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03)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03화(203/241)
부패한 시체, 혹은 인간의 뼈가 있어야 할 관은…….
텅 비어 있었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처럼.
아샤벨의 눈동자에 놀란 기색이 어리자 라미트라가 말했다.
“성녀님, 전 교황 성하께서 신병을 앓으셨다는 것은 알고 계시지요?”
뜬금없는 물음에 아샤벨은 당황한 마음을 숨기며 대답했다.
“……네. 결국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신병을 앓던 교황이 죽는 순간, 신탁은 이뤄진다.
그렇게 3년 후, 세계수의 힘을 가진 아샤벨이 세상에 나타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샤벨이 신께서 내려주신 새로운 세계수라고 믿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아샤벨이 의문을 가질 때, 라미트라가 말했다.
“한번 앞으로 손을 뻗어보시겠습니까? 자, 이렇게.”
라미트라가 주춤거리는 아샤벨의 손을 감싸, 앞으로 내밀었다.
파악!
그 순간 손바닥에서 녹음의 빛이 일었다.
그녀가 알고 있던 자신의 힘이자 세계수의 힘이었다.
그러나…….
화아악! 빛이 일그러지더니, 곧 까맣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불꽃이 검은색으로 변하자 아샤벨은 사색이 된 얼굴로 황급히 손을 거두었다.
황후의 얼굴에 그림자를 만들었던, 그 빛이 분명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보시는 그대로입니다.”
라미트라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성녀님의 힘은 이곳에 잠드셨던 역대 교황 성하의 힘을 통해 만들어낸 것입니다.”
“……!”
“그리고 전 교황 성하께서는 새로운 세계수를 위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바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언데드들이 좀 늘어나긴 했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라미트라의 광기 어린 눈빛이 아샤벨에게 닿았다.
“성녀님께서 저희에게 와주셨으니까요.”
“하.”
그 달콤한 속삭임에 아샤벨이 실소를 터뜨렸다.
제 생각대로였다.
언데드.
사기로 들끓었던 대륙 남단.
그녀가 눈을 뜨고 일어날 때까지, 그것들이 저를 공격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죽은 사람들의 힘을 이용해 만들어진 존재였기 때문이었어.’
이젠 추방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짜를 만든 것도 모자라, 신의 축복이라 이름 붙였다.
이는 명백한 신성모욕이었다.
‘황후가 어떻게든 나를 붙잡아둔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구나.’
모든 진실을 깨달은 아샤벨 이관을 붙잡은 채 큭큭, 어깨를 떨며 웃었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공허한 방을 울렸고, 라미트라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녀의 웃음이 멈춘 건 한참 후였다. 천천히 눈을 뜬 그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일을 누가 알고 있죠?”
“황제, 황후 폐하, 그리고 저만 알고 있습니다. 신의 그릇을 만들려면 그만한 ‘기반’이 필요했습니다. 황후 폐하께서 도움을 주셨지요.”
“그릇이라…….”
아샤벨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검지로 관을 톡톡 두드렸다.
저는 황실과 신전의 합작 아래, 만들어진 존재.
제 정체가 밝혀지면 제국의 두 기둥이 신의 이름을 빌려 직접 가짜를 만들었노라 공표하는 것과 같았다.
어떻게든 저를 보호할 수밖에 없을 터.
“잘됐네요.”
판단을 마친 아샤벨이 라미트라를 바라보았다.
“며칠 전부터 신력의 움직임이 멈췄다고 들었어요.”
“예, 맞습니다. 세계수가 시든 후부터 한 번도 멈추지 않았는데, 갑자기 흐름이 끊겼더군요.”
그 말에 아샤벨의 표정이 굳었다.
“……그 말씀은 진정한 세계수의 힘을 가진 자가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순순한 긍정에 아샤벨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자가 나타날 경우, 제가 가짜란 사실이 들통날 터였다. 그러니 그전에 찾아야 했다.
찾아서, 그 힘을 제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우선은…….’
천천히 관 뚜껑을 덮은 그녀가 라미트라를 돌아보았다.
“새로운 ‘그릇’을 만들고 싶어요. 저와 같은 힘이 아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마나를 거기에 넣었으면 해요. 억지로 뒤틀어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가득이요.”
“…….”
“그리고 ‘그릇’은, 저보다 짙은 붉은 머리에 보라색 눈을 가진 사람으로 쓰고 싶어요.”
사람들은 자극적일수록 좋아하는 법이니까요.
그녀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기울이자, 분홍빛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라미트라의 금안이 그녀의 머리카락에 꽂혀, 떨어지질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본래 그릇’대로, 성녀는 붉은 머리에 보랏빛 눈동자를 가졌어야 했다.
하지만 그동안 모아놓았던 소수 일족의 힘을 모조리 쏟아부은 덕에 다른 머리카락 색이 나타나고 말았다.
그러나 맑은 녹안을 만드는 것만큼은 성공했다.
그가 그토록 바랐던 세계수의 빛.
저 색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런데 그가 빚어낸 ‘신’이 제가 실패한 아름다운 색을 다시 만들겠노라, 말하고 있었다.
라미트라의 눈빛에 짙은 갈망이 어렸다.
아샤벨이 상냥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우선은 녹안을 가진 아이들을 조사해 주셨으면 해요. 길거리 아이들부터 찾아보는 게 좋겠군요. 당장 죽어도 괜찮은 아이들이니까요.”
“…….”
“만약 힘을 가진 아이가 아니라면, 제가 생각해 둔 그릇에 넣으면 좋을 것 같은데.”
대신관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그녀가 차분하게 계획을 읊자 라미트라가 속으로 기쁜 탄식을 흘렸다.
아아.
자신이 만든 신께서, 직접 제게 명령을 내리고 있다.
이보다 달콤한 복종은 없을 터였다.
짜릿한 쾌감을 느끼며, 라미트라는 기꺼이 고개를 숙였다.
“신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 * *
며칠 후.
엘리는 바쁘게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은 데미안과 함께 중요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변함없는 부부 사이에, 은근히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하지만 별다른 싫은 소리는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남편과 함께할 수 없다면 미련 없이 황궁을 떠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지만, 데미안이 황궁에 기거하는 것만큼은 반대했다. 고귀한 황족만이 황궁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고귀한 황족은 무슨.’
엘리는 치미는 욕설을 억지로 삼키며 황궁을 나섰다.
곧 데미안을, 자신의 남편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입가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하지만
“야!”
등 뒤의 음성을 듣는 순간, 엘리의 얼굴은 사정없이 구겨졌다.
오른쪽 손목에 붕대를 칭칭 감은 2 황자, 마테오가 씩씩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사냥대회 때 기절한 것으로도 모자라 부상까지 입은 일로, 그는 일생 최대의 굴욕을 겪은 상태였다.
그런데 반쪽짜리 주제에 감히 황태자 자리까지 넘본다니. 눈이 뒤집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반쪽짜리, 너 지금 제정신이야? 누구 마음대로 황태자 자리를 넘봐?!”
잔뜩 성난 어조에 엘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2 황자 전하. 제가 넘보지 말아야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네가 나보다 나은 게 뭔데?”
예의를 집어던진 엘리의 언사에 마테오의 눈이 크게 뜨였다.
“가, 감히 내게 반말을……!”
“넌 이 와중에 그걸 따지는구나.”
한심하긴.
엘리가 우습다는 듯 피식 웃었다.
“고귀한 황족이지만 치유력도 개화하지 못한 너, 그리고 반쪽짜리지만 온전한 힘을 가진 나.”
“……!”
“사람들이 누굴 더 믿을 것 같아?”
“너……!”
마테오가 이를 악물었다. 이마에 힘줄이 돋을 정도로 강한 분노가 그를 휘감았다.
하지만 가장 분한 건, 그녀의 말에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여유롭게 그를 관망하던 엘리가 싱긋 웃었다.
“아니면, 다시 숲으로 들어가서 사냥으로 승부를 겨뤄볼까?”
마테오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자신의 눈을 향해 화살을 겨눴던 그날의 잔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젠장…….”
주춤거리던 그가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뒤로 물렸다.
엘리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놈이 어떻게 황제를 하겠다고.’
쯧쯧, 혀를 차던 엘리가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1 황자, 파비안 때문이었다.
못 박힌 듯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마테오와 말씨름하는 장면을 고스란히 지켜본 듯했다.
파비안은 그나마 마테오보다 얌전한 편이라지만, 함께 황태자 자리를 두고 싸우는 경쟁자였다.
심지어 1 황자와 저는 바람을 피웠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불륜 상대에서 이복 남매까지.
불쾌한 소문이 돌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번엔 또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골치 아프다는 듯, 그녀가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파비안이, 작은 목례와 함께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그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엘리였다.
파비안이 그냥 스쳐 지나갈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더 피곤해지진 않겠네.’
그리 생각하며 몸을 돌린 엘리가 익숙한 인영을 발견하곤 눈을 크게 떴다.
“데미안!”
그녀가 빠르게 달려가자 데미안이 뛰지 말라는 듯 서둘러 엘리 곁으로 다가왔다.
“미안해, 오래 기다렸지.”
“아니야.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어.”
데미안이 밝게 웃었다.
그러자 지그시, 그를 바라보던 엘리가 손을 뻗어 양 뺨을 붙잡았다.
그러곤 살짝 힘을 주었다.
데미안의 붉은 입술이 붕어처럼 톡, 튀어나왔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듯, 데미안이 동그랗게 뜬 눈을 끔뻑였다.
엘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볼이 이렇게 차가운데 누굴 속여.”
“…….”
“솔직히 말해, 언제부터 기다렸어.”
“……10분 전에 막 도착했어.”
“거짓말하면 뽀뽀 안 해줄 거야.”
“……2시간 전부터.”
“뭐?”
엘리가 입을 떡 벌렸다.
마테오와 입씨름하느라 좀 늦게 나오긴 했지만, 약속 시간에 늦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두 시간 전이라니!’
“왜 이렇게 일찍 왔어. 게다가 안에서 기다리지, 왜 밖에 서 있어.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그걸 말이라고 하니?
그때, 마차 창문이 걷히고 붉은 눈을 한 여우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새끼 여우로 모습을 바꾼 신수였다.
엘리가 두 번째 세계수이긴 했으나, 신전 혹은 황실에 이 사실이 밝혀져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신수는 슈에츠 공작성에서 지내고 있었다. 신전을 믿지 않기도 했고, 자신의 힘을 나눠준 데미안과 함께 있는 것이 신수에게도 이득이었으므로.
하지만 어째서인지 신수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치를 떨었다.
-찬 바람이라도 쐬어야 진정할 수 있는 게지.
“……신수.”
데미안이 드물게 살벌한 목소리로 조용히 그를 불렀다.
하지만 신수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내 젊었을 때 별의별 놈들 다 만나봤지만, 이놈같이 시도 때도 없는 놈은 또 처음이구나.
“그게 무슨…….”
-젊은 게 좋다지만……. 에휴, 아가. 네가 고생 좀 하겠어.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은 신수가 안쓰럽다는 얼굴로 엘리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