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01)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01화(201/241)
시한폭탄 같은 말에 좌중이 술렁거렸다.
신전과 황실은 아샤벨을 성녀로 추대하며 극진히 귀빈 대접을 해왔다.
하지만 친자 사건으로 인해 아샤벨의 힘이 진짜인지 사실관계를 따지는 소문이 늘어났다. 이는 곧 황실과 신전의 추문과 직결될 문제였다.
다행히 슈에츠 공작은 무사히 깨어났고, 성녀에게 제기된 의문은 잊히는 시점이었다.
이대로 시간을 끈다면 추방 문제는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또다시 추방 이야기를 꺼내다니!
“……3 황녀가 성녀의 추방을 그토록 바랄 줄은 몰랐군.”
엘리의 이야기라면 연신 웃으며 들어주던 벤터스마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슈에츠 공작님께서 바라셨던 일입니다. 원래 일어났어야 할 일을 지금 처리해 달라 요청드리는 것뿐입니다.”
“허무맹랑한 부탁이군요.”
카르티아가 싸늘하게 그녀의 요청을 명명했다.
“슈에츠 공작이 무사히 깨어난 것도 성녀님의 힘 덕분이었습니다. 애당초 슈에츠 공작이 폭주를 일으킬 때 가장 먼저 성녀를 부른 사람이 3 황녀이지 않습니까.”
그녀의 입매에 감추지 못한 조소가 드러났다.
“그런데 슈에츠 공작이 깨어나자마자 추방을 요구하다니. 너무하군요, 3 황녀.”
“…….”
“이래 놓고 슈에츠 공작이 다시 폭주를 일으키면, 그땐 어떻게 하려고-”
“그래서 요청드리는 겁니다.”
엘리가 지지 않고 응수했다.
“공작님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성녀님의 추방은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성녀님의 존재는 슈에츠 공작님의 안정에 도움되지 않습니다.”
그녀가 단언하며 시선을 마주하자, 카르티아가 붉은 입술을 끌어올리며 웃었다.
‘눈엣가시 같은 존재를 해치우는 데에 눈이 멀어,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는 것이로군.’
“하면 묻지요. 성녀가 불필요한 존재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까, 3 황녀?”
“네. 그렇습니다.”
엘리의 말에 좌중이 술렁거렸다.
신전은 아샤벨을 신께서 내려주신 성녀라 추대했다.
성녀가 불필요한 존재라는 엘리의 발언은, 신성모독과도 같았다.
술렁임을 뒤로한 채, 카르티아가 여유로운 낯으로 물었다.
“어찌 그런 말을 하지요? 성녀님은 신께서 내려주신 존재입니다.”
“하지만 신은 아닙니다.”
“……뭐?”
엘리의 단언에 카르티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신이라면 그럴 수 없지요.”
“무슨 말을…….”
“그 누구보다, 황후께서 더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카르티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꼭, 제가 저지른 짓을 모두 꿰뚫어 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카르티아가 대답하지 못 하고 까드득 이를 갈자 엘리가 빙긋 웃었다.
“만약 추방 요청을 들어주실 수 없다면 다른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폐하?”
“무엇이지?”
벤터스가 물었다.
부디 성녀를 추방시키는 것보다 쉬운 부탁이기를 바라며.
하지만 이어진 말은 황족은 물론, 좌중의 모든 이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성녀를 추방시킬 수 없다면 저도 황태자 선발 경합에 참가시켜주십시오. 그게 이번 사냥대회 우승자인 제가 황제 폐하께 드리는 요청입니다.”
누군가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황태자라니.
황녀는 황제가 될 수 없었다.
성별에 차별을 둔 것은 아니었지만, 주로 황자에게 집중된 교육과 정치적 이해관계로 얽힌 세력이 자연스럽게 그들을 황제로 만들었다.
황후 소생이어도 입지가 흔들리는 것이 권력이었다.
하물며 저 황녀는 이제 막 황족이 되지 않았는가.
그러니 황녀가 헛된 기대를 꿈꾼다며 웃고 넘겨야 했으나…….
그 누구도 웃지 못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엘리가 다른 황자들과 견줘도 아쉬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엘리를 황좌에 앉힌다면 입맛대로 굴리기 쉬워지지 않을까? 아직 잘 모르는 풋내기에게 권력을 안겨주고, 그들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이런저런 말을 속삭이는 것이다.
들뜬 권력자는 일을 벌이기 마련이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다 한들, 이미 벌어진 일. 모든 책임은 고스란히 권력자의 몫이 된다.
나중에서야 왜 이 일을 제게 맡겼느냐 소리쳐도 그들은 당신께서 허락하신 일이 아니냐 시치미 떼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황녀의 뒷배경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쪽으로 끌어들이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보이지 않는 생각들이 머리 위를 빠르게 스칠 때였다.
“말도 안 되는 부탁이군요.”
카르티아가 전보다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엘리의 말은 글자 그대로 불가능한 것이었기에, 화낼 의미조차 찾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따끔하게 혼을 내야 했다.
“폐하께 소원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고 해도 선을 넘었습니다, 3 황녀.”
“…….”
“할 수 있는 게 있고, 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3 황녀의 부탁에 폐하께서도 얼마나 난처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폐하.
동의를 구하듯, 고개를 돌렸던 카르티아의 얼굴이 곧 딱딱하게 굳었다.
벤터스의 눈빛이 번뜩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오랜 염원을 눈앞에 둔 사람처럼.
그 순간, 카르티아는 망각하고 있던 것을 깨달았다.
“루멘치아 황가는 대대로 녹색 눈에 집착했지요.”
제 남편이란 작자 또한 루멘치아라는 것을.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선 무엇이든 저지를 작자라는 것을.
“폐하.”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곤 그의 손 위에 제 손을 올렸다.
그러곤 속삭였다.
“성녀 추방도, 황태자 선발 경합도 허무맹랑한 부탁일 뿐입니다. 이성적으로, 한발 물러나 생각하셔야 합니다.”
“…….”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자 벤터스가 천천히 카르티아의 손 위에 제 손을 겹쳤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카르티아에게 닿아 있지 않았다.
창백하게 질려가는 제 아내를 외면한 채, 황제가 말했다.
“좋다. 네 뜻이 그렇다면 허락하지.”
“폐하!”
카르티아가 참지 못 하고 큰 노성을 터뜨렸다.
황제의 승낙에 황후파가 되지 못한 귀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빠르게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고, 황후파 귀족들은 그토록 강조하던 교양도 잊은 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혼란과 충격이 섞인 어전에서, 웃는 사람은 오로지 엘리뿐이었다.
방긋 웃은 그녀가 가슴께에 손을 올리곤 공손히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폐하.”
* * *
황제가 3 황녀를 새로운 황태자 후보로 인정하자, 카르티아는 황궁을 빠져나와 곧장 신전으로 향했다.
저를 향해 다가오는 성기사들을 모두 뿌리친 채, 곧장 아샤벨의 방으로 쳐들어갔다.
아샤벨은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죽은 시체처럼, 혹은 아무런 생각도 못하는 인형처럼.
황후의 등장에 아샤벨이 고개를 든 순간.
짜악!
그녀가 미련 없이 손을 들어 올려, 아샤벨의 뺨을 내리쳤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아샤벨의 뺨이 옆으로 홱 돌아갔다.
“성녀님!”
신관들이 다급히 다가갔으나, 황후의 호위가 그들을 막았다.
“황후 폐하라고 하셔도 이러실 순 없습니다! 성녀님께 손을 올리시다니요!”
“경솔한 언행은 삼가라.”
“기사님이야말로 검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만.”
살벌한 분위기가 맴도는 가운데, 조용한 음색이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아샤벨이 퉁퉁 부은 뺨을 한채, 신관들에게 명했다.
“문 닫거라.”
“하지만…….”
“어서.”
황후 폐하께서 내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잖니.
항상 신관들에게 존댓말을 썼던 그녀가 갑작스럽게 하대를 했다.
신관들은 당황한 듯 주춤대며 머뭇거렸다.
그러나 아샤벨은 어서 명을 따르라는 듯 시선을 주었고, 그들은 마지못해 문을 닫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주위가 조용해졌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다. 많은 성기사들과 신관들이 제 손찌검을 보았다.
제국의 너그러운 황후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지금의 카르티아는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카르티아가 분노로 눈을 번뜩이며 아샤벨을 노려보았다.
“이 쓸모없는 계집 같으니! 내가 네게 어떤 것을 주었는지 알기나 해!”
“알고 있습니다.”
아샤벨이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뺨을 감쌌다.
“하지만 일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
카르티아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그래, 뒤늦게라도 3 황녀의 용서를 받으려는 모양이었던 게지?”
아샤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 카르티아는 확신했다.
‘성녀와 3 황녀가 거래를 한 것이 분명하다.’
카르티아는 슈에츠 공작이 다시 깨어난 것과 엘리가 성녀의 추방 대신 황태자 선발에 응할 수 있도록 요청한 것, 이 두 개가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성녀가 슈에츠 공작을 살려서 그 계집에게 용서를 구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공작부인의 힘이 슈에츠 공작에게 통하지 않을 리 없었다.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대단하기도 했다.
‘이 아둔한 것이 저를 배신할 생각을 다 했다니.’
황후의 비웃음이 공허한 방에 울려 퍼지는 순간에도, 아샤벨은 덤덤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한참 후, 그녀가 입을 열었다.
“너무 늦게 깨달았어요.”
“뭐?”
“제가 아무리 발악해도 슈에츠 공작님과 데미안 님께서 저를 바라봐 줄 리 없다는 것을요.”
대신관도, 황제도, 모두 제게 이렇게 말했다.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엘리가 있던 자리가 원래 제 자리라고.
그런데 아니었다.
처음부터 제가 있을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애써 외면해 왔던 사실을 드디어 직면한 것뿐이니, 아샤벨은 덤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아샤벨이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없다면 만들어야겠죠.”
그녀의 입꼬리가 아주 희미하게 위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