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02)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02화(202/241)
텅 빈 눈을 한 채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모습은 가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카르티아는 눈매를 좁혔으나, 큰 충격을 받았으니 정신을 놓는 것도 이해는 갔다.
‘이번 것도 실패라니.’
그녀가 쯧, 혀를 찼다.
하지만 역시 이대로 버리긴 아까웠다.
‘또 다른 그릇을 위해 남겨 놓긴 해야겠군.’
어느새 평정을 되찾은 카르티아가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성녀님께서는 당분간 신전에서만 기거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
“그럼 이만 저는 실례하겠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거든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황후의 우아한 인사에도, 아샤벨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런 그녀를 뒤로한 채, 황후가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갔다.
문 앞에서 숨 죽여 기다리고 있던 신관들이 갑작스럽게 열린 문에 흠칫 몸을 떨었다.
언제 노성을 내뱉었냐는 듯, 카르티아가 부드럽게 웃었다.
“성녀님께서 많이 놀라신 듯 하더군요. 따뜻한 차를 드리는 게 좋겠어요.”
“아…… 예…….”
신관 하나가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하라는 듯, 고개를 잠시 숙였던 그녀가 다시 몸을 꼿꼿하게 세운 채 앞으로 걸어갔다.
그대로 신전을 빠져나온 카르티아가 자신의 호위에게 물었다.
“백작님께선 지금 어디 계시지?”
그 물음에 호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별로 놀랍지도 않다는 듯 시선을 흘겼다.
최근 운 좋게 구한 ‘꾼’이 아버지의 마음에 꼭 든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항상 먼발치에서 게임을 지켜보는 사람일 뿐이었다.
도박판을 운영하는 사람이 게임에 빠지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르티아가 아버지를 찾지 않은 것은, 함께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중에 목소리 큰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황태자로 선별될 수 있는 기준은 이렇다.
신전, 황실, 제국민. 총 세 군상의 지지를 받을 것.
여기서 제국민의 지지는 형식적인 말일뿐, 투표권이 없어 ‘여론’이란 말로 대체되어 상대 후보를 공격할 때 쓰였다.
이제 남은 것은 신전과 황실이었다.
신전이야 그간 해온 것이 있으니, 3 황녀에게 반기를 들 터였다.
이쪽은 걱정 없지만…….
문제는 황실이었다.
황제, 벤터스는 엘리에게 푹 빠져 있는 상태였다.
그가 엘리를 지지하게 된다면, 그녀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여론’은 엘리에게 쏠릴 것이다.
그래서 제 아버지, 라티오넬 백작을 굳이 막지 않았다.
아버지의 카지노로 목소리가 큰 귀족들 몇몇을 잡고, 또 그들의 돈을 잡아준다면 이쪽에서 휘두르기 편해지니까.
‘하지만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새로 건설한 학술원의 운영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엘리의 세력이 더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보다 더 일찍 학술원을 세웠다.
귀족 자녀들은 16살 이상부터 아카데미에 진학할 수가 있다.
때문에 그 전엔 가정교사를 저택에 불러 과외를 받는다. 부모가 점찍어둔 또래 귀족 영식, 영애와 만나 사교계의 흐름을 익히고, 데뷔탕트를 갖는다.
그런 귀족 사회에서 라티오넬이 만든 학술원은 교육이란 이름 아래, 어린 영식, 영애들이 마음껏 편 가르기가 가능한 좋은 장소였다. 황후의 친정 가문인 라티오넬이 만든 곳이니 눈치 볼 필요도 없었다.
물론 구색은 맞춰야 하기에 제국 최고 아카데미인 라디움의 졸업생들을 선생으로 데려왔다.
그중엔 엘리가 탐냈던 학생도 있었다.
학생에 비해 선생이 많긴 했으나 상관없었다. 이 모든 게 이득으로 돌아올 것이 확실했으니까.
그러나 결과는 어떠한가.
너그러운 이미지를 위해 만들었던 친자 검사 키트는 조작으로 밝혀졌고, 베인스 후작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의 후원자인 라티오넬도 함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러자 어쩜 이렇게 좋은 곳이 있냐며 호호 웃던 귀족들이 점점 학술원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여론.
제일 무시하기 쉽지만, 그래서 더욱 통제할 수 없는 것.
그것이 흔들리면 끝장이다.
“아버지 앞으로 쌓인 서류들을 전부 내게 가져오너라.”
마차에 올라타기 전, 황후가 힐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시종이 깊게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마차 문이 닫혔다.
* * *
황후가 돌아간 후, 홀로 남겨진 아샤벨은 가만히 바닥만 바라보았다.
혼자 남겨진 그녀는 물끄러미 땅을 내려다보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오자 그 앞에 대기하고 있던 신관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성녀님! 상태는 괜찮으신-”
“대신관님은 어디 계시지?”
“……예? 대신관님이요? 그건 왜…….”
“이유를 알려줘야 할 의무는 없는 것 같구나.”
단호한 언사에 신관들이 움찔했다.
신관은 당황하면서도 대신관이 있을 장소를 유추했다.
“지금 시간이라면 아마 교황 성하와 함께 기도를 드리고 계실 겁니다.”
“기도실이구나. 고마워.”
“하지만 두 분께서 기도 시간을 가질 땐 아무도 들여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잠시만요. 성녀님!”
그가 아샤벨을 붙잡았지만 그녀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신관을 스쳐 지나갔다.
그에 문을 지키고 있던 그레이스가 작은 욕설을 중얼거리며 아샤벨의 뒤를 따랐다.
제가 성녀에게 어떤 감정을 가졌든 간에, 그녀는 아샤벨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으므로.
성큼성큼 다가간 아샤벨이 기도실 앞에 멈춰 섰다.
교황과 대신관이 신께 기도를 올릴 땐 누구도 접근해서는 안 되었다. 신전에 속한 이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라 문지기조차 서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아샤벨에게 그런 신전의 규칙은 한낱 쓸모없는 말에 불과했다.
“성녀님!”
그레이스가 다급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이미 문을 열어젖힌 후였다.
쾅!
큰 소리가 넓은 기도실을 울렸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제일 먼저 본 것은 함께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교황과 대신관이었다.
“여기 계셨군요, 대신관님.”
“성녀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샤벨과 그런 그녀를 말리는 그레이스의 목소리가 넓은 기도실을 울렸다.
“……아, 성녀님.”
들리는 음성에, 라미트라가 천천히 눈을 떴다.
늘 다정하다 느꼈던 금안이 어쩐지 날카로웠다. 그레이스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떠는데, 그가 눈매를 휘며 웃었다.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십니까.”
“아, 우선 죄송합니다. 성녀님께서 대신관님을 만나고 싶다 하셔서…….”
“대신관님.”
그레이스의 상황 설명도 단박에 끊은 채로, 아샤벨이 라미트라에게 다가갔다.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혹시 시간 괜찮으실까요?”
“지금은 좀 곤란합…….”
거부를 내뱉으려던 라미트라가 멈칫했다.
아샤벨을 지그시 바라보던 그가 이내 빙긋 웃었다.
“그럼요. 교황 성하께서도 마침 다른 일정으로 돌아가실 예정이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하?
라미트라의 물음에 그 난리통에도 가만히 앉아 있던 교황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저 느릿한 움직임이라고 볼 수는 있었지만, 꼭…….
‘줄에 달린 마리오네트 같아.’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던 그레이스가 재빨리 생각을 고쳤다.
눈앞의 교황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다니. 말이 되질 않았다.
그사이, 교황은 “성녀님께 축복을” 같은 말을 남기며 기도실을 떠났다.
떠난 교황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라미트라가 이번엔 그레이스를 바라보았다.
성녀님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달라는 눈빛이었지만, 마치 방해 말고 이만 나가라는 것처럼 보였다.
그레이스는 잠시 멈칫했지만, 엘리의 납치 사건과 슈에츠 공작의 광증 폭주로 인해 자신이 예민해진 것이라고 여겼다.
고개를 숙인 그녀가 기도실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 라미트라가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성녀님.”
“어느 정도 눈치는 챘는데, 그에 대한 답을 여쭤보고 싶어서요.”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전 신전에서 만든 가짜인가요?”
그 말에 라미트라의 부드러운 미소가 천천히 사라졌다.
“……성녀님, 그것은.”
“어떻게 저를 만드셨나요?”
“…….”
“제가 처음인가요, 아니면 무수히 많은 실패작이 있었나요?”
연달아 질문하는 목소리에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저 말고 또 다른 ‘성녀’가 있었으며, 그것에 신전이 큰 역할을 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처럼.
그러나 번뜩이는 눈빛엔 전처럼 두려운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방법을 알려달라고 묻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아름다운 붉은 입술이 달싹였다.
“이쪽으로 오시지 않겠습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라미트라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아샤벨은 잠시 눈을 가늘게 뜨다,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그가 안내한 곳은 기도실 안쪽에 딸린 작은 방이었다.
문을 열자 그 안에 관이 여럿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새겨진 문장.
신전의 문장이었다.
‘이건……?’
체념을 겪어, 공허하던 그녀의 눈에 처음으로 의구심이 어렸다.
이해한다는 듯 너그럽게 웃은 라미트라가 기꺼이 그녀의 호기심을 해결해 주기로 했다.
“한번 열어보시겠습니까?”
“……저 안에 제 질문에 대한 답이 있나요?”
“그렇습니다.”
그에 아샤벨이 천천히 눈앞에 있는 관 뚜껑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