가져가?”
아르펜이 한가득 쌓인 편지를 눈짓하며 물었다.
1년 동안 빼돌린 데미안과 엘리의 편지였다.
엘리의 예상대로, 남부 전선에 레벨리오의 이름을 올린 건 혼선을 주기 위한 신전의 계략이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엘리의 편지였지만,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깊은 불안함이 데미안의 가슴을 옥죄었다.
이윽고 공작성에 도착한 데미안이 가장 먼저 본 것은 신전의 문양이 새겨진 마차였다.
그가 이를 악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함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황녀님!”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에 데미안의 발목이 붙들렸다.
“잃어버린 황녀님을 찾았다!”
“황녀님! 만세!”
황실의 기사들이 엘리를 향해 연신 축복하듯 인사를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