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91)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91화(191/241)
* * *
눈물의 상봉을 한 차례 끝낸 직후.
엘리는 에르하르트가 쓰러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빠짐없이 설명했다.
조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황녀라는 말에 응한 것.
황제의 정부가 갇혀 있었다던 탑을 찾기 위해 사냥 대회에 참가한 것.
그곳에서 들은 유리아의 목소리가 뱃속의 아이를 엘리라고 불렀던 것.
그리고, 유리아의 힘이 제게 감응한 것까지 전부 다.
이야기를 모두 전해 들은 에르하르트가 이를 아득 갈았다.
“그렇다면 내가 출정한 사이, 황실 놈들이…….”
에르하르트의 적안이 분노로 번뜩였다.
전시 중에도 볼 수 없었던 깊은 살기가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지금 당장, 황실로 쳐들어가 황제의 목을 치고 싶었다.
아니, 뼈를 통째로 씹어 먹어도 기분은 풀리지 않으리라.
그런데 엘리의 표정이 어두웠다.
복수를 생각하는 감정이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건, 마음 한편에 오랜 시간 간직해 두었던 죄책감이었다.
분노를 빠르게 지워낸 에르하르트가 편히 말해보라는 듯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엘리가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저희 엄마요. 그러니까, 유리아 님이 아니라…… 저를 키워주신 엄마.”
그에 에르하르트가 멈칫했다.
“저희 엄마는…… 대체 왜 죽었을까요. 왜 저를 데리고 간 걸까요.”
“…….”
“엄마는…… 제가 공작님의 딸인 걸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왜…… 제 존재를 공작님께 알리지 않고 키운 걸까요?”
“…….”
“엄마가 정말 라티오넬의 사생아라서, 황실에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유리아 님의 아이인 저를 납치한 거라면…….”
엘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겠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에르하르트와 데미안은 무어라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엄마, 섀넌이 유리아의 아이가 힘을 타고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그래서 일부러 황실에도 에르하르트에게도 알리지 않은 것이라면, 그녀는 도둑이 맞았다.
부모가 있는 아이를 훔쳐다, 자신이 키운 것이니까.
죽은 그녀가 살아 돌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알려주지 않는 이상, 어떤 말로도 부정할 수 없을 터였다.
그것을 증명하듯, 에르하르트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엘리를 잘 키워줬다는 감사함과 왜 제게 알리지 않았는지 묻고 싶은 마음이 깊게 충돌했다.
“……대륙 남단.”
그때, 침묵을 지키고 있던 데미안이 말했다.
“엘리, 네 이모가 그러셨잖아. 유리아 님께서 대륙 남단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응.”
“혹시 그곳에도 단서가 있지 않을까? 유리아 님의 기억과 네 힘이 감응한 것처럼, 그곳에도 도움이 될 만한 게 있을지도 몰라.”
데미안의 말이 맞았다.
대륙 남단.
한때 세계수가 있던 곳.
자신의 손에서 피어났던, 황금과 녹음의 빛.
그리고 다른 사람의 아이를 제 아이처럼 키운 엄마.
모든 진실은 그곳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결단을 끝낸 듯, 주먹을 꽉 쥔 엘리가 에르하르트를 바라보았다.
“공작님, 저…….”
“확인하고 싶은 것이지. 네 엄마가 왜 그랬는지를.”
에르하르트가 다 알고 있다는 듯 그녀의 말을 받았다.
엘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엄마를 믿고 싶다는 자신의 마음이 에르하르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하지만.
“그래, 그렇게 해.”
에르하르트의 입에서 나온 것은 긍정이었다.
엘리는 남에게 상처 받으며 살아왔지만, 타인에게 손 내미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아이였다.
그러나 마냥 순진하지는 않았다. 제게 해가 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기민하게 구별했다.
그런 아이가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를 만나기 전까지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기도 했다. 엘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대신 나도 함께 가겠다. 그 정도는 괜찮지?”
“네, 물론이죠. 감사해요, 공작님.”
엘리가 옅게 웃었다. 퉁퉁 부은 눈을 하고서 눈매를 휘며 웃는 모습에 에르하르트가 픽 웃었다.
그러나 입가에 걸린 미소는 마냥 밝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왜 그런 걸까, 생각하던 엘리는 이내 답을 찾았다.
세차게 고개를 저은 그녀가 다시 말했다.
“감사해요, 아빠.”
그 말에 에르하르트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당황한 듯, 입술이 살짝 벌어지기까지 했다.
이렇게 놀란 그를 보는 건 처음이라서, 엘리는 조금 즐거워졌다.
“앞으로 계속 아빠라 부를 건데, 혹시 싫으시면…….”
“아니, 싫은 게 아니라-”
혹시 엘리가 뜻을 거두기라도 할까, 그가 빠르게 부정을 입에 올렸다.
엘리가 픽 웃자 그제야 자신의 조급함을 깨닫고 입을 꾹 다물긴 했지만.
“앞으로 계속 부를 거예요. 아빠는 제 아빠니까요.”
“…….”
“그러니 익숙해지셨으면 좋겠어요.”
엘리의 말에 그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 훈련된 검은 흑표범이 이러지 않을까. 엘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제가.”
그때, 한참 동안 묵묵히 부녀의 대화를 듣고 있던 데미안이 말했다.
“아버지란 호칭이 익숙하지 않으시다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네가, 나를? 어째서?”
“아직 호적상 제가 아들이지 않습니까, 아버지.”
덤덤한 데미안과 달리 에르하르트는 미약한 소름이 돋았는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누가 봐도 질색하는 표정에 엘리가 결국 참지 못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데미안이 장난을 친 것이겠지만, 효과는 있었다.
엘리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그 맑은 웃음에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던 데미안도, 싫은 기색이 가득했던 에르하르트의 입매도 슬며시 올라갔다.
‘그래.’
무너져도 지탱해 줄 가족이 있으니 더 이상 두렵지 않으리라.
그게 설사 자신의 인생을 뒤흔들 진실이라 할지라도.
이윽고 세 사람은 함께 손을 잡고, 함께 스크롤을 찢었다.
* * *
울렁이는 통증과 함께 처음 보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울렁거리는 속을 이기지 못해 휘청이자, 데미안과 에르하르트가 재빨리 그녀를 부축했다.
‘이곳이 바로 대륙 최남단.’
원래의 세계수가 있던 곳.
세계수가 시든 후엔 언데드 출몰지로 바뀌었으나 신전의 정화의식 덕분인지 조용했다.
날카롭게 주위를 훑던 데미안이 엘리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르디아 산맥으로 가자.”
“거긴…… 엘프가 지키고 있는 곳이지 않느냐. 인간인 우리를 반기지 않을 거다.”
에르하르트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세계수가 시든 후, 이어진 전쟁으로 인해 엘프들은 인간과 적대관계가 되었다. 무작정 찾아가는 건 위험했다.
“하지만 아샤벨은 자신의 고향이 르디아 산맥이라고 말했어요. 괜히 그곳을 언급한 게 아닐 거예요.”
엘리의 단호한 말에 데미안과 에르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고, 세 사람은 곧장 산으로 향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쯤 되면 산맥에 닿은 것일 텐데, 울창한 숲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잎사귀가 스치는 소리도, 바람 부는 소리마저도.
꼭 덫을 놓고 기다리는 것처럼.
엘리가 그 기색을 알아차린 순간 곧장 활시위를 당겼다.
팍!
어두운 숲 속을 향해 날아든 화살은 날아가지 못 하고 그대로 뚝 떨어졌다.
엘리가 다시 화살을 걸어, 시위를 당기자 에르하르트가 재빨리 그녀의 어깨를 감싸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핑!
등골이 오싹한 소리와 함께 화살이 그녀의 뺨,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눈치가 빠르군.”
그 말과 함께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뾰족한 귀를 가진, 인간과 인외, 그 중간에 서 있는 듯한 신비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 엘프들이었다.
엘프들의 손에도 화살이 들려있었다.
“이건 또 무슨 환영법이실까…….”
에르하르트가 그들을 노려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감히 사랑하는 내 딸과 조금 덜 사랑하는 아들을 건들다니.”
장난스러운 어조와는 달리 그의 몸에 넘실대는 기운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엘프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경계 태세가 짙어졌다.
‘안 돼.’
엘리가 재빨리 에르하르트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살기가 옅어졌다.
안 된다는 듯, 단호한 눈빛에 에르하르트가 검을 내렸다.
엘리가 들고 있던 화살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엘프는 평화를 사랑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랬지. 하지만 너희는 우리의 영역을 침범한 자. 평화를 깬 건 너희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침입자를 적으로 간주해 처형하지.”
“우린 길을 잘못 들었을 뿐이에요. 침입자라고 생각했다면 사과할 테니…….”
“아니, 너희는 침입자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엘프 하나가 단호히 엘리의 말을 끊었다.
“이건 우리가 마지막 세계수의 힘을 이용해 만든 결계. 한낱 인간이 이를 뚫는 건 불가능하다.”
“……뭐라고요?”
세계수의 힘이라고?
엘리가 멍하니 서 있는 사이, 우두머리 엘프가 물었다.
“이젠 내가 묻겠다.”
그가 화살을 엘리에게 겨누며 물었다.
“한낱 인간인 네가, 이 결계를 무슨 수로 뚫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