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85)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85화(185/241)
* * *
다음 날.
마테오는 여전히 분이 안 풀리는 듯 성난 얼굴로 황후 궁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얼굴에 이상이 생겼다고 해도, 새로운 황녀가 나타난 판국에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는 게 말이 돼?’
게다가 외할아버지인 라티오넬마저도 지금까지 연락 하나 없었다.
어찌 감히 제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마테오가 연신 씩씩거릴 때였다.
넓은 황실 정원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누군가가 보였다.
엘리와 황족의 교육을 담당하는 학자들이었다.
‘황녀가 되었으니 뒤늦게 후계 교육이라도 받는다는 소리인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짐승 같은 놈이 옆에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 작은 여자아이가 대체 뭘 하겠다고.
악에 받친 소리를 내뱉기 위해 마테오는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또, 다른 것은 할 줄 아는 게 없으십니까?”
그러다 들리는 대화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학자들의 난감한 시선이 엘리의 손에 들린 활에 닿아 있었다.
같은 황족이라고 해도 성별에 따라 배우는 것이 달랐다.
황자는 무술을, 황녀는 예술을 익혔다. 그것에 반기를 드는 황족은 여태까지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활이라니.
“다른 건 모르겠지만, 활은 조금…… 연약하신 숙녀분께서 하시기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술이나 피아노 같은 악기는어떠십니까? 아니시면 꽃꽂이도 괜찮으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활이 좋은 걸요.”
하지만 엘리는 빙긋 웃을 뿐이었다.
“정 그렇게 원하신다면…… 우선 한번 해보기라도 하실까요?”
학자들이 어색하게 웃으며 시종들에게 과녁대 준비를 명했다.
엘리는 활시위를 당겼다. 자세는 나름 괜찮았으나…….
핑!
나가는 솜씨가 형편없었다.
얼마 못 가 떨어진 화살을 보며, 학자들이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웃었다.
“오늘따라 잘 안 나가네요.”
엘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혹시 더 연습할 만한 곳이 있나요?”
“계속……하시려는 겁니까?”
“네. 안 되나요?”
엘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참, 이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적응력이 보통이 아니군.’
학자들은 혀를 내두르면서도, 한편으론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대가 끊겨가는 치유력을 개화한 황녀인 데다가, 슈에츠와 클라이더의 사랑을 받는 인물이다. 두려울 게 없겠지.
‘황자님들이 위험하겠는데.’
“그럼 한번 더 자세를 잡아보실까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들은 착실히 엘리의 비위를 맞췄다.
뒤편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테오가 이를 이득 갈았다.
그도 학자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계집이 있으면 황태자 자리는 물 건너가게 된다.’
그렇게 만들 수는 없는데……! 생각하던 마테오가 번뜩 고개를 들었다.
‘……그래.’
죽이면 되잖아.
저 아이를 죽이면 다시 예전처럼 형님과 나, 둘만 겨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곧, 그의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았다.
‘꼭 죽여야 하나?’
지지 않고 눈을 마주하는 것이 짜증나긴 했지만, 그 외모만큼은 지독히도 아름다웠다.
게다가 그 아이의 힘.
그 힘만 있다면 제가 황제가 될 수도 있을 터.
어머니는 녹색 눈을 가진 여인에게 흘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홀리는 게 아니라, 손안에 쥐면 되지 않은가.’
마테오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곧장 황후 궁으로 향했다.
당장 제 생각을 내뱉으려던 그가 카르티아를 발견하곤 눈을 크게 떴다.
어머니의 얼굴을 물들였던 검은 얼룩이 전부 지워져 있었다.
“왔나요, 2 황자.”
서류를 확인하고 있던 카르티아가 부드럽게 웃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성녀의 치유 덕분이지요. 마침 회복이 다 끝나가던 참인데, 무슨 일로 이 어미를 찾아왔나요?”
“아, 그것이.”
마테오는 잘됐다는, 형식적인 말도 잊고서 입을 열었다.
“그 계…… 아니, 새로이 찾은 황녀 말입니다. 그냥 두고 보실 겁니까?”
마테오가 엘리를 언급하자 카르티아의 입매가 굳었다.
지금 그녀만큼, 그 아이를 죽이고 싶은 사람은 없을 터였다.
자애로운 이미지를 위해 라티오넬의 이름으로 학술원을 지었다.
그리고 베인스 후작과 함께 친자확인 키트를 만들어 제국 고아들을 위해 힘썼다.
하지만 레일리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고, 정작 제 핏줄은 딸을 도둑으로 몰아 죽였다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래도 기존에 해온 선례가 있는 데다, 뛰어난 사람들을 선생으로 데려온 터라 학생들은 끊기진 않았다.
하지만 그런 말들이 도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치욕이었다.
그녀가 굳어 있자 마테오는 얼른 제 생각을 말했다.
“사냥대회를 열어보는 건 어떨까요.”
“사냥대회?”
“현 슈에츠 공작도 아직 일어나지 못 하고 있으니, 그 아이는 완벽히 혼자입니다. 혼자의 몸으로 사냥대회에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
“혼자 남을 때, 제가, 제 손으로 그 아이를 죽이겠습니다.”
마물이 가득한 숲과 가진 거라곤 치유력밖에 없는 여자.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수가 너무 얕군요, 2 황자.”
“예? 하지만, 어머니……!”
“사냥대회는 다른 귀족들도 참가할 수 있습니다. 클라이더, 그 아이가 제 부인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텐데.”
“……!”
“2 황자, 가능하겠습니까?”
마테오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에 카르티아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마테오는 조금 멍청한 편이었고, 그래서 쓰기 좋은 장기말이었다.
‘사냥대회를 생각한 건 칭찬해줄 만하군.’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사냥대회를 주최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요. 최대한 3 황녀와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도록 하세요. 그 아이의 이미지가 2 황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될 겁니다.”
그녀는 그 말과 함께 다시 서류로 시선을 옮겼다.
이만 나가보라는 뜻이었다.
울컥, 마테오의 관자놀이에 핏대가 섰다.
어머니는 항상 그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중요한 일이 있을 땐 물러나기를 권유했다.
저를 위한답시고 하는 말이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전부 어머니, 그녀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황족은 나야. 루멘치아의 피를 이어받은 건 어머니가 아닌 나라고!’
마테오가 주먹을 꽉 쥐었다.
넘실거리는 분노가 그의 눈을 가렸다.
더 이상 어머니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어졌다.
이젠, 제 뜻대로 할 것이다.
* * *
갑작스럽게 열린 사냥대회 소식에 귀족들은 술렁거렸다.
황녀를 찾았다고 해도, 아직 제국 내 분위기가 뒤숭숭하건만, 사냥대회라니. 어지간히 기쁜가 보군.
귀족들은 쯧쯧 차면서도 참석 의사를 밝혔다.
새로이 찾은 황녀, 엘리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슈에츠 공작은 아직도 성녀의 치유를 받고 있으니 당연히 못 올 것이고. 클라이더 공작은 올까?”
“아무리 부인이라고 해도 공작위 반환을 이유 삼아 전쟁터에 보낸 황족을 누가 좋아하겠어?”
“무슨 소리. 그 가문이 얼마나 끔찍한 애처가인데. 황녀 전하께서 이혼을 요청한 거면 몰라도.”
여러 말들이 쏟아졌으나 슈에츠와 클라이더 쪽은 잠잠했다.
게다가 황녀의 양 오라버니이자 최측근인 제리트 아만타마저 무슨 일에선지 스나우트 령에서 나오질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클라이더 쪽에서 사냥대회 참가 의사를 밝혔다.
한 차례 이혼 소문까지 돌았던 그들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던 귀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참가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사냥대회 당일.
대회가 열리는 황궁 뒤편의 숲은 낮인데도 묘한 음기가 돌았다.
“어째 올해 더 심한 것 같소만.”
“정신 바짝 차려야겠군요.”
으스스함에 몸을 떨고 있을 때, 저 멀리서 클라이더의 인장이 새겨진 마차가 도착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에 쏠렸다.
문이 열리고 데미안이 마차에서 내렸다.
정복이 아닌, 사냥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평소와는 다른 날카로운 분위기가 풍겼다.
게다가 살짝 찌푸린 미간은 그의 예민한 성미를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구경 나온 어린 영애들이 저도 모르게 볼을 붉혔다.
선물이라도 가져온 것인지, 손에 무언가를 꼭 쥐고 있었다.
수그러들었던 이혼 이야기는 엘리가 황녀라는 사실이 밝혀지고나서부터 다시 불붙듯 번져가고 있었다.
그래서 데미안에게 연심을 품었던 자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황실 기사단과 함께 황제를 제외한 황족들이 숲으로 들어왔다.
“황후 폐하!”
“평안을 되찾으신 것 같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 말에 카르티아가 인자하게 웃었다.
“되찾은 황녀 덕분이지요.”
인자한 어조에 귀족들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녀는 사생아의 존재를 지우기 위해 제 이복동생을 도둑으로 몰아 죽였다.
‘그런데 저렇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수가 있다니.’
‘정말 대단하군.’
파비안은 늘 그렇듯 무표정한 낯이었고, 마테오는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그리고, 엘리는…….
그녀를 살피던 귀족들이 이내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바로 황녀의 의상 때문이었다.
사냥대회 때, 황녀들은 드레스를 입고 다른 영애들과 다과를 즐기며 사내들이 마물을 잡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사냥복이라니.
‘함께 사냥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아무리 황족이라고 해도 저 가느다란 팔로 어떻게 마물을 잡겠다는 건지…….’
‘폐하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안 하신 건가? 아무리 되찾은 황녀라고 해도, 너무 오냐오냐 하시는군.’
사냥복 입은 황녀.
그 이름에 쏠리는 시선이 부담스러울 법도 하건만, 엘리는 활시위를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음, 이건 좀 빡빡하네.’
팔이 좀 아프겠다.
-하면서.
그에 귀족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데미안에게 쏠렸다.
그는 억눌린 얼굴로 엘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응시하는 시선이 매서웠다.
그때, 황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사를 올리는 귀족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자리해 주어서 고맙군. 사랑스러운 딸을 되찾은 기쁨을 그대들과 함께 누리고자 이 자리를 만들었네.”
황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어디선가 가득, 하고 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분위기로 봐서는 이혼 이야기가 나오겠군.’
귀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황제가 사냥대회 시작을 알렸다.
모두가 흩어지는 가운데, 영애 하나가 용기를 내 데미안 곁으로 다가갔다.
“저, 공작님…….”
분명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을 터였다.
하지만 데미안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영애를 스쳐 지나갔다. 도저히 붙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황망한 얼굴을 하던 영애의 얼굴에 곧 의문이 스쳤다.
데미안이 숲 입구가 아닌, 반대편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