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98)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98화(198/241)
떠오르는 햇빛 아래.
자신의 힘을 깨달은 엘리가 저를 바라보는 이들을 향해 선언했다.
“난 황제가 될 거야.”
그 말에 다른 엘프들이 입을 떡 벌렸다.
황제가 되겠다니.
꼭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말처럼 들리지 않은가.
그에 수장 엘프가 말했다.
“하지만 두 번째 세계수야. 네가 힘을 얻은 건 사실이지만 물리적으로 부족하다. 세계수는 보호하고 지키는 힘. 무너뜨리는 힘을 가진 황가를 쉽게 이기긴 힘들 거야.”
-수장 엘프의 말이 맞단다. 전쟁까지 감수하는 건 너무 위험해. 성공할 가능성이 너무 낮을뿐더러, 즉위한다고 해도 시선이 곱지 않을 게다.
여우, 그러니까 신수가 거들었다.
그에 엘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평화롭게 즉위하면 돼요.”
-평화로운 즉위?
“네. 사람들은 아직 날 황녀로 생각하거든요.”
-그 말은…….
황녀인 척 황좌에 당당히 올라가겠다는 뜻이었다.
신수가 솜방망이 발로 마른세수를 했다.
-아가. 난 널 사랑하지만 너 지금 헛소리한다. 황족인 척하겠다니.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아니?
하지만 엘리의 표정엔 작은 변화조차 없었다.
진심임을 느낀 신수가 말려보라는 듯 데미안을 바라봤다.
그러나 데미안은 그녀의 손등에 부드럽게 입 맞출 뿐이었다.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
무엇이든 따를게.
올곧은 푸른 눈동자에 주저하는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엘리가 모두를 죽이고 싶다 말해도 기꺼이 따랐을 듯한, 가히 절대적인 복종이었다.
신수가 골치 아프다는 듯 까만 발로 자신의 뒷목을 잡다가, 이번엔 에르하르트를 바라봤다.
그가 여러 가지 감정을 억누른듯한 눈빛으로 엘리를 바라보았다.
엘리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가져다줄 수 있었다. 설사 그것이 황좌라고 할지라도.
하지만 엘리는 자신이 직접, 그 자리를 쟁취하겠다고 말했다.
그것은 아버지로서 무척 기쁜 일이었지만…… 바꿔 말하면 딸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과 같았다.
이제야 다시 딸을 만났는데, 또다시 떨어져 있어야 한다니. 그 어떤 아비가 순순히 동의한단 말인가.
“그냥 다 죽여 버리면 되지 않을까.”
“……아빠.”
엘리가 가볍게 그를 불렀다.
에르하르트도 알고 있다는 듯한 숨을 내쉬었다.
모두를 죽여서 황좌를 차지한다 해도, 그들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쿠데타로 비칠 터였다.
그래서 에르하르트는 못마땅한 얼굴로 긍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내 딸이 황제가 되기를 원한다면, 황좌를 안겨 드려야지.”
그러곤 엘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신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떨어진 시간보다 더 붙어 있어야 한다. 그건 약속할 수 있지?”
“당연하죠.”
엘리가 웃자 에르하르트도 따라 웃었다.
-너마저…….
신수가 충격받은 듯 낑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엘리는 강경했다.
지금 당장 공작님과 함께 찾아가 아샤벨과 황족을 내쫓을 수도 있지만, 사람들 눈엔 단순한 반란으로 보일 터였다.
‘게다가 황후는 유리아 님의 힘으로 공작님의 광증을 폭주시켰어. 그 힘을 아마 아샤벨에게 넘겼겠지.’
엄마가 남긴 유일한 힘.
그것을 되찾기 위해선 섣불리 공격할 수 없었다.
‘그러니 황제를 이용하는 거야.’
아직 그녀는 황녀의 신분이었으며, 황제는 잃어버린 힘을 되찾은 것에 심취한 상태였다.
엘리가 가진 자본과 힘을 제가 쥐었다고 생각할 테니, 저를 쉽사리 내치진 못할 터였다.
엘리가 황좌에 오르고, 황제가 기뻐하고 있을 때.
그때, 가장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려 줄 것이다.
두 명의 어머니를 위해, 그리고 제 하나뿐인 아버지를 위해서 가장 잔혹한 복수를 안겨주겠노라.
엘리의 맑은 녹안이 더 없는 복수심으로 타올랐다.
* * *
숲 입구를 지키고 서 있던 황실 기사단들은 완전히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녀, 그러니까 엘리가 아직 숲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 때문이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해를 보며, 황제 벤터스는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부디 그가 엘리와 함께 마물의 습격을 받았기를.’
해서 소량의 피라도 남겨주었기를.
엘리의 피가 있다면 사라져 가는 치유력을 조금이나마 개화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누가 그의 생각을 듣는다면 어찌 아비로서 그럴 수 있냐 생각하겠지만, 그 아이 입장에서도 허무하게 힘을 잃는 것보단 낫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한다면…….
그의 금안이 분노로 번뜩였다.
‘반드시 두 공작가를 멸문시키고 말리라.’
납치 소식을 접한 벤터스는 곧장 슈에츠 쪽에 황궁 기사단과 파비안을 보냈다.
만일 데미안이 엘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 즉시 붙잡아 죽이라는 명도 함께 덧붙였다.
데미안이 황녀인 엘리를 납치했고, 슈에츠는 아직 그런 데미안의 보호자였다. 광증에 미쳐 누워 있다고 한들, 책임은 피할 수없었다.
그가 들끓는 화를 애써 가라앉히고 있을 때, 옆에 서 있던 마테오는 연신 식은땀을 흘렸다.
일이 너무 커졌다.
어머니의 말대로 데미안이 황녀를 납치했노라 말하긴 했지만…….
만약 붙잡힌다면 엘리는 데미안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저지른 짓을 폭로할 것이 분명했다.
마테오가 덜덜 떨고 있을 때, 황제의 곁에 있던 카르티아가 위로하듯 말했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폐하.”
“…….”
“그놈들이 아내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작정 덤벼들고 보는 자들이라고 해도, 납치까지 꾸밀 줄은……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입꼬리는 아주 미약하게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위험한 놈이지요. 하루라도 빨리 붙잡아야 합니다. 그가 황녀의 힘을 빼앗을지도 모릅니다.”
“……황후의 말이 맞소.”
황후의 속삭임에 벤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데미안이 엘리의 힘을 이용해 저를, 황가를 무너뜨리기 전에 해치워야 했다.
“두 가문의 몰락은 피해 갈 수 없는 일이지.”
그의 중얼거림에 카르티아가 빙긋 웃었다.
모두 계획대로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가 슈에츠 공작의 공격을 받아 싸늘한 주검이 된 엘리와 데미안을 발견하는 것뿐이었다.
곧 찬란한 태양이 완전히 떠올랐다.
마법이 완전히 사라지자 수색대가 빠르게 숲 안쪽을 향해 내달렸다. 납치당한 황녀가 작은 단서만이라도 남겼기를 바라며.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다고?’
그에 당황한 것은 카르티아였다.
분명 아샤벨을 통해 슈에츠 공작의 공격을 명했다. 그런데 시체조차 보이지 않다니?
‘이러면 두 가문을 함락시킬 명분이 부족해진다.’
황후가 당황해하고 있을 때였다.
쿠웅! 갑자기 큰 굉음과 함께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마물이 날뛰는 것인가?’
아니, 그렇다기엔…….
쿠웅! 쿠웅!
연달아 이어지는 소리에 규칙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계 태세를 갖춰라! 폐하와 전하를 보호해!”
검을 뽑아 든 기사들이 드리워진 숲 너머를 응시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던 그때.
쿠웅-!
숲 안쪽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나무들과 함께 힘없이 널브러졌다.
옅어진 흙먼지 너머, 모습을 드러낸 건 장정한 기사들도 잡기를 꺼릴 만큼 커다란 마물이었다.
“대체 누가…….”
누군가 멍하니 중얼거릴 무렵, 기사들 몇몇이 죽은 마물 곁으로 다가갔다.
마물의 이마, 정중앙에 처음 보는 화살이 꽂혀 있었다.
마테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 화살은…… 설마……!’
쿵쿵쿵!
그때,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과는 다른, 급박한 움직임. 마물의 등장이었다.
기사들이 허둥거리며 검을 고쳐 잡았다.
키에엑!
큰 소리와 함께 마물이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앞서 죽었던 마물처럼, 이마에 검은 화살이 꽂힌 채로.
한 마리야 요행이라 칠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부터는 능력의 범주로 보아야 했다.
모두가 감탄조차 잊고 멍하니 서 있을 때였다.
“아!”
맑고 또렷한 목소리가 숲을 울렸다.
“사냥대회는 다 끝났나요?”
데미안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엘리가 활을 손에 든 채 씩 웃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카르티아는 얼빠진 얼굴로 엘리를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엔 작은 생채기조차 없었다. 억지로 강제한 흔적은 더더욱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의 손에 들린 검은 화살은 마물들의 이마에 박힌 화살과 일치했다.
황녀가 이 마물들을 모두 잡은 것이다.
벤터스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3 황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왜 그와 함께 있는 것이야!”
“네?”
엘리가 맑은 눈을 깜빡였다.
“제 남편과 함께 돌아다닌 것이 무슨 문제가 되나요?”
순수한 얼굴에 벤터스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나, 납치가 아니었던 거야?”
“하지만 분명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을 쐈다고! 오해할 만한 정황이었잖아!”
기사들이 당황해 수군거렸다.
고개를 갸웃하던 엘리가 아, 하는 소리를 내며 밝게 웃었다.
“제가 한번 집중하면 다른 일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요. 신호를 못 들었나 봐요.”
그녀가 왔던 방향은 유독 숲이 우거진 탓에 하늘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정말 사냥에 집중했다면 신호를 듣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집중의 성과가 당장 눈앞에 있었으니, 거짓이라기에도 어려워 보였다.
“그럴 수가…….”
넋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기사들이 문득 떠오르는 기억을 곱씹었다.
“하지만 분명 2 황자 전하께서 클라이더 공작님이 황녀 전하를 납치하셨다고, 그리 말씀하셨는데…….”
“그랬지. 손목을 다치게 한 것도 클라이더 공작님이시라고…….”
수군거리는 목소리에 엘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납치요? 제 남편이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는 듯 손으로 입을 가린 그녀가 시선을 미끄러뜨렸다.
“하지만 분명…….”
기사단들이 당황한 얼굴로 마테오를 바라보았다. 그에 엘리의 시선도 따라 움직였다.
맑은 녹안이 마테오에게 닿자, 그의 얼굴이 희멀게졌다.
감히 누구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제가 저지른 짓이 세상에 드러날 터였다. 궁지에 몰린 마테오가 힘겹게 변명을 내뱉었다.
“하, 하지만 나는 너와 함께 있을 때 마물을 만났다! 그런데 너는 날 두고 혼자 사라졌지. 내가 납치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2 황자 말이 맞습니다.”
당황한 카르티아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선 그녀의 말에 반박했다.
“3 황녀. 어찌 부상 입은 2 황자를 홀로 내버려 둔 채 떠난 겁니까?”
“…….”
“3 황녀의 치유력이라면 부상 입은 2 황자도 쉽게 고칠 수 있었을 텐데요.”
날카로운 질문에 기사들도 궁금하다는 눈초리로 엘리를 바라봤다.
그래서 엘리는 더없이 순수한 얼굴로-
“사냥대회 전에 2 황자 전하와 약속을 했습니다. 서로 다쳐도 거들떠보지 않기로요. 저는 그 약속을 지켰을 뿐입니다.”
천연덕스럽게 거짓을 입에 올렸다.
“게다가 제가 2 황자 전하를 모시고 돌아가면, 주위 시선을 신경 쓰실 것 같아서요.”
“뭐……!”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발견할 수 있도록 안전한 곳에 옮겨 드린 것뿐인데…… 그게 이런 결과를 초래할 줄은…….”
엘리가 상처 받은 얼굴로 시선을 늘어뜨렸다.
그에 마테오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언뜻 들으면 황자인 저를 배려해, 일부러 기절한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처럼 들렸지만.
그녀의 말속, 숨은 속내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가장 고고하고 순수한 피가, 마물을 두려워해 반쪽짜리 황녀 앞에서 기절했노라고.
그것도 모자라 납치가 벌어졌다 주장하며 길길이 날뛰었노라고.
하지만 실상은 어떠한가.
그녀는 제 체구보다 몇십 배는 큰 마물을 손쉽게 사냥했다. 납치범이라 주장했던 데미안은 검조차 뽑지 않았다.
결국, 마테오의 혀가 이 모든 혼란을 초래한 것이다.
처음 겪는 치욕에 마테오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아니라 말할 수도 없다.’
그랬다간 저 계집이 제 납치 시도를 사람들에게 알릴 터였다.
‘먼저 선수를 친 거구나. 내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마테오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