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04)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04화(204/241)
데미안에게 힘을 나눠준 후, 신수는 그에게 일종의 감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일부러 읽은 것은 아니었다. 신수는 여우로 모습을 바꾸며 많은 힘을 썼고, 자연스럽게 데미안의 힘을 끌어다 쓴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의 감정을 신수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의 모든 걸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충 무슨 생각을 하는구나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데미안의 머릿속은 엘리로 가득했다.
식사는 제대로 했을까. 이상한 놈들이 집적대지는 않았을까. 제가 없는 동안 작은 상처라도 났으면 어떡하지.
한시도 쉬지 않고 전전긍긍이었다.
신수는 남몰래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제게 검을 대뜸 들이댄 것도 모자라 은인을 몰라본 데미안이 아직까지 괘씸해, 그를 놀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에게 더 깊은 감응을 시도했지만…….
-이거 완전 속이 시꺼먼 놈이로구나!
신수가 펄쩍 뛰며 소리치자 데미안이 그를 흘겨보았다.
“그러게 남의 기억은 왜 읽습니까?”
-뭐야? 일부러 내게 그런 기억을 보여준 게냐?
데미안은 침묵했다. 신수가 설마, 하는 얼굴로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보여준 게 아니라면, 설마…….
“…….”
-이, 이 음흉한 놈! 내 두 번째 주인 옆에서 썩 꺼지거라!
신수가 털을 바짝 세운 채 데미안의 손가락을 왕왕 물어뜯었지만, 그의 표정은 변화조차 없었다.
사실 제일 곤혹스러운 건 데미안, 그 자신이었다.
그는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충동을 필사적으로 억눌러 왔다. 제 감정을 눈치챈 엘리가 혹시나 겁을 먹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를 끌어안던 엘리의 손길이, 헐떡이는 숨결이 발톱을 숨긴 채 마냥 순진한 흉내를 내던 짐승의 본능을 다시 눈뜨게 했다.
엘리가 나가야 한다며 밀어내지 않았다면 그는 바깥에 사람이 있다는 것도 망각한 채 이성을 잃고 그녀를 몰아붙였을 터였다.
아니, 어쩌면 누가 들어온다고 해도 멈추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지.
그래. 그래서 문제였다.
굶주린 짐승이 처음으로 단맛을 맛보았다. 그러나 갈증을 채 해갈하기도 전에 손에서 놓쳤다.
그러니 자꾸만 머릿속을 점령하는 그날의 기억이, 아니, 그보다 더한 생각을 한다 한들 오롯이 그의 잘못이라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여전히 그의 목엔 보이지 않는 목줄이 매여 있었고, 목줄의 주인은 엘리였다.
주인이 싫어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본능보다 더 깊은 각인이 그의 충동을 억눌렀다.
물론, 저 여우가 냉큼 엘리에게 고해바칠 줄은 몰랐지만.
데미안이 흉흉한 눈빛으로 신수를 바라보자 그가 귀를 축 늘어뜨리며 엘리를 올려다보았다.
-아가, 저 눈빛이 보이지? 내가 정말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단다. 부디 나를 구해주렴. 응?
낑낑거리는 모습은 신수가 아닌, 애교 부리는 여우 그 자체였다.
데미안이 이를 이득 갈았다.
에르하르트가 여우라는 말에 치를 떠는 이유를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엘리는 작고 귀여운 것에 약했다. 그래서 저도 한때는 잔뜩 예쁨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버린 지금, 남들 이상으로 훌쩍 커 버린 데미안은 더 이상 귀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작고 귀여운 여우 새끼가 나타났다.
자신의 은인이기도 했지만, 잔뜩 귀여움 받을 여우를 생각하면 저절로 속이 들끓었다.
그러나 이 유치한 질투를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데미안의 이글거리는 눈빛에 신수가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때, 엘리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었다.
신수가 냉큼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으나…….
엘리의 손길이 내려앉은 곳은 데미안의 머리 위였다.
신수의 얼굴이 실망으로 물들었다.
데미안도 예상치 못한 듯 눈을 크게 떴다.
엘리가 곱슬곱슬한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물었다.
“나 없어서 많이 외로웠어?”
데미안은 드물게 망설였다.
사실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괜찮아 혹은 견딜만 했어, 같은 말을 내뱉어야 그녀가 부담을 덜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응.”
데미안은 긍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엘리와 떨어져 있는 시간은 마치 지옥과도 같았다.
게다가 방금 전, 엘리에게 접근했던 두 황족을 보았다.
그녀가 단호한 얼굴로 내치지 않았더라면, 데미안은 애써 붙잡고 있던 이성을 잃고 그들에게 덤벼 들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그는 하루하루 말라가고 있었다.
그러니 외로웠다는 말 정도는 내뱉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힐끔 시선을 들어 엘리의 눈치를 봤다.
픽 웃은 엘리가 발끝을 들어 올렸다.
쪽. 작은 소리와 함께 턱에 따스한 것이 닿았다가, 다시 떨어졌다.
데미안의 눈이 커졌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지금, 무슨, 같은 조각난 단어들만이 흘러나왔다.
“에이, 입술에다 해주려고 했는데 키 차이가 너무 나서 안 되겠다.”
“……!”
엘리의 말에 데미안이 억울한 듯 울상을 지었다. 그럴 줄 알았다면 진즉에 무릎을 굽혔을 터였다.
데미안이 서러운 듯 입을 꾹 다물자 웃음을 참아낸 엘리가 손을 뻗었다.
그동안 부족했던 애정을 달라는 듯 냉큼 차가운 뺨을 비볐다.
그런데도 여전히 엘리는 요지부동이었다.
의아함을 느낀 그가 눈을 떴다.
웃는 얼굴에 미약한 장난기가 맴돌고 있었다. 순간 데미안의 눈빛에 불꽃이 튀었다.
“더 숙일까?”
그가 애교 부리는 한 마리 순한 강아지처럼 엘리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니면 내 위로 올라올래?”
“…….”
“난 그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손바닥에 쪽, 입을 맞춘 데미안이 나른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것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엘리의 입가에 걸려 있던 웃음이 천천히 사라졌다.
-저저, 여우 자식이! 이젠 아예 대놓고 유혹을 하는구나!
그러자 신수가 꼬리로 창문틀을 팡팡 내리쳤다.
-아가, 안 된다. 내 꼬리는 두 개지만 저놈의 꼬리는 아홉 개란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다는 듯, 엘리의 시선은 여전히 데미안에게 닿아 있었다.
-아가아아!
신수의 부르짖음이 커져 갈 때였다.
“신수님.”
-그래, 아가!
“자리 좀 비켜주세요.”
-응……?
신수가 당황해 눈만 끔뻑였다.
“잠시 마차를 좀 써야 할 것 같아서요. 제 힘을 쓰시면 자유롭게 이동하실 수 있잖아요.”
-아가…… 설마 나를 쫓아내는 거니? 저 여우의 유혹에 넘어간 게야?
신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지만, 엘리는 단호했다.
“네.”
신수가 입을 딱 다물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뾰족한 귀를 축 늘어뜨린 채 끼잉, 하는 소리까지 내보았지만 엘리는 요지부동이었다.
-내 헛살았구나, 헛살았어. 세계수를 수호하는 위대한 신수인 이 몸이 젊은 놈들에게 내쫓기는 신세가 되다니…….
흑흑, 우는 시늉을 한 신수가 한 바퀴 공중을 돌더니 곧 모습을 감췄다.
방해꾼이 완전히 사라지자 두 사람은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힘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허리가 붙잡혔다.
마주 보도록 그녀를 앉힌 데미안이 깍지를 끼곤 손등에 쪽쪽거리며 입을 맞췄다.
어서, 빨리, 하고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
본인이 먼저 저를 끌어당겨 입을 맞췄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아니, 오히려 잡아먹어 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맞닿은 시선이, 손길이, 붉어진 눈가가 저를 원한다고 마음껏 소리친다.
그 모습에 묘한 충족감이 든다면, 저는 변태인 걸까. 엘리가 침을 꼴깍 삼켰다.
“……눈 감아볼래?”
그녀의 말에 데미안이 얌전히 눈을 감았다.
단정한 검은 머리카락, 대조될 정도로 하얀 피부, 기다란 속눈썹과 높은 콧날, 그리고 붉은 입술까지.
엘리는 조각처럼 예쁜 얼굴을 홀린 듯 바라보다, 천천히 그에게 입을 맞췄다.
가벼운 소리와 함께 입술과 코끝이 스쳤다. 잠시 머뭇거리던 엘리가 조심스럽게 그에게 파고들었다.
그러자 데미안이 기다렸다는 듯그녀의 숨결을 집어삼켰다.
“읏…….”
익숙하지 않은 감각에 흠칫 몸을 떨자 그가 어르듯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때였다.
“어? 저 마차는…….”
“슈에츠에서 황녀님을 찾아오신 건가?”
때마침 누군가 마차 근처를 지나가는 것인지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엘리가 반사적으로 몸을 물렸다. 이곳이 아직 황궁 근처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쉬이, 괜찮아.”
데미안이 입술을 맞댄 채 달래듯 속삭였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야.”
“하지만…….”
엘리가 바르작거리자 그가 손을 들어 그녀의 양 귀를 감쌌다.
큼지막한 손이 귀를 틀어막자 외부의 모든 소리가 차단됐다.
그 대신 둥둥 울리는 심장이, 맞닿아 있는 서로의 소리들이 그녀의 세상을 지배했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과한 자극에 머리가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밖에 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어느새 엘리의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데미안의 다정하면서도 악랄한 착취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