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95)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95화(195/241)
* * *
그녀의 이름은 레일리였다.
카르티아 황후의 사생아 동생이자 황제의 숨겨진 정부.
움츠린 채 내내 눈치만 보던 레일리는 편히 대해주는 유리아에게 점점 마음을 열었다.
레일리는 매일 밤 그녀가 갇힌 탑을 찾아왔고, 유리아는 배 속의 아이에게 부탁해 마물의 접근을 막아주었다.
사생아로 태어나, 강제로 황제의 정부가 된 레일리.
그리고 아이를 낳기 위해 태어난 유리아.
같은 처지에 놓였던 두 사람은 서로를 위로하며 가슴 깊이 공감했다. 마음을 열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여, 여기를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가요?”
“무슨 마법을 썼는지 아무리 용을 써도 나갈 수 없어.”
유리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저항을 멈추지 않는 이상 계속 여기 갇혀 있어야겠지. 그는 내 아이를 원하니까.”
“그럼 슈에츠 공작님께 이 사실을 전하면…….”
“나 때문에 전시에 혼란이 생기면 황제는 에르하르트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 거야. 어쩌면 황제는 내가 그에게 신호를 보내기를 기다리는 걸 수도 있어.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서 슈에츠를 손안에 넣을 계획이겠지.”
이미 에르하르트는 소수 일족인 그녀를 부인으로 받아들여, 많은 책임을 짊어진 상태였다.
이 이상의 짐을 지게 만들 수는 없었다.
“하, 하지만 계속 저항하면 유리아, 당신이 다칠 수도 있어요.”
맞는 말이었다.
레일리가 몰래 훔쳐 온 음식으로 연명하고는 있었지만, 아이를 가진 임신부에게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 레일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황제에게 힘을 나눠주는 게 어떨까요……?”
“그게 무슨 말이야?”
“계속 저항한다면 황제는 유리아 당신을 강제하려 할 거예요. 그, 그럼 배 속의 아이도 위험해져요.”
“…….”
“그러니 일단은 황제가 원하는 대로 당신의 마나를 주는 거예요. 유리아, 당신의 힘이 황제의 힘과 연관되어 있다면 반대로 그의 착취를 증명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이었다.
황실과 그녀의 힘은 먼 옛날부터 연결되어 있었다.
만약, 정말 만약에 배 속의 아이에게 다른 일이 생긴다면. 그래서 제가 아이를 지켜줄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제가 황제에게 나눠준 힘이 도리어 아이에게 유리하게 적용될지도 몰랐다.
‘만약 내가 위험에 처해, 이 탑을 나가지 못하더라도 갇혀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에르하르트에게 알릴 수 있을 거야.’
유리아가 작게 속으로 감탄하고 있을 때, 레일리가 우물거리며 덧붙였다.
“그, 그리고 무엇보다…… 황제는 단순하고 멍청해서…… 힘을 나눠주면 당분간은 강제하지 않을 거예요.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뭐?”
신랄한 비판에 유리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황제를 대놓고 멍청하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래서일까. 유리아는 레일리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녀의 조언대로 기력을 잃은 척 마나를 나눠주었다.
무척이나 만족한 황제는 힘의 연구를 위해 탑을 찾아오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커흑!”
아이를 가진 상태인지라 몸이 점점 약해져 가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황제가 제 몸 상태를 확인하려 들 테고, 그럼 임신 사실도 들키게 된다.
‘아이를…… 빼앗을지도 몰라.’
그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자 레일리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이대론 안 돼요. 바, 방법을…… 이 탑을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게요.”
“하지만…… 그랬다간 당신이 위험해질지도 몰라.”
“……알아요.”
레일리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이었으나, 눈동자만은 결의로 가득했다.
“……하지만 유리아, 당신이 나를 구해줬듯이, 나도 당신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그 말을 남기며 레일리는 탑을 나섰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자신이 여태껏 빼돌린 음식을 한가득 감옥에 넣어주기까지 했다.
유리아는 이렇게 많은 음식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레일리는 곧 돌아올 테니까.
그러나 레일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 동안이나.
* * *
레일리는 정확히 일주일 후 돌아왔다. 유리아는 창살에 몸을 기대며 외쳤다.
“레일리! 괜찮아? 무슨 일 있었어?”
“……미안해요. 사정이 있어서 올 수가 없었어요. 황궁 감옥은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어서요.”
“황궁 감옥이라니. 그게 무슨……. 그보다 왜 가까이 오지 않아?”
“…….”
“오랜만이잖아. 얼굴을 보고 싶어.”
불안해진 유리아가 레일리를 재촉했다.
그러자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레일리가 천천히 달빛 밑으로 걸어왔다.
이윽고 드러난 그녀의 얼굴엔…… 뺨부터 목덜미를 가로지르는 크고 검은 흉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누가 당신한테 이런 짓을 했어! 대체 누가……!”
“……늘 있던 일이에요. 난 괜찮아요.”
“이게 어떻게 괜찮은 일이야!”
유리아가 입술을 짓씹었다.
마물로 가득한 곳에 사람을 맨몸으로 밀어 넣을 때부터 짐작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사람을 이토록 지독히 괴롭힐 수가 있어…….’
창살을 쥔 손에 꾸욱, 힘을 주던 유리아가 돌연 멈칫했다.
분명 며칠 전만 해도 레일리에게선, 저와 비슷한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에 발걸음 하지 않았던 한 달이란 시간 간격.
황제의 정부이자, 현 황후와 똑 닮은 사생아. 얼굴과 목까지 이어진 흉터.
그리고…… 감싸듯 배를 보호한 레일리의 손.
유리아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레일리도 유리아의 생각을 읽은 듯,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못 와서 미안해요.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고 했는데 실패해서……. 언니, 아니, 황후 폐하께서 많이 화가 나셨나 봐요.”
“…….”
“화, 황궁 감옥은 그래도 지낼만했어요. 오히려 더 나은 느낌이기도 하고……. 아, 그리고 거기서 재밌는 친구를 만났어요. 소, 솔리오라는 아이인데, 손재주도 좋고 말솜씨도 좋아서…….”
“…….”
“그, 그리고 무엇보다 언니는 아직 배 속에 아이가 있는 줄 알아요. 나, 나름의 복수를 한 셈이죠. 그러니까 나는 정말 괜찮…….”
레일리가 서툴게 자신의 상태를 말할 때였다. 유리아가 창살 너머로 천천히 손을 뻗었다.
레일리가 흠칫했다. 무슨 뜻이냐는 듯 유리아를 바라보았다.
“더 말하지 않아도 돼.”
“이리 와.”
울음을 참으려는 듯, 유리아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애써 웃고 있던 레일리의 얼굴이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는…….”
일렁이던 보라색 눈동자에 눈물이 차올랐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차라리, 차라리 진작에 이런 얼굴이었다면 더 편히 살 수 있었을까요?”
“……레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모두가 행복해졌을 텐데…….”
레일리가 떨리는 손을 들어 제 얼굴을 파묻었다. 그녀의 몸이 허름한 바닥으로 무너졌다.
유리아는 창살 너머로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았다. 유리아의 얼굴도 눈물로 범벅이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위로조차 그녀에게 기만처럼 느껴질 것 같았기에, 곁을 지켜주는 것이 유리아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레일리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유리아, 당신은 참 신기해요.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
한결 나아진 말투였다. 유리아가 말을 이었다.
“그건 레일리,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서 그래.”
“말도 안 돼요.”
레일리가 부정했다.
“……난 이름부터 쓸모없는 아이인걸요.”
그에 유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당신은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는걸. 난 당신이 없었다면 죽었을지도 몰라.”
“그럼 이렇게 할까? 새로운 이름을 짓는 거야. 내가 나 자신에게 새로운 미래를 선물하는 거지.”
레일리가 눈물 젖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예를 들면?”
“내 의견을 묻는 거야?”
레일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당신은 어두운 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빛을 찾아 나아가는 사람이니까…….”
“…….”
“섀넌. 섀넌이란 이름이 좋겠어.”
고대어로 빛이라는 뜻이었다.
“……섀넌.”
유리아의 말에 레일리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때? 마음에 들어?”
레일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오랫동안 서로를 위로했다.
서로가 있어 외롭지 않은 시간이었다.
* * *
그러나 그 시간은 얼마 가지 못했다.
결국 유리아의 체력이 점점 바닥나고, 아이를 잉태할 산모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챈 마법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일 무렵.
“유리아!”
늦은 밤, 레일리가 찾아왔다.
“도망, 도망쳐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위험해요!”
“……!”
“화, 황실에서 다, 당신을 처리할 거라고 했어요. 여, 여기 있으면 죽을 거야.”
그녀가 주머니에서 몰래 훔쳐 온 열쇠를 꺼냈다. 혼란을 틈타 황제의 침실에서 가져온 열쇠였다.
“이, 이걸 열고 어서 나가야…… 유리아?”
대답 없는 유리아에 이상함을 느낀 레일리가 철창 가까이 몸을 붙였다.
벽에 힘없이 기댄 유리아, 땀에 젖은 얼굴, 그리고 그 밑으로 보이는 액체……. 양수였다.
레일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유리아는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이대로 아이를 낳는다면 산모도, 아이도 위험했다.
발을 동동 구르던 레일리가 멈칫했다.
“차라리…… 내가…… 내가 당신인 척하면……. 그래서 시간을 벌 수 있다면…….”
“……그건 절대 안 돼.”
유리아가 힘겹게 대답했다.
“하지만……!”
“어떻게 당신을 두고 혼자 나가라고 할 수 있어. 난…… 절대 그렇게 못 해.”
“……어차피, 나는 버려진 존재예요. 당신이라도 사는 게 더 나아요. 아이를,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난 못 해.”
“유리아!”
유리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알고 있었다. 이미 제 체력은 바닥났고, 불러온 배는 저항으로도 숨길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아이를 빼앗긴 채 제 목숨마저 잃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레일리를 나 대신 가둘 순 없어.’
유리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모두를 살리고 싶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어.
그럴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을 바칠 수 있을 텐데……!
유리아가 그렇게 생각하며 주먹을 꽉 쥔 순간.
그녀의 손바닥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늘로 가득 퍼진 빛무리가 축복하듯 감옥을 메웠다.
황금빛 무리와 녹음의 빛.
유리아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황제가 그토록 찾던 세계수의 힘이라고.
빛이 물었다.
-나를 부른 이가 누구인가.
유리아는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며 말했다.
“나는…… 너를 소환한 자. 부탁할 것이 있다.”
-그게 무엇이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살려줘.”
-대가는.
빛이 말했다.
-너는 진정한 내 주인이 아니니, 네 부탁을 행하기 위해선 대가가 필요하다.
“…….”
-너는 어떤 대가를 치를 수 있지?
그 물음에 유리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물기를 머금은 녹안이 반짝였다.
이윽고, 그녀가 선언했다. 자신들의 선조가 그러했던 것처럼.
“내 목숨, 전부를 주겠다.”
그에 빛이 말했다.
-좋다.
찬란한 빛이 감옥에 퍼져 나갔다.
스스로의 생명을 바치겠노라 선언한 자에게 한때 생명이었던 빛이 감응했다.
-나의 첫 번째 계약자이자 두 번째 세계수를 품은 자여. 너의 소원을 들어주겠다.
그 말과 함께 동물 형상을 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들어가는 세계수와 함께 모습을 감추고 오랜 잠에 빠졌던 신수가 다시 이 땅에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