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87)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87화(187/241)
엘리가 놀란 눈으로 데미안을 바라봤다.
그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인 듯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두 사람은 빠르게 결계 안으로 들어갔다.
알 수 없는 무형의 힘이 그들을 감쌈과 동시에 마테오의 수족들이 그들 앞에 섰다.
“황자 전하!”
“서, 설마 기절하신 거야?”
“주치의! 주치의를 불러!”
분명 바로 앞에 있는데, 두 사람은 발견하지 못한 듯 마테오만을 살폈다.
‘결계 속으로 안전히 들어왔다는 뜻이야.’
하지만 시간이 얼마 없었다. 깨어난 마테오가 탑에 다시 오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엘리와 데미안은 탑을 올려다보았다.
이끼가 가득 낀 탑은 소름 끼칠 만큼 조용했다.
한 차례 사고가 있었는지, 지붕으로 보이는 잔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엘리는 입구를 찾기 위해 벽을 더듬었다.
세월의 무게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조용한 탑 안엔 여러 개의 문이 있었다.
그리고 지독한 악취.
그녀는 이 냄새를 알고 있었다.
‘……억지로 마나를 뒤튼 거야. 이곳에서 소수 일족을 착취한 게 분명해.’
주먹을 꽉 쥐던 엘리가 데미안에게 물었다.
“단서가 될 만한 게 보여?”
“무너진 건물 잔해뿐이야. 단서가 될 만한 건…… 없는 것 같아.”
“……아니야, 있을 거야.”
엘리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유리아 님께서 다른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반드시 찾아야 했다.
‘그래야 공작님을 구할 수 있어…….’
그때였다.
어디선가 희미한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여인의 목소리는 자장가를 부르고 있었다.
다정하고 포근한 음색이었다.
듣는 사람의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지는 듯한.
그런데…….
툭.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
주인도 모르게 나온 눈물. 멍하니 굳어 있던 엘리가 자신의 뺨을 닦기 시작했다.
“엘리.”
깜짝 놀란 데미안이 그녀를 살폈다.
“왜, 왜 울어. 어디 아파?”
“하나도 안 아파. 안 아픈데…….”
이상하게 자꾸, 자꾸 눈물이 나왔다.
엘리가 팔로 서툴게 제 눈가를 닦았다.
그러나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의 양은 점점 늘어만 갔다.
이 목소리의 주인은 누구일까.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 것일까.
그리고 그 순간.
“내 아이 이름, 네가 정해줬으면 좋겠어.”
포근한 목소리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내, 내가 어떻게……. 아이의 이름은 신중히 정하는 게 좋아요.”
이윽고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엘리의 숨이 멈췄다.
왜.
왜 여기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엘리가 혼란을 겪는 사이,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면, 아이는 불행해질 거예요…….”
“무슨 소리야. 난 매일 당신만을 기다리는걸. 갇혀 있는 나를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행복한데.,’
설득하는 목소리는 밝고 쾌활했다.
“그럼 나랑 내기할래? 당신이 이름을 지어준 아이가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
“…….”
“어, 표정 보니 생각해 둔 이름은 있구나? 뭔데?”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아, 저, 정말 생각만 했어요. 다른 뜻은 없었고요! 음, 그러니까…….”
망설이는 듯, 잠시 대화가 끊겼다.
“……이 이름이 유리아, 당신과 당신 아이한테 어울릴 것 같아요.”
이윽고, 다시 돌아온 대답엔.
“……엘리.”
그녀의 이름이 담겨 있었다.
엘리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녀는 황제가 탑에 가둔 정부가 유리아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유리아 님께서 무슨 단서를 남겼을지도 모른다고.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왜 여기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 걸까.
‘설마.’
설마, 내가…… 유리아 님의…….
엘리가 혼란을 겪는 사이,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여, 역시 좀 이상하죠……? 더 예쁜 이름을 주는 게…….”
“아니, 정말 예쁜 이름인걸. 너무 마음에 들어. 우리 아이도, 에르하르트도 기뻐할 거야.”
목소리는 그렇게 말하며 옅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러나 이어지던 웃음은 곧 거센 기침 소리로 바뀌었다.
“유리아!”
“난 괜찮아. 몸이…… 좀 약해졌거든. 피를 너무 많이 빼앗겼나 봐.”
“어, 어떡해…… 그, 그럼 당신의 힘을 쓰면……!”
“그건 안 돼. 그럼 아이가 위험해질지도 몰라.”
다정한 목소리가 흐릿하게 웃었다.
“언젠가, 내 힘을 쓰게 된다면…… 난 적어도…….”
목소리가 점점 사그라들었다.
멍하니 굳어 있던 엘리가 흠칫거리며 앞으로 다가갔다.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는 듯이.
하지만 목소리는 더더욱 줄어들었다.
‘안 돼.’
엘리가 허공을 향해 다급히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희미한 빛이 그녀의 손안에 잡히기 시작했다.
손길을 느끼듯, 손안에 머물던 빛이 그녀의 몸속으로 완전히 스며들었다.
‘이건…….’
엘리의 젖은 눈동자가 커졌다.
그녀는 이 빛을 본 적이 있었다.
13살, 오블리에의 사주를 받아가자 아빠가 저를 데리러 왔을 때.
그녀는 너무나 지쳐 있었고, 사람들의 시선을 이기지 못해 쓰러지듯 기절했다.
그리고 그날, 이상한 꿈을 꿨다.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 아래, 집채만 한 마물이 누군가를 등에 태운 채 넓은 대지를 달리고 있었다.
“잡아라!”
“절대로 놓쳐선 안 돼!”
“죽여서도 안 된다! 무기는 최대한 삼가라!”
그리고 들렸던 말들.
만약, 그것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 유리아 님의 기억이라면.
“제가 아는 거라곤 아이를 출산한 곳이 대륙 남쪽이라는 정보뿐이었습니다.”
그럼, 그때 낳은 아이가, 설마…….
엘리의 입술이 덜덜 떨렸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흘러나온 눈물이 그녀의 뺨을 적셨다.
“……이상해, 데미안.”
그녀가 넋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좀…… 머리가 아픈가 봐.”
“…….”
“헛된 기대만큼 어리석은 건 없는데…… 누구보다 잘 아는데…… 왜 자꾸만…….”
“……엘리.”
“왜 자꾸만…… 내가 유리아 님과 공작님의 가족인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엘리가 젖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머리가 어떻게 된 걸까? 나, 나 정말 미쳤나 봐, 데미안.”
눈가를 일그러뜨린 데미안이 그녀를 꽉 안아주었다.
“……넌 미치지 않았어, 엘리.”
“하지만 말도 안 되잖아.”
그녀가 애써 희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가 어떻게……. 나는, 나 같은 게, 그럴 리가…….”
“…….”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공작님의 안식일 리 없잖아……!”
그녀의 목소리가 세차게 떨렸다. 그에 데미안이 억눌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처음부터 너였던 거야.”
“…….”
“공작님과 유리아 님의 안식이…… 바로 너였어.”
엘리는 제 귓가로 흩어진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윽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던 맑은 녹안에 다시금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눈을 질끈 감았다. 고여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후드득 떨어졌다.
이윽고 그녀가 데미안의 품속에서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데미안은 그녀의 감정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녀가 무너지지 않도록. 절망해 좌절하지 않도록.
얼마나 지났을까. 아무것도 들리지 않던 그녀의 귓가로, 강하게 뛰는 심장박동 소리가 들렸다.
쿵쿵 울리는 소리는 어쩌면 그녀만큼, 아니, 그녀보다 더 크게 뛰고 있었다.
엘리가 시선을 들자 데미안이 손을 들어 그녀의 눈가를 쓸었다.
그 다정한 손짓에, 엘리는 젖은 속눈썹을 깜빡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흐릿한 시야 너머, 저보다도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보였다.
거세게 뛰던 심장이 천천히 원래 속도를 찾아 가라앉았다.
이성이 돌아오자 잠시 잊고 있었던 물음들이 떠올랐다.
정말, 유리아 님이 제 어머니고 공작님이 제 아버지라면.
‘엄마는 왜 나를 자신의 딸로 키운 걸까?’
왜 공작님께 알리지 않았을까.
왜 제 머리카락은 금발인 걸까.
그리고…… 엄마는 어째서 라티오넬 손에 죽어야만 했던 것일까.
만약, 보물을 훔쳤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엄마는, 나를 일부러…….’
많은 물음들이 그녀를 에워쌌다. 혼란으로 다시금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내 엘리가 주먹을 꽉 쥐었다.
모든 물음에 대한 해답은 분명, 그곳에 있을 터였다.
“데미안. 한 가지 부탁이 있어.”
저를 바라보는 올곧은 시선을 마주하며, 엘리가 말했다.
“지금 당장…… 나를 대륙 남단으로 납치해 줘.”
그러자 데미안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그러나 그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지그시 그녀를 바라볼 뿐.
“유리아 님께서 대륙 남단까지 향한 이유가 있을 거야.”
엘리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곳에 유리아 님께서 남긴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그리고…… 엄마에 대한 단서도.
울컥 치미는 감정을 애써 눌러 삼킨 엘리가 전보다 또렷한 목소리로 데미안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아직 황녀인 나를, 지금 당장 대륙 남단까지 납치해 줘.”
그녀가 악당이 되어주기를 청했다.
누가 들으면 기겁할 말이었으나, 데미안은 그녀의 손등에 입 맞추며 속삭였다.
“기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