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96)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96화(196/241)
쾅!
큰 소리와 함께 탑이 무너졌다.
신수가 주인을 보호하듯 유리아와 레일리를 보호했다.
레일리는 직감적으로 저 동물이 유리아를 지켜줄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무슨 단서라도 남겨야 하는데……!’
그때였다. 무너진 잔해에서 흰 빛무리가 떠올랐다.
한때 그녀의 친구이자 가족이었던 자들이 남긴 마나가 유리아의 기억 일부를 받아들였다.
“……!”
본능적으로 깨달은 레일리가 유리아를 부축해 신수의 등에 올라탔다.
보름달 아래, 무너진 잔해를 짓밟은 신수가 마물들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계약자.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그러나 유리아는 모든 기력을 잃은 상태였다.
그녀가 대답하지 못하자 레일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탑이 무너지는 소리는 대지를 울릴 정도로 강했다.
벌써부터 소란스러운 기색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곧 몰려올 거야.’
하지만 마땅히 도망칠 곳이 생각나질 않았다.
레일리는 단 한 번도 밖을 나가본 적이 없었다. 황후와 똑 닮은 얼굴 때문에, 숨겨진 채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유리아가……!’
고뇌하던 레일리는 곧, 유리아와 신수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신수는 유리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첫 번째 계약자이자 두 번째 세계수라고.
그렇다면 최초의 생명이 시작된 곳으로 간다면.
‘유리아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자칫하다 유리아의 아이가 세계수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들키게 된다.
‘그렇다면.’
레일리는 주먹을 꽉 쥐며 신수에게 외쳤다.
“황궁 감옥을 부숴주세요.”
-황궁 감옥?
“어서요!”
레일리가 소리쳤다.
단 한 번도 남에게 큰 소리를 내 본 적 없던 사람이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목소리를 내었다.
이에 신수가 감응하듯 숲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피를 부르짖던 마물들이 생명의 보호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윽고 숲과 근접한 황궁 감옥까지 내달린 신수가 벽을 부쉈다.
콰앙!
순식간에 무너진 벽에 죄수들과 간수들이 넋 나간 얼굴이 되었다.
그때 간수 중 하나가 신수에 올라탄 레일리를 바라보았다.
달빛을 등진, 검은 얼룩에 물들지 않은 그녀의 반쪽 얼굴이 세상에 드러났다.
“황후…… 폐하?”
그가 멍하니 중얼거릴 때, 자유의 기회를 포착한 죄수들이 앞다퉈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벽! 벽이 무너졌다!”
“이 쓰레기 자식들! 어서 들어가지 못해!”
갑작스럽게 벌어진 소란에 간수들과 죄수들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그들과 함께 탈출을 노리며 밖으로 나왔던 솔리오가 신수 등에 올라탄 레일리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레일리? 네가 어떻게…….”
그러나 대답 없이 레일리는 신수와 함께 몸을 돌렸다.
무려 황궁 감옥의 벽이 무너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눈앞에 드리워진 신수를 보았다.
그 아무리 황제라고 해도 수많은 입을 막을 수는 없을 터.
‘이 얼굴이, 도움이 될 때가 있구나.’
레일리는 진심으로 안도하며 신수에게 속삭였다.
“……대륙 남단, 당신이 원래 있던 곳으로 가주세요.”
세계수가 있던 곳으로.
그녀의 명에 신수가 숲을 넘어, 대지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잡아라!”
“절대로 놓쳐선 안 돼!”
“죽여서도 안 된다! 무기는 최대한 삼가라!”
그러나 황궁 기사단들이 끈질기게 신수와 두 사람을 쫓기 시작했다.
“사지는 멀쩡하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목숨은 붙어 있어야 해! 폐하의 명이시다!”
누군가의 외침이 들린 순간, 레일리는 주먹을 꽉 쥐며 눈을 질끈 감았다.
다행히 기사단은 신수의 빠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한때 세계수가 있던 곳에 도착하자, 레일리는 곧장 유리아의 상태를 살폈다.
유리아의 얼굴이 창백했다. 진통이 시작된 것이다.
“아이, 아이가…….”
“유리아!”
레일리는 유리아의 손을 꽉 붙잡았다. 제발 자신이 그녀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렇게 태양이 천천히 떠오를 즈음, 아이가 태어났다.
그러나…….
태어난 아이는 울지 않았다.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아, 아아……!”
레일리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손을 덜덜 떨었다.
그때였다.
창백하게 질린 손으로 아이를 받아 든 유리아가, 아이의 이마에 제 이마를 대었다.
그 순간.
녹음의 빛과 햇살을 닮은 황금빛이 아이의 몸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너……!
신수가 외쳤다.
-내 힘을 빼앗아 이미 죽은 아이를 살리다니! 죽은 자를 살리면 미래가 어그러진다. 넌 시간에 손을 댄 거야! 네 육신은 완전히 소멸할 거라고!
“……알고 있어요.”
유리아는 다 쉰 목소리로 힘겹게 대답했다.
“생명을 주겠다는 말은,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요.”
-이 바보 같은……!
신수와 유리아의 말에 레일리의 얼굴이 황망해졌다.
아니야. 말도 안 돼.
애써 중얼거리며 부정했으나…… 느낄 수 있었다.
유리아는 죽어가고 있었다.
“유, 유리아…… 안 돼요. 안돼…….”
레일리가 이러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유리아에게 매달렸다.
“……섀넌.”
그녀가 입술을 달싹였다.
“날 찾아와 줘서, 나를 만나줘서 정말 고마워.”
“유리아…….”
“엘리는, 우리 아이는…… 반드시 행복해질 거야.”
유리아는 희미하게 웃었다. 부드럽게 올라가던 입꼬리가 멈췄다.
떠오르는 햇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유리아의 발밑부터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완전한 소멸의 시작이었다.
레일리는 그대로 무너졌다.
처음으로 자신을 알아주었던 사람이 제 곁을 떠나고 있었다.
그때였다.
“으아앙!”
“……!”
품속의 아이가 서럽게 울고 있었다.
꼭 영원한 이별을 깨닫기라도 한 것처럼.
레일리의 보랏빛 눈동자가 일렁였다.
그녀가 모든 걸 바쳐 지켜낸 아이. 그 아이가 제 품속에서 울고 있었다.
레일리는 떨리는 손에 힘을 주며 아이를 깊이 끌어안았다.
슈에츠 공작은 유리아와 함께 있을 때만 진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지금 그에게 유리아의 이야기를, 아이의 이야기를 전한다면 그는 폭주할 테고,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아이도 황가에 빼앗기게 되겠지.
‘……아이가 자신이 누구인지 깨달을 때까지 숨겨야 해.’
그러나 황제는 유리아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아이를 숨기기 위해선 신분이 감춰진 사람이 곁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누가? 세상 그 누구도 찾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잠시 생각하던 레일리의 눈동자가 일순간 커졌다.
……있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찾지 않을 사람이.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문 그녀가 스스로 절망을 딛고 일어나, 신수에게 말했다.
“……저를 데리고 도망쳐 주세요.”
-불가능하다.
그에 신수가 침음 하며 말했다.
-……내 계약자는 죽어가고 있다. 이미 미래는 어긋났고, 다른 세상을 떠돌던 아이는 어긋난 시간을 이기지 못해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왔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뜻이지.
“…….”
-어긋난 인과관계에서 그 아이가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기 전까지는, 나는 널 지킬 수없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새로운 세계수를 만날 때까지 잠들어 있어야 해.
“지켜달라는 게 아니에요.”
-뭐?
“이 아이는…… 제가 지킬 거예요.”
신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레일리를 바라보았다.
“저는 제국에서 가장 어두운 곳에 있었던 사람이에요. 누구도 저를 찾지 않을 테니, 아이를 보호할 수 있을 거예요.”
“…….”
“게다가 아직 저들도 제 배 속에 생명이 있는 줄 알거든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였다.
한 번도 세상을 겪어본 적 없는, 얼굴에 그림자를 매단 여자가 어찌 아이를 지키겠는가.
하지만.
찬란한 햇빛을 등진 사람이, 가장 깊은 어둠을 자처하며 또 다른 생명을 보호하겠다 선언한다.
어찌 그녀를 생명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좋다.
그에 신수가 감응했다.
-네 부탁을 들어주마.
아이와 레일리를 등에 태운 신수가 다시 대륙을 달렸다.
레일리는 완전히 멀어지기 전, 고개를 돌려 유리아를 바라보았다.
햇빛에 부서지는 유리아는, 마치 미소를 짓고 있는 듯했다.
레일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뺨을 타고 쉼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신의 두 다리로 달리는 것이 아닌데도, 숨이 턱 막혔다. 눈가가 뜨거워지고 목울대가 일렁였다.
처음으로 세상 밖을 달린다는 기쁨보다 더 큰 두려움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나 레일리는 돌아보지 않았다. 아이를 안은 손에 힘을 주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